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위원회, 어용역사를 쓰려는가

과거사위원회, 어용역사를 쓰려는가. 어용역사는 참여정부의 정부기록물일 뿐 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겨야.


출처: 뉴라이트닷컴 이재교의 자유주의 칼럼

2005.12월 1일자로 과거사위원회법이 발효되어 과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정식 명칭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일제 강점기 직전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군사정권시까지로 보인다)까지 발생한 중요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일정 강점기 직전부터 군사정권 시절까지라면 우리의 현대사를 가리킨다. 명백하게 역사(歷史)다. 그런데 역사라는 말을 두고 굳이 과거사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라고 하면 역사가에게 맡기라고 할테니 이를 피하고자 함일 것이다. 용어를 바꾸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사란 무엇인가? 그렇다. 386세대라면 학창시절 안 읽은 사람이 없다시피 한 E.H. Carr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라고 정의했다. 과거가 현재와 대화한다. 결국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비추어 본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Ranke처럼 “과거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역사”라는 객관성을 강조하는 견해와, Collingwood처럼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관성을 강조한 견해가 있지만,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 극단은 설득력이 없기에 역사를 현재 즉, 역사가의 눈을 통한 과거사실의 재구성이라고 파악하는 Carr의 인식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과거사가 되었든 역사가 되었든 과거의 사실을 조사하여 구성하는 데에는 역사가의 주관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거사위원회 위원장 송기인 신부를 비롯하여 정부·여당의 추천으로 위원이 된 사람들을 보면, 저렇게 편향된 시각으로 어떤 사실을 어떻게 구성해낼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과거사위원장 송기인 신부는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으로 통한다. 이 분의 주간중앙 2005년 5월호 인터뷰기사를 보면, “지금까지 기득권자들이 계속 일반 사람을 묶어 놓고 자기들만 기득권을 누리려는 자세가 있다”면서 “그 때문에 결국 상류층은 영구히 대대손손 기득권을 이어간다”고 인식하는 분이다. 게다가 미군이 철수하기 위해서는 서울 정부와 평양 정부가 몰래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듣자면 옛날 생각이 절로 난다.

우리들이 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초에 자주 들었고, 또 하던 말이 아니던가. 당시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니, “전환시대의 논리,” 그리고 “들어라 양키들아” 등속의 책을 접하면서, 그 때까지 교육받은 반공이나 대미관(對美觀) 교육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진리를 발견한 듯 가슴이 떨리던 그 시절에 자주 입에 올리던 말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얘기하지만, 우리 사회처럼 고정된 상류계급이 없고, 또 계급간의 이동이 심한 나라도 드물다. 우리의 전통 지배계급이던 양반계급은 개화에 동참하지 못하고 신식교육을 등한시하다가 토지개혁으로 경제적기반이 무너져 완전히 몰락하였다. 근대화와 성공한 계층도 6.25와 4.19, 그리고 5.16의 격변, 그리고 1970-80년대의 고도성장기에 부침을 거듭하였다. 우리 사회에 대대손손 내려오는 상류층은 별로 없다. 구한말은 그만두고 자유당 때 고관대작이었던 집안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집이 몇이나 되며, 1960년대의 재벌이 지금도 재벌로 남아 있는 기업이 있는지 찾아보라.

그리고 미군은 왜 이 땅에 있는지, 송 신부는 잊었나 보다. 우리가 필요해서 불러들인 것 아니던가. 이 땅을 ‘미제의 점령지’라고 보기에 이북과 몰래 손을 잡고서라도 미군을 내보내자고 하는 듯한데, 미군은 바로 북한이 일으킨 6.25 당시 우리의 요청으로 참전하고, 주둔하고 있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그 북한과 몰래 손잡고 몰아내잔다. 그럴 것까지는 없다. 그냥 나가라면 나갈 터이다.

송신부는 “북한사람들이 자기 겨레에게 핵폭탄을 던지기는 힘들 것”이라 하는데, 그랬으면 오죽이 좋겠나마는 6.25때 자기 겨레에게 “불벼락”을 내린 것은 누구이던가. 그 사실을 직접 겪은 세대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송신부의 얘기를 들으면, 70을 바라보는 분이 예의 그 ‘83학번’적인 생각에서 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여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부님이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을 터이니 젊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40대가 아니라 60대에도 20대의 가슴을 가진 ‘청년’ 종교인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야 바람직하겠다. 그러나 이런 분이 한 나라의 현대사를 새로 쓰겠다고 나서는 것은 별개다.

위원장만이 아니다. 정부·여당의 추천을 받은 위원들의 한결같은 점은 한국현대사에 대하여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하긴 대통령이 우리 현대사를 청산할 대상으로 보고 있으니 위원들이 그 ‘코드’에 맞추어 선정되었다 하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결국 15명의 위원 중 정부·여당이 추천한 8명이 ‘현대사부정 코드’로 현대사를 다시 쓸 것이다. 그 ‘코드현대사’가 어떤 내용이 될지는 짐작이 간다. 결국 우리 사회에 갈등과 소모적인 논쟁만 몰고 올 것이다.

정부가 예산을 써가면서 현대사의 사건에 대하여 ‘공식 명칭’을 부여한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이 규정될 리 없다. 역사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어용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정부기록물일 뿐이다. 정부기록보존소에나 들어갈 “참여정부실록”을 만들어 어디에 쓰겠다는 것인가. 송신부는 어린 양을 돌보고, 정부는 젊은이들 취업시킬 궁리나 하라. 그리고 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기라.



이재교 (변호사,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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