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의 김대중 연구(12)

조갑제의 김대중 연구(12)

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⑤-2;
6·15선언 제2항은 무허가 통일방안에 의한 「국가 정체성의 변조」 기도?;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한국은 연방제를 받아들이고…』

이 시리즈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 미공개 자료 - 「1980년 金大中 내란 음모 및 韓民統 결성 사건 재판 기록」에는 아래의 문서가 첨부되어 있다.

〈계엄사 合同 수사본부

1980. 6. 20

수신: 본부장

제목: 수사보고

1. 다음 名이 1972. 10~1973. 8 間 일본 및 미국에 체류하면서 言動한 내용 중 북괴의 주장에 동조 및 찬양 고무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보고합니다.

가. 인적 사항

원적:전남 신안군 하의면 대리 232

본적:서울 마포구 동교동 31-1

주거: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1

직업:무직

金大中 55세

1925. 12. 3生


나. 言動 내용

※나는 남북이 동시에 UN에 가입하고 세계 각국과 대등한 외교를 맺을 수 있는 연방제를 확립할 것과 이와 병행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諸교류를 盛行시켜 민족의 신뢰와 국민적 합의를 회복하는 평화교류를 추진할 것을 주장한다(1973. 3. 23 東京 외신 구락부 발표성명, 4.14 「콩고르디아」 신학대학 강연, 팜프렛 「한국 사태와 나의 신념」, 저서 「독재와 나의 투쟁」).

※남북한이 여유 있는 연방정부를 수립하여 100보의 거리를 90보, 80보로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1973. 3. 30 메이후라워 호텔 강연, 4.15 한민신보, 5.21 민족시보).

※한국은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를 받아 들여야 하고, 북한은 한국이 주장하는 UN동시가입안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6·23 외교 선언은 동서독처럼 남북분단을 영구화할 것이므로 반대한다(1973.4.24 시애틀 워싱턴 대학 및 7.6 메이후라워 호텔, 한민통 발기인 대회 강연).

※남북은 한반도의 외군철수, 쌍방정권의 인정, 정치·경제 제 분야의 전문적 교류를 통해 급속한 동질성을 회복, 연방 공존제를 만들고 통일 선거 후의 5년 동안은 거국정부를 세워야 한다(1973. 7.1 한민신보, 1973. 5. 21 코리아 저널).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위해서는 연방제를 만들어야 하며 북한이 종래부터 주장해 온 남북평화 공존과 교류 그리고 민족 화해 주장 등은 나의 통일관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독재와 나의 투쟁 p.192).

※ 한국이 자유도 빵도 없는 데 반해 북한은 비록 자유는 없다고 해도 빵이 보장된다. 나의 이러한 입장은 북한 공산주의자들도 인정하고 있다(1973. 2. 23 내외 타임스 및 뉴욕 타임스 게재).

※괴뢰, 괴뢰 하면서 무슨 놈의 괴뢰냐. 공산주의란 기존 사실을 우리는 27년 간이나 무시해 왔는데 以北은 공산당으로 안정되어 있으나 以南은 민주체제도 안정되지 못했고 오히려 혼란과 불안, 민생고만 극심할 뿐이다. 또한 金日成이 주체성 등을 확립시킨 것은 잘한 일이 아니냐.

朴정권은 말기 현상에 처해 있어 2, 3년내로 붕괴한다. 일본과 미국도 朴정권을 밀어내는 對韓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데 朴정권 타도에 다 같이 참가하자(이상 1973. 4. 24 시애틀 워싱턴 대학강연 부록).

※당신이 북한을 방문할 때는 金日成과 사진을 찍어야 하며, 그 사진을 신문에 보도하여 미국 북한 간의 관계 개선 이미지를 형성하고 이를 배경으로 북한 측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를 당신이 국회에서 주장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한국의 朴정권을 타도키 위해서는 미국이 對韓원조를 중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등으로 한국 정부에 개입해야 한다. 당신이 朴대통령과 사진을 찍으면 한국은 이를 이용, 당신이 朴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인 양 보도할 것이므로 당신에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상 1973. 4. 30 하버드大 코헨 교수와의 대담, 金正源 박사 통역).

※朴正熙씨가 통일을 위해 독재한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朴정권은 통일하려는 양심도 자신도 없다. 나는 결코 통일하면 공산당을 죽이는 그러한 반공통일을 하자는 것도 아니요, 勝共통일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공산당의 존립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以北에 金日成 주석을 중심으로 한 엄연한 정권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월남파병은 실패했다. 월남에 끌려간 우리의 청년들은 1만2000명이나 죽고 부상당하고 그러면서도 월맹이나 월남에서는 미움받고 세계에서는 마치 사람 죽이는 국민처럼 오해받고 돈에 팔린 용병이나 전쟁 좋아하는 민족으로까지 오해를 받으면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朴正熙씨는 지금 국민을 속이기 위해 장막을 쳐 놓고 월남에서 개선한 장병들의 환영대회를 한다고 떠들고 있다(이상 1973.3.21 하코네 入管法 연수회 강연, 1973.4.1 민족시보 게재).

※내가 집권하면 남북연방제와 대중경제를 실시하겠다. 교포들은 앞날의 受權태세를 확립하여야 하며 그 방법으로는 청와대와 백악관에 계속 편지를 내어 항의해야 하는데, 특히 경제원조의 부정사용에 대해서는 백악관에 이를 항의하여 중단토록 주장해야 한다(이상 5.18 샌프란시스코 국제학생회관강연, 6.1 자유공화국, 6.15 韓民新報 게재).

※대한민국은 미국의 군사원조와 일본의 경제원조로 유지되고 있는데 나는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이러한 돈이 남용에 불과하다고 알려줄 의무가 있다 (1973. 6. 24 달라스 타임스, 7.5 워싱턴 포스트 및 7.1 한민신보 게재).


2. 조치 의견

본건 불온 언동 내용을 金大中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피의 사건 구비 자료로 일괄 송치함이 가하겠습니다.

합동수사본부 軍사법 경찰관 육군 준위 梁一根〉

위의 자료는 金大中씨가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외국에서 활동할 때의 言動으로서 그의 對北觀을 잘 보여준다. 그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해외 망명 시절이던 1973년 3월23일에 발표되었다. 이 연방제안에 담겨진 의미를 해석하는 데는 위에 열거된 그의 對北觀이 하나의 열쇠가 된다.


正義·사실·애국심·균형감각이 결여된 對北觀

위의 보고서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金大中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되도록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이 보고서에 인용된 金大中씨의 말들을 분석하면 그의 연방제 통일방안이 딛고 있는 對北觀·역사관·국가관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를 읽어보면 우선 金大中씨가 북한의 실상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자유도 없고 빵도 없는 데 반해 북한은 비록 자유는 없다고 해도 빵이 보장된다」는 말이 그렇다. 1970년대 유신시절에 朴正熙 정권의 강권통치로 해서 정치적 자유가 제약된 것을 金日成 치하의 자유 말살과 同格으로 놓는 비교법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朴正熙식 권위주의를 金日成-金正日-스탈린식의 전체주의와 같다고 보는 것은 과장법이고 선동이다.

자유의 제약과 말살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金大中 같은 정치인이 金日成 치하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다면 朴正熙와 金日成을 同格으로 놓아도 되지만.

1973년의 한국에서 과연 빵이 없었는가. 1960년대 말을 경계로 해서 春窮期란 말이 사라지고 굶어죽는 사람도 없어졌다. 경공업 국가에서 중공업 국가로 도약하던 대한민국이 과연 「자유도 빵도 없는, 북한보다 못한 국가」였던가. 1960년대의 경제력을 초과하는 군사력 건설로 해서 1970년대에 들어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날로 악화되어 가던 북한에 남한보다 더 풍족한 빵이 있었단 말인가.

金大中씨는 朴正熙에 대한 미움 때문인지 판단력에 문제가 생겨 한국이 북한과의 힘의 관계를 逆轉시켜 가고 있던 1970년대의 거대한 변화를 놓친 것이다. 그의 연방제안도 그런 상황 오판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의 낡은 對北觀은 化石처럼 굳어졌고 공산권 붕괴와 300만 餓死者 발생이란 상황을 맞은 북한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한 데서 오늘날의 혼란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金大中씨는 또 월남파병을 실패한 것이라고 저주에 가까운 단정을 했다. 월남파병은 월남의 패망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안보를 튼튼히 했으며(우리 국군을 파병하지 않았으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월남전선으로 빼갔을 것이다), 韓美 동맹을 다졌고,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은 성공적 해외진출이었다. 우리가 1970년대에 中東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한 건설 人力이 1960년대에 월남에서 양성되었다.

金大中 대통령은 작년에 베트남 대통령에게 월남파병에 대해 사실상 사과하는 발언을 하여 참전군인들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불렀다. 30년 前 소신이 국가정책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그의 上記 언동에서는 대한민국이 민족사적 정통성을 대표하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라는 관점과 자부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대한민국을 민족사의 이단이며 反國家 단체인 金日成 정권과 동격으로 놓거나 북한 정권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朴正熙 정권에 대한 격렬한 비판과 金日成 정권의 인권말살에 대한 침묵,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동조는 매우 대조적이다.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게 마련인 金日成-金正日 정권에 대한 분노와 正義感의 발로가 그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의 성향이다.

남북한에 대한 金大中씨의 논법은 형식적으로는 제3자 입장에서 균형을 취하는 것 같으나 그 실질로 들어가 보면 朴正熙 정권에겐 가혹한 비판을, 金日成 정권에겐 好評 또는 지엽적 비판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主流를 이끈 李承晩-朴正熙 세력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는 느껴지지만 현대사의 흐름을 逆流하면서 동족에게 온갖 참화를 불러온 金日成-金正日 세력에 대해서는 그런 감정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인물이 지금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直視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金大中씨는 朴정권을 비판함에 있어서 정권과 국가를 분리하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이 朴正熙 정부를 경제적으로 지원한 결과는 대체로 국가와 국민한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쓰였다. 국가발전을 위해서 외채를 가장 효율적으로 쓴 나라가 朴正熙 치하의 한국이란 사실은 이미 검증된 진리이다. 지도자와 국민들이 한 손엔 망치, 한 손엔 총을 들고 조국 근대화를 위해 땀흘리고 있을 때 한국에 대한 경제지원에 문제가 있다는 폭로공세를 외국에서 펼친 것은 정권이 밉다고 국가와 국민들에게 해가 가는 행동을 한 것과 같다.

이런 金大中 대통령은 지금 북한을 상대함에 있어서 金正日 정권과 동포들을 분리하지 않고 金正日 정권을 군사적으로 강화시킴으로써 동포들의 고통을 지속시키는 현금지원까지 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을 하는 학생들에게 국민들의 세금을 공짜로 주어 가면서.

가장 놀라운 것은 金大中씨가 한반도에서의 외군철수를 거론하고 「한국이 북한의 연방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는 부분이다. 이는 한국이 북한 정권의 對南적화 전략을 수용하고 自殺하라는 말과 비슷하다. 1970년대 초에 한국이 연방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反헌법적, 反대한민국적 발언을 한 사람이 권력을 잡은 뒤에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와 나의 통일정책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요즘 와서 새삼 놀라는 사람들은 金大中씨의 사유체계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들일 것이다.

金大中씨의 上記 발언들은 그의 진심을 잘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를 20代에 좌익 행동대원이었던 사람이 갖게 되는 평생을 가는 이념적 성향의 한 표현이라고만 보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그는 남북한을 보는 데 있어서 균형감각·사실주의·정의감·애국심이 결여되어 있다. 그의 언동에서는 대한민국이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인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1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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