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⑧-3;
李哲 자필 진술서: 『金大中은 나에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하자고 설득했다』
黃長燁 미공개 보고서: 『金大中은 金正日과 깊이 결탁한 관계』
韓哲鏞 소장 비망록: 『햇볕정책을 뒷받침한다고 북한군의 도발징후를 쉬쉬 하다가…』
검찰은 金大中 정권下에서 벌어졌던 반역적 의혹 사건들을 조사하여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4억 달러 폭로의 도화선
지난 3월 미국 의회 조사국(Congress Research Service)의 선임연구원으로서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가 쓴 「한미관계보고서」가 공개되었다. 이 보고서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군사령부와 美 중앙정보부(CIA)는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현대가 금강산 관광사업을 관장하는 代價로서 지불한 4억 달러가 넘는 돈으로 해서 북한 정권이 무기 구입에 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정보원에 따르면 현대는 북한 측에 비밀 자금을 지불해 왔는데 이것을 포함한 對北 지불 총액은 약 8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 보고서를 읽은 본 기자는 다른 직원에게 현대와 정부의 반응을 들어보라고 지시했다. 반응이란 것이 의외였다. 정부나 현대 모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아산의 한 간부는 『래리 닉시에게 항의할 일도 법적 조치를 취할 일도 아니다. 그런 소문은 끊임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며칠 뒤 래리 닉시는 수정본을 의회조사국 인터넷에 올렸다. 여기서는 문제의 문장이 『정보원에 따르면 현대는 비밀리에 북한 측에 자금을 지불했다고 하는데 현대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고 수정되었다. 현대 측이 항의했기 때문에 고친 것으로 보였다.
기자는 래리 닉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비밀자금 제공 관련 정보는 한국 측 소스로부터 들은 것이다. 현대 측의 항의를 수용하여 수정본에서 액수는 삭제했지만 나는 정확하다고 믿는다. 한국 국회에서 조사하면 사실 여부가 밝혀질 것이다』고 아주 예언적인 말을 했다.
이 기사는 月刊朝鮮 5월호에 「현대는 정말 북한에 4억 달러를 주었을까」란 제목으로 실렸다. 이 기사의 독자 가운데 한 사람이 한나라당 嚴虎聲 의원이었다. 그는 이 기사를 읽고 4억 달러 對北 지원의혹을 파헤치기 시작했다고 公言했다.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2000년 6월에 편법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된 4000억원이나 4월 초 현대상선이 기업어음(CP)을 발행하여 4000억원을 조달한 것이 金正日 정권에 불법적으로 전달되었으리란 의혹이 증폭되고 있으나 물론 확증은 없다. 이런 종류의 사건에선 검찰 수사나 내부 폭로만이 확증을 잡아낸다.
嚴虎聲 의원의 활약으로 래리 닉시가 처음으로 제기했던 현대에 의한 對北 4억 달러 제공설은 뜬 소문의 수준을 넘어섰다. 여론 조사에서도 다수의 응답자가 이 돈이 북한에 전달되었으리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金大中 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오고 많은 고위공직자나 기업인을 감옥으로 보낼 것이 틀림없는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 정권이 명예회복에 이처럼 소극적으로 나올 리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金大中 대통령은 선거유세에서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비유적인 우스개를 한 金洪信 의원을 모욕죄로 고소하여 벌금형을 선고받도록 했었다.
嚴虎聲 의원의 폭로와 엄낙용 前 産銀 총재의 증언이 모함이고 조작이라면 金大中 정권과 親與언론 및 親與 단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검찰수사를 몰아붙여 사법처리까지 갔을 것이다. 대출금에 대한 계좌추적을 못 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정부 측의 완강한 태도는 법치 수호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 보호 의지의 발현으로 보여진다.
主敵과 內敵을 강화·비호하고 애국세력을 공격, 우방국을 비난
경향신문의 10월 초 여론조사에 따르면 4억 달러 對北 비밀지원설에 대해 「사실일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약 49%, 「아닐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약 21%였다고 한다. 확증이 드러나지 않는데도 이렇게 많은 여론조사 응답자가 4억 달러 對北 제공설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수 국민들이 金大中 정부가 취해 온 金正日 정권에 대한 그동안의 굴욕적이고 굴종적인 자세로 보아 능히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金大中 대통령은 金正日에 대해서 무슨 일을 했던가, 아니면 그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해주었던가.
金大中 정권의 對北政策을 총괄하면 이런 큰 흐름이 발견된다.
金大中 정권은 金正日 정권과 북한 군사력, 즉 대한민국의 主敵을 강화시키고 그 主敵과 내통하고 있는 우리 곁의 內敵인 親北좌익 세력을 비호하였으며 헌법, 국군, 조선·동아일보, 黃長燁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수호세력(핵심 가치관 포함)을 공격하거나 약화시키는 한편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갈등으로 끌고감으로써 우리 안보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줄이면 대한민국의 敵을 강하게, 대한민국을 약하게 하였다.
▲主敵 강화의 例:이 정부는 군사비로 쓰일 것이 예견되는 데도 불구하고 현대의 금강산 관광 적자를 국민세금으로 보조하면서까지 對北 달러 송금을 계속시키고 있다. 6·29 서해 도발 때 북한해군의 도발 징후를 사전에 입수한 국군 첩보부대의 경고를 軍 지휘부가 묵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敵의 기습을 가능케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어 있다.
▲內敵 비호의 例:이 정부는 작년 8·15 평양 행사에 親北세력의 방북을 허용하여 親김일성 소동을 벌이게 했다. 대통령 직속의 의문사 위원회는 親北 이적 단체인 한총련 간부의 활동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인정하였다. 총리 직속의 위원회는 폭력 시위 진압 경찰관 일곱 명이 불에 타 죽게 했던 방화치사범들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하였다. 대통령도 총리도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수호 세력 약화 기도의 例: 金正日 정권과 金大中 정부의 對北 정책을 집중적으로 비판해 온 조선·동아일보에 대한 표적 세무 조사,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흡수통일 원칙 포기, 태극기·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 포기 또는 훼손, 국군이 북한군을 主敵으로 보지 않도록 하려는 끈질긴 압력 등. 애국세력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는 金大中 정권·親北좌익 세력·金正日 정권이 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 약화: 親北좌익 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反美 운동에 대한 미온적 대응, 부시가 북한 정권을 「악의 축」으로 부른 데 대한 정권 측의 반발(한 여당 의원은 부시를 「악의 화신」이라 불렀다), 9·11 테러 직후 테러집단인 북한 정권과 함께 反테러 선언을 하려고 구상한 예 등.
金正日은 金大中을 인질로 보았나?
여기서 시각을 바꾸어 金正日의 입장에서 金大中 대통령과 그 정권을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문제를 검토해 볼 만하다. 만약 다수 국민들이 믿는 대로 金大中 정권이 비밀자금을 金正日에게 제공하였다면 金正日은 金大中 대통령의 약점을 잡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金正日에게는 金大中 대통령의 행동이 국민과 언론과 국회를 속이면서까지 자신에게 거액의 달러를 제공하는 「약점 잡힌 사람」의 충성으로 비쳐지지 않았을까.
金大中 대통령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대한민국에 대한 金正日의 이런 오만과 얕잡아봄은 대한민국과 국민들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고 수치일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金大中 대통령의 金正日에 대한 굴욕적인 자세의 원인이 對北 비자금 지원에 따른 약점 잡힘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국군통수권자이기도 한 대통령이 主敵의 수괴에게 약점이 잡혔다면 대한민국이 북한 정권에 약점 잡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또 대한민국의 국군과 공권력이 간접적으로 金正日 정권에 약점이 잡혀 그 영향권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추정이 악몽의 수준을 넘어서 현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국군의 5679정보부대장 韓哲鏞 소장의 폭로로 불거진, 서해도발 징후 정보에 대한 국군 지휘부의 축소 은폐 조작 의혹인 것이다.
韓哲鏞 소장 비망록 검증「햇볕정책을 뒷받침한다고 북한군의 특이 동태를 쉬쉬 하다가…」
韓소장이 자신이 쓴 경위서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결정적인 도발징후」를 보고했음에도 軍 상층부에서 햇볕정책을 의식하여 이를 삭제하고 예하부대에 전파토록 했기 때문에 막을 수 있는 기습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6월14일에 나는 6월13일에 있었던 북한 경비정 NLL 침범에 관한 정보를 다시 한 번 정보본부장(중장 권영재)님께 보고드렸다. 매우 민감하고 특이한 정보(교신 내용)를 설명한 다음에 이는 예삿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지대함 미사일 발사대도 항공사진으로 찍히는 등 매우 예민한 사항이며, 6월15일이 연평해전 3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하여 우리 5679부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북한의 동태를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보고했다.
내가 왜 이렇게 여러 정보 고위 장성들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하며 보고했냐 하면 6월14일 배포되는 정보본부의 블랙 북(Black Book: 북한군의 동태를 주로 다룬 일일 정보 보고서)에 어제 NLL 침범을 단순 침범으로 왜곡 판단했고, 또 우리가 보고한 결정적이고 매우 중요한 특이정보(결정적인 문귀)를 아예 삭제한 채 장관님에게 보고함으로써 축소 은폐했고, 장관님은 敵 의도 판단 내용 중 의도적인 침범이란 판단은 빼고 단순 침범이란 판단만을 블랙 북에 내보내라고 함으로써 정보를 왜곡 및 조작한 결과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 부대에서 예하부대에 배포한 보고서의 敵 의도 내용을 단순 침범으로 수정하라고 해서 우리 부대에서는 정정하여 전문을 再하달하였다>
韓소장의 주장은 적의 도발 징후와 관련된 결정적인 정보를 올렸는데도 중간에서 삭제된 채 장관에게 보고되었고 상부로부터의 지시에 의하여 북한 경비정의 침범의도를 단순침범으로 왜곡·조작한 채 전파하였다는 것이다. 이 부대에서 북한경비정의 침범 의도를 평가할 때는 훈련평가, 의도적 침범, 단순 침범 세 가능성이었는데 단순 침범으로 일원화하였다는 것이다.
<6월13일의 의도적 NLL 침범이 단순침범으로 왜곡·조작됨으로써 6월27일의 NLL 고의적 침범도 또 단순 침범으로 왜곡·조작되었고 급기야는 6월29일의 서해교전으로 번져 24명의 인명피해와 고속정 침몰이라는 피해를 입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부대는 6월27일에 또 결정적이고 매우 중요한 특이징후를 수집하여 국방부에 보고하였다. 정보본부에서는 특이징후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인지하면서도 북한이 고의적으로 NLL을 침범할 의도가 없다고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결과 정보본부에서는 블랙북에 또 적 의도는 단순 침범이라고 판단하고 결정적인 특이징후는 삭제된 상태였다.
국방부에서 안이하게 대처한 결과 서해교전이 일어났던 것이다. 對北 햇볕정책을 뒷받침한다고 북한군의 특이동태를 쉬쉬 하다가 엄청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사태를 악화시킨 사람들이 주동이 되어 나를 징계하겠다고 했으니 賊反荷杖(적반하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韓소장은 자신의 비망록에서 「장관님과 정보본부의 정보축소·은폐·왜곡·조작」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軍수뇌부가 단순 침범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 속에서」
韓소장은 서해교전이 난 뒤 그 원인에 대한 평가회의에서도 국방부 정보본부는 「서해교전이 우발적이고 경비정의 단독 범행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주장했다.
<정보본부는 아직도 마치 어느 특정집단의 대변자인 것처럼 우발적이고 경비정 단독범행이라고 계속 주장하길래 추가적인 자료 두 건을 갖고 정보본부의 입장에 반박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정보지원 미흡으로 조사하겠다고 천명하였던 것이다.
미군 준장의 주장을 묵살하고 정보본부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하여 내가 중간에 제동을 걸었더니 또 정보본부장님이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여기서 정보본부장님이 우리 부대를 조사해야겠다고 작심을 하고 기무사령관님과 장관님께 조사토록 보고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韓소장은 모 사령관에게 보낸 私信에서는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6월27일에는 특이 이상 징후가 있어 정보본부에 보고했는데 정보본부에서는 장관님께 이상징후는 정확하게, 그러나 판단은 안이하게 하여 보고했고 예하부대 하달시에는 특이 이상 징후 내용은 그 자체를 삭제하였을 뿐 아니라 의도적인 침범을 또 단순 침범으로 왜곡 판단하여 하달함으로써 예하 작전 부대는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의도도 모른 채 대응 작전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6월27일 정보지원에 우리 부대가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거의 같은 내용의 특이 징후였지만 그것마저도 같이 포함해서 보고했더라면 금상첨화였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특이징후는 이미 보고된 특이징후와 대동소이한 내용이어서 중첩되기 때문에 한 개의 종합보고서로 처리했던 것입니다>
국방부 특별조사단 관계자는 10월8일「5679부대가 6월27일 북한 도발의 결정적 징후로 볼 수 있는 3건의 통신감청 정보를 확보했으나 이 중 한 건만 정보본부에 보고되었고 결론도 『단순 침범』으로 해서 보고서가 올라간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나머지 두 건의 통신감청 정보는 7월4일에 열린 서해 교전 한미 합동평가회의 때 韓소장이 뒤늦게 제시, 정보본부장 등이 『이제 와서 그것을 내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책했다며 「5679 부대는 6월28일 NLL 침범에 대해서도 『단순 침범』으로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韓소장은 「6월27일에 『단순 침범』으로 정보본부에 보고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는 장관이 6월13일 보고서를 『단순 침범』으로 수정해 전파하도록 지시하는 등 軍 수뇌부가 단순 침범으로 몰고가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부하를 둔 지휘관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6월27일 통신감청 정보 세 건 중 가장 중요한 한 건은 정보본부에 보고했으며 나머지 두 건은 27일 당시엔 불확실한 면이 있어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31편에 계속>
조갑제의 김대중 연구(30)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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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03, 21: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