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씨는 26일 강연에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일청산문제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日帝시대가 정당화될 순 없겠지만, 북한은 일제의 유산(遺産)을 폐기한 데 비해 남한은 이를 활용, 현저한 남북격차가 발생했다는 게 그의 논리이다. 그는 또 “親日派 문제제기의 배후에는 親北派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혔다.
구로다씨는 일본이 한반도 분단(分斷)을 내심 바라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통일이 되면 민족적 에너지가 北上할 게 틀림없기 때문에 한반도분단을 가장 원하는 세력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이지 바다 건너 일본이 아니다”며 “일본은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한반도가 아닌 한반도 배후의 세력에 위협을 느껴왔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은 한국의 통일에 대해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겠지만 자유통일이 되면 경제적 차원에서 플러스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일본은 한반도 자유통일의 지지세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아래는 강의와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구로다씨의 발언 중 요약이다.
親日派 문제 제기 뒤에는 親北派가 있다는 게 나의 견해이다. 이런 주장 때문에 MBC, CBS 등 한국 언론의 집중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친일진상 규명에는 해방 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부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일본인인 내가 보는 시각이다.
![]() |
| 구로다씨 |
南, 일제 유산 새롭게 활용
친일파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분단 60여 년이 지나 굳어진 남북한의 현저한 격차는 서로 다른 체제를 선택했다는 것 뿐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설정’의 차이에도 기인한다는 것이다.
남한은 65년 한일회담을 통해 국교를 정상화한 데 반해 북한은 근래에 들어서야 이를 꾀하고 있다.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남북이 40년 격차를 보이는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설정’이란 국교정상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제시대 유산을 어떻게 처리했느냐도 중요한 부분이다.
북한은 일제의 유산을 모두 청산(淸算)했지만 남한은 그 잔재(殘滓)가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민족적 차원에서는 ‘모두 지워버린’북한이 ‘그렇지 않은’남한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일제의 유산을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새롭게 활용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남북의 발전과 쇠락을 가르는 큰 원인이 됐던 것이다.
일제의 유산은 무엇인가? 소위 친일파로 불려지는 人的 유산 외에도 일제시대 배운 기술, 교육, 행정, 사고방식 등 많은 것을 포함한다. 대한민국은 이 모든 것들을 조건없이 폐기한 것이 아니라 나라가 잘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모두 이용했다. 필요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은 사용했다. 그것이 남한이었다.
65년 한일회담, 경제발전의 계기
한국인은 현실(現實)보다 관념(觀念)을 중시하는 것 같다. 65년 한일회담에 대한 한국언론의 평가는 좋은 사례이다. 당시 일본정부는 개인(個人)보상을 제안했지만, 한국정부는 정부(政府)보상을 요구했다. 이때 한국정부가 받은 금액이 5억불. 이 돈은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건설 등 한국경제가 도약하는 초기자본금이 됐다. 수 천명에 달하는 일제시대 피해자들도 훗날 정부로부터 개인보상을 받았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한국정부가 76년 발간한 대일(對日)청구권백서에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이 같은 현실(現實)을 외면해왔고, 이로 인해 65년 한일협상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韓日교류 긍정적 측면 언론서 외면
民間차원에서도 일본이 한국에 얼마나 많이 협조해왔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세계2위로 도약한 한국 라면의 예를 들어보자. 64년 당시 삼양라면 사장은 일본 ‘묘조라면’사장을 찾아 가 궁핍한 한국인의 식생활을 거론하며 기술이전을 호소했었다. 물론 ‘묘조라면’사장은 기업의 노하우를 알려줄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거듭되는 삼양라면 사장의 간청에 감동했고, 마침내 모든 노하우를 공짜로 이전해줬다. 그것이 한국라면 역사의 시작이었다.
비슷한 에피소드는 많다. 한국 야쿠르트는 일본 야쿠르트에서 온 것이다. ‘예쁜 유니폼을 입고 배달에 나선’야쿠르트 아줌마는 한국 배달업계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배달업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확산시켰고, 가정주부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문화가 확산됐다.
롯데그릅이 도입한 일본의 백화점문화도 마찬가지이다. 70년대 한국 백화점을 찾을 때면 매장은 어두웠고, 직원은 불친절했다. 물건을 찾으면 “없어요”아니면 “몰라요”였다. 79년 롯데백화점은 이 같은 풍토를 일신(一新)했다.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그리고 “손님은 왕이다”라는 일본식 노하우가 확산됐다.
언론이 외면하는 한일 교류협력의 긍정적 측면은 너무나 많다. 언론이 알리지 않으니 당사자는 아는데 국민들은 모른다. 그러다보니 반일감정의 골은 메워지질 않는 것이다.
日 망언병 韓 반일병 여유 있게 보자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주간은 한일간 갈등에 대해 양측 모두 病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망언(妄言)병, 한국은 반일(反日)병. 그리고 한국의 반일병이 이유가 있듯 일본의 망언병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적었다. 강천석씨는 그 이유를 일본의 大소설가 시바 료타료(司馬遼太郞)의 역사관에서 찾았다. ‘메이지시대(1867∼1912)는 정말로 위대한 시대였다’고 하는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 한국인으로서는 공감할 수 없는 이 역사관이 일본의 지배적 역사관이다보니 망언이 터녀 나온다는 것이다. ‘메이지의 영광’을 그리워하다 보니 “일제의 조선통치는 좋은 것이었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망언이다. 그러나 일본인에게 그런 망언을 하지 말라는 것은 ‘메이지의 영광’까지 부정당하는 것으로 생각돼 그만두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病과 친숙해져야 病을 이겨낼 수 있듯 앞으로는 더불어 살자, 칼럼은 그런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책임있는 자리에서 하는 발언은 물론 자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인의 反日病이 고치기 어렵듯 일본인의 妄言病도 억지로 고치려는 건 무리가 있다. 좀 더 여유있는 접근이 절실해 보인다.
한국 反日은 중국과 달리 세련
동북아에서 한국은 중국보다 일본에 더 가깝다는 말을 덧붙히고 싶다. 지난해 과거사문제로 인한 중국의 反日폭동 당시 한국도 영향받아 공동투쟁에 나서지 않을까하는 게 일본인들의 걱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낙관했고 이 예측은 들어맞았다. 한국의 반일감정은 그만큼 ‘세련돼 있다’. 통제돼 있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거리감이 중국보다 더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한국인들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나 역시 지켜보는 입장이다. 해양세력을 소중히 생각해 현상을 유지할지 아니면 ‘균형자’를 내세워 대륙쪽에 접근해갈지 알 수 없다. 한국인의 일상적 생활양식은 중국보다 일본이나 미국 쪽에 접근해있다. 그러나 정치나 외교는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채 국민을 억지로 끌고가는 느낌이다. 앞으로 있을 한국인의 선택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저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정리 김성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