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학교 여학생이 평양에서 본 6·25 전쟁
굳이 집을 지켜야 한다는 어머니를 남겨두고 아버지를 따라 트럭 위에서 흔들리며 대동강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그 다리는 폭파됐다. 어머니는 몇 달 후 부산에서 만날 수 있었다
金 瓊 實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전쟁포로들을 저렇게 잔인하게…
햇볕이 뜨거운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스팔트도 녹아 내리는 듯한 무더위 속에 인민군들로부터 총칼의 위협을 받으며 미군들이 줄지어 끌려가고 있었다.
이 무서운 공산권 평양 중심에 웬 미군들이 이렇게 많이 있단 말인가?
찢어진 런닝셔츠에 질질 끌리는 카키색 바지 그나마 몇몇 병사들은 동료의 어깨에 기대어 끌리다시피 걷고 있었다. 1950년! 불의의 남침 6·25! 그리고 두 달! 그들은 전쟁 포로들이었다. 전쟁 도발자라는 낙인을 찍으려고 평양 시내를 끌고 다니지만 그들의 비참한 모습에 또한 붉은 집정자들의 非인도적인 처사에 오가는 시민들의 눈은 분노에 떨고 있었다.
전쟁포로들을 저렇게 잔인하게…. 멀리 사라져가는 포로들을 바라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집 근처에 있는 18인민학교에 미군 포로들이 수용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제의 그 미군들일까? 급히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보고 있었다. 마침 방학이라 교실은 비어 있었고 미군들이 여기저기 힘없이 누워 있었다. 오랜 생활의 습관 탓인지 어떤 사람은 그 큰 몸을 학생들의 작은 의자에 기대어 앉은 모양이 안됐다기보다 우습기까지 했다.
인민군은 총대를 휘두르며 교실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저따위 미국놈들을 동정해선 안되오!』라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한참 후 미군 포로들은 줄지어 서서 주먹밥 한 덩이와 멀건 국물 한 공기를 받아들고 교실로 들어간다. 맞지 않는 음식에 배탈이 났는지 바지를 움켜쥐고 변소 출입이 잦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타의에 의해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해방된 지 5년, 공산 치하 북한에서 공산 교육을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의 세계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계급은 있어서 안되며 全세계 인간은 평등해야 하며 부르주아를 타도하고 무산계급의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는 공산당사를 줄줄 외우도록 공부했었다. 그러나 온 누리가 빨갛고 그 속에서 배운 것이 비록 마르크스 레닌의 유물사관이었다고는 하나, 이론과 현실의 모순성을 직접 보고 느꼈기에 결코 속속들이 붉게 물들 수 없었다. 죽음을 무릅쓴 많은 사람들이 38선을 넘기 시작했다. 북한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남한에 의한 통일을 염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6·25 남침으로 공산군은 오히려 남쪽으로 밀고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아 귀를 기울였다.
『어느 부대 어디까지 진군! 무슨 부대 어느 곳을 점령!』
의기양양한 인민군의 전황을 들으며 애꿎은 라디오만 두들긴다.
『북쪽만 가지고 모자라 남쪽까지 빨갱이를 만들겠단 말인가?』
무더위 속에 라디오를 솜이불 안에 들여놓고 잡음 섞인 남한 방송을 초조한 마음으로 몰래 도청한다.
『어느 부대 어디까지 후퇴. 무슨 부대 무사히 어느 지점까지 철수!』
맥없이 밀려가는 남쪽 뉴스를 들으며 다시금 라디오를 두들긴다.
『도대체 남한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무섭고 억압된 북한 사정을 상상이나 하는지?』
자꾸만 밀려가는 정세에 실망하며 그래도 매일같이 날아와 폭탄을 투하하는 남한 비행기를 후련한 마음으로 올려다 보고 있었다.
『자꾸 와서 쳐라! 매일 와서 폭격을 해야 한다니까!』
죽음을 싣고 오는 폭격기를 반갑게 기다리는 북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제트기 편대의 하늘을 찢는 소리, 공중을 선회하며 차례 차례 목표를 향해 급강하, 로켓 포탄의 작렬하는 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몇 번인가 반복하고 전투기 날아가면 이윽고 고공비행의 폭격기 소리와 함께 점선을 그으며 줄지어 폭탄이 떨어진다. 기분 나쁜 바람과 함께 대지가 진동한다.
무섭고도 아름다운 야간 공중 폭격
밤은 밤대로 말로만 듣던 조명탄이 캄캄한 밤하늘에 보름달같이 둥글게 수없이 공중에 걸린다. 낮보다 더 밝은 밤에 공중 폭격이 시작된다. 정말 무서웠다.
그러나 꿈많던 소녀 시절이기에 둥근 조명탄이 아름다운 만월같이 터지는 폭탄의 불똥이 무수한 반짝이는 별들처럼 공포 속에 순간의 착각을 일으킨다.
9·28 수복. 마음이 떨린다. 戰勢(전세)가 호전되기만 바라며 차츰 치열해가는 전쟁, 그리고 폭격 속에 국군과 UN군의 전진을 기다린다. 모란봉 밑에 자리잡은 인민학교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지 않을까? 폭격기가 날아오면 포로들은 교정으로 뛰어나와 런닝을 벗어들고 인민군의 제지를 뿌리치며 하늘을 향해 흔들어댄다. 비행기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높이높이 손을 흔들며 구원의 손길을 아득한 하늘을 향해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가방들고 등교하는 고급중학교 학생들은 그대로 군용트럭으로 분산돼 훈련장으로 끌려갔다. 며칠간의 훈련으로 학생들은 戰線으로 보내졌다.
학교에 간 후 온데간데 없어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닫혀진 교문 앞에서 많은 학부형들이 울부짖었다. 지루하던 여름도 지나고 선선한 가을 바람에 전진하는 국군의 신호인 듯 멀리 포 소리가 들린다.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단숨에 학교로 뛰어갔다. 인민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교실로 달려갔다. 물론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그마한 의자들만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전세가 불리하니 다시 北으로 끌고 간 것일까? 아니면 총살이나 하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들이 이북 사람 모두를 붉게 보지나 않았을까?
10월에 접어들었다. 국군이 입성했다. 태극기를 들고 어른 아이 목청 돋워 만세를 부른다. 탱크 소리 요란하고 줄 잇는 군용트럭 그 양옆을 땀에 젖은 군복에 총부리를 겨누고 北으로 전진한다.
젊은 국군장병들과 UN병사들이 여유 있는 웃음 속에 윙크를 하며 손을 흔든다.
쫓겨가는 인민군, 전진해가는 국군 다 같은 우리네 귀한 아들들인데 그들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과 생각이 평등하지 않았다. 인민군을 미움의 눈으로 바라보고 국군에겐 힘찬 박수를 보냈다.
공산체제를 싫어하고 자유를 갈망하던 5년 간의 억압 속에서의 나온 마음의 발로였다. 겁먹고 쫓기는 인민군, 뒤쫓는 국군. 同族(동족)끼리의 이 가슴 아픈 현실이 UN군의 진격으로 통일로 이어지길 바랐던 희망과 기쁨도 잠시, 북 치고 피리 불며 압록강을 건너 중공군이 물 밀듯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 우리 북한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전세는 다시 바뀌었다. 추위와 피로에 지친 국군과 UN군이 묵묵히 철수하기 시작했고 인민군은 또다시 총부리를 겨누고….
아버지 따라 대동강 다리 건너다
찬바람 부는 겨울날 길을 메우며 피난민 대열이 이어졌다.
『우리도 가야지!』
밤하늘의 별들도 얼어붙는 듯했던 1950년 12월3일 밤이었다. 굳이 집을 지켜야 한다는 어머니를 남겨두고 아버지를 따라 트럭 위에서 흔들리며 대동강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그 다리는 폭파됐다. 밀고 밀리는 전쟁은 계속됐다. 어머니는 몇달 후에 부산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떠난 후 『쿵! 쿵!』 가까워지는 포 소리가 무서워 사람들 따라 얼음 위를 걸어서 대동강을 넘어왔다고 했다. 전쟁은 끝났다.
통일의 염원인 38선은 아쉬움과 미련의 휴전선으로 이름만 바꿔 놓았다.
이제 오도가도 못하는 38선. 그리고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자유의 하늘 아래서 지나간 유년 시절, 소녀 시절의 뜻하지 않았던 시국의 어려움들, 아련한 추억들을 두고온 내 고향 평양 하늘을 그리며 세월은 많이도 흘러갔다.
두고온 가족이 없어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폐허가 되었던 평양! 또 내가 살던 집!
반세기가 흐른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고향의 그리움을 안고 내 부모는 피난지 남쪽에서 눈을 감았다. 나 또한 고향의 추억들을 가슴에 새기며 부모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제 내 자식들은 매일같이 되뇌이는 50년 前 전쟁 이야기와 고향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만큼 마음 깊이 실감하며 동감하고 있을까?
체험과 기록! 6·25 전쟁은 슬프고 가슴아픈 역사로 남을 것이다.
그때의 그 미군 포로들도 휴전이 되면서 본국으로 송환되어 갔을까?
해마다 돌아오는 6·25 날.
초청되어 한국땅을 밟는 6·25 참전 백발의 용사들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며 모란봉 아래 18 인민학교에 수용된 포로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페허 위에 이룩한 한국을 돌아보며 지난 시절 이국의 하늘 밑에서 젊은 피를 뿌리며 공산군과 싸웠던 참전의 의의를 가슴 뿌듯하게 되새겨 볼 것이다. 이제 6·25 체험 세대 모두가 이 땅에서 눈 감기 전에 같은 민족인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룩하여 후세대들에게 반쪽 아닌 옹근 땅을 물려줘야 할 것이다.
제 나라를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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