조갑제의 김대중 연구(8)

조갑제의 김대중 연구(8)

미공개 자료를 中心으로 쓰는 金大中 연구③-3; 「암살기도」라는 김대중 교통사고 30년 만의 현장 검증;



『비행기 결항 원인은 조사하지 않았다』

―경찰에서 이미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업무상 과실치사에 의한 교통사고로 해서 보내왔어요. 그것을 내가 살인미수로 바꿔서 수사할 자신이 없는데, 괜히 그렇게 조사하다가 밝히지 못하면 양쪽에서…』

―트럭운전사 權重億씨에게 살인기도 아니냐는 심문을 한 적 있습니까

『물어봤죠. 피해자 측은 (당신이) 누구의 사주를 받고 죽이려 했다고 말하는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피곤해서 깜빡 졸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어요』

―權重億씨는 기자에게 검찰에서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요.

『(許지사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사고 당일 목포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목포공항의 비행기 결항에 대해서는 수사를 했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경찰에서 만든 조서가 수사기록에 붙어 있을 거예요』

―경찰은 결항 원인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세요.

『모르겠어요. 나는 결항 원인을 조사 안했어요.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사건이었어요』

―살인미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사 안 한 것 아닙니까.

『살인미수가 아니구나가 아니라, 살인미수였더라도 입증해서 유죄를 받아낼 자신이 없었어요』

―특정인을 죽이기 위해 정부가 고의적으로 항공기를 결항시켰다는 주장이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나는 국회의원 하면서도 당할 것 다 당했는데요』

―피해자가 암살기도라고 주장하며 제시한 세 가지 의혹에 대해서 검찰이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결국 암살기도라는 물증이 없었던 것 아닙니까.

『원래 물증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 사건이에요. (범인이) 입 다물어 버리면 미궁에 빠지는 사건이지요』

―암살기도가 분명하다면 치밀하게 이뤄졌을 것 아닙니까. 예컨대 金후보 승용차의 이동 상황을 누군가가 체크해 대기중인 트럭운전사에게 알려 주어야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트럭운전사는 무전기 같은 것을 소지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물증 아니겠습니까. 혹시 트럭운전사한테서 무전기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까.

『…(許지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트럭운전사 옆에 조수가 타고 있었는데 조수는 조사했습니까.

『(許지사는 한참 있다가) 조수는 기억이 없는데…. 조수는 기억을 못하겠어요』

―살인이라면 극소수의 인원이 극비리에 동원되는데 트럭에는 조수가 타고 있었습니다. 조수가 탑승한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許지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스키드 마크 있었다』

―그렇다면 암살기도라는 심증이 가는 사건도 아니지 않습니까.

『나도 DJ한테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졸다가 보면 남의 차선에 뛰어드는 과실 사건도 많지 않느냐」고 했어요. 본인이 자백을 안 하면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만일 운전사가 졸음운전했다면 졸음이 오는 상태에서 특정 차를 겨냥해서 들이받는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운전사에게 살인의도가 있었다고 하려면 운전사가 그 길을 잘 알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그 길은 트럭운전사가 별로 안 다닌 길이었어요. 그러면 졸기가 힘든데…. 그(트럭운전사) 쪽에 유리하게 보이는 것들도 있었어요』

―許지사께서 쓰신 반론문에 보면 「이 사건은 고의성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중대한 과실이 있는 의문의 사건이 분명했지만」이라고 되어 있는데, 고의성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중대한 과실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누가 살인을 지시했던 안 했던 간에 눈뜨고 운전하는 사람이 노선을 침범해서 상대를 치는 것은 살인이지요. 객관적인 사건은 살인으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재판 결과에서 판명났지만 살인이 아니고 업무상 과실치사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입증을 내가 못한 거지요. 내가 입증을 못한 것이니까 나는 殺意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말을 못한다는 거지요. 살인음모가 있었다면 내가 무능해서 못 밝힌 것이고, 살인음모가 없었다면 내가 제대로 기소한 것이지요』

―트럭운전사는 사고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장에 스키드 마크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스키드 마크는 보았습니까.

『봤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았지요.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안 밟았으면 자기도 차선을 넘어가서 떨어져 버렸으니까요. 충돌하는 순간에 브레이크를 밟은 거예요』

―스키드 마크가 어디에 나 있었는지 기억납니까.

『지금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어요』

―스키드 마크가 어느 차선에 나 있었는지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중요 사안입니다.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은 트럭이 맞은 편에서 오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침범한 것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스키드 마크는 오른편 차선에서부터 충돌지점 지점까지로 이어졌을 겁니다.

『그것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어요』

―스키드 마크가 길게 나 있었습니까.

『길지는 않았어요』


44mm의 비가 내렸다

―트럭운전사 말은, 졸지도 않았고 金후보 차가 자기 차선을 침범하니까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경찰이 金후보 승용차 운전사를 입건 안 할 이유가 없는데, 입건조차 안했어요』

―사고 후에 바로 金大中 의원을 조사했습니까.

『내가 현장에 갔을 때 金후보는 가버리고 없었어요. 며칠 있다가 내가 동교동에 가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어요』

―만약 살해기도가 있었다면 金大中씨가 대통령이 된 지금 다시 한 번 수사를 해서 진실을 밝혀야 되는 것 아닙니까.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봐요. 살인음모가 있었다고 밝혀내더라도 처벌할 수가 없는 사건을 수사기관에서 조사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봐요.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라면 모르지요. 그러나 트럭운전사가 대통령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에는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수사가 될 수 있는 거지요』

―명예훼손 이전에 이것은 트럭운전사의 인권유린 아닙니까.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편향된 견해라고 봅니다. 어쨌거나 트럭운전사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1971년 5월24일 목포 공항에서 항공기가 결항한 경위를 확인해 보기 위해 전국 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단에 문의한 결과, 워낙 오래 전 일이어서 기록 자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목포 지방의 기상상태를 확인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교통사고 전날인 1971년 5월23일 木浦 지방의 날씨는 「구름이 많이 끼고, 降水(강수) 현상은 없었으며」, 5월24일에는 木浦에 44.4㎜의 비가 내렸다. 44.4㎜라면 상당한 양이다.

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가 오면 視程(시정)거리가 짧아지므로 안 뜰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당시 목포공항 항공기 운항 여부를 체크한 사람은 경호원 咸允植씨였다. 咸씨는 『목포공항 관계자로부터 「날씨가 좋지 않아 관제탑에서 계기비행시키기가 힘들다는 결정을 내렸다. 시설이 좋은 광주공항에서는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광주로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유세에서 암살설 주장


목포 공항은 1969년에 군용 비행기 이착륙을 위한 공항으로 건설돼 1970년부터 서울에서 제주로 가는 민간 항공기의 중간 경유지로 운항되었다. 1971년 교통사고 당시의 목포공항은 문을 연 지 1년밖에 안 되는 지방 공항으로서 활주로 길이가 짧고, 안전 이착륙을 위한 시설이 미비했다.

항공사 관계자들은 『해안에 인접해 있고, 산에 둘러싸인 목포공항은 지금도 돌풍이나 海霧(해무ㆍ바다 안개)와 같은 해양성 악천후에 취약하다』며 『목포공항은 여수, 속초, 포항공항과 더불어 조종사들이 이착륙에 가장 부담을 느끼는 취약공항』이라고 말했다.

1998년의 통계에 따르면 목포공항의 연 평균 결항률은 13%로, 속초공항(21%) 다음으로 결항률이 높았다. 이 기간중 4월부터 6월 사이의 목포공항 결항률은 월 평균 25%를 차지, 年평균보다 높았다. 1971년 5월24일이라면 1년 중 결항률이 가장 높을 때였다.

한국공항공단의 한 관계자는 『비행기 운항에 지장이 없는 날씨임에도 고의적으로 항공기를 못 뜨게 했다는 주장은 항공사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교통사고 후 李和東 노인 집에서 1차 응급조처를 받은 金大中 대통령은 무안읍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학교驛(역)」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했다. 이날 金大中 대통령은 서울 13개 지역에서 지원유세키로 계획돼 있었다. 늦게 상경한 金대통령은 팔에 붕대를 감고 朴漢相(박한상), 朴正勳(박정훈) 후보 지역구에서 유세했다.

이 유세에서 金大中 의원은 자신이 탑승키로 했던 항공기가 특별한 이유없이 결항되고 트럭회사 사장이 여당 소속 전국구 의원인 점을 근거로 대며, 朴正熙 정권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교통사고를 위장한 암살을 기도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교통사고 다음날인 1971년 5월25일자 朝鮮日報 보도에 따르면 「方一弘(방일홍) 신민당 임시 대변인은 25일 金大中씨의 승용차 충돌 전복사고에 대해 『사고를 낸 트럭이 사고 지점에서 金씨 차 뒤에 따라오던 택시의 추월기미를 느꼈다면 의당 반대쪽인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어야 하는데도 왼쪽으로 급커브를 틀어 金씨 차 뒷부분을 들이받은 점 등』을 들고, 단순한 운전부주의 교통사고로 보기 어렵게 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증거 없는 암살說

金大中 대통령 취임 1주년이었던 1999년 2월25일, 「김대중 자서전① 역사와 함께 시대와 함께」라는 책이 출간했다. 이 책은 일본 NHK 방송 취재진이 글을 구성하고 당시 제2건국운동 공동위원장인 金容雲(김용운)씨가 편역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교통사고를 여전히 「암살기도」로 규정해 놓았다. 이 책은 그 전에 月刊朝鮮에서 두 차례 보도한 트럭운전사 權씨의 증언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 트럭운전사는 그렇게 엄청난 대참사를 일으키고 도망쳐 버렸다. 조수만 남았는데, 변명도 안 되는 이야기만 지껄일 뿐이었다. 트럭 주인은 공화당의 유력자인 변호사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제의 전국구 제8위에 올라 당선이 확실한 인물이었다. 나중에 잡힌 운전사는 살인혐의로 기소되었지만, 그 조사에 있어서 기소를 결정한 검사는 모두 좌천되고 바뀐 검사는 이 일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부는 그 뉴스 보도를 막았다. 이 사건은 나를 제거하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계획한 음모였다. 이것은 나에게는 한국전쟁 당시의 인민군에게 처형될 뻔한 일에 이어, 두 번째 죽음의 늪에서 탈출한 사건이었다>

현장 상황과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金大中 의원 교통사고」의 윤곽은 거의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사의 중점이 누가 중앙선을 먼저 침범했는가에 쏠렸지만 이 쟁점이 어느 쪽으로 결론 나도 암살기도說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트럭운전사가 사고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았고, 현장에 스키드 마크가 있었다는 것은 이 교통사고가 암살기도가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물증이 아닐 수 없다.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암살을 시도하는 「전문 킬러」가 1971년 상황의 한국에 과연 있었을까.

金大中 대통령은 이미 30년 전부터 트럭운전사를, 자신을 죽이려 한 「암살범」이라 단정하고 수많은 인터뷰에서 이를 공개했다. 하지만 金대통령은 암살說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트럭회사가 여당 의원 소유라는 金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에서 틀렸다. 수사 검사가 교체되고 트럭운전사가 달아났다는 주장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운전사는 살인혐의로 기소되지도 않았다.

朴正熙 정권이 金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목포공항의 비행기 운항을 금지시키고 트럭을 고개 밑에 대기시켜 놓았다가 들이받으려 했다면 이 암살 工作은 치밀하게 계획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신혼부부가 탄 택시가 등장했으며, 「살인 기도」 트럭에 조수가 타고 있었을까.

金大中 대통령이 교통사고 현장에서 살아나온 직후 암살기도說을 주장한 것은 상황논리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 뒤에도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암살기도說을 내세우고, 그의 설명과 다른 反證들이 많이 발견되고 공개되었는데도 수정이 없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노벨상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이 그 나라 국민 한 사람의 인권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인가.


『제발 저를 내버려 두세요』

취재 결과, 이 교통사고의 수사기록은 보존기간 경과로 찾을 수 없었지만 1심 판결문은 정부기록보존소에 보존돼 있음이 확인되었다. 정부기록보존소 측은 『당사자가 신청할 경우 열람이 가능하나 언론사의 요청에는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기록과 판결문을 구하지 못하고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존해 쓰여진 이 기사가 세부적인 사실에서 틀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전사 權씨가 朴정권의 지령에 따라 金大中씨를 죽이려 했다는 증거가 수사·재판기록에 없으리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물론 대통령도 그를 살인음모자로 단정할 권리가 없다. 권력자가 의심만 갖고서 無力한 한 개인을 지목하여 「당신은 암살기도범이다」는 취지로 되풀이해서 公言한다는 것은 그 개인에게 어떤 심리상태를 결과할까?

부산에 살고 있는 트럭운전사 權重億씨에게 본 기자(禹鍾昌)는 명예회복에 나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반문했었다.

『저는 지금 몸이 아픕니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겠는데 제발 저를 내버려 두세요. 저는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하고 대항할 무슨 힘이라도 있습니까?』● <9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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