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 황영조, 박세리, 박찬호…
한국에서의 禍福의 개념
행복이란 말의 개념은 우리의 전통적인 것이 아니다. 서양에 있어서도 중세 이전에는 종교적인 의미 함축, 그리고 근세 이후엔 시민사회의 형성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禍福(화복)의 개념이 일반적이었고, 지금도 별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일테면 부귀영화 壽福(수복)이란 세속적인 욕망의 충족을 뜻하고 돈, 지위, 명예, 건강, 자손의 번창 같은 것을 內包(내포)한다.
물론 이런 세속적 성공만이 다는 아니고, 知分自足(지분자족), 安貧樂道(안빈낙도) 등 욕망의 자제를 통한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약자나 敗者(패자)의 자기 변명 비슷하게 비치게 된 세태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행복한 순간 혹은 시간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면 나같이 생각이 좀 복잡한 사람은 도무지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남들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상태(심리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에서도 불행하다고 탄식한 일이 없었고, 남들이 행복하다고 치부하는 경우에도 스스로 그처럼 수긍한 일이 없었다.
되도록 자기를 객관화시키려 하고 마음의 상태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말장난이 아니라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시간이 곡선을 그리면서 이어져 왔다고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요새같이 행복이란 말이 때묻고, 造花(조화)처럼 돼버린 시대에서는 그 낱말 자체가 혐오스럽고 賤民的(천민적)인 냄새를 풍긴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백이 문학일지도 모른다.
대중매체에서는 끊임없이 행복의 조건과 모형을 제공하며, 거기에 맞지 않은 사람들을 한탄케 하거나, 불행한 심정으로 몰아댄다.
옛날 사람들에 비하면 행복의 조건은 한결 충족되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불행감, 부족감, 시기심 등에 시달리게 되는 일종의 自害(자해)행위 속에 빠져 있다.
현세에 절망한 사람은 내세에 의지하고 현세에서 출세·축재·권세를 추구하려는 사람은 祈福(기복)에 매달린다. 利他(이타)의 봉사정신과 활동마저도 결국 자기 만족의 정신요법쯤으로 보는 경향마저 번지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優性의 샘플이 나온는 데에 위안과 행복감 느껴
내 경우는 어떤가. 과거를 말해 봤자 이른바 소시민적 행불행론을 들추는 일밖에 안 될 것이어서 그런 행복론은 창피해서 입 밖에 낼 수도 없다.
先憂後樂(선우후락)이라고 하면 천하의 志士(지사)나 위정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어법이라 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근래 그럴 처지도 못 되면서도 後樂은 제쳐놓고, 先憂만 하려는 심리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못된 소가 엉덩이에서 뿔난다는 격일지 모르지만 불행한 마음이 깊어지는 걸 어쩔 수 없다. 무질서와 자유분방의 우성 유전자에 위안과 행복을 느낀다.
요새 신문도 안 보고 TV도 안 본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정보화 사회」 속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뉴스나 해설을 보고 한탄하고, 화내고, 욕을 하고 나중에 허허 웃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바엔 아예 끝장을 보자는 自虐(자학) 증세를 즐기기도 한다.
엉뚱한 얘기지만 지도자, 위정자는 한 나라 안의 사회집단이 혹은 민족이 어떤 성질인가를 누구보다도 기민하고 정확히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은 대개 單層(단층) 구조가 아니고 복층, 또는 다층 구조로 돼 있다. 어느 때는 위층이, 어떤 때는 아래층이 우세하게 드러나 집단심리를 좌우한다.
우리 민족은 수렵, 유목의 문화가 基層(기층)이고, 그 위에 농경 또 그 위에 유교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정치의 힘이 그런 문화적 에너지를 자극하거나 억제해 왔다.
조선왕조에선 유목민족의 서민적 요소와 자유분방한 생활문화를 유교적 질서로 억누른―억누르지 않을 수 없는―시대였다. 이것이 광복 후엔 유목민족의 소집단적 기질이 돌출하여 난장판이 되다가 6·25 전쟁을 겪었고 그 뒤 朴正熙란 통치자가 나와 다소 유교적이면서 군사적인 문화의 틀로 질서를 잡아 농경민족의 장점을 발휘케 하여 부지런하게 경제 발전과 생활 향상을 성취했다. 민주화란 이와 대립하는 정치적 성향으로 인정되어 마침내 유교적 군사적 질서를 뒤집고 민주정치와 사회의 쟁취에 도취했다.
「문민정부요, 국민의 정부」라는 구호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위정자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농경집단의 근면성, 성실성, 정직함은 날아버리고 수렵·유목민의 좋게 말해 자유분방한 군중심리가 팽배해졌고, 위정자들은 「민주화가 됐는데 왜 노사분쟁이 일어나는가?」 하며 국민에 대한 배반감에 사로잡혔다.
자유는 질서 속에 있음을 그들은 몰랐다. 그래야만 우리의 집단을 잘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또 권력연장욕은 자유분방을 되레 자극했다. 이건 근본적인 실격 사유이며, 지식이 아닌 지혜의 결함이다. 그러나 나는 무질서와 자유분방의 유전자 가운데 優性(우성)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희망적인 기대를 걸 만한 샘플이 되어 드문드문 나오고 있는 점에 위안과 행복감을 느낀다.
이봉주, 황영조, 박세리, 박찬호, 김병현, 백남준, 이우환, 정경화, 장영주, 장한나 그리고 엊그제 TV에서 본 이유라 같은 젊은이들은 내게 「아, 이 나라 이 민족의 일원이 된 운명이 그다지 나쁘지 않구나」하는 感傷(감상)에 젖게 하기도 한다.
중학생, 초등학생들도 휴대전화와 PC에 열중하여 정보화 선진국이 돼가고 있다는 소식과 선전(내심 의심을 품지만)을 기분좋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정치판 싸움도 더 치열하게 싸우기를 바란다. 에너지를 소모하면 다소간 질서가 잡힐 것이다.
한국에서의 禍福의 개념
행복이란 말의 개념은 우리의 전통적인 것이 아니다. 서양에 있어서도 중세 이전에는 종교적인 의미 함축, 그리고 근세 이후엔 시민사회의 형성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禍福(화복)의 개념이 일반적이었고, 지금도 별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일테면 부귀영화 壽福(수복)이란 세속적인 욕망의 충족을 뜻하고 돈, 지위, 명예, 건강, 자손의 번창 같은 것을 內包(내포)한다.
물론 이런 세속적 성공만이 다는 아니고, 知分自足(지분자족), 安貧樂道(안빈낙도) 등 욕망의 자제를 통한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약자나 敗者(패자)의 자기 변명 비슷하게 비치게 된 세태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행복한 순간 혹은 시간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면 나같이 생각이 좀 복잡한 사람은 도무지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남들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상태(심리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에서도 불행하다고 탄식한 일이 없었고, 남들이 행복하다고 치부하는 경우에도 스스로 그처럼 수긍한 일이 없었다.
되도록 자기를 객관화시키려 하고 마음의 상태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말장난이 아니라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시간이 곡선을 그리면서 이어져 왔다고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요새같이 행복이란 말이 때묻고, 造花(조화)처럼 돼버린 시대에서는 그 낱말 자체가 혐오스럽고 賤民的(천민적)인 냄새를 풍긴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백이 문학일지도 모른다.
대중매체에서는 끊임없이 행복의 조건과 모형을 제공하며, 거기에 맞지 않은 사람들을 한탄케 하거나, 불행한 심정으로 몰아댄다.
옛날 사람들에 비하면 행복의 조건은 한결 충족되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불행감, 부족감, 시기심 등에 시달리게 되는 일종의 自害(자해)행위 속에 빠져 있다.
현세에 절망한 사람은 내세에 의지하고 현세에서 출세·축재·권세를 추구하려는 사람은 祈福(기복)에 매달린다. 利他(이타)의 봉사정신과 활동마저도 결국 자기 만족의 정신요법쯤으로 보는 경향마저 번지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優性의 샘플이 나온는 데에 위안과 행복감 느껴
내 경우는 어떤가. 과거를 말해 봤자 이른바 소시민적 행불행론을 들추는 일밖에 안 될 것이어서 그런 행복론은 창피해서 입 밖에 낼 수도 없다.
先憂後樂(선우후락)이라고 하면 천하의 志士(지사)나 위정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어법이라 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근래 그럴 처지도 못 되면서도 後樂은 제쳐놓고, 先憂만 하려는 심리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못된 소가 엉덩이에서 뿔난다는 격일지 모르지만 불행한 마음이 깊어지는 걸 어쩔 수 없다. 무질서와 자유분방의 우성 유전자에 위안과 행복을 느낀다.
요새 신문도 안 보고 TV도 안 본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정보화 사회」 속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뉴스나 해설을 보고 한탄하고, 화내고, 욕을 하고 나중에 허허 웃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바엔 아예 끝장을 보자는 自虐(자학) 증세를 즐기기도 한다.
엉뚱한 얘기지만 지도자, 위정자는 한 나라 안의 사회집단이 혹은 민족이 어떤 성질인가를 누구보다도 기민하고 정확히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은 대개 單層(단층) 구조가 아니고 복층, 또는 다층 구조로 돼 있다. 어느 때는 위층이, 어떤 때는 아래층이 우세하게 드러나 집단심리를 좌우한다.
우리 민족은 수렵, 유목의 문화가 基層(기층)이고, 그 위에 농경 또 그 위에 유교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정치의 힘이 그런 문화적 에너지를 자극하거나 억제해 왔다.
조선왕조에선 유목민족의 서민적 요소와 자유분방한 생활문화를 유교적 질서로 억누른―억누르지 않을 수 없는―시대였다. 이것이 광복 후엔 유목민족의 소집단적 기질이 돌출하여 난장판이 되다가 6·25 전쟁을 겪었고 그 뒤 朴正熙란 통치자가 나와 다소 유교적이면서 군사적인 문화의 틀로 질서를 잡아 농경민족의 장점을 발휘케 하여 부지런하게 경제 발전과 생활 향상을 성취했다. 민주화란 이와 대립하는 정치적 성향으로 인정되어 마침내 유교적 군사적 질서를 뒤집고 민주정치와 사회의 쟁취에 도취했다.
「문민정부요, 국민의 정부」라는 구호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위정자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농경집단의 근면성, 성실성, 정직함은 날아버리고 수렵·유목민의 좋게 말해 자유분방한 군중심리가 팽배해졌고, 위정자들은 「민주화가 됐는데 왜 노사분쟁이 일어나는가?」 하며 국민에 대한 배반감에 사로잡혔다.
자유는 질서 속에 있음을 그들은 몰랐다. 그래야만 우리의 집단을 잘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또 권력연장욕은 자유분방을 되레 자극했다. 이건 근본적인 실격 사유이며, 지식이 아닌 지혜의 결함이다. 그러나 나는 무질서와 자유분방의 유전자 가운데 優性(우성)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희망적인 기대를 걸 만한 샘플이 되어 드문드문 나오고 있는 점에 위안과 행복감을 느낀다.
이봉주, 황영조, 박세리, 박찬호, 김병현, 백남준, 이우환, 정경화, 장영주, 장한나 그리고 엊그제 TV에서 본 이유라 같은 젊은이들은 내게 「아, 이 나라 이 민족의 일원이 된 운명이 그다지 나쁘지 않구나」하는 感傷(감상)에 젖게 하기도 한다.
중학생, 초등학생들도 휴대전화와 PC에 열중하여 정보화 선진국이 돼가고 있다는 소식과 선전(내심 의심을 품지만)을 기분좋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정치판 싸움도 더 치열하게 싸우기를 바란다. 에너지를 소모하면 다소간 질서가 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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