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의 김대중 연구(22)

조갑제의 김대중 연구(22)

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⑦-1; 좌익 행동대원 출신의 대한민국관;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안기부의 「金大中 관찰기록(1988년판)」

1988년 9월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안기부의 「金大中 관찰기록(1988년판)」은 국배판 124페이지의 대외비(보존연한은 영구) 문서이다.

이 책의 목차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1. 身元 사항

1. 인적 사항

2. 출생 및 성장

3. 學·경력

4. 前科 관계

5. 가족 사항(家系圖. 본인 및 처가)

6. 재산관계

7. 인간성

2. 思想 성분

1. 建準 가담 등 좌익 활동

2. 荏子島 간첩 鄭泰默과의 연계 接線

3. 韓民統 결성, 反國家 활동

4. 공화국 연방제 통일방안 주장

5. 金大中 내란음모 사건 주동

6. 기타 문제 발언

3. 조직 관리

1. 조직 현황

2. 조직 특성

3. 私組織 현황

4. 최근 동향

1. 주요 동향

2. 特異 동향

3. 주요 동향 분석

첨부:주요 접촉 인물 현황


「金大中 관찰기록」 중 가치 있는 부분만을 골라 아래에서 요약하고 해설한다.

1. 身元 사항

1-1. 인적 사항

일제시대 金大中이 한 創氏改名은 豊田大中, 본인은 생년월일이 1923년 1월6일(양력)이라고 언명, 혈액형은 A형, 영세명은 金토마스, 代父는 張勉 前 국무총리.

1-2. 출생 및 성장

출생:1924년 1월6일 전남 신안군 荷衣面 五村里 132번지에서 張之淑의 장녀 張鹵島의 아들로 출생. 같은 해 金云式의 庶子로 入籍. 1943년 7월10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생년월일을 1925년 12월3일로 訂正. 1960년 6월5일 父 金云式, 母 張鹵島의 혼인신고로 兩人間에서 출생한 嫡子로 호적 정리. 그러나 金大中의 출생지 주민들에 의하면 金大中은 金云式-張鹵島 사이에서 출생한 것이 아니고 尹○○(편집자가 익명화)와의 사이에서 출생하였다는 說이 있는 등 그 출생 혈통이 불분명함.

소년기:1939년 3월25일 목포 北橋 국민학교 졸업시 성적은 72명 중 1등. 같은 해 목포 상업중학교 입학. 1학년 때 161명중 1등. 1, 2학년 때 級長. 2, 4학년 때 품행 단정상 수상. 5학년 때 修養위원 겸 문화반 활동. 졸업시 성적 150명(한국인 82명, 일본인 68명) 중 39등.

청·장년기:1945년 4월9일(호적상 19세) 목포시 거주 車寶輪의 딸 車蓉秀와 혼인, 金弘一과 金弘業 출산. 車蓉秀는 1927년 10월26일 출생, 1960년 5월27일 음독자살. 목포여고 출신.

金大中은 1954년 5월20일 목포에서 제3代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9명 중 5위로 낙선. 낙선 후 서울 서대문구 大峴洞으로 이사. 金哲 등 정치인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張澤相 前 총리를 알게 되어 측근 참모로 일시 활동.

1955년 소설가 朴花城의 소개로 朴順天 여사, 曺在千 등 야당의원들을 알게 되어 민주당에 입당했다.

1-3 學·경력

1953년 10월10일 건국大 정외과 3년 중퇴, 1964년 9월20일 고려大 경영대학원 연구과정 수학, 1967년 2월20일 경희大 산업경영대학원 수료, 1969년 2월20일 경희大 대학원 경제정책과 수료.

1-6 재산관계

총 42억7,750만원(부동산 20억7,750만원. 동산 22억원)

(편집자 注:李姬鎬·金弘一 및 金弘業 부부 명의의 재산을 포함한 것임)

1-7 인간성

가. 임기응변에 능하고 출세욕이 강하며 信義가 없다.

나. 再婚을 정략적으로 이용.

다. 종교를 편의적 수단으로 이용.

라. 독선적 성격과 폭력적 대중 선동.

마. 집요한 大權 집념.

바. 기회주의적이고 變身의 천재.

사. 학생·노동자 등 자신에게 이익만 되면 받아들이는 정치인.

아.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

2. 思想 성분

2-1. 建準 가담 등 좌익 활동

■1945년 8월15일 해방 직후 9월경 건국준비위원회 宣傳責이며 그 후 남로당 선전책으로 암약하던 林永春의 추천으로 건국준비위원회 목포시 지부에 가입, 선전책으로 종사하면서 목포청년동맹에 가담 활동 중, 그해 10월경 건국준비위원회와 목포청년동맹이 해체되자 당시 新民黨 목포시당 위원장이며 그 후 남로당 부위원장으로 암약타가 행방불명된 李彩鉉의 추천으로 同黨(신민당)에 입당하여 조직부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共産系 행동 전위대원 집단인 민주청년동맹 목포시 위원회에 가입하여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盟員 장금성(9·28 수복 후 사망) 등과 당원 徐得均(6·25시 월북) 등에게 국내외 정세 및 공산주의 이론 등 정치학습과 민주청년동맹사업 요지 등을 교양했다.

■1946년 10월31일 목포 경찰서 南橋洞 파출소 등 경찰관서를 습격하여 경찰관을 살해하고 파출소를 방화 소실케 한 소위 「목포시민 항쟁의 날」 폭동사건을 민주청년동맹 부위원장의 지위에서 배후 조종한 혐의로 목포 경찰서에 체포되어 10여 일간 구속 조사를 받던 중, 당시 한민당 목포시당 부위원장이던 당시 장인 車寶輪의 신원보증으로 「다시는 좌익단체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 후 訓戒 방면됨.

■1949년 2월경 사상적으로 전향한 양 보도연맹 목포시 지부에 가입하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전남 신안군 荏子面 출신으로서 남로당 섭외부원 겸 민주주의 민족전선 부위원장으로서 지하에서 암약중이던 兪在植에게 同人의 당 연락 활동과 관련한 上京 여비 등 활동자금을 제공하여 전남도 경찰국에 체포되었다. 그는 10여 일간 구속조사를 받던 중 당시 해군 목포헌병대장이던 朴成哲(前 金大中 경호실장)의 신원보증으로 방면되고서도 목포시내 세포 조직에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그 후 보도연맹으로 被檢, 我軍 후퇴시 美 CIC에 의해 사살대상자로 지명되었으나 金眞夏(목포상업中 선배)의 호명착오로 救命되었으며 1950년 6월25일 당시 목포인민위원회 창설 활동, 부채 및 체불 노임 횡령 사건으로 목포 교도소에 수감, 9·28 수복시 탈옥했다.


필자의 검토:「호명착오로 救命」 부분은 과연 사실인가

김진하씨의 「호명착오」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기록으로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워싱턴 근교에서 살고 있는 김진하씨의 이름은 金大中씨와 관련하여 관계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김영훈 목사는 1995년 현지 한국어 신문에, 일본 산케이 신문 칼럼니스트 시바다 미노루(紫田穗)는 1980년 7월호 일본 잡지 「中央公論」에 金大中씨가 보도연맹원 집단 처형 직전에 김진하씨의 도움을 받아 살아났다는 요지의 글을 썼다.

안기부의 「金大中 관찰기록(1988년판)」 내용은 안기부 내부에서 존안되어 온 정보인데, 시바다씨의 글이 이 정보를 근거로 했을 가능성은 있다. 김영훈 목사는 별도로 김진하씨를 만나서 증언을 들은 뒤 썼다고 한다. 김진하씨가 말한 요지는, 6·25 남침 직후 목포에서 보도연맹원(전향한 前 좌익활동가들) 소집과 집단처형이 있을 때 창고에 갇혀 있던 金大中씨를 당시 영어교사이던 자신이 찾아가 자신의 명찰을 주면서 『金大中을 호명할 때 나서지 말고 이 명찰을 보이면서 사람을 잘못 끌고왔다고 이야기하라』고 하여 救命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金大中씨는 그러나 일관되게 자신은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서울에 있었다고 말해 왔다. 그는 또 인천상륙 직후 목포가 수복되었을 때 자신은 인민군한테 구속되어 감옥에 있다가 탈출했다고 말했다. 안기부 기록을 보아도 金大中씨가 목포 교도소에 수감된 것이 인민군에 의한 것인지, 국군에 의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목포인민위원회 창설활동이 구속의 이유라면 국군에 의한 구속이란 말이 된다. 그렇다면 목포가 敵의 治下가 되어 있던 약 두 달간 목포 교도소에 계속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인민군이 金大中씨를 구속했다면 金大中씨의 우익활동 때문이든지 다른 非理念的 범죄 때문일 것이다. 金大中씨는 우익 활동을 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안기부의 金大中 기록에 쓰여진 대로 「부채 및 滯拂 노임 횡령」으로 인민군이 金大中씨를 구속한 것인가. 현재는 이런 의문과 가능성을 제기하는 수준에서 그쳐야 할 것 같다.

안기부(현재는 국정원)에 좀더 명확한 증거물이 확보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예컨대 김진하의 자필 진술서나 보도연맹 사살대상자 명부 같은 것), 이 기록만으로는 金大中씨가 주장해 온 것을 결정적으로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2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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