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의 김대중 연구(29)

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⑧-2;

李哲 자필 진술서: 『金大中은 나에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하자고 설득했다』
黃長燁 미공개 보고서: 『金大中은 金正日과 깊이 결탁한 관계』
韓哲鏞 소장 비망록: 『햇볕정책을 뒷받침한다고 북한군의 도발징후를 쉬쉬 하다가…』
검찰은 金大中 정권下에서 벌어졌던 반역적 의혹 사건들을 조사하여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기자는 李哲씨를 만나 몇 가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1985년 면담 당시 金大中 총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같이 하자」란 말을 과연 썼나, 썼다면 몇 번 썼나.

『여러 번 썼다. 서재 책상에서 앉아서 거의 한 시간 혼자서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를 보는 자신의 시각을 드러낸 내용이었다. 한국 사회를 가진 자 對 안 가진 자, 군부 對 민중의 갈등 구조로 보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밖에 없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황당했다. 나를 공산주의자로 착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金正日도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아니지 않는가. DJ는 기회주의자이다』

―金大中씨는 여러 가지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념적인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는 이념문제에서만은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그가 상황에 맞추어 극우적인 발언을 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닌가』

―金大中씨가 우익적인 발언을 했다면 그것은 좌파정책을 호도하기 위한 위장용이지 진심이 실린 것은 아닐 것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했다』

2000년 1월호 月刊朝鮮에 李哲씨의 진술 내용이 일부 보도된 직후 기자를 만난 金大中 대통령의 한 측근은 『대통령께서 李哲 의원에게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다고 저한테 직접 말했습니다』라고 전했다. 金大中 총재가 그런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객관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황 전개로 보아서는 李哲씨가 고의로 거짓 증언을 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李哲씨는 ’97 大選 때 李會昌 후보를 지원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비밀을 선거에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 李哲씨는 金大中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측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걱정을 하기에 『나는 어떤 경우에도 金大中씨가 공산주의자란 증언을 하지는 않는다. 그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증언이면 몰라도…』라고 말하여 안심시켰다고 한다.

金大中씨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그의 좌익행동대 경험과 한민통 조직, 金日成의 연방제 통일방안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판정된 연방제 통일 방안 제창, 대통령이 된 뒤 보여준 親김정일 정책 등 그의 생애 전체 속에서 판단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국가체제의 대안으로 대중민주체제 제창」

다시 金大中씨가 1973년 8월 도쿄에서 납치되어 올 때 남겨두고 온 수첩에 적힌 「대중민주체제」에 주목한다. 그는 「대중민주체제」란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쓰고 있는가. 기자는 1980년 4월1일 한섬사에서 펴낸 金大中 어록집인 「祖國과 함께 民族과 함께」를 읽었다.

<모순과 갈등, 빈곤과 독재의 병리로 점철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현실을 분석, 진단하고 이것을 치유하고 대중의 자유와 복지를 최대로 증진하며 민족경제를 균형 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국가체제의 대안으로 대중민주체제를 제창한다>

<대중민주체제가 실현되려면 우선 국민들이 이 제도의 가치를 정통적인 것으로 수락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을 사랑하고 신앙하고 여기에 집념하는 정치세력이 결정의 중요점을 장악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나는 대중민주체제의 정치체제와 관련해서 우리의 현실에서 가능한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각기 갖는 모순을 대중민주주의와 산업민주주의에 의해서 극복하고 자유경제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나가는 한국 형의 혼합경제체제라고 생각하며 이를 대중경제라고 이름합니다>

그는 대중민주체제라는 말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구별하여 쓰고 있다. 「국가체제의 代案」으로 대중민주체제를 제창한다면 대체하려는 국가체제는 자유민주주의란 설명이 된다. 비록 그가 다른 곳에서는 대중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의 심화 발전인 것처럼 쓰기도 했지만 본질적 의미는 순수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님이 분명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섞은 「혼합경제체제」란 것도 지구상에서 존재해 본 적이 없다.

李哲씨에게 金大中씨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하자』고 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대중민주체제」는 國是가 反共이던 시절 金大中씨가 犯法을 피하려고 「프롤레타리아」를 「대중」으로 바꿔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대중민주체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 체제」란 의미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1980년 어록집에는 그가 한국 사회를 계급투쟁적, 또는 계층갈등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낳게 하는 말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나만 소개한다.

<경제건설이란 이름 아래 국민은 세계 최고율의 조세부담을 강제당하고 있는데 농촌과 근로자의 생활상태는 날로 궁핍해지고 중산계층의 생활은 항시 불안 속에 있다. 민족자본으로 육성해야 할 중소기업은 사양일로를 걷는데 일부 특권분자들은 관권 및 외국자본과 결탁해서 식민지적 매판건설로 천문학적 재벌로 성장해 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농촌과 도시의 이중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지역간의 격차는 민족 내부의 대립조차 조장하고 있으며 전반적 빈부양극화 현상은 사회계층간의 대립을 첨예화시키고 있다>

金大中씨는 우리가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朴正熙가 주도한 開發年代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다. 그가 李哲의원에게 했다는 말대로 가진 자와 안 가진 자, 권력자와 약자 이런 二分法으로 사회를 대치시키고 있다. 농촌과 도시, 근로자·농민·중소계층 對 매판재벌 및 특권층.

金大中 대통령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가 실정법을 떠나서 한 인간이 양심의 판단에 따라 진정한 사회주의자로서 길을 걸었다면 도덕적 비난은 하기 힘들다. 사회주의가 역사적으로 실패한 이념임이 확인되었으므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는 비판을 할 수는 있겠지만.

대통령 金大中에 대한 평가는 그가 金正日을 어떻게 대했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될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자인 金正日에게 호의적으로, 굴욕적으로 대했으니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권력을 세습받고 식량이 모자라자 충성분자들에게만 식량을 공급함으로써 힘 없는 주민들을 수백만 명이나 굶어 죽게 한 金正日은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주의와 가장 멀리 있는 인간이다. 그래서 일본 공산당원 하기와라 료씨는 기자에게 『金正日이야말로 세계의 진정한 공산주의자의 敵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金大中씨에 대한 평가는 그가 젊었을 때의 좌익 행동대 경험이 그 뒤 金日成-金正日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 하는 것과, 反人類 민족반역 전쟁범죄자 金正日에게 굴종하여 국가이익을 희생시켰는가의 여부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현대상선을 매개로 한 4억 달러 對北 비밀 제공설은 그런 판단의 주요 단서를 제공한다.


黃長燁 보고서:「金大中과 金正日은 깊이 결탁한 관계」

金正日에 절망하고 탈출하여 한국에 왔지만 金大中 정부에 의하여 언론의 자유가 속박당함으로써 金大中 대통령의 성향을 실증해 준 黃長燁 前 노동당 비서는 작년 3월에 쓴 한 未공개 보고서에서 金大中 대통령을 「金正日과 깊이 결탁한 관계」라고 단정했다. 그 全文을 싣는다(별항).

이 보고서에서 黃長燁씨는 金大中 대통령을 「金正日에게 발목이 잡힌 사람」, 「붕괴에 직면한 金正日 정권을 되살려준 사람」, 「미국 및 우리 민족이 아니라 金正日과 운명을 같이 하려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이런 시각은 金正日을 잘 아는 또 한 사람 申相玉 감독의 視覺과 거의 일치한다. 申相玉씨는 月刊朝鮮 작년 10월호 기고문에서 「북한의 운명은 남한에 달려 있고, 金大中의 운명은 金正日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남겼다.

黃씨는 또 「(DJ는) 단순한 부정부패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敵과의 결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정권을 再창출하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黃長燁씨는 최근에도 「북한문제에 대한 우리의 근본 입장」이란 글(별도 기사 참조)을 발표하였다. 이 글에서도 그는 金正日의 운명에 있어서 이번 大選 결과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金正日이 한국에서 보수 정권이 등장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6·29 서해 도발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부분적으로 인용한다.

<남한에서 야당세력이 강화되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면서 북한 통치자들의 위기감은 더욱 심각화되었다. 남한에서 보수적 민주수호세력이 정권을 잡고 미국의 공화당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여 進攻的인 對北정책을 확립해 나가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하여 북한 통치자들은 서해 도발에서 위기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 보려고 꾀했던 것이다. 불의의 선제공격으로 남한 측에 충격적인 손실을 안겨준 다음 마치도 그것이 우발적인 것이며 자기들의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는 듯이 유감의 뜻을 표시함으로써 긴장되었던 전쟁공포 분위기를 해소시키고 사람들의 호평을 받을 것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군사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과시하여 자기의 동맹국들의 신임을 강화하는 한편 한국·미국·일본 등에 접근하여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체면과 계기를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전례 없는 적극성을 가지고 韓美日에 대화와 협상을 제기하여 왔으며 때를 같이 하여 경제관리에서의 일부 변화를 공개함으로써 마치 그들이 평화와 개혁 개방에 관심이나 있는 것처럼 책동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들이 노리는 주된 목적이 남한에서 보수적 민주수호세력에 의한 집권을 저지시키는 데 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그들은 평화의 가면을 쓰고 태도를 돌변함으로써 親北성향 세력을 고무하여 주는 한편 보수적 민주수호세력을 反통일세력으로 낙인찍고 공격하여 고립시키려고 책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북한 통치자들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제적 벗들을 총동원하여 한국·미국·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외교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으며 이 나라들로부터 경제원조를 더 따낼 뿐 아니라 남한에서 보수 민주수호 역량에 의한 정권교체를 저지시키도록 모든 힘을 결합시키는 데 최대의 전략적 意義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金大中+金正日」 공동운명체論

黃長燁씨는 이어서 이런 북한의 변화는 중국식 변화가 아니며 「수령절대주의 독재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黃長燁씨의 金大中觀은 누가 한민족의 敵이고 벗이냐 하는 구분법에 기준하는 것 같다. 黃씨는 金正日이야말로 7000만 한민족의 敵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金正日에게 발목이 잡혀 金正日을 돕고 있는 金大中 정권이 대한민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주민들을 배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黃씨는 또 金大中 대통령과 金正日이 깊게 결탁함으로써 공동운명체가 되어버렸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그는 공동운명체가 당면한 가장 큰 공통된 문제는 이번 한국 大選에서 보수적 민주수호 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라고 본다. 이 보수 정권이 미국의 보수 정권과 손잡고 金正日의 목을 조인다면 金은 死活이 걸린 위기에 빠지게 되므로 金正日은 보수 정권의 탄생을 저지하기 위한 평화공세, 외교공세, 개혁선전공세를 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현대상선을 매개로 한 金大中 정권의 對北 4억 달러 지원설 폭로는 金大中+金正日 공동운명체의 전략에 거의 결정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0월 초순 현재 언론의 추적과 여론동향에 의한다면 金大中 정권이 남북 頂上회담 개최와 관련하여 4억 달러를 金正日 정권에 불법으로 비밀리에 제공했다는 의혹이 다수 국민들 뇌리에 거의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30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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