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의 김대중 연구(19)

조갑제의 김대중 연구(19)

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⑥-2;
6·15선언 제2항은 무허가 통일방안에 의한 「국가 정체성의 변조」 기도?;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金正日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 국민들의 자존심을 훼손하였다. 여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23. 북한정권의 억지를 받아들여 張忠植 총재 해임:북한정권이 張忠植 韓赤 총재의 月刊朝鮮 인터뷰 기사 내용을 트집잡아 그의 해임을 요구하자 金大中 정부는 이 억지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張忠植 총재를 경질했다.

24. 黃長燁 訪美 불허:金正日이 싫어하는 黃長燁씨의 訪美를 불법적으로 저지하고 그의 활동을 제약하였다.

25. 납치범 北送:일본인 납치범인 거물간첩 辛光洙를 北送시켜 주면서 일본인 피랍자의 生死를 확인도, 송환도 요구하지 않았다.

26. 北美 호칭:金大中 대통령은 北美라고 호칭하여 反國家 단체를 동맹국보다도 우선시키는 논법을 사용하고 있다.

27. 北의 하급관리와 동격이 된 한국 측 장관:우리의 장관급 인사가 북한의 하급 관리와 동등한 자격으로 회담하는 관례가 지속되고 있다.

28. 좌익 발호 방치:金大中 세력(정권·여당·외곽단체 및 지지세력)은 金正日과 그를 추종하는 남한內 좌익세력에 대해 헌법의 명령대로 적대적 태도를 취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관적(또는 우호적) 태도를 취하여 그들의 발호를 허용하였다.

金大中 정권下의 공권력은 좌익수사를 소극적으로 하는 한편 한민족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오면서 체제를 지키고 강화해 왔던 朝鮮日報·東亞日報 두 民族紙를 탄압했다. 두 民族紙에 대한 세무조사는 金正日정권과 국내 좌파의 적극적인 응원下에서 이뤄졌다.

이런 행동은 국민들 눈에 金大中 정부를 비겁한 모습으로 비치게 하였다. 한편, 金正日을 비판·견제해 온 黃長燁, 朝鮮日報·東亞日報, 야당, 공안기관 출신들에 대한 金大中 정권 및 그 원호세력의 집중견제와 공격은 많은 국민들 사이에 「비겁한 자의 오만, 또는 金正日 편들어 대한민국 중심 세력 때리기」라는 의혹을 강하게 심었다. 자기 나라와 국민에 대해선 가혹하고 主敵에 대해선 굴욕적이었던 대통령 때문에 국민들은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金正日의 대변자 또는 심부름꾼역을 自任(자임)한 듯한 행동을 보였다. 다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29. 西海도발 축소:2002년 6월29일 西海도발 사태가 나자 金大中 정부는 金正日의 책임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는 해석을 내리고 미국에 대해서 예정된 對北 특사 파견의 이행을 촉구하였다.

30.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로비: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테러의 직접 지령자인 金正日이 테러에 대해 인정·사과·책임자 처벌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金大中 정부가 나서서 미국에 대해 북한정권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31. 金正日은 변하고 있다?: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金正日은 변하고 있다, 金正日은 개혁개방할 것이라는 예언을 되풀이했다.

32. 부시 비판하여 金正日 변호:金正日이 약속을 어기고 한국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金正日에게 문책하려 하지 않고 부시 행정부의 對北 강경 정책 때문이란 억지 논리를 만들어 확산시켰다.

33. 전쟁하자는 거냐?:金大中 세력은 西海도발 같은 무력 기습에 대해 국내 여론이 강력한 응징을 주장하면 『그렇다면 전쟁하자는 이야기냐』는 식의 선동적 논리로써 북한정권의 입장과 자신들의 굴종을 옹호하였다. 응징에는 전쟁 이외에 局地的 응징과 경제제재 등 수많은 평화적 방법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 막말들이 정권 측 인사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민족사의 정통국가를 대표하는 金大中 대통령이 민족반역 집단의 수괴에게 보여준 이런 굴욕적인 모습은 수많은 한국인에게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를 가져다 주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권위와 국민들의 자존심을 지켜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그런 책무를 던져버리고 굴욕과 굴종을 자원한 모습에서 국민들의 金正日에 대한 분노는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경멸로 바뀌었고 이는 민주당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 거부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의 국가적 자존심은 主敵에 대한 정의감 및 적대감과 함께 중요한 안보 자산이다.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들은 對北 지원이나 對北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실을 과장·왜곡하거나 나중에 거짓말로 밝혀지는 행동을 거듭하고 있다. 여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34. 북한特需론:金대통령은 2000년 초에 중동 特需를 능가하는 북한 特需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오일 머니가 쌓이고 있던 1970년대의 중동과 수백만 명이 굶어죽은 북한을 동등하게 비교한 과장이었다.

35. 개성 공단:『개성 공단에서 1년 내에 생산품이 나온다』

36. 철의 실크로드:京義線 연결에 의한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북한 측이 첫 삽도 뜨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37. 陸路관광 실종:작년 정부는 현대아산이 북한정권 측과 맺은 합의서상의 금강산 陸路관광 허용을 主근거로 하여 적자로 허덕이던 현대 측에 국가 예산 수백억원을 대주는 조치를 취했다. 육로관광을 하면 赤字를 면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1년이 지난 지금 陸路관광의 성사는커녕 남북 간에는 그 과제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부도직전으로 몰리자 정부는 다시 관광객들에게 공돈을 대주는 방식의 철면피한(또는 利敵행위) 지원을 해주고 있다.

38. 林東源의 對국민 보고:지난 4월3~5일 金大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金正日을 만나고 온 林東源 외교안보 특보는 동부와 서부에서 남북 간에 철로 및 도로를 빨리 연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였으나, 7월 말 현재 실질적인 진척이 없다.

39. 정상회담 발표문도 믿을 수 없다면?:金大中 대통령은 모리 일본 수상과 회담한 이후 대변인을 통해서 「일본이 북한과 修交하기 전에 對北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발표했으나 그런 합의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와 같은 허위·과장·왜곡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金正日이 워낙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데다 金大中 대통령과 측근들이 金正日의 말을 믿었다가 속는가 하면 자신들의 희망사항까지 보태어 과장을 거듭한 때문일 것이다. 사기꾼의 대변자는 자동적으로 사기꾼이 된다.


金大中 정부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헌법이 그들에게 강제한 의무를 태만히 하고 있다. 반드시 해야 할 그 무엇을 안 하고 있는 이유를 들어보는 것도 金大中의 진실을 아는 한 방법이다. 생각나는 대로 여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40. 고무찬양 방치:金正日 정권을 고무 찬양하는 표현물이 범람하고 있음에도 수사를 하지 않아 국가보안법의 상당 부분을 死文化시켰다.

41. 主敵에게 뇌물 방치:訪北 인사와 단체들이 뇌물을 주고 북한에 들어가 金日成 동상과 유해 앞에서 절하는 행동을 방치하고 있다. 우리의 금품을 받아달라면서 主敵에게 뇌물을 바치는 정신병적인 짓이 화해 협력이란 말 뒤에서 벌어지고 있다.

42. 간첩수사 저조:간첩 검거 실적이 저조하다. 공안기관이 간첩수사도 집권층의 눈치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43. 남침 기념행사 축소:6·25 남침 50주년 행사를 축소시켰다.

44. 좌익인사 訪北 허용:좌익인사들의 평양 방문을 막지 않아 작년의 8·15 방북단 소동 같은 일이 벌어졌다.

45. 북한인권문제 침묵:국내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한 관심을 보이는 金大中 대통령은 탈북자, 在北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북한 내 강제수용소 등 북한 인권문제를 제대로 제기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 대한 존중심과 애정의 결여

金大中 정부는 지난 5년간 金正日이 싫어할 일은 하지 않고 그가 좋아할 일만 찾아서 해왔다면 과연 과장인가. 黃長燁, 朝鮮日報·東亞日報, 국군 등 金正日이 싫어하는 남한內 애국세력에 대해서 金大中 세력이 보여온 공격적·적대적 자세와 親北 좌파세력에 대한 관용적 자세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상 열거한 마흔다섯 가지 사례는 일관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金正日정권에겐 이롭고, 대한민국에는 불리한 결과를 내고야 말 言動과 정책과 조치란 점이다.

金大中 대통령의 上記 정책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존중, 애정,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上記 정책에선 金正日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 및 북한주민에 대한 동정심이 보이지 않는다. 유태인의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받아야 할 자에게 잔인하다」

南北무장·이념 대치상황에서 대한민국 사람이 조국에 대한 확신과 존중의 마음이 결여되고 그런 마음이 金正日 정권에 대한 적대감·분노·정의감의 不在와 결합될 때는 親北 또는 중립의 좌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중립지대가 존재할 수 없는 南北대결 구도에서 한국인이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金日成 父子 정권에 유리한 행동을 초래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는 말이다.


「무덤의 평화」, 「노예의 평화」

이런 모든 수상한 현상의 진원지는 金大中 대통령이다.

金大中씨의 생애를 연구하면 上記 마흔다섯 가지 정책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관성이 발견된다. 金大中씨의 일관성, 즉 대한민국과 북한주민들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우호·관용적인 그의 對北觀과 국가관은 그가 20代 초반에 좌익 행동대원이었다는 점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젊었을 때 가졌던 이념적 세계관은 나중에 그 사람이 설사 전향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세계관에 찌꺼기로 남아 있게 된다.

金大中씨의 경우, 張勉 정부 시절을 빼고는 줄곧 歷代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감시당하고 납치당했으며 구속당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건대 억울한 면도 있으나 좌경모험에서 온 처벌인 경우도 있다. 이런 金大中씨에 대해서 역대 북한정권은 우호적인 응원을 보냈고, 포섭 대상으로 삼아 공작한 증거도 있다.

金大中씨로서는 대한민국 역대 정부에 대해 反感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런 감정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에 대한 反感 내지 냉담함으로 轉移(전이)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좌익 경험에 뿌리를 둔 것 같은 金大中씨의 일관된 對北觀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권력에 의지하여 上記 마흔다섯 가지 항목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 정책과 현상들로 실천되었다.

金大中씨는 1972~1973년 북한정권의 下手 기관인 한민통 결성과 관련해 1980년에는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보여준 정책들은 그런 유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념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았음을 示唆(시사)한다.

위 마흔다섯 가지 항목의 성격은 大韓民國의 정통성·정체성·헌법정신 등 우리 체제의 핵심 가치관에 대한 본질적인 도전이다. 우리 헌법이 권력자에 의한 이런 도전까지도 허용할 수 있는 것인지 국민들은 그 헌법체계에 물어볼 의무가 있다.

간첩이나 반역자가 자유민주주의자로 위장해 대통령이 되고 그 직권을 악용해 對北 武力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다음과 같은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현직 정치인들이 적과 내통하는지를 감시하는 일.

西海 사태 이후 미국 대통령부와 한국 청와대의 반응을 비교한 한 사람이 말했다.

『누가 어느 나라 대통령이고?』

金正日을 가장 걱정해 주는 사람은 金大中 대통령이고, 대한민국을 가장 걱정해 주는 사람은 부시 대통령이었다는 얘기였다.

金大中 대통령이 한참 나이 어린 金正日을 대하는 태도는 극진하다 못해 가련해 보이기도 한다. 살인마에게 가족들을 여러 명 잃은 집안의 家長이 자기 집안의 원수인 살인마에게 金大中 대통령처럼 굴욕적으로 대했다고 한다면 그 마을 사람들은 이 家長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그가 받은 노벨 평화상이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굴욕을 딛고 얻은 賞이라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正義 없는 평화란 「무덤의 평화」, 「노예의 평화」가 아니던가. 그가 말하는 평화는 金正日의 장기집권을 보장하는 평화일 뿐 대한민국과 북한동포 7000만에게는 非평화가 아니던가.
<20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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