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자 문화일보 칼럼(아래 全文 참조)에서 李長春 대사는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거의 천년에 걸쳐 진화된 서구 민주주의에 비교할 때 6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어리다는 의미였다. 노무현 정권과 친북반역자들이 북한의 反민주세력과 작당하여 이 어린 민주주의를 협박하고 속이고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포기하도록 일종의 반역책동을 벌이고 있다는 요지였다.
李대사의 칼럼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탄탄대로에 들어섰고, 노무현 정권의 언동이 한국 민주주의의 견실성을 입증하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좋은 警鐘(경종)의 글이었다. 지난 60년간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번의 국제전쟁, 한번의 민중혁명, 두번의 군사쿠데타, 두 번의 좌파정권, 수많은 부정 사기 반역의 시련속에서 자라왔다. 이 정도의 시련을 겪었으니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민주주의를 너무 얕보는 생각이다. 한 국가와 민족이 성숙된 민주주의를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백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전쟁과 혁명과 정변을 수십 번 치루어도 민주주의를 갖추지 못한 나라가 많다. 한국이 겪은 이 정도의 시련으로써는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보장받을 수 없다.
한국이 앞으로 민주주의를 잃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많다.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인 김정일 독재정권이 사라져야 한다. 그에 부화뇌동하는 남한의 독재추종세력도 정리되어야 한다. 국민들을 잘 속여 정권을 잡는 세력과 이들에 의해 선동기관으로 이용되는 kbs mbc 같은 어용방송도 한국 민주주의 발육의 저해요인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국민여론이나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헌법에 의거하여 판결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이 신념보다 사실을 더 중시해야 한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는 잘 속고 쉽게 흥분한다. 한국의 어린민주주의는 아직 겁이 많아 권력에 약하다. 어린 민주주의는 어린 아이처럼 잘 보살펴주고 교육시켜야 한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는 지금 남북한의 권력을 쥔 여우와 늑대, 하이에나와 앵무새들의 협박과 농락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한국의 미래는 아직 불안하다. 자유통일의 길로 들어가면 선진국, 분단고착으로 흐르면 후진국, 赤化로 가면 지옥이 된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길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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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정권교체의 어려움
조갑제
한 국가가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선거를 통해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평화적 정권교체의 역사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성숙도 지표이다.
유럽에선 영국이 1688년의 명예혁명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확립했다. 미국은 1776년 건국시부터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프랑스는 1871년 普佛전쟁에 져서 나폴레옹 3세 황제가 쫓겨난 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정권교체기에 들어갔다.
독일과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부터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철권통치자 프랑코와 살라자르가 죽은 뒤인 1970년대 후반부터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舊소련과 동구권 나라들은 1989년경부터 이 시기로 들어갔다. 필리핀은 1986년 마르코스 추방 이후 그렇게 되었으나 아직도 불안해보인다. 한국은 1988년 全斗煥 퇴임으로부터 이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놓고본다면 민주주의의 발달사는 길지만 의외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은 길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가능해진다는 의미이다. 17년밖에 되지 않는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 역사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충분히 다져졌다고 볼 수 없는 조건에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북한과 중국은 아직도 정권교체의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정권교체는 옛날엔 전쟁이나 암살, 쿠데타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민주주의 시대엔 선거가 전쟁을 통해서 했던 일을 대신한다. 그만큼 선거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 17년밖에 되지 않은 정권교체의 전통을 국민 모두가 소중히 가꿔나가야겠다. 동시에 全斗煥 정권이 만든 이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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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꼭두각시 헌법재판소*
* 2005년 11월 28일자 문화일보 포럼 [제목: '행정도시 합헌결정과 사법의 정치화']에 게재됨
李 長 春 (외교평론가․전 외무부대사)
헌법재판소는 11월 24일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적 권력의 최후보루로서 그 책무를 포기했다. 작년 10월 ‘신행정수도법’에 위헌딱지를 붙인 지 불과 1년 남짓만에 ‘행정도시’로 둔갑한 수도분할 심판에서 선출된 권력의 편이 됐다. 결국 헌법의 수임(mandate)을 일탈한 권력의 월권(越權)을 묵인한 일방 자신의 결정 즉 재판결과에 대한 권력의 불복(不服)에 굴복한 셈이다.
헌재에 대한 권부의 압력이 극성을 부렸다. 열린우리당은 ‘행정도시’ 건설에 위헌판정이 내려질 경우 “국회의 입법권 침해와 정부 기능 마비 등 혼란이 우려된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천도위헌 선고 직후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다“고 헌재를 나무란 노무현 대통령의 오기를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반역적 언동을 둘러싼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와 더불어 선출된 권력의 횡포가 꼴사납다. 사법권 침해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선거 만능의 독선이다. 제도민주주의를 동반 못하는 선거민주주의는 독재의 은폐․정당화 도구로 타락한다는 것을 악용할 심보가 아니라면 그럴 수 없다. 소위 ‘민주화’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독립된 사법부는 자유언론 및 직업관료의 중립과 더불어 민주주의에 불가결하다. 이 세 가지 제도로 떠받쳐지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 중 하나만 결여돼도 권력은 그 속성상 독재의 문을 뚜드린다. 소위 ‘참여정부‘는 TV를 포함한 방송의 독점으로 '전파독재'의 길을 닦고 ‘신문법’의 제정으로 언론탄압을 시도하며 엽관으로 직업관료제를 붕괴시키고 있다. 헌재의 천도위헌 결정을 '사법 쿠데타'로 낙인찍더니 그 위헌법률 심사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며 헌재를 압박했다. 권력의 제도민주주의 교살 기도가 반역 수준이다.
헌재는--'관습헌법'을 원용하여--비록 헌법에 언급이 없더라도 권력에는 금기(禁忌)와 한계(限界)가 있음을 판시했다. 그 법리의 근본은 민주주의의 상식과 이성이다. 611년 된 서울은 그 역사적 상징성과 한국의 경제기적을 따라 높아진 그 브랜드 가치로 볼 때 한국의 정체성(正體性)과 불가분(不可分)하다. 나라의 그런 근본은 선출된 권력이 함부로 탈낼 수 없다. 그것을 무시한 권력이 오만을 부린 결과 지난 대선 때의 천도공약이 위헌으로 판명되고 대권(大權)의 정통성(正統性)에 흠집이 났다.
그러나 헌재의 수도분할 방조로 그 천도위헌 결정은 도루묵이 됐다. 대통령과 국회 등의 일부 기관을 제외한 16개 정부부처와 177개 공공기관이 서울에서 빠지는 것은 형식상 천도는 아니나 ‘유사천도(類似遷都)’임에 틀림없다. 서울=수도=신행정수도=행정도시의 일체성(integrity)을 부인하는 편법으로 괜히 땅값을 올리고 국가자원을 소모하며 직장인의 집단이동(relocation)을 강제하는 가운데 국가기능의 ‘혼잡(混雜)’을 획책한다. 300조의 국가채무가 눈에 선한데 소위 지역균형발전․자주국방․과거사 청산 등의 무모한 정략에 기인한 권력의 반민주적 낭비(浪費)작태가 반역 수준이다.
정치적 이유를 들어 노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했던 헌재는 단순한 불법보다 간악한 편법의 폐해와 부작용이 더 지독함을 간과하고 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권력의 수족이 되는데 부끄럼이 없다. ‘행정도시’를 위한 그 변명이 참으로 궁색하다. 현대사회에서 “공간의 의미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말로 대인(對人)접촉의 중요성과 국가기능의 효율성(效率性)을 무시한다. 세계의 주요 수도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나라의 경우에 국회와 정부기관이 지척간에 밀집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았다. 경제의 세계화시대에 “주요 국제관계가 형성되는 장소”로 외국 외교관이 자주 드나드는 곳은 청와대나 외교부가 아니라 경제부처라는 사실을 모른다.
‘행정도시’는 한마디로 상식(常識)과 이성(理性)을 배반한 권력의 악덕이 빚어낸 산물이다. 그 부정적 함의와 후과를 외면한 헌재가 비겁하게 정권의 망국적 득표정략(政略)에 영합한 까닭에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발육장애를 앓을 것은 너무나 뻔하다. 더군다나 대북 ‘퍼주기’의 이적(利敵)과 한미동맹의 와해를 노린 반미(反美)로 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한국(韓國)이--낭비에 무심한 권력의 반민(反民)으로--더욱 거세질 반역(反逆)의 물결에 삼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筆者 약력: 경남馬山 출생․4.19革命지도자 건국포장 수령․고등고시 행정(外交)과 합격․서울대 政治學科 졸업․서울대 대학원外交學科 수료 [Bonn대학교 修學/Harvard대학교 CFIA 연구원/ 慶應義塾대학 방문교수]․空軍중위 예편․獨逸/월남/英國/제네바/뉴욕(UN) 주재공관 근무․大統領 정무(外交/안보)비서관․외무부 國際機構조약국장/ 外交政策기획실장․駐싱가포르/오스트리아/IAEA/필리핀 大使․경희대/명지대 초빙敎授(국제법․외교)․(現)외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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