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그게 사견이라고 해도, 차기 서울 시장, 더 나아가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꼽히는 강금실의 입에서 나온 얘기이기에, 그 자체로서 무게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소위 '진보'에 속한다고 하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이 의미 깊었다. '그녀가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석해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한 마디 해 준다면...'하는 기대마저 생겼다.
아마 북한인권국제대회 주최측이 강금실에게 초청장을 보냈던 것도 '인권대사'라는 직함도 직함이지만, 그녀의 최근 발언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대한민국 외교부의 '인권대사' 강금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남편을 구하기 위해 현직 판사 신분으로 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던 그녀는, 북한땅에서 최소한의 인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죽어가는 동포들을 끝내 외면했다.
민변 회원으로 노무현 등과 어울리며 소리 높여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했던 그녀는, 북한 민주화 요구에 대해서는 귀를 막았다.
대한민국 외교부의 '인권대사'로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로 달려가, 그곳의 소외받는 여성들을 위해서는 눈물을 흘렸던 그녀는, 북녘땅 동포들을 위해 서울 시내에서 열리는 북한인권국제대회장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기야 당초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섭섭해 한다고 한들 그것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는 수준의 실망일 뿐이다.
문득 당차고, 자신감 있고, 재기가 넘치는, 그래서 '강효리'라는 애칭까지 갖고 있는 강금실의 얼굴 위로 몇년 전 중국 북경에서 만났던 탈북여성의 얼굴이 겹쳐진다.
스물 여섯살 그녀는 지치고 겁에 질려 있었다. 촛점을 잃은 그녀의 눈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썩은 동태눈깔' 그 자체였다.
아마도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그래도 '안 생겼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 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단지 휴전선 이북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녀는 주린 배를 움켜 쥐고 압록강을 넘었고, 그녀의 반쪽 조국에서 자기를 받아주기만을 소원하면서 6년 넘게 중국땅을 떠돌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그동안 여자로서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험한 꼴도 많이 당했으리라...
안타깝게도 내가 그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여성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것, 수천 명의 북한여성들이 중국 땅에서 몸을 팔며 질긴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마 강금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먹을 것을 찾아 중국땅으로 도망쳤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으로 끌려와 뱃속의 아기가 유산될때까지 구둣발로, 몽둥이로 얻어맞는 산모들의 이야기를 그녀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금실은 끝내 그들을 외면했다. 짱꼴라들에게 몸을 더럽히며 서럽게 울었을 북한 처녀들, 젖을 달라고 우는 아기를 위해 아무리 가슴을 주물러도 젖이 나오지 않아 목놓아 울며 안타까와 했을 북한의 어머니들, 보위부원들의 모진 매에 자기 뱃속에서 뛰놀던 아기가 숨을 멈추었을 때 통곡했을 북한의 산모들을 강금실은 외면했다.
동아일보 기사를 읽으며 방글라데시에서,스리랑카에서, 고통받고 학대받는 여성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강금실의 모습을 그렸던 독자들은 아마도 북한 여성들을 매몰차게 외면하는 강금실에게서 '위선'이라는 두 글자를 머리에 떠올렸을 것이다.
아직 50이 되지 않은 화사한 얼굴, 화사한 옷차림의 강금실보다는 , 이제 우리 나이로 70살 먹은 할머니인 이인호 교수(북한인권국제대회 공동대회장)가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어린 나이에 사시(司試) 패스해서 판사 지내고,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이 되어 그 잘난 전국의 검사들을 호령하던 강금실보다, 운동권 총장과 운동권 학생들의 압력에 맞서면서 교내외에서 북한인권사진전을 벌이는 나이 어린 여대생들이 훨씬 더 당당하게 느껴진다.
소위 '진보'라고 하는 집단의 논리에 매몰되어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강금실이 '이념의 노예'라면, 자유를 찾아 압록강을 건넜고, 그 때문에 온갖 고난을 감수하는 탈북여성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이다.
아마도 좌파 정권이 계속되는 한, 강금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알~ 나갈 것이다. 서울시장이 될 수도 있겠고, 어쩌면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법조계에서 끗발 날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은 후, 그녀가 믿는 야훼 하나님 앞에 서게 됐을 때, 그녀는 자기가 '인권대사'로 있으면서 북한동포들의 인권을 외면했던 사실에 대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는 북한의 처녀들과 어머니들을 외면했던 데 대해 변명해야 할 것이다.
그때 그녀는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무슨 말로 변명을 할까?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신부들처럼 '모든 국민들은 자기들의 사회체제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김정일 독재정권을 합리화할까? 아니면 열우당 국회의원들을 흉내내 '북한을 자극했다가는 전쟁이라도 일어날까봐 그랬다'고 할까?
나는 특정한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져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를 외면하도록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는 것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들을 매몰차게 걷어차는 자에게 복을 주는 신(神)은 없다는 것을...
'강효리' 강금실씨!
오늘 김정일 치하에서 억압받고, 죽어가는 북한동포들을 외면한 것 때문에 당신은 언젠가 벌받을 겁니다!
이승에서가 아니면 저승에서라도 반드시...
물론 강금실씨 당신이 벌을 받아 가는 그곳에는(그곳이 이승이건 저승이건) 온갖 궤변으로 북한동포들의 인권을 외면하고, 김정일과 야합했던 천주교인권위원회의 그 신부들도 함께 있을 테니, 외롭진 않을 겁니다.
* 이 글은 우익정치토론사이트 프리존www.freezone2005.com에서 전재한 것이다.
오늘 크리스마스를 맞아 영어 성경과 우리 말 성경을 펴놓고 대조해가면서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읽고 있다. 마태복음이 전하는 탄생 줄거리는 이러하다. 필자의 해설을 보태었다.
<마리아라는 여인이 요셉과 定婚(정혼)했다. 定婚이란 풍습은 당시 유태인들 사이에서 거의 결혼과 같은 비중이었다. 定婚 기간에는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없으나 아내와 남편으로 불렸고, 定婚을 파기하려면 이혼이란 절차를 거쳐야 했다. 마리아와 요셉이 定婚하고 동거하기 전에 聖靈(성령)으로 잉태한 것이 나타났다. 성령은 영어성경에선는 Holy Spirit으로 표기되었다. 이것은 신약적 표현이고 舊約(구약)에서는 Spirit of God이나 Spirit of Lord로 표기된다. 聖父(하나님)-聖子(예수)-聖靈(성령)이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으므로 하나님이 육신의 힘을 빌어 인간 예수의 모습으로 탄생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요셉은 아내될 사람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의로운 사람으로서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破婚하려고 생각했다. '의로운'이란 말은 영어성경에선 'righteous', 즉 '정의로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유태인에게 이 말의 뜻은 '준법정신이 강한'이란 뜻이다.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정의롭다'는 뜻이니 놀라운 법치정신이다. 준법정신이 강한 요셉이었으므로 그는 일을 조용하게 합법적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즉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여 파혼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가 복수심이나 배신감에 휩쓸렸다면 아내 될 사람의 부정을 폭로하여 마리아를 돌로 쳐죽이게 할 수도 있었다.
요셉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꿈이 나타나 말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맞아들이기를 두려워말라. 그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자이심이니라. 이 모든 일이 이뤄진 것은 하나님께서 先知者를 시켜 미리 하신 예언을 이루려 하심이다. 그 예언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뉴엘이라 하리라'(임마뉴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使者의 분부대로 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뒤에도 아기를 낳을 때까지는 동침하지 않았다>
예수가 태어나는 장면은 누가복음 2장의 기록이 생생하다.
<당시는 로마 아우구스 황제 시절이다. 시저의 후계자로서 황제가 된 그는 全로마제국에 명령하여 일제히 호적을 정비하도록 했다. 이 명령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고향에 가서 등록을 하게 되었다. 요셉도 마리아를 데리고 갈리리 지방의 나사렛을 떠나 다윗 家門의 동네인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여기서 아내의 출산을 맞게 되었다. 당시 여관은 사람들로 차 있어 빈방이 없었다. 마리아는 갖태어난 아기 예수를 포대기에 싸서 말 구유에 눞였다>
예수 아기 탄생을 이 부부 이외에 맨 먼저 안 것은 이 시점에 들에 나가 양떼를 지키던 목동들이었다. 천사가 밤중에 이들에게 나타나 말한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들에게만 전하노라. 오늘 다위의 동네에서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主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인 채 구유에 누운 아기를 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