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할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행복입니다
『이거 암 같은데…』
CT 검사를 하던 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흔다섯 중년의 나이에 우연히 친구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하던 중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암 같은데…』
의사인 친구가 무심코 툭 뱉었다. 그 한 마디가 날카로운 창 끝이 되어 나의 가슴에 와서 박혔다. 얼떨떨했다. 의사가 입을 열었다.
『쓸개에 1.5cm짜리 혹이 보여』
『설마…』
나는 겁에 가득 질린 눈으로 의사를 올려다 보았다.
『이 정도의 크기면 악성으로 됐을 확률도 많은데…』
유명 전문의의 자신감에 찬 진단이었다. 그 선고를 받고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이미 반쯤 죽어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허깨비 같던 삶의 구조물들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내 몸 같던 가족도 함께 저 세상으로 가는 게 아닌가.
의욕을 상실한 채 드러누워 있었다. 이상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의식은 내가 당한 불행을 강하게 부인했다. 얼마 전 죽은 사촌형도 그랬다. 폐암을 선고받은 형은 죽기 전 엑스레이 필름을 내게 보냈다. 실력 있는 의사에게 보여서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를 검사한 의사친구는 생명이 석 달 정도 남았다고 판단했다. 사촌형은 그 말대로 정확히 석 달 후에 죽었다. 그는 誤診이기를 바라면서 평소에 하던 금은 세공 일을 계속 하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자 죽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자니 답답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마지막까지 이 세상 일을 하는 게 의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술 스케줄을 잡아놓고 다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세상이 다시 보였다. 불쌍하게만 보이던 무기징역을 사는 죄수가 부러웠다. 받으면 기분이 좋던 돈도 시큰둥해졌다. 나만을 위해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공기 중에 연기가 되어 사라질 허무한 내 몸뚱이에만 나는 봉사해 온 것이다. 수술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나는 정리를 시작했다. 맡은 사건을 아는 변호사들에게 부탁했다. 아는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하직 인사를 했다. 수술 전날 담당의사가 나를 불러 이렇게 설명했다.
『암이 주위에 전이 되어 있으면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암은 생존기간이 6개월 정도입니다. 여기 서명 날인하시죠』
의사가 내놓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면서 비로소 실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일단 주변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다. 아내에게 자식을 부탁했다. 새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문제는 늙은 홀어머니였다. 혼자 월남해서 핏줄이라곤 나 하나였다. 대책이 없었다. 나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죽으면 양로원으로 가세요. 죄송해요. 어머니』
투명한 눈물 방울이 어머니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내 걱정은 말어.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대충 정리를 했다. 살고 싶었다. 나는 비로소 어느 종교단체 담 모퉁이에 써 있는 「구걸 할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행복입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비감한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세상은 봄의 향연이 펼쳐졌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갔다. 야산에는 연록색 잎들이 아기 피부같이 부드럽게 돋아난 모습이 보였다. 그 총천연색 파노라마를 나는 처음 보았다. 이전에는 왜 그 경이가 흑백의 빛바랜 필름보다 못했을까. 돈에, 자리에 취해 있던 나는 그것들을 볼 마음의 눈이 없었다.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얼마 후 나는 개구리처럼 발가벗긴 채 십자형의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의사들이 주위에 둘러서서 무감각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마취의가 내 코에 가스를 흡입시키는 중이었다. 나는 마지막 기도를 했다.
「세상에 태어나 잘 살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각오가 됐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요」
갑자기 수술실 천장이 두 쪽이 나면서 나는 깊은 어둠의 심연 속에 빠져 들어갔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無의 세계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어둠 가득한 넓은 창고 한구석에 나는 쥐처럼 웅크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여기가 어딜까 하는 의식이 드는 순간 눈꺼풀이 열리면서 확 밝은 세상이 나타났다. 의사 두 명이 내 옆에서 떠들고 있었다. 여섯 시간의 수술 끝에 나는 살아났다. 나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고 아름다운 색채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이후로 삶은 매일의 축제였다. 자연은 무한한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는 갤러리였다.
『이거 암 같은데…』
CT 검사를 하던 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흔다섯 중년의 나이에 우연히 친구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하던 중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암 같은데…』
의사인 친구가 무심코 툭 뱉었다. 그 한 마디가 날카로운 창 끝이 되어 나의 가슴에 와서 박혔다. 얼떨떨했다. 의사가 입을 열었다.
『쓸개에 1.5cm짜리 혹이 보여』
『설마…』
나는 겁에 가득 질린 눈으로 의사를 올려다 보았다.
『이 정도의 크기면 악성으로 됐을 확률도 많은데…』
유명 전문의의 자신감에 찬 진단이었다. 그 선고를 받고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이미 반쯤 죽어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허깨비 같던 삶의 구조물들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내 몸 같던 가족도 함께 저 세상으로 가는 게 아닌가.
의욕을 상실한 채 드러누워 있었다. 이상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의식은 내가 당한 불행을 강하게 부인했다. 얼마 전 죽은 사촌형도 그랬다. 폐암을 선고받은 형은 죽기 전 엑스레이 필름을 내게 보냈다. 실력 있는 의사에게 보여서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를 검사한 의사친구는 생명이 석 달 정도 남았다고 판단했다. 사촌형은 그 말대로 정확히 석 달 후에 죽었다. 그는 誤診이기를 바라면서 평소에 하던 금은 세공 일을 계속 하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자 죽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자니 답답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마지막까지 이 세상 일을 하는 게 의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술 스케줄을 잡아놓고 다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세상이 다시 보였다. 불쌍하게만 보이던 무기징역을 사는 죄수가 부러웠다. 받으면 기분이 좋던 돈도 시큰둥해졌다. 나만을 위해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공기 중에 연기가 되어 사라질 허무한 내 몸뚱이에만 나는 봉사해 온 것이다. 수술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나는 정리를 시작했다. 맡은 사건을 아는 변호사들에게 부탁했다. 아는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하직 인사를 했다. 수술 전날 담당의사가 나를 불러 이렇게 설명했다.
『암이 주위에 전이 되어 있으면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암은 생존기간이 6개월 정도입니다. 여기 서명 날인하시죠』
의사가 내놓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면서 비로소 실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일단 주변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다. 아내에게 자식을 부탁했다. 새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문제는 늙은 홀어머니였다. 혼자 월남해서 핏줄이라곤 나 하나였다. 대책이 없었다. 나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죽으면 양로원으로 가세요. 죄송해요. 어머니』
투명한 눈물 방울이 어머니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내 걱정은 말어.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대충 정리를 했다. 살고 싶었다. 나는 비로소 어느 종교단체 담 모퉁이에 써 있는 「구걸 할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행복입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비감한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세상은 봄의 향연이 펼쳐졌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갔다. 야산에는 연록색 잎들이 아기 피부같이 부드럽게 돋아난 모습이 보였다. 그 총천연색 파노라마를 나는 처음 보았다. 이전에는 왜 그 경이가 흑백의 빛바랜 필름보다 못했을까. 돈에, 자리에 취해 있던 나는 그것들을 볼 마음의 눈이 없었다.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얼마 후 나는 개구리처럼 발가벗긴 채 십자형의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의사들이 주위에 둘러서서 무감각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마취의가 내 코에 가스를 흡입시키는 중이었다. 나는 마지막 기도를 했다.
「세상에 태어나 잘 살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각오가 됐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요」
갑자기 수술실 천장이 두 쪽이 나면서 나는 깊은 어둠의 심연 속에 빠져 들어갔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無의 세계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어둠 가득한 넓은 창고 한구석에 나는 쥐처럼 웅크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여기가 어딜까 하는 의식이 드는 순간 눈꺼풀이 열리면서 확 밝은 세상이 나타났다. 의사 두 명이 내 옆에서 떠들고 있었다. 여섯 시간의 수술 끝에 나는 살아났다. 나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고 아름다운 색채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이후로 삶은 매일의 축제였다. 자연은 무한한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는 갤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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