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⑨-3;
일본인 납치범 신광수를 북송시킨 노벨 수상자의 인간관;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4) 일본인 강제 납북 수행
○2차 일본에 침투한 간첩 辛光洙는
―在日간첩망 殷正雄의 주선으로 도쿄도 이다바시구 오오야마초(東京都 板橋區 大山町)에 잠복하면서
―조총련 오사카 商工會 회장 李吉柄(73세)에게 접근하여, 在北 중인 그의 장남 이석행(45세), 차남 이찬행(42세) 등의 사진과 자필서신 등을 제시하고
―만약 협조치 않으면 北에 있는 아들들의 신상이 해롭게 된다고 협박하여 포섭한 후 同 李吉柄과 간첩 金吉旭에게
―미혼자로 연고가족이 없는 자
―여권을 한 번도 발급받지 않아, 인물사진을 제출한 적이 없고 전과도 없어 지문날인한 사실이 없는 자
―개인 금전거래나 은행거래가 없는 자등 장기간 행방불명되더라도 노출될 염려가 없고 일본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45~50세 가량의 일본인을 물색해 보고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1980년 6월 李吉柄으로부터
―『조총련 오사카 상공회 이사장 李三俊(54세)이 자영하고 있는 중국 요리집 寶海樓의 요리사 「하라타다아키」(原勅晁)라는 일본인이 적격자』라는 보고를 받고
―李吉柄을 앞세워 동 상공회 이사장 李三俊 등과 함께 별장으로 휴양 가자는 구실로 「하라타다아키」를 아오지마(靑島) 해안까지 유인토록 모의한 후
―북괴 공작기지와 무전연락을 통하여 미리 계획된 접선일시와 장소에 북괴공작선을 침투하도록 약정한 후
―1980년 6월 중순 李吉柄, 李三俊, 金吉旭 등과 합세하여 「하라타다아키」를 미야자키현 아오지마(宮崎縣 靑島) 해수욕장 어린이놀이터 남쪽 끝 도랑으로 유인하고
―그곳에 事前 침투하여 대기 중이던 북괴 공작원 4명과 합세하여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묶은 뒤 자루에 넣어 8인승 고무보트로 500m 해상에 대기 중이던 북괴 공작선에 싣고 간첩 辛光洙가 직접 대동 납북.
(5) 3차 침투 후 납치된 일본인으로 변신 암약
○북괴로 복귀한 간첩 辛光洙는 일본인 「하라타다아키」를 평양 근교 동북리 3호 초대소에 5개월간 밀봉수용하면서, 金正日의 지시대로 「하라타다아키」의 인적사항, 學經歷, 가족사항, 거주이동사항, 과거생활, 그의 직업인 중화요리법 등 同人의 신상자료를 완전파악, 숙지한 후 자기 자신을 「하라타다아키」로 완전변신하였으며
○북괴 조사부 부부장 姜海龍(강해룡)으로부터
―매우 힘들게 해결한 합법신분이니 사회적, 법적으로 위장신분을 더욱 공고히 하고
―앞으로는 빈틈없이 일본인으로 행세하여 在日工作을 강화하라는 공작지령과 暗書시약, 미화 1만 달러 등의 공작금품을 받고
○1980년 11월26일 남포항에서 북괴 공작선으로 출발, 「하라타다아키」를 납치했던 아오지마(靑島) 해안 해수욕장으로 세 번째 침투.
金正日로부터 직접 對南 공작 지령
(6) 3차 북괴 복귀 및 4차 침투 활동
○(辛光洙는)1982년 3월23일 북괴의 소환지시가 있자 일본인 하라타다아키 명의로 된 위조여권을 이용, 스위스, 파리, 모스크바 등을 경유하여 세 번째 북괴로 복귀하고
○북괴에 복귀한 후 간첩 辛光洙는 평양 동북리 초대소에 3개월간 수용, 정치사상학습 등 사상무장교육을 다시 받고 1982년 4월15일 金日成 70주년 생일축하 행사에 참석 「국기훈장1급」을 수여받은 후
○金正日로부터 직접
―일본인 신분을 이용하여 동남아 거점을 조속히 확보할 것
―일본인 납치사실이 노출되면 국제문제로 비화될 것이니 비밀을 철저히 고수할 것
―在日 下部網을 적극 활용하여 對南 침투 공작을 적극 전개할 것 등의 工作지령과 미화 1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아 1982년 5월3일 평양을 출발하여 복귀 루트의 逆順으로 일본에 네 번째 침투.
<편집자 注: 辛光洙가 체포되고 2년이 지난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범 金賢姬는 안기부에서 자신의 공작원 교육과정을 설명했다. 그녀는 1982년 3월 중순부터 약 40일간 교육장소인 평양 동북리 2층 3호 초대소에서 동북리 10호 초대소로 옮겨, 수용 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안기부는 2년 전 辛光洙의 진술조서에서 辛이 이 기간에 교육을 받은 곳이 바로 金賢姬가 쓰던 동북리 2층 3호실임을 확인하여 金賢姬가 북한 공작원임을 입증하는 여러 증거 중 하나로 활용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일본 간첩 辛光洙는 1982년 6월 초순 포섭한 李東哲을 일본 도쿄도 다이도구 우에노(東京都 台東區 上野) 소재 다카라 호텔로 소환, 3일간 투숙시키면서
―북괴 A-3수신요령, 암호사용방법, 暗書작성 및 보고방법 등 간첩교육을 시키고
―A-3통신제원, 암호사용 설명서, 암호조립 및 해독용 책자인 모리오가이(森鷗外) 저 「청년」, 暗書 작성용 화학약품, 소형 라디오 1대 등 통신장비를 준 후
―民團의 신임을 획득하여 民團 중앙본부 간부로 진출 후 民團 내부의 정보자료를 수집 보고할 것
―在南 친척, 친구 중 포섭 가능한 대상인물을 선정 보고할 것 등 지시를 하고
○은거지로 도쿄도 도시마구 가나메초(東京都 豊島區 要町)에서 간첩 方元正으로부터
―김포공항의 對空砲 진지 배치 상황
―현대조선소의 위치 및 도크 규모
―학생들의 對정부 시위방향
등 간첩 方이 남한에 위장침투하여 수집한 각종 정보를 보고받고, 3일간 A-2지령 수신방법, 암호전문 해독요령, 점자식 化學暗書法 등을 再교육.
○이어 간첩 辛光洙는 方元正에게
―일본인 하라타다아키로 변신하고 있으나 호적상 미혼으로 되어 있어 신변의 위험이 있으니 일본에 귀화한 여자를 물색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方元正이 경영하고 있는 도쿄도 도시마구 히가시 이케부쿠로(東京都 豊島區 東池袋) 소재 뉴코리안 주점을 在日 공작 거점으로 적극 이용토록 하는 한편
○1982년 7월부터 1983년 5월 하순 북괴로 복귀할 때까지
―도쿄도 시나가와구 고단다에키마에(東京都 品川區 五反田驛前)에 있는 한국클럽 미란의 회계원
―군마현 다카사키시 도이야마치(群馬縣 高崎市 問屋町) 소재 파칭코점인 三光會館 기계수리공
―군마현 다카사키시 미나미오오루이(群馬縣 高崎市 南大類)에 있는 파칭코점 빠루코의 기계수리공 등의 위장직업을 갖고 간첩활동.
(7) 4차 북괴 복귀 및 5차 침투 활동
○또한 간첩 辛光洙는 1983년 5월26일 북괴의 4차 복귀지령에 따라 하라타다아키 명의로 된 여권을 이용하여 나리타(成田) 공항을 출발, 스위스 취리히, 비엔나, 모스크바를 경유 북괴로 다시 복귀한 후 東北里 招待所에 5개월간 머물면서
―정치사상학습, 간첩통신 등에 관한 간첩교육을 다시 받고
―1983년 9월8일 평양시 모란봉 구역 비파동에 있는 「2ㆍ8 문화회관」에서 북괴정권 35돌 기념식(9ㆍ9절)에 참석하여 對南 공작 공로 「기념훈장」을 받음.
○이어 간첩 辛光洙는 북괴 조사부장 임창석으로부터
―1982년 2월 方元正이 공작검열차 도일한 북괴 조사부 부부장 姜海龍에게 포섭대상자로 보고한 예비역 장교 李成洙를 완전 포섭할 것
―李東哲을 민단 중앙간부로 속히 침투시킨 후 대동 복귀할 것
―동남아 지역에 새로운 공작거점을 구축할 것
―남한과 일본의 각종 정보를 수집 보고할 것 등의 공작지령과 미화 1만 달러의 공작금품을 받아 1983년 11월8일 평양을 출발하여 일본으로 5차 침투.
○그 후 간첩 辛光洙는 1983년 11월 중순 方元正을 만나 李成洙 포섭상황과 위장거점 뉴코리안의 운영실태 등 그간의 간첩활동 상황을 보고받고
―李成洙 포섭에 전력을 다하라
―내가 위장직업을 가져야 하니 주선하라는 등의 지시를 하고
―方의 주선으로 도시마구 히가시 이케부쿠로(豊島區 東池袋)로 은거지를 옮겼으며
○1983년 12월 초순 간첩 方元正의 자택에서
―간첩 方에게 『자금을 적극 지원하겠으니 李成洙를 완전 포섭하라』고 지시한 후
―李成洙에 대한 자금 지원계획과 李東哲의 民團 침투 및 入北준비 상황 등을 북괴에 보고하였으며(下略)
(8) 5차 북괴 복귀 및 6차 침투 활동
○간첩 辛光洙는 1984년 3월14일 북괴의 5차 복귀 지시에 따라 東京 나리타(成田) 공항을 출발, 홍콩, 北京을 경유하여 북괴로 복귀한 후 東北里 초대소에서 간첩교육을 또 다시 받고
―동년 3월 중순부터 하순경 在日 간첩 李東哲 입북기간 및 동년 8월 초순부터 하순간 方元正 입북기간 중 이들 在日 간첩들의 간첩밀봉 교육에 참여하여 공작지도책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한편
○북괴 조사부장 임창석으로부터
―40주년 8ㆍ15 행사를 앞두고 제3국에서 李成洙와 조사부장이 직접 접선할 수 있도록 조직할 것
―東南亞 거점을 구축하여 젊은 공작원 4~5명이 일본에 침투할 수 있도록 양성할 것 등의 공작지령과
―자살용 독약(캡슐이 터질시 기체화, 인근 인명살상)과 미화 2만 달러(1만 달러는 方元正 공작금) 등의 공작 금품을 받아 1984년 10월23일 평양을 출발하여 北京, 카라치, 방콕 등을 경유, 일본에 여섯번째로 침투.
○1984년 10월26일 간첩 辛光洙는 간첩 方元正과 만나 공작금 1만 달러를 전달하는 한편 李成洙와 북괴 조사부장과의 제3국 접선 주선을 再지시하고 李東哲과 만나 민단 침투를 독촉한 후 은거지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나카구 오우기초(神奈川縣 橫濱市 中區 扇町)에 있는 간이숙박소 「하야시(林)」 회관 519호로 이전 잠복하다가
○1984년 11월 초순 공작검열차 도일하여 긴자(銀座) 第一호텔 6층에 투숙 중이던 북괴 공작검열담당과장 김봉록(조사부 4과장)을 方元正과 함께 찾아가
―위장거점인 뉴코리안의 경영실태
―李成洙 포섭공작상황
―方元正의 여권 再발급 추진상황(기존 소지여권은 경유국 입국 스탬프 날인으로 발각될 것을 우려 再발급 받음)
―在日 간첩 李東哲의 활동상황 등을 보고하고
○검열담당과장 김봉록으로부터
―제3국에서 북괴 조사부장과 李成洙의 접촉이 차질 없이 실현되도록 조직할 것
―동남아 지역에 새로운 공작거점을 꾸릴 것 등의 공작지령을 재차 독촉받은 후
○동남아 거점 구축을 위한 자금지원 대상자를 물색하기 위하여
―1984년 11월 초순 조총련 상공인 한성익(55세)을 접촉하고, 북송 후 金策市 城津製鋼所(성진제강소)의 기사로 있는 그의 막내동생 한찬익(46세)의 사진과 편지를 제시하며 자금헌납 강요
○1985년 1월 하순에는 在日 간첩 方元正을 접선하여
―李成洙로부터 입수한 「팀스피리트 85」 훈련사항을 받아 북괴에 보고하고
―1985년 2월 초순 在日간첩 한성익을 접선, 일본 방위청, 외무성, 내각 조사실 등에서 非공개 발간한 ▲공동통신자료 ▲국제정세자료 ▲방위안테나 ▲해외 정치 경제정보 ▲해외논설 속보 등 정보자료를 입수하여 당시 요코하마항에 寄港中이던 만경봉호 정치부 선장을 통해 북괴에 보고.
<35편에 계속>
조갑제의 김대중 연구(34)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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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06, 1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