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좋아하는 문화대혁명의 실상

-모택동이 일으킨 내란의 인간말살 장면들
원래 제목 : 모택동과 노무현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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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수많은 탄핵대회에 끌려나가야 했다. 그는 '위대한 영도자 마오 주석 만세!'라는 말을 쓰기를 거부하였다. '만세'란 황제들에게나 쓰던 말이므로 공산당인 마오 주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로 인해 그는 미친 듯한 고함 소리와 따귀 세례를 받았다. …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소! 나는 절하지 않겠소!' …
흥분한 군중이 그에게 '반문화혁명'이라고 소리치자 그는 화를 내며 외쳤다.
'이것이 무슨 문화혁명이오? '문화'가 어디 있소? 잔인함뿐이오!'
그를 때리던 남자들이 으르렁거렸다.
'문화혁명은 마오 주석이 이끌고 있다! 네가 감히 반대하느냐?'
아버지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마오 주석이 이끄는 것일지라도 나는 거기에 반대한다!'
모두 조용해졌다. '마오 주석에 반대하는 것'은 곧바로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죄였다. …
그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자 다시 그를 때리기 시작하면서 불경스러운 말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
중국 전체가 하나의 감옥이었다. 모든 집과 거리가 국민들 스스로에 의해 감시당했다. 그 광활한 땅 어디에도 숨을 곳이라곤 없었다. ...폭력적인 거리 탄핵대회와 악의에 찬 대자보와 구호뿐이었다. 사람들은 험상궂거나 아니면 억눌린 얼굴로 유령처럼 걸어다녔다. ……'

문화혁명과 같은 대격동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을 10대의 저자는 통찰하였다. 인간다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자신의 이해에 따라 과거의 상급자였던 아버지에게 대하는 여러 군상들이 그 두 모습으로 확연히 대별되는 것을 그는 느꼈다.
중국의 모든 정치투쟁이 그런 것처럼 문화혁명도 개인적인 원한 관계가 함께 얽힌 채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권력 체제 구축을 의도하는 호전적인 지도자의 모습은 은폐된 채, 군중들에게는 '난폭하게 행동하면서 악한 본능을 충족시키도록 허락된' 어둠의 시간들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시간을 지나면서 저자의 아버지에게 정신이상이 찾아왔다. 그가 온 몸으로 헌신하였던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와 잦아들지 않는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예리한 지성은 분열되고 말았다.
정신이상이 된 아버지는 밤이면 집에서 잠을 자고 낮이면 조반파에 이끌려 탄핵대회에 나갔다. 어느 날 저자는 아버지가 행진하는 트럭 위에 잡혀 있는 것을 보았다. 목을 파고드는 철사줄에 간판을 매달고, 양팔은 등뒤로 고통스럽게 묶인 채로였다. '미친 장씨의 숨겨진 이야기'라는 대자보가 이틀마다 한 번씩 새로 나붙었다. 40여일의 정신분열증 치료를 받고 정상으로 돌아오자 즉시 반대파인 팅부부라는 사람들에게 넘겨졌다. 그들의 사주를 받은 폭력배들은 저자의 아버지를 삭발시킨 후 후려패고 성기를 걷어찼다. 입과 코에 물을 붓고 배를 짓밟았다. 물과 피와 배설물이 밀려나왔다. 병원들은 탄핵대회와 파벌 싸움에서 부상당한 사람들로 들끓었다.
조용한 시간에 그는 '나는 내 영혼을 팔 수 없소.'라고 아내에게 말하였다.
저자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1백여 차례의 탄핵대회를 겪어야 했다. 몇시간씩 마당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있거나 겨울에는 고꾸라질 때까지 찬물 속에 꿇어앉아 있어야 했다. 몸체는 기둥에 묶이고 좁고 기다란 의자에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있으면 발꿈치 밑에 벽돌을 밀어넣었다. 무릎이나 좌골을 부러뜨리고자 하는 의도였다. 저자와 저자의 여섯 살 바기 동생이 애처롭게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도 간수는 아이들을 보여주지 않았고, 오히려 더 잘 들리도록 문만을 열어 두었다. 그녀는 남편을 비판하는 데 동의하고 국민당 스파이임을 자인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어머니는 거절했고, 자녀들의 목소리에 응답할 수 없었다.
중국의 전역에서, 소수의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자녀가 부모를 고발하고 성을 바꾸고, 가정은 깨어지고, 이웃간의 유대도 깨어졌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수십만 명을 정신분열과 자살과 죽음으로 이끌어간 문화혁명의 가장 큰 공포는 온 국민이 가담한 일이었다. 아이들까지 포함해 거의 모두가 잔인한 탄핵대회에 참석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구타했다. 게다가 희생자들이 때로는 가해자가 되었고, 그 반대도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열여섯 번째 생일날 밤 총알이 들어와 박히는 방에서 잠을 자다가 생각하였다. 그 역시 마오를 신처럼 받드는 분위기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고, 마오에 열광하였고 비록 난폭하지 않았지만 홍위병이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총소리와 조반들이 스피커에 대고 떠들어대는 소름끼치는 욕설을 듣고 있던 나는 하나의 전환점에 도달했다. … 나는 항상 지상천국인 사회주의 중국에서 살고 있으며 자본주의 세계는 지옥이라는 말을 들어 왔고 그것을 믿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곳이 천국이라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 처음으로 나는 내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정권을 증오하고 다른 선택을 갈망하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되는 저자의 기술이다.
마오의 방법은 미움이었다. 적대계급을 만들어 감옥으로 보내지 않는다. '적'을 만들고, 그를 사람들 속에 두고, 언제나 보면서 미워하게 하는 것이었다.
계급투쟁도 그러한 기조 위에 있는 것이다. 열여섯 살의 소녀홍위병은 스스로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움의 방법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검증되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저자의 아버지 장쇼유의 말년은 매일 밤 탄핵대회가 열리는 수용소에서의 강제노동이었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수개월을 머무르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나 자신에게 죽음이 두려운지 물어 보곤 한다. 무섭지 않아. 지금 같으면 사는 것이 더 괴로워. … 나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세상은 부정으로 가득했었지. 내가 공산당에 들어간 것은 공정한 세상을 위해서였어. 나는 오랫동안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인민들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냐? …….' 그리고 오랜 침묵 끝에 아버지는 말했다.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더 이상 공산당을 믿지 마라.'
그의 심정 속에서 미움의 방법은 종언을 고하였다. 그는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돌아오긴 했지만, 결국 복권이 되지 않은 채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그의 사후 저자의 어머니는 자녀들이 타도대상인 검정신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마오의 사망과 덩샤오핑의 등장으로 중국의 많은 것들이 회복되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되고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첫 번째 배척의 대상이었다. 대부분의 참된 종교들은 사랑과 자비를 설파하는 반면, 공산주의 사상은 미움을 기조로 한 끊임없는 투쟁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본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을 선택해야 할는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제는 인간의 선하고 존엄한 본성에 근거한 관점에서 인간역사의 어둠과 혼란을 분별해 내어야 할 시점에 확실히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스리실 천년왕국의 소망과 더불어, 지난 100년간 결코 우리 민족보다 못하지 않게 고난받았던 중국의 인민들을 생각하면서, 비록 그리스도교 서적은 아닐지라도, 우는 자와 함께 울라던 주님의 말씀대로 우는 자의 심정으로 어설프나마 책 소개를 하게 되었다.
문화혁명은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제11차 중앙위원회 제6회 전체회의에서 '문화대혁명은 지도자의 잘못된 인식에서 시작되어 반혁명 집단이 권력을 탈취해 당·국가·소수 민족에서 커다란 재난을 가져다 준 내란'으로 규정된 바 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교회에 자유가 주어졌고, 교회들은 일제히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고 교회의 기둥을 붙잡고 흐느끼며, 그 모든 기간 동안 주님께서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하셨다고 울먹였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왜 어둠은 그토록 처절하였을까? 한줄기 생명의 빛이 더욱 성성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까?
시간에 가치가 있고 양질의 시간을 우리가 창조해야 한다면 순간순간이 영원할 만큼 감동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문화혁명에는 문화가 없다'라는 정직한 말, '나는 내 영혼을 팔지 않겠소!'라는 진실의 말은 시간의 어둠을 뚫고 살아난다. 두려움에 가득 차 있던 군중들도 사실은 마음속으로는 그 말에 동감하였을 것이다. 아니 그때에 그렇지 못하였다면 지금에라도 그 시간들은 거짓과 폭압의 어둠이 난무하였고, 그 가운데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을 느꼈으면 한다. 나는 장쇼유라는 공산당 관리가 보여준 인간다움에 대하여, 자신이 믿던 이념에 대한 회의와 폭력 앞에 미치기도 하였고, 수없는 탄핵과 고문과 수용소의 학대 속에서 결국은 무력하게 죽어갔지만, 오늘 이 혼선의 계절에 그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와 함께 어둠에 부대끼며 생명을 갈구했던 또다른 무수한 사람들에게도....

어둠과 죽음은 생명을 이겨내지 못한다.

---장융의 '대륙의딸'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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