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100점, 마르코스10점, 김일성1점

박정희(100점), 마르코스(10점), 김일성(1점)

[GNP는 20세기 최대의 발견]

15세기 최대 발견이 아메리카대륙의 재발견이라면, 20세기 최대 발견은 GNP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지 GNP를 경제적 척도만으로 보지 않는다. GNP에는 한 나라의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농축적으로 계량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계조작이 조직화되고 상습화된 공산권이 아닌 한 그 GNP를 알면, 그 나라의 거의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공산권도 보정 작업을 거쳐 GNP를 제대로 알아내면 천리안으로 바라보듯이 천 리 만 리 밖에서도 그 나라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 1만3980달러, 필리핀 1천170달러, 북한 1백 달러]

세계은행(IBRD)에 따르면, 2004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GNI로 제시됨)이 1만3천980달러이고 필리핀은 1천170달러이다. 한국이 12배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4년 한국은 1만4천162달러이고(기준연도와 환율 계산방식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남) 북한은 714달러이다. 한국이 20배 높다. 세계은행에는 아예 북한의 통계가 없다. 하늘을 나는 새 외에는 그 누구도 자유롭게 들어가지도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북한의 통계는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반증이다.

북한의 시장환율은 현재 1달러에 2500원이고 노동자 한 달 임금이 평균 2500원이다. 공장가동률이 20%밖에 안 되는 북한에서 그나마 임금을 받아봐야 연간 12달러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낮다. 전세계에서 가장 못 산다는 말이다. 한국 노동자의 평균연봉은 약 2만 달러(약 2400만원)이다. 북한 노동자의 약 1,600배이다. 따라서 아무리 높게 잡아도, 핵무기 생산과 아편 재배와 위조 달러까지 GNP에 넣어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를 넘지 않는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도 이제 겨우 1천 달러를 넘겼는데, 그보다 10배는 못 사는 게 확실한 북한이 714달러라는 것은 휴전선을 넘나드는 새한테 얘기해도 너무 어이없어 웃다가 옆구리 터져 죽을 일이다. 도이모이 이후 북한에 비하면 지상낙원인 베트남이 2004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540달러임을 생각해 보면, 한국은행의 자료가 얼마나 터무니없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1953년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67달러, 북한은 58달러, 필리핀은 170달러였다. 1960년에는 전후 복구가 북한이 더 활발해서(그 통계를 곧이곧대로 믿어 주면), 한국이 79달러 북한이 117달러가 되어 북한이 한국을 훌쩍 추월한다. 마르코스는 1965년에 등장하니까, 필리핀은 이 때 250달러쯤 되었을 것이다. 이 당시에 필리핀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현재 한국과 필리핀과 북한은 1인당 소득이 대략 100: 10: 1이다. 그 부유하던 필리핀이 지금은 해외에서 가정부와 잡역부로 취직한 친척들이 보내 주는 연간 120억 달러의 돈이 가장 큰 돈줄이고, 북한은 구걸과 협박으로 지원 받는 달러와 물자가 국내 총생산 20억 달러와 맞먹는다(삼성전자는 흑자만 해도 2004년 기준 100억 달러). 필리핀에서는 이제 굶어 죽었다는 건 뉴스도 유언비어도 자취를 감추었지만, 북한은 전쟁도 없이 300만이 굶어 죽었다. 엉터리 통계에 따르면 인구가 2300만이지만, 북한은 이제 1900만 내지 2000만밖에 안 된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참담한 나라로 전락했을까. 더군다나 북한은 해방 당시 현대식 공장과 발전소가 즐비했다. 남북한 전체의 90% 이상을 갖고 있었다. 지하자원도 한국보다 10배 이상 풍부했다. 제대로 통치했으면, 북한은 한국보다, 아니 일본보다 잘 살아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필리핀은 그래도 북한보다는 훨씬 낫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부국이었지만, 지금은 동남아시아의 고만고만한 나라들과 도토리 키재기한다고 하나 그래도 굶어 죽는 사람 없고 자아비판도 없고 호상비판도 없고 수령님 말씀 외우기도 없고 강제수용소도 없다. 자유가 있고 웃음이 있고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세계 어디 가도 먹고 살 수 있는 영어가 있다.

[지도자 차이]

오늘날의 한국과 필리핀과 북한의 차이는 정확하게 박정희(1961~1979, 18년간 통치)와 마르코스(1965~1986, 21년간 통치)와 김일성(1945~1994, 49년간 통치)의 차이다. 박정희와 마르코스와 김일성은 눈을 감는 순간 바로 영혼의 손을 공손히 내밀어 천사로부터 또는 저승사자로부터 성적표를 받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차례로 황금색과 된장색과 똥색으로 100점, 10점, 1점이라고 적혀 있었을 것이다.

[민족주의의 4유형]

제1차세계대전을 결산하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후진국과 식민지에서는 거센 민족주의의 열풍이 불었다. 한민족이 제일 앞장서서 1919년 3월 1일에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가득 메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그 해 4월 6일과 5월 4일에 각각 인도와 중국이 한민족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 민족주의는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었을 뿐 제2차세계대전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다. 그 이전에는 민족주의가 분화되지 않았으나 연합국이 동서 양진영으로 갈라지면서 민족주의도 크게 둘로 갈라졌다. 자본주의적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적 민족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 이를 우익 민족주의와 좌익 민족주의라고 일컫는다.

민족주의는 열린 민족주의와 닫힌 민족주의가 있다. 이를 다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 조합하면 4유형의 민족주의가 나온다. 자본주의의 열린 민족주의와 닫힌 민족주의, 공산주의의 열린 민족주의와 닫힌 민족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자본주의의 열린 민족주의와 닫힌 민족주의]

자본주의의 열린 민족주의는 계속 발전했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박정희다. 그 뒤를 이광요와 장개석, 마하티르, 칠레의 피노체트, 멕시코의 살리나스, 브라질의 룰라, 1990년대 이후의 인도 지도자 등이 따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닫힌 민족주의는 계속 쇠퇴했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아시아에선 마르코스, 남미에선 페론이다. 최근에는 아시아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이, 남미에선 차베스가 나왔다. 사담 후세인도 이 계열에 속한다. 자본주의의 닫힌 민족주의는 흔히 대중주의, 민중주의 또는 인기영합주의(populism)라고 한다. 이보다는 낫지만, 인도의 간디와 네루도 이 범주에 든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실천했지만, 닫힌 민족주의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인도의 아픔인 가난과 인도의 슬픔인 카스트제도를 거의 그대로 온존시켰다.

[공산주의의 닫힌 민족주의와 열린 민족주의]

공산주의의 닫힌 민족주의는 전쟁보다 더 파멸적인 고통과 빈곤과 억압을 가져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스탈린과 모택동이 선두 주자이다. 김일성, 호치민, 카스트로, 체 게바라, 티토, 차우세스코, 아옌데, 폴 포트, 김정일 등이 그 후발 주자이다.

공산주의의 닫힌 민족주의가 열린 민족주의로 변한 경우도 있다. 이 때 나온 말이 저 유명한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이다. 등소평이 단연 선두 주자이고 그 뒤를 강택민, 주용기, 호금도, 고르바초프, 푸틴, 하벨, 도이모이 이후의 베트남 지도자들이 따르고 있다.

[선진국에선 악마도 독재를 할 수 없다]

북미나 서구에서 독재를 자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거기선 아무리 사악한 인간도 일단 지도자가 되면,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주의냐, 진보주의냐, 그 정도의 차이만 둘 수 있을 뿐이다. 거기서는 진시황이나 네로도, 돈키호테도 소설이나 영화나 연극이 아닌 현실에서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없고 군정을 실시할 수도 없다. 거기선 악마도 독재를 할 수 없다.

[후진국에서는 천사도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후진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선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선진국처럼 실시할 수가 없다. 민도가 낮고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건, 공산주의를 받아들였건, 그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소련이나 중공, 월남이나 북한뿐만 아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나라는 원래 후진 사회였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것이 조각배를 저어 태평양을 건너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거기선 천사도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실행할 수가 없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전통이 일부 있었던 동구에서는 그게 가능했으나 소련 제국주의 때문에, 그들도 닫힌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바람에 몰락의 길로 달음질쳐 갔다.

[박정희는 세계적 위인]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적으로 볼 때, 박정희는 한국의 위인으로 그치지 않는다. 세계의 위인이다. 그는 자원도 기술도 자본도 자신감도 희망도 의욕도 없는 나라에서 산업화만 세계 최단기로 이룩한 게 아니다. 민주주의가 난만한 제1세계를 제외한 공산권의 제2세계와 개발도상국인 제3세계 다 합쳐서 그는 가장 민주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야당에게 국회의석을 절반 가까이 허용했고(이광요, 장개석, 마하티르 등과 비교해 볼 것), 정적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등소평, 피노체트 등과 비교해 볼 것). 그는 정치적인 반대자와 시장경제의 적과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 외에는 전 국민에게 거의 서구 수준의 자유를 주었다.

그는 누구보다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국경을 활짝 열고 대대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여(수출입국) 이를 우리 실정에 알맞게 정착시키고(5개년 경제계획) 서구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성숙시키면서, 안보와 교육과 과학기술에도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70년대 중반이면 한국인은 세계 어딜 가든지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 1등, 2등에 도전할 의욕에 불타게 되었다.

박정희 100점, 마르코스 10점, 김일성 1점! 김정일 0점! 박정희라면 이를 가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들은 과연 몇 점이나 받을까. 천사로부터, 또는 저승사자로부터! 또는 자유통일된 한국의 국민으로부터!

(2005.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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