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는 학생들에게 이런 걸 가르친다 !

국보법 폐지, 연방제 통일, 駐韓美軍 철수 교육

『나는 폭탄을 지고
미군 속으로 돌진하리라』(全敎組 통일委, 「反戰평화 수업자료」)

『先軍정치는 곧 민중을 중시하는 것』

1980년대 主思派, 敎大·師大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상교육

金成昱 미래한국신문기자
1971년 서울 출생. 연세大 법학과·同 대학원 졸업. 제마 솔루션 기획실장. 미래한국연구(cafe.daum.net/ futurekorealab) 운영자.


『나는 (국보法을) 어길 수밖에 없을 거야』

全敎組(전교조) 부산지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APEC 바로알기 공동수업자료」가 물의를 빚고 있다. 그러나 全敎組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번에 문제가 된 APEC 관련 자료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全敎組 및 산하 위원회(통일위원회 등 12개)와 지부(서울지부 등 16개)가 교사학습용 혹은 초·중·고등학생 교육을 위해 작성한 이 자료들은 단순한 反美성향을 넘어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 및 북한 先軍(선군)정치 옹호의 내용까지 담고 있다.

지난해 국보법 철폐 성명을 발표했던 全敎組는 같은 해 11월 이를 지도하기 위한 「수업지도案」(중등용)을 만들었다.

이 자료는 「국가보안법은 항상 국민들의 목을 조르면서 인권을 짓밟고 평화를 위협해 왔습니다. 이 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하는 법」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각 조별 발표 후 정리 활동을 할 때 사용되는 例文(예문)은 다음과 같다.


연방제 통일 주장

「나는 그래도 어길 수밖에 없을 거야. 국가보안법이 계속 존재한다면 나는 통일과 평화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이 법을 끝까지 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들을 위한 「2004년 국가보안법 철폐 교양일꾼 자료집」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목적은 자주·민주·통일운동을 말살하고, 초보적인 인권과 민중의 생존권 요구마저 난도질하기 위한 것이며, 미국의 간섭과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국가보안법 수호세력 한나라당과 극우보수세력 폭로 심판하자. 한나라당을 비롯한 국가보안법 수호세력은 역대정권을 이어 오며 온갖 反민주, 反통일 범죄를 저질렀다>

全敎組의 국보법 폐지 주장은 대법원에서 利敵(이적)단체로 판정돼 있는 범민련·韓總聯(한총련)의 합법화 주장으로 이어진다. 全敎組는 이 같은 운동이 결국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통한 소위 「연방제통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통일운동의 또 다른 당면과제는 反통일수구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보안법, 범민련, 韓總聯, 이적규정 등 민족대단결을 가로막는 反통일적 법·제도를 폐지해 가는 것이다.

…범민련을 중심으로 한 민간통일운동 진영은 시급히 정치적으로 결집하여 6·15 공동선언의 기조 아래 외세와 수구 反통일 세력을 고립시키고 역사적인 6·15 선언을 사수해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 6·15 선언의 이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는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높은 단계의 연방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연방 중앙정부를 세우기 위해서는 남측 사회가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성격으로 轉變(전변)되어야 한다> (2004년 5월20일 全敎組 통일위원회, 「전국 통일교육 일꾼 교양자료집」)
<남북의 민중들이 민족적 단합을 이루면서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통일하는 구체적 방안은 연방제에 의한 통일이다. 전쟁을 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방식은 1국가 2정부의 연방제 외 다른 방안이 있을 수 없다> (2001년 5월 全敎組 참교육연구소 「참교육연구」)

駐韓美軍 철수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全敎組의 反美성향은 「反戰평화 수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들의 反戰평화 수업은 『美 제국주의가 이라크를 공격한 데 이어 북한마저 공격하려 하고 있으니 이를 막기 위해 민족공조에 입각한 전쟁반대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폭탄을 지고 미군 속으로 돌진하리라』

2003년 3월 全敎組가 「反戰평화 수업자료」라는 명칭으로 홈페이지에 올린 「이라크戰 전쟁 퀴즈」는 80점 아래로 받은 학생은 「겉은 한국인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인일 가능성이 많은 사람」으로 규정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全敎組 홈페이지에 올려있는 「反戰평화 수업자료」의 「50問 50答」에는 「이라크戰에서 퇴각하는 이라크 군인 6000명이 미군 탱크에 의해 생매장됐다」, 「걸프戰 후 1991년과 1994년 사이 이라크에서 암 환자가 700% 늘었다」, 「UN의 경제제재 결과 1999년 10월까지 이라크人 150만 명이 죽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反戰평화 수업자료」 중 상당수는 객관적 근거 대신 교사·학생의 수기를 인용해 감정을 부추기는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일부 수기를 인용해 보자.

<이 땅이 과연 뉘 땅인데 저희들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는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신무기를 실험할 새로운 사냥감이 필요하냐? 오냐 장난질하기만 해봐라. 나는 폭탄을 지고 미군 속으로 돌진하리라. 너희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싸움을 만들지 말라. 불장난하지 말라. 용서하지 않으리라. 나는 다이나마이트라도 내 몸에 감고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공격할 것이다> (2003년 1월 全敎組 통일위원회 「문답으로 알아보는 北核 위기 본질과 反戰평화운동」, Y中 L교사)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뺏으려고 전쟁을 하려 합니다. 또 미국의 폭탄 공장·미사일 공장이 잘 되어서 미국의 경제가 좋아지게 하려고 전쟁을 합니다. 미국을 위하여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죽어야만 하는지, 인간의 생명의 소중함을 무시하는 부시 대통령을 나는 증오합니다.

강대국이라 해서 계속 오만하게 나온다면 전 세계가 미국을 증오할 것입니다> (2003년 3월24일 김해중등支會의 反戰평화 수업자료집, K中 M학생 수기)

<北에 대한 核선제공격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北核개발 의혹을 일으킨 후 말로는 평화적 해결을 내세우면서도 대화를 기피하고 두 개의 전쟁 운운하는 등 사실상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한 민중들이 이룬 평화와 통일을 향한 소중한 진정을 가로막는 행위로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입니다. 참으로 미국은 남의 나라 민중의 생명과 행복은 안중에도 없는 제국주의적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출처 上同, K中 O학생 수기)


『韓美공조 깨부수고 자주적 통일하자』

全敎組의 反美성향은 감정적 수준이 아닌 이데올로기적 「反美주의」다. 全敎組가 駐韓美軍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미군기지 주변의 환경오염, 주한미군 범죄, SOFA의 불평등성, 戰時작전통제권 등 표면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 같은 이데올로기적 「反美주의」에서 도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植民(식민)지배 상태에 있으므로 민족공조를 통해 한국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논리이다.

全敎組 서울지부는 「6·15 공동선언실천을 위한 중반기 사업계획(5~8월)」에서 『남과 북이 자주적 평화통일에 합의했던 「6·15 공동선언」을 실현함으로써 이 땅에서 외세의 지배구조를 해체시키고 한반도 자주통일 원년을 맞이하고자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을 담고 있는 자료들은 그 밖에 더 있다.

<남과 북이 협력하여 함께 살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미국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미국의 민족분열정책 對北강경정책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의 불행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같은 민족 입장에서 북과 함께 힘을 합쳐 미국을 밀어내고자 한다면, 北美관계는 돌파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조국광복 60년 6·15 공동선언 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는 全민족의 역량을 결집해서 미국에게 일격을 가하는 해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2005. 1. 30 全敎組 통일위원회, 「全敎組 통일일꾼 연수 자료집」)

<미국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 체제를 유지·공고화하기 위하여 韓美군사동맹체제 강화에 가장 중점을 두고 여러 가지 압박 및 분열정책을 펼 것이다.… 2005년은 자주통일원년의 해, 주한미군철군의 해이다. …국가보안법을 완전 폐지시키고 親美수구세력들을 척결하여 민주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 나가야 한다.

민족자주 없이 조국통일은 이뤄질 수 없다는 기본원칙을 고수하면서 6·15 기본정신에 따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공조에 힘을 넣어 외세공조·韓美공조를 깨부수고 외세의 간섭 없이 민족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는 데 모든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2005년 全敎組 통일위원회 사업계획)

<軍 작전지휘권 등 군사주권의 유린이 親美 군부독재를 양산하고 미국의 新식민지적 지배를 유지시키는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 SOFA 협정으로 이 땅의 미군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식민지배자의 권한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이 땅은 깃발만 꽂으면 즉시 미군의 땅이 되었다.…

결국 朴正熙 정권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기본권을 박탈하고 오직 미국과 매판 세력의 독재를 위해 통치하다 그것으로 인해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는 민족의 절대 절명의 과제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의 간섭과 지배로부터 벗어나고 미군을 이 땅에서 철수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2001년 5월 全敎組 참교육연구소 「참교육연구」)


북한의 先軍정치 찬양 자료 게재

全敎組는 올해 6·15 공동선언 5돌을 기념해 경기·인천·충남·경남·경북에서 전국청소년통일캠프를 개최했다. 참가대상은 캠프별로 30~80명씩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全敎組의 「통일캠프 교사자료집」은 이 캠프의 목적이 『미군기지가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며 나아가 우리 민중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는지를 알려 주는 것』 이라고 밝히고 있다.

같은 자료에 나오는 「평화를 사랑하는 어린이」의 프로그램은 6·25 전쟁 당시 노근리 사건, 매향리 미군기지 문제, 효순이·미선이 사건, 이라크에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살해된 김선일 관련 동영상을 보여 준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했어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례가 있으면 말해 봅시다』, 『평화와 통일이 오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미군이 판을 친다』, 『효순이·미선이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는 등의 대답을 유도하고 있다.

全敎組의 反美주의는 자연스럽게 親北정서로 이어지고 있다.

<이북이 3대혁명과 先軍정치노선을 통하여 추구하는 가치는 한마디로 反帝자주의 가치, 사회주의 옹호 발전이라는 가치, 조국통일의 가치일 것이다. 이러한 이북의 가치지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북의 물리력·사상력은 전쟁 당사자인 美帝의 강대한 물리력에 맞서 「전쟁억지력 구축을 통한 정전상태 속의 평화」를 유지해 왔고…> (2005년 全敎組 서울지부 통일위원회 사업계획(안))

<先軍정치는 혁명군대와 민중의 근본이익과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혁명군대를 중시한다는 것이 곧 민중을 중시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先軍정치는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기둥으로 하여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이끌어나가는 정치를 말한다….
이처럼 사상강국·정치강국을 바탕으로 군사강국을 건설하며 민족 전체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켜냈던 先軍정치로 종국적으로는 경제강국까지 건설하여 강성대국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北의 노선인 것이다> (2004년 5월20일 全敎組 통일위원회, 「전국 통일교육 일꾼 교양자료집」 중 한국민권정치연구소 김서원 연구원의 「조미투쟁사」)

같은 자료는 金日成 사망과 향후 체제존속에 대한 전망에서 『金日成 주석의 서거에 대해 북한 동포들은 자기 아버지가 죽은 것보다 더 슬퍼하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슬픔에 빠졌다』며 『아직도 金日成 주석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 있고, 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정책수행 및 지도에 대한 지지와 동의 및 집단주의 정신이 일상화되어 있는 北의 체제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섣부른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全敎組가 보는 4·3 사건과 여순반란사건

全敎組의 親北·反美的 시각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학습 자료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全敎組가 지난 4월 작성한 4·3 사건 공동수업案은 『4·3을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몰아가지 않도록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강조하기보다는 解寃(해원)과 화해, 상생의 가치를 가르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실제 이 자료는 4·3 사건의 본질을 가진 채 『제주도민의 자주적 통일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시도를 李承晩 정권이 反共국가 확립이라는 목적 아래 초토화 작전을 벌여 집단학살을 했다』는 쪽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 자료의 「선생님이 들려주는 제주 역사 이야기」 중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경찰은 물론 미국과 李承晩을 지지하는 우익단체들은 제주도민에게 몹쓸 짓을 자주 저질러 도민들의 원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도민들의 마음은 산으로 피한 사람들을 지지하게 됩니다.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5월10일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집니다.

통일정부를 원하는 제주도민들을 남로당을 중심으로 이를 저지하고 그동안 못살게 굴었던 경찰에 보복하기 위해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경찰지서를 제주도 전역에서 동시에 습격합니다.
그때가 1948년 4월3일 새벽입니다. 그래서 이를 4·3이라고 합니다.…李承晩 정부는 도민들을 향해 탄압하는데 차마 글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집니다.…빨갱이사냥이라는 이름하에 제주 땅 전체를 이 잡듯 불태우고 굶겨 죽이고 죽여 없애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자료는 4·3 사건을 대한민국 정부가 대다수 제주도민을 부당하게 탄압한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4·3 사건은 1948년 4월3일 南勞黨 제주도위원회 군사부장 김달삼이 지휘하는 350여 명의 무장폭도들이 12개 경찰지서를 습격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4·3 사건 주동자 김달삼은 같은 해 8월25일 越北(월북)하여 金日成에게 4·3 사건 戰果(전과)를 보고한 뒤 훈장을 수여받았다. 6·25 발발 후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남침했다가 戰死했다. 김달삼은 월북 후 각종 연설에서 『스탈린 원수 만세』를 외쳤고, 死後에는 「남조선혁명가」로서 평양근교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4·3 사건의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여수·순천반란사건에 대해서도 全敎組는 기존의 평가를 뒤집는다. 이 사건에 대해 全敎組 전남지부가 지난 9월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여순사건 공동수업 자료집」은 『여순사건이 좌익세력이 대한민국 전복을 위해 일으킨 반란이라는 기존 왜곡을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자료는 여순사건에 대해 『反共국가의 기틀을 수립한 李承晩 정권은 공산주의자들을 빨갱이라 하여 全 국민들의 敵으로 규정짓고, 처단하고 척결해야 하는 대상으로 뇌리에 심는 데 성공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주사파, 師大·敎大 학생들에게 사상교육

자료는 또 『반란군의 진압과정에서 협력자 색출을 이유로 운동장에 (여수) 전 시민을 모아놓고 집에는 불을 질러 시가지는 초토화되었다.…반란이 진압되자 민간인 협력자를 색출하여 학살하였다.… 민간인 학살은 진압초기 軍과 경찰의 수뇌부에 의해 자의적으로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全敎組의 親北·反美 성향의 교육 자료의 배경에는 물론 親北·反美 성향 교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1980년대 운동권 활동을 했던 이들은 이러한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키워졌다고 증언한다.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을 지낸 主思派 운동권 출신인 李東湖(이동호) 북한민주화포럼 간사의 말이다.

『全大協과 韓總聯은 학생운동에서 노동·농민·빈민운동 등 사회활동으로 전환하는 이들을 교육시키는 「投身(투신)팀」을 운영했다.

당시 主思派 운동권은 敎師로 갈 敎大와 師大 출신들을 모아 사상교육을 시키며 조직적으로 左派(좌파)교사를 양성했다. 「투신팀」은 전대협과 韓總聯의 공개조직이 아닌 「언더(지하조직)」로 활동해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근 나타나는 全敎組 이념성향의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주사파의 이념적 세례를 받은 교사들은 1999년 全敎組 합법화 이후 전면에 나서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全敎組 비판서적인 「집으로 가는 길」을 펴 낸 鄭在鶴(정재학·51) 전남 영암 삼호서중 교사는 『全敎組는 1999년 합법화 이후 운동권 출신 해직교사들이 대거 복직되면서 親北·反美 성향을 노골적으로 띠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호남지역의 경우, 解職(해직) 당했거나 未발령됐다가 金大中 정권 당시 復職(복직)됐던 韓總聯(남총련 호남조직) 운동권 출신 교사들이 全敎組를 이끌고 있다』며 『全敎組는 극단적 이념성향에도 문제가 있지만, 아이들에게 이를 가르치며 확대 再생산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李銖日 위원장 南民戰사건으로10년 복역

李銖日(이수일) 全敎組 위원장은 운동권 출신 이념형 교사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1978년 교사생활을 시작한 李씨는 이듬해인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南民戰) 사건으로 구속돼 10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엔 全敎組 조사통계국장·副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99년 복직되어 현재 서울 중화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南民戰은 주범 安龍雄(안용웅) 등이 越北해 金日成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했던 共産혁명조직이었다. 南民戰은 공산혁명이 이뤄지면 북한군에 지원 요청할 것을 모의했었다. 이들은 공산혁명 성공時 중앙청에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戰線旗(전선기)」를 준비했는데, 이 깃발은 1974년 人革黨(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도예종 등 8명이 입었던 옷으로 만든 것이었다.

좌익사상범에서 전향한 소설가 김정익氏는 교도소內 南民戰 연루자들과 겪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1989년 「囚人번호 3179」라는 책을 쓴 바 있다. 이 책에서 金씨는 『南民戰 조직원들은 교도관 연락책까지 동원, 교도소 내외에 비밀지령을 주고받으며 조직을 강화시킬 정도로 치밀했다』며 南民戰이 교도소內에서 조직을 강화시켜 1980년대 국내 좌익세력의 토대가 됐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운동권 관계자들도 南民戰 잔당들은 主思派를 비롯한 1980년대 좌익세력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지적한다. 한국을 공산화하기 위해서는 「反美」라는 反제국주의 투쟁이 중요하다는 南民戰의 투쟁노선은 1980년대 좌익세력에 그대로 수용됐었다.


全敎組 교육현장, 좌경화 惡순환 시작돼

全敎組의 親北·反美 성향 교육자료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초등학교 학생을 자녀로 둔 崔恩淑(최은숙·33)씨는 『「참교육」을 명분으로 출범한 全敎組의 이념과 노선 자체가 완전히 바뀐 것 같다』며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대한민국의 교원단체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崔씨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가 두려워진다』고 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康東洙(강동수·42)씨는 『욕설이 난무하는 反APEC 자료를 보면 아이들을 파렴치범을 만드는가 싶었는데, 연방제 통일이니 하는 내용들을 보니 이젠 反국가사범을 만들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학교가 좌경화된다면 갈수록 사회혼란은 더 심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鄭在鶴 교사는 『자유민주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全敎組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을 중단시켜 학생들과 全敎組를 단절시켜야 한다. 공적자금 지원이 계속되면서 조합원 수가 줄고 있음에도 全敎組의 영향력이 줄지 않고 있다』고 했다.

『全敎組의 이념성향은 공공연히 드러나 있는 상황입니다. 全敎組는 아이들을 좌경화시키고 그 아이들은 대학에서 韓總聯으로, 다시 사회에서 민노총으로 키워집니다. 이처럼 좌경화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곳은 全敎組의 학습현장이지만, 그 뿌리가 되는 것은 정권입니다. 정권이 억대의 공적자금을 줘 가며 全敎組를 계속 키워 가는 한 좌경화의 악순환은 끊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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