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을 느꼈을 때(5)

異國에서 맞은 첫 크리스마스

빈 주머니로 맞은 겨울

겨울은 어디나 을씨년스럽지만 異國에서의 겨울, 그것도 빈 주머니로 맞는 겨울은 마음부터 荒凉(황량)했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 퍼지고, 셀 수 없이 많은 電球를 단 크리스마스 트리들은 쉴새없이 色色의 불빛을 반짝이며 오가는 발걸음을 밝혀 주었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어둡기만 한 겨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돈 1000달러를 들고 새로운 삶을 찾아 세계의 심장부라 할 미국하고도 뉴욕까지 왔으나, 극동에서 온 가난뱅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는 무대가 아니라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고단한 삶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즐기는 크리스마스를 움츠린 마음으로 맞이할 수는 없었다. 예수께서도 가난하게 왔지만 세상에 희망을 준 것처럼, 「미래를 약속한 땅」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찾아온 땅」을 찾아온 것이었기에 가슴을 펴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첫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보느라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解産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의 美國行이 못 미더워 따라나선 장모님께서 전화를 받았다. 장모님 입장에서는 당신의 膝下(슬하)에 있을 때는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딸이 異國에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는 것에 대해 사위를 원망할 법도 했으나 믿음으로 지켜봐 주셨다.
오히려 우리들이 힘들어하면, 『사람이 살면서 항상 좋을 때만 있다면 누가 사는 걱정을 하겠냐』시며 『어려울수록 용기를 가져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러면서 간호학과를 나온 전공을 살려 미국 간호사 자격시험 공부에 여념이 없는 딸 뒷바라지와 외손녀 돌보는 일을 다 하셨다.
그런 장모님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는 아내를 찾았다. 아내 역시 낯설고 물선 異國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마음이 심란해 있던 참에 전화를 받고는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은 없지만, 미국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에 맞춰 우리의 희망찬 미래를 축복하자』며 당장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그길로 우리는 촛불이 켜진 작은 카페에서 와인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미국으로 떠나올 때 가진 마음을 다시 새겼다.

카페에서 『세계 일류가 되자』 다짐

아내의 손을 끌어당겨 둥그런 와인잔을 감싸게 하고, 내 손으로 다시 잔을 모아 쥐고는 기도하듯 『우리의 지금 모습이 微風에도 흔들리는 촛불보다 약하지만 언젠가는 이 세상을 밝히고도 남을 빛이 되도록 하자』면서 『그때까지 자신을 태워 빛을 내는 촛불처럼 우리를 태워 빛을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우리는 그때 세계 일류가 되자는 다짐도 했다. 미국하고도 뉴욕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사람들이 角逐(각축)을 벌이는 곳인 만큼 일류가 아니면 存立(존립)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동안 살기에 바빠, 생각은 했으나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대화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그때 가슴에 새긴 세계 일류정신은 내 삶의 모토가 되었다. 문민정부 이후 세계화와 지방화가 시대적인 과제로 등장하면서 「세계 일류가 아니면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말이 보편화되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생소한 단어였다. 두 번째 민선 도지사로 부임하면서 「세계 일류 경남 건설」과 「도민 제일주의」를 道政(도정) 기본과제로 삼은 것도 그때 경험에서 나온 産物이다.
카페에서 들려주던 예수 탄생을 찬미하는 음악이 끝나고, 우리를 밝히던 촛불까지 꺼질 때서야 일어나며,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아직 남은 와인을 보면서 행복의 미소를 주고받았다. 비록 가난했지만 와인 한 잔을 두고도 행복할 수 있는 마음으로 異國에서의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연말에 캐럴이 울려 퍼지면 그때를 생각하며, 와인 한 잔도 마음놓고 마실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마음만큼은 부자였던 시절을 떠올린다. 이렇게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은 멀리 있는 신기루가 아니라 찾으면 바로 옆에 있는, 내 속에 있는 나다.
그래서 중국의 어느 스님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 짚신이 다 닳도록 다녀도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뜰에 있는 매화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활짝 피어 있더라』는 悟道頌(오도송)을 읊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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