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몇 명을 죽였습니까"

며칠 전 明知대학교에서 열렸던 朴正熙 평가 관련 국제학술대회에서 세계적 인구학자이기도 한 趙利濟 박사(하와이 동서문제연구소 전 총장)가 朴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발표를 했다. 한 질문자가 朴대통령의 인권탄압을 거론하지 趙박사는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朴대통령을 독재자 독재자하는데, 스탈린 독재로 약20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모택동의 독재로 얼마나 죽었는가, 인구학적으로 조사하니 약3500만 명입니다. 그렇다면 朴대통령이 몇명이나 죽였습니까'

朴대통령이 100만 명을 죽였는가, 10만 명을 죽였는가, 1만 명을 죽였는가, 1000명을 죽였는가, 100명을 죽였는가, 10명을 죽였는가, 한 명이라도 죽였는가? 朴대통령은 적어도 정치적 암살을 명령한 적이 없다. 그의 시대에 좌익과 간첩들이 재판을 받고 사형된 것을 가지고 朴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물론 오판에 의해 억울하게 사형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입증은 쉽지 않을 것이다. 朴대통령의 경우 단 한 명의 목숨도 그의 직접 명령으로 해서 억울하게 죽었다는 확증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형욱 실종의 경우 朴대통령이 암살을 명령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고 오히려 김재규의 지시에 의한 암살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대중 납치도 이후락의 명령에 의한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반면 김일성은 6.25 남침으로 300만 명을 죽였고, 그의 아들은 대기근 사태를 불러 300만 명을 사실상 굶겨죽였다. 朴대통령식 독재와 김일성식, 모택동식, 스탈린식 독재는 질이 다르다. 이 天地차이를 독재란 단어로 같은 값을 매기려드는 무뇌아들과 사이비 좌파들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나? 그가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서 대우건설의 전 사장을 매도하는 바람에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南 사장이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것은 형법상의 살인은 아니지만 언론을 이용한 인격살인이자 선동살인이 아니었던가. 그런 노무현 대통령은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공언했다.
부시 대통령이 스탈린을 존경한다고 공언했다면 그는 다음날 하야해야 한다. 이스라엘 샤론 수상이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말했다면 그는 일주일 안에 암살당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이 풍신수길을 존경하고 이등박문을 흠모한다고 말했다가는 가족과 함께 보따리를 싸고 출국해야 목숨을 건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막말을 해도 한국의 언론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두고두고 비판받을 일이다. 한국의 좌파들은 대체로 모택동을 존경하고 그가 벌인 문화대혁명이란 광란학살극을 높게 평가한다.
盧대통령도 이런 좌파적 모택동觀을 갖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런 좌파들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계급투쟁설과 유물사관은 인간의 정신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좌익은 계급의 적을 미꾸라지보다도 못한 존재로 보도록 훈련받는다. 사람이 추어탕을 먹으면서도 미꾸라지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는 이유는 미꾸라지의 정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듯 공산주의자들은 소위 계급적 敵의 정신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물건으로 본다. 그러니 모택동이 계급의 적을 수천만 죽인 것에 대해서 동정은커녕 존경을 바치고 박정희가 한 사람도 죽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증오를 보낸다.
盧대통령이 피와 눈물이 흐르는 인간이라면 대우 南사장 가족한테 사과했어야 했다. 그런 정보는 아직 없다. 그런 사람이니까 모택동을 존경할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가 10만 명만 죽였어도 盧대통령은 '나는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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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3년 7월15일字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을 옮긴 것이다.

이동하 (서울시립대 교수, 국문학)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얼마 전 중국 방문 중 존경하는 중국 정치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등소평(鄧小平)과 더불어 모택동을 들었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연전에 작고한 재중(在中) 조선족 작가 김학철(金學鐵)이 한국에서 출판한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가 떠올랐다. 이 작품은 모택동(毛澤東)이 대약진 운동이니 인민공사니 하는 것들을 밀어붙이면서 중국 전체를 뒤흔들어 놓고 있던 1950년대 후반기에 얼마나 혹독하게 진실이 억압당하였으며 얼마나 철저하게 인권이 유린되었던가를 폭로·고발하면서,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꺾이지 않는 자유혼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켜 보이고 있다.

김학철은 이런 작품을 썼다가는 어떤 고난을 겪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모택동 1인 독재의 해악을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분노와 사명감 때문에 기어이 이 작품을 썼다.

하지만 작품을 다 쓰고 난 후에도 발표할 길이 없어 그 원고를 그대로 자신의 집에 보관해 둔 채, 일단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1960년대에 훨씬 더 잔인한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쳤다.

그 광풍의 와중에서 김학철의 집도 가택수색을 당했고, 홍위병들에게 소설의 원고가 발각되었다. 원고는 물론 압수당했고, 김학철 자신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자기 변호를 못하게 목을 졸라 쓰러뜨리고 아갈잡이를 당한’ 처참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10년 징역을 살았다. 그가 출옥한 것은 모택동이 죽은 다음이었다.

문제의 소설 원고는 그가 출옥한 지 다시 10년이나 더 지난 후에 ‘발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본인에게 되돌려졌다. 김학철은 원고를 되돌려받은 지 9년이 지난 시점에 이 작품을 한국에서 출판하였다.

이러한 사연을 안고 있는 '20세기의 신화'라는 작품을 실제로 읽어보면 저 악명 높은 문화대혁명의 시대가 열리기 오래전부터 모택동의 중국 통치는 엄청나게 많은 비극을 빚어낸 것이었음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친 기간 동안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모택동 통치 시대의 이러한 실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 대신 모택동이 장개석(蔣介石)에게 맞서서 국공투쟁(國共鬪爭)을 전개하던 시기를 ‘혁명투쟁’이라는 이름 아래 다분히 낭만적으로 서술하는 데 역점을 둔 책들이 대단한 호응을 받으며 널리 읽혔다.

그런 책들을 보면 중국 대륙을 완전히 장악한 후의 모택동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거나, 언급을 하더라도 사실과 거리가 있는 미화된 내용을 몇 마디 기술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책들이 대단한 호응을 받으며 널리 읽힌 결과, 그 시대에 지적인 토대를 쌓은 세대의 모택동 인식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생기게 되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문제점은 단순히 모택동이라는 한 개인과 관련된 내용으로만 그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 점은 그러한 종류의 책들에서 모택동에 대한 기술이 왜곡된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을 쓴 사람들은 ‘혁명’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추상적·교조적 이념의 가치에 대한 환상을 과도하게 지닌 반면, 살아 있는 구체적 인간의 진실이나 현실세계를 실제로 움직여 나가는 원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고 또 존중하고자 하는 자세를 결여하고 있었다.

이번에 보도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볼 때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정신적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던 시대의 문제점이 과거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21세기 초에 이르기까지도 우리의 현실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립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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