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의 김대중 연구(14)
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⑤-4;
6·15선언 제2항은 무허가 통일방안에 의한 「국가 정체성의 변조」 기도?;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연방제는 한국을 깎아내려 북한과 同格에 놓자는 발상
1970년대 상황에서 金大中씨의 가장 큰 실수는 통일방안으로서 연방제를 생각해낸 점이다. 연방제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과 북한을 同格에 놓는다는 점이다.
연방제는 민족사의 정통 국가이자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한국을, 민족사의 이단이자 우리 헌법상의 반란집단인 북한 정권 수준으로 스스로 격하시키는 발상이다. 이런 자해적인 발상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해독이 있다.
金日成-金正日 집단을 한국과 동격으로 놓음으로써 그들에 의한 反民族的·反인류적 전쟁범죄를 덮어두려는 도덕의 포기,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자부심의 실종, 金正日 정권에 대한 분노와 북한 동포들에 대한 동정의 망각이 일어나게 된다.
요컨대 민족적·국가적 정의감이 실종됨으로써 국가로서의 권위뿐 아니라 국민의 기백과 혼이 오염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연방제를 주장해 온 金大中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행태에서 요사이 보여지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金大中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고 하다가 자민련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金대통령은 1999년 12월20일 기독교 지도자 초청 오찬에서 『보안법이 북한을 反國家 단체로 규정하는데 그렇게 하면 논리적으로 금강산 관광도 못 하고 대화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친 표현을 썼다(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정당한 목적하의 북한 측과의 접촉을 허용하고 있어 보안법과 남북교류는 하등 모순되지 않는다).
연방제를 발상한 사람은 이처럼 한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없어 북한을 反國家 단체로 보지 않으려는(따라서 국가로 보려는) 성향이 강하다. 북한 정권을 권력 실체로 인정할 수는 있으나 그들을 국가로 인정하면 남북의 영구 분단을 추인하는 것이며, 한국의 민족사적 정통성도 포기하게 된다.
북한 정권은 실제로도 국가다운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식량이 부족하자 체제유지에 필요한 500만명한테만 식량을 배급하고 나머지 주민들에 대한 배급을 포기하여 300만명이 굶어죽게 만든 집단은 국민 보호의 의무를 포기함으로써 국가임을 포기한 것이다). 서독도 동독과 교류하고 같이 유엔에 가입했으나 끝까지 그들을 국가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국헌을 수호, 준수해야 하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 앉게 되면 자동적으로 가장 큰 애국자가 된다. 金大中 대통령만은 예외인 것 같은데 그 비밀은 연방제로 드러난 그의 이념적 국가관에 있을 것이다.
북한 정권은 남한 체제를 인정한다는 연방제를 내세우면서도 자신들만이 민족사를 대표하는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 국가라는 원칙을 내부갈등 없이 견지해 갈 수 있다. 폐쇄사회의 수령절대주의 치하에서 주민들은 연방제를 내세워서 하는 평화공세와 수령의 교시 및 노동당 규약에 입각한 對南 적화 전술의 모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 수령은 주민들의 여론을 고려할 필요도 없이 상황에 따라 연방제의 성격을 바꿔 가면서 對南 공작의 속임수로 써먹을 수 있다.
한국처럼 개방된 사회에서 金大中씨가 연방제를 들고 나오면 그는 金正日처럼 이중전략을 구사할 수 없다. 연방제를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 따라 정직하게 설명하다가 보면 한국의 헌법 및 일반상식과 반대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딜레마에 빠진 것이 1970년대의 金大中씨였고 오늘의 金대통령이다.
연방제의 한계는 국력, 정통성, 국가 윤리성 등 모든 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에 있는 남북한을 동격으로 놓으려는 데 있다. 金大中의 연방제는 자유민주주의의 최종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던 1970년대에 그 역사의 흐름을 오판했던 과정의 産物이었다. 오늘날의 문제는 그 낡은 産物을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승리가 확인된 다음에도 폐기하지 못하고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이론을 권력과 선동의 힘으로 밀어붙일수록 진실과 역사적 대세의 반발도 심해지고 있다.
적대 이념·체제 위에 연방제란 지붕을 씌운다면
金日成이 처음으로 연방제를 들고 나온 것은 1960년 8월15일 연설에서였다.
<우리는 이러한 대책으로서 남북조선의 연방제를 실시할 것을 제의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연방제는 당분간 남북조선의 현재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와 (대한민국)정부의 독자적인 활동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두 정부의 대표부로 구성되는 최고 민족위원회를 조직하여 주로 남북조선의 경제·문화 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으로 실시하자는 것입니다>
金日成은 1973년 6월23일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및 정부 대표단을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1960년의 연방제를 발전시킨 고려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을 제안했다.
<(前略)우리는 조국 통일을 위한 북과 남 사이의 대화가 다만 북과 남의 당국자들 사이의 범위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전민족적인 범위에서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하여 북반부의 노동자, 근로 농민, 근로 인텔리, 청년학생, 지식인, 군인, 민족자본가, 소자산계급과 같은 북과 남의 각계 각층 인민들과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를 소집하여 여기에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광범히 협의하여 해결할 것을 제의합니다.
4. 오늘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은 단일 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中略)
우리는 조성된 조건에서 대민족회의를 소집하고 민족적 단결을 이룩한 데 기초하여 북과 남에 현존하는 두 제도는 당분간 그대로 두고 남북연방제를 실시하는 것이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도로 된다고 인정합니다.
남북연방제를 실시하는 경우 연방국가의 국호는 우리나라의 판도 위에 존재하였던 통일국가로서 세계에 널리 알려진 고려라는 이름을 살려 고려연방공화국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金日成이 말한 남북한 정당·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대민족회의란 것은 북한의 어용 정당과 사회단체가 남한의 親北 정당·사회단체와 연계하여 남한 정권을 2 對 1로 고립시키기 위한 전술로 고안된 것이다. 이런 대민족회의를 연방공화국 탄생의 母胎로 삼겠다는 것은 한국에 容共 친북 정권이 들어설 수 있는 自由路를 열겠다는 이야기이다.
남북이 분단된 것은 민족이 달라서가 아니라 삶의 양식을 규정하는 이념이 달라서이다. 金日成 연방제의 치명적인 허점(가장 중요한 노림수)은 남북한의 상호 적대적 이념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다가 연방공화국이란 지붕을 씌우겠다는 것이다. 민족이 이념보다 더 중요하다는 명분하에 1민족 1국가의 형식을 갖추기만 하면 한 지붕 아래서 벌어지는 충돌·테러·암살은 내부 문제이므로 국제적 개입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게 북한 정권의 노림수이다.
공산당 활동의 자유 보장 요구
1980년 10월10일 金日成은 종래의 연방제를 다시 수정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란 것을 발표한다. 지금까지 유효한 이 방안에서 金日成은 「연방국가의 통일정부는 정치문제와 조국방위문제, 대외관계 등을 토의 결정하며 북과 남의 지역정부는 연방정부의 지도 밑에 전민족의 이익과 요구에 맞는 범위에서 독자적인 정책을 실시한다」는 요지의 제안을 했다.
종래의 金日成 연방제가 완전 통일로 가는 과도기의 제도였던 데 반해 이때 그가 제안한 것은 최종적인 통일조국 형태로서의 연방제이다. 즉, 1민족 1국가 2체제(이념)의 연방국가이다. 세계 역사상 있어 보지 못한 환상적 國家像이다. 金日成은 새 연방제 제안을 하면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 해야 할 10대 시정방침이란 것을 내세웠다. 이것은 연방제를 통해서 북한 정권이 무엇을 노리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美辭麗句이다.
이 방침은 「북과 남이 통일 이전에 맺은 군사조약 등 민족적 단합에 배치되는 조약과 협정들을 폐기해야 한다. 민족연합군을 조직하여 군사분계선을 없앤다」고 하여 韓美 상호방위 조약의 폐기와 주한미군의 철수·韓美 연합사 폐지를 조건으로 깔고 있다.
이 방침은 「정당·사회단체의 조직과 활동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속셈은 북한을 자유화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한 지역에서 공산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아 親北 세력의 교두보를 활보함으로써 남한 사회를 분열시킨 뒤 공산화시킴으로써 그야말로 적화통일을 한반도 전체에서 완수하겠다는 것이다.
黃長燁 증언: 金日成의 본심과 연방제
金日成의 측근으로 일하면서 소위 주체사상을 만들었던 黃長燁 前 노동당 비서의 증언을 통해서 金日成의 본심을 들어보자. 黃長燁씨는 2000년 가을에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하여」란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金日成은 연방제와 관련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심간부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조하였다.
『연방제는 통일전선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전술적 방안이다. 연방제를 실시하여 북과 남이 자유롭게 내왕하면서 자기 제도와 자기 사상을 선전하게 되면 공화국은 하나의 사상으로 통일된 국가이기 때문에 조금도 영향을 받을 것이 없다. 그러나 남조선은 사상적으로 분열된 자유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남조선에 나가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과 주체사상 선전을 대대적으로 하면 적어도 남조선 주민의 절반은 쟁취할 수 있다. 지금 인구 비례로 보면 남조선은 우리의 2배이다. 그러나 연방제를 실시하여 우리가 남조선 주민의 절반을 쟁취하는 날에는 공화국의 1과 쟁취한 남조선 주민의 1을 합하여 우리 편이 2가 되고 남조선이 1로 된다. 이렇게 되면 총선거를 해도 우리가 이기게 되고 전쟁을 해도 우리가 이기게 된다.
중국에서도 國共합작이 국민당 지배 지역에 공산당 세력을 확장하는 좋은 기회로 되었다.
군대에서는 격술 부대(경보병 부대)를 중요한 전략적 부대로 보고 계속 강화해야 한다. 인민학교 학생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주어 태권도 선수를 대대적으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
연방제를 실시하여 남조선 정세가 복잡하게 될 때 우리 인민 군대가 직접 진격하여 남조선의 진보 세력을 지원해 주면 남침이라고 하면서 외국이 다시 간섭할 수 있다.
그러나 태권도 부대를 한 100만명 조직하여 권총이나 한 자루씩 채워 남조선에 내보내면 같은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누가 이남 출신이고 누가 이북 출신인지 분간할 수 없기 때문에 남침이라는 구실을 주지 않고도 능히 우리가 남조선의 친북 진보세력과 힘을 합쳐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연방제에서는 국가 수반을 한 번은 북측에서 담당하고 다음 번에는 남측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교대할 수 있다. 우리 헌법에는 국가 수반이 인민군대 총사령관으로서 일체 국가 무력을 장악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연방국가 수반이 남측에서 나올 때에는 우리 무력의 통수권도 남측 출신의 연방국가 수반에게 넘어가게 된다.
연방제를 실시하여도 무력에 대한 통수권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에는 우리가 무력을 쓸 수 있다. 이번에 국방위원장이 총사령관을 겸하도록 헌법을 고친 것은 그 때문이다. 국방위원장은 노동당 총비서이기 때문에 국가 수반과는 관계가 없다』
보는 바와 같이 북한 통치자들은 연방제를 통하여 남한의 친북세력을 확대강화하여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정권을 위한 자기들의 정치적 지반을 마련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내란의 형식으로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노동당 총비서인 金正日이 국방위원장으로서 인민군 총사령관을 겸임하며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고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라는 명목상의 국가수반제를 내온 중요한 이유도 북한 통치자들의 연방제 통일전선 전략과 결부시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공산독재 체제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정반대되는 것인 만큼 서로 하나로 결합시킬 수도 없는 것인데 이것을 결합시키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든가 아니면 속임수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연방제를 실시하여서는 안 되며, 북한의 독재체제가 붕괴된 다음에는 연방제를 할 것인가 또 다른 정치형식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때 실정에 맞게 해결하면 될 것이다>
<1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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