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星장군, 그는 30년 前 시험비행 때
미국 유학생활
「한국 최초 여자 조종사 탄생, 공군소위 김경오」 1952년 5월12일자 국내 신문에 난 기사 제목이다. 신문 1면에 사진과 함께 난 기사를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북받치는 흥분과 감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때부터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꼭 붙어 다녔고, 온 국민의 격려와 사랑을 받으면서 하늘에서 땅에서 나의 생활은 절도 있게 바빴다. 내가 이 나라에 최초를 장식했다는 것도 뿌듯했지만 유명인이 되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생활해야 하는 초긴장 인생은 무한한 행복감을 준다. 6·25 전쟁 중에는 6개의 훈장을 가슴에 달았고, 3시간20분 연속비행 공로로 渡美(도미), 유학길에 올랐다. 내가 살던 곳은 대부분 6·25 전쟁 중 한국에 참전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래서인지 나에 관해 관심이 많았고, 신문에 나에 관한 기사가 크게 실리기도 했다. 당시 최장수 TV프로그램인 NBC 「나의 비밀」 프로그램에 출연해 1000달러 현금과 1만 달러어치의 부상도 받았다.
공부할 시간은 없고, 「라이프 매거진」, 「뉴스위크」, 「타임」,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의 언론과 인터뷰하기에 매일 바빴다. 밀러 총장은 개교한 지 120년 만에 처음으로 학교 선전이 되니까 좋아했다. 그러나 학점은 에누리 없이 냉정하여 F학점 두 개는 보통이었다. 나는 완전 인기 스타가 되어 캠퍼스를 걸으면 남학생들이 앞다투어 프러포즈를 했다. 내콧대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러나 한 시간 접시 닦으면 50달러를 받는 상황에서 한 시간 비행교육비가 25달러인데 참으로 힘든 노동을 해야만 했다. 세 시간 수면을 취하고 그 외 시간에 학비·훈련비를 위해 뛰다보니 언제나 입술은 부르텄다.
李承晩 대통령의 격려가 힘이 되어
1953년 금의환향 후. 미국 50개 州 중 32개 州를 다니며 모금을 했다.
눈만 뜨면 신문, 라디오, TV 등 인터뷰에 분주했다. 「한국의 홍일점 김경오 조종사를 돕자」는 기사로 인해 후원회가 생기게 되었고, 초청강연료도 100달러에서 300달러로 뛰었다. 각국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한국 홍보에 기여도가 크다며 격려 편지와 전화가 날아들었다.
내 나이 25세 청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힘은 대통령 李承晩의 『김경오 대위는 우리나라 단 하나밖에 없는 여자 비행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꼭 성공하고 돌아와서 나라에 힘이 되세요』 이 짧은 한마디 말씀 때문이었다.
귀국하니 이승만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고 군사 정부의 찬바람만이 불었다. 1963년 10월30일 미국에서 가져온 비행기로 당시 여의도 비행장에서 명명식과 시험비행을 했다. 2만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나는 높이 6000피트(feet) 고도를 취했다. 이 순간을 위해 긴 세월 참고 인내하고 노력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파이퍼콜트(기명)機 양 날개로 춤을 추었다.
시험비행을 마치고 착륙하니 관중 대표로 소년 한 명을 태워 달라는 청이 들어왔다. 아주 귀엽고 건강한 중학생이었다. 뒷좌석에 태우고 강원도 삼척에 착륙하여 바다도 보여 주고 모래도 밟게 했다. 소년은 매우 수줍어했다.
1992년 2월 공군참모총장을 비롯 여러 명의 참모와 같이 오찬을 하게 됐다. 원탁 테이블에 음식이 놓였고, 내 바로 옆에 二星장군(별 두 개)이 앉았다. 역시 軍隊는 계급이라더니 총장 앞의 기라성 같은 장군들이 근엄한 자세로 식사를 했다. 참으로 딱딱한 분위기에 목에 음식 넘어가는 소리도 조심스러웠다. 주식이 끝나고 후식이 들어올 무렵 정막을 깨고 옆에 二星장군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저, 아주 옛날 이야긴데요. 그러니까 1963년 말인데 여의도 비행장에서 시험비행할 때 혹시 소년 태운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저 무심코 듣는 순간 그렇게 오랜 세월 궁금해했던 생각이 떠올라 『네, 혹시 그 소년의 소식을 아시나요?』 하니까 그는 매우 멋쩍은 표정을 하면서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 얘기 왜 지금 하시는 겁니까?』
나는 벌떡 일어나 그 장군을 쳐다본 순간 또 한 번 놀랐다. 180cm가 넘는 키에 잘생긴 외모, 양쪽 어깨 위에 빛나는 별, 영문을 모르는 참모총장과 참모들은 나의 돌발 행동에 그저쳐다만 보았다.
그 장군은 현재 공군 요직에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비행기에 태운 그 소년이 오늘날 이렇게 큰사람이 됐구나 생각하니 절로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미국 유학생활
「한국 최초 여자 조종사 탄생, 공군소위 김경오」 1952년 5월12일자 국내 신문에 난 기사 제목이다. 신문 1면에 사진과 함께 난 기사를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북받치는 흥분과 감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때부터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꼭 붙어 다녔고, 온 국민의 격려와 사랑을 받으면서 하늘에서 땅에서 나의 생활은 절도 있게 바빴다. 내가 이 나라에 최초를 장식했다는 것도 뿌듯했지만 유명인이 되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생활해야 하는 초긴장 인생은 무한한 행복감을 준다. 6·25 전쟁 중에는 6개의 훈장을 가슴에 달았고, 3시간20분 연속비행 공로로 渡美(도미), 유학길에 올랐다. 내가 살던 곳은 대부분 6·25 전쟁 중 한국에 참전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래서인지 나에 관해 관심이 많았고, 신문에 나에 관한 기사가 크게 실리기도 했다. 당시 최장수 TV프로그램인 NBC 「나의 비밀」 프로그램에 출연해 1000달러 현금과 1만 달러어치의 부상도 받았다.
공부할 시간은 없고, 「라이프 매거진」, 「뉴스위크」, 「타임」,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의 언론과 인터뷰하기에 매일 바빴다. 밀러 총장은 개교한 지 120년 만에 처음으로 학교 선전이 되니까 좋아했다. 그러나 학점은 에누리 없이 냉정하여 F학점 두 개는 보통이었다. 나는 완전 인기 스타가 되어 캠퍼스를 걸으면 남학생들이 앞다투어 프러포즈를 했다. 내콧대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러나 한 시간 접시 닦으면 50달러를 받는 상황에서 한 시간 비행교육비가 25달러인데 참으로 힘든 노동을 해야만 했다. 세 시간 수면을 취하고 그 외 시간에 학비·훈련비를 위해 뛰다보니 언제나 입술은 부르텄다.
李承晩 대통령의 격려가 힘이 되어
1953년 금의환향 후. 미국 50개 州 중 32개 州를 다니며 모금을 했다.
눈만 뜨면 신문, 라디오, TV 등 인터뷰에 분주했다. 「한국의 홍일점 김경오 조종사를 돕자」는 기사로 인해 후원회가 생기게 되었고, 초청강연료도 100달러에서 300달러로 뛰었다. 각국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한국 홍보에 기여도가 크다며 격려 편지와 전화가 날아들었다.
내 나이 25세 청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힘은 대통령 李承晩의 『김경오 대위는 우리나라 단 하나밖에 없는 여자 비행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꼭 성공하고 돌아와서 나라에 힘이 되세요』 이 짧은 한마디 말씀 때문이었다.
귀국하니 이승만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고 군사 정부의 찬바람만이 불었다. 1963년 10월30일 미국에서 가져온 비행기로 당시 여의도 비행장에서 명명식과 시험비행을 했다. 2만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나는 높이 6000피트(feet) 고도를 취했다. 이 순간을 위해 긴 세월 참고 인내하고 노력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파이퍼콜트(기명)機 양 날개로 춤을 추었다.
시험비행을 마치고 착륙하니 관중 대표로 소년 한 명을 태워 달라는 청이 들어왔다. 아주 귀엽고 건강한 중학생이었다. 뒷좌석에 태우고 강원도 삼척에 착륙하여 바다도 보여 주고 모래도 밟게 했다. 소년은 매우 수줍어했다.
1992년 2월 공군참모총장을 비롯 여러 명의 참모와 같이 오찬을 하게 됐다. 원탁 테이블에 음식이 놓였고, 내 바로 옆에 二星장군(별 두 개)이 앉았다. 역시 軍隊는 계급이라더니 총장 앞의 기라성 같은 장군들이 근엄한 자세로 식사를 했다. 참으로 딱딱한 분위기에 목에 음식 넘어가는 소리도 조심스러웠다. 주식이 끝나고 후식이 들어올 무렵 정막을 깨고 옆에 二星장군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저, 아주 옛날 이야긴데요. 그러니까 1963년 말인데 여의도 비행장에서 시험비행할 때 혹시 소년 태운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저 무심코 듣는 순간 그렇게 오랜 세월 궁금해했던 생각이 떠올라 『네, 혹시 그 소년의 소식을 아시나요?』 하니까 그는 매우 멋쩍은 표정을 하면서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 얘기 왜 지금 하시는 겁니까?』
나는 벌떡 일어나 그 장군을 쳐다본 순간 또 한 번 놀랐다. 180cm가 넘는 키에 잘생긴 외모, 양쪽 어깨 위에 빛나는 별, 영문을 모르는 참모총장과 참모들은 나의 돌발 행동에 그저쳐다만 보았다.
그 장군은 현재 공군 요직에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비행기에 태운 그 소년이 오늘날 이렇게 큰사람이 됐구나 생각하니 절로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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