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빠와 아버지

자식이나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에 들어 간다고 했다. 그러나 독자들과 자녀 교육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소개드림을 양해바란다.
자식이나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에 들어 간다고 했다. 그러나 독자들과 자녀 교육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소개드림을 양해바란다. 필자 올림(월간조선 인터넷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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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에게는 아들보다 더 귀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둘 있다. (아들이 없으니 이런 표현도 가능한가? )

큰 딸이 서른 두살, 작은 딸이 스물 아홉으로 둘 다 출가를 했고 애들도 있다.

애 엄마를 닮아서 인지 딸 아이들이 심성이 착하고 오늘 날까지 부모 속을 썩힌 적은 없었다. 원래 여자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조용하고 착하게 크니까 자녀 교육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반듯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애비인 조약돌의 들인 공력과 노력도 컸다는 점을 우리 식구들은 모두 인정한다. (에햄 ! 헛 기침 소리)

' 저희들이 반듯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님의 교육 덕택이 큽니다.' 는 얘기를 딸들로 부터 들을 때는 흐뭇하다.

우리 딸 년들이 조약돌을 아빠라고 부른 적은, 저들이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뭐라고 부르는가 하면,

매번 ' 아버님 ' 이라고 부른다.

시아버지도 아닌 친 아버지를 여자 애들이 꼬박 꼬박 ' 아버님 '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약간 생경함이나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 아버님' 이란 호칭은 국어 사전에 의할 것 같으면, ' 시아버지 '에게만 적용하는 말이므로 친정 아버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문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사전적 의미로 접근하는 사람도 그간 없지 않았다.

조약돌 이웃 주민들 조차도, 그 호칭을 듣고 시아버지로 오해했다가 내막을 듣고나서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지금은 전부 알기 때문에 그런 오해는 더 이상 없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큰 애가 중학생이고 작은 애가 초등학생일 때)에 우리 집에 찾아온 집 사람 친구들이, 어린 딸애들이 매번 ' 아버님' 이라고 조약돌을 부르는 것을 보고, ' 징그럽다.' ' 불쌍하다' ' 청학동에 온 것 같다.' 는 등 요즘 애들은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곤 했지만 지금은 모두들 부러워 한다.

자기 자식들도 조약돌의 딸애들처럼 ' 아버님'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해봐도 전부 실패했다는 얘기도 가끔은 들었다.

우리 애들이 호칭을 ' 아버님'으로 바꾸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우리 큰 애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 날이었다. 딸들을 앞에 앉히고 덕담을 나누다가,

' 얘, ㅇㅇ아, 너도 이제 중학교에 들어갔으니 어린애가 더 이상 아니란다. 초등학교때와는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니? '

' 응, 뭐가 달라져야 하는데.......? 아빠 ! '

' 글쎄, 아빠에 대한 호칭을 좀 정중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

' 아빠란 호칭? 뭐가 어때서....? '

' 이제 너도 어른이 됐으니 아빠라고 부르지 말고 ' 아버님 '으로 부르도록 해라 ! '

' 아버님이 뭐야 ? 조선시대로 다시 돌아왔나 보다. 참 어색한데. 다른 애들도 전부 아빠라고 부르는데 왜 나만 ' 아버님' 이라고 불러야 하지 ?

' 다른 애들은 다른 애들이고, 너는 그 애들과 뭔가는 다른 점도 있어야 하지 않겠니? '

' 내가 아빠를 그렇게 부르면 친구들이 듣고 놀린단 말이야. 아버님이라고 불러야 되는 이유가 뭔데? '

' 너, 송강 정철의 시조 생각 나지 ? 그 시조에 ' 우리 아빠 날 낳으시고 우리 엄마는 날 기르시니........' 이렇게 나와 있니? 아니면 아버님 날 낳으시고로 되어 있니? '

' 그것은 교과서잖아. 다른 애들이 안 하는 걸 왜 나보고만 이상하게 부르라고 하지 ? '

' ㅇㅇ 아 ! 넌 그 애들과 뭔가는 달라야 돼. 넌 특별한 애야 ! 그리고 교과서란 것은 거기에 나온 가르침을 배워서 따라 하라는 책이다. '

' 아빠, 그것은 특별하기는 한 데 그런 것으로 그 애들과 달라질 필요가 있나? 자칫 왕따 당하기 딱인데.....'

' 그럼, 아빠란 호칭 대신에 아버님이라고 불러야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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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이 담에 어른되면 결혼하게 되지 ? '

' 그래서.........? '

' 거기 연속극에도 보면 새댁이 신랑보고 '아빠' 라고 부르는 것 봤지? '

' 그것은 새댁이 여보/당신하기 어색하니까 '자기'라든지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

' 그래, 네 추측이 맞을꺼야. 그런데 네 남편과 이 아빠가 있는 앞에서 네가 ' 아빠 ' 라고 부르면 그게 누구를 부르는 것인지 헷갈리지 않겠니 ? '

한 동안을 생각하던 딸 애가 애비의 뜻을 이해했나 보다.

' 정말 그렇네.'

' 그래서 이제 중학생도 되고 했으니까 앞으로는 나를 ' 아버님'이라고 불러라. '

' 이 담에 결혼한 후에부터 '아버님'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

' 그 때까지 계속 아빠라고 부르다가는 너무 오랫 동안 습관이 되어서 고칠 수가 없게 되지. 그러니 이 시간 이후로는 무조건 아버님이라고 불러라. '

' 응, 알았어. 아빠 !'

' 또, 아빠라고 부르네. '

' 그렇구나. 습관이 되어서 쉽지 않네. 하여간 알았어, 아버님 !'

' 알았어. 아버님이라.........'

하여간 우리 부녀는 그 날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나 한번 습관이 된 호칭은 좀처럼 고쳐지지가 않았다. 그 후로도 여전히 ' 아빠' 라고 부르는 딸. 그 때마다 매번 지적하는 조약돌.

해도 해도 고쳐지지 않는 호칭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딸애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한편 애비된 입장에서도 동기부여 측면에서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되었다.

딸 애가 뭔가 부탁을 할 때마다 호칭을 잘못하면 바로 잡을 때까지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등 갖은 방법을 다 써도 애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 아버님 ' 이란 호칭은 여전히 기대할 수가 없었다.

' 아빠'라는 호칭을 부르는 동안은 딸애와 나는 친구처럼 말을 터 놓고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조약돌이 딸애에게 호칭을 '아버님'이라고 바꾸어 부르도록 강요하게 된 데에는 어른에게는 존대말을 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거듭하던 어느 날 조약돌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그 날도 여전히 아빠라고 부른 딸 애를 불러 앉혀놓고 호칭이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으니 그냥은 아니 되겠다. 앞으로 ' 아빠'라고 잘못 부를 때는 그 때 마다 볼기를 3 대씩 맞는다고 예고를 했다.

워낙 많은 실수를 한 딸애인지라 군 말 없이 그렇게 해도 좋다고 약속을 하고 그날 우리 부녀는 이를 약속하는 손도장도 찍었다.

그러나 역시 애들은 별 수가 없다. 불과 한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우리 애의 입에서는 ' 아빠' 라는 호칭이 나오고야 말았다.

그렇지만, 이제 매를 맞기로 약속을 한 터이니 자신이 실수한 것을 직감한 큰 딸애가 손바닥을 입으로 가져가며 뱉은 말을 주어 담으려는 시늉을 했다.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조약돌은 좀 모질지만 결심을 굳혔다.

“ ㅇㅇ아 ! 너 약속을 어겼네. 이제 어떻게 하지? “

“ 아빠 ! 나 실수했다. 한번만 봐주라. “

“ 뭐, 또 아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봐줬는데……….” 우리집 가훈이 뭐지 ? “

“ 일단 맺은 약속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임하라. “

“ 그렇지. 약속을 못 지켰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

딸애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체념을 하고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애비의 처분을 기다렸다.

“ ㅇㅇ아 ! 이리 내 곁으로 오너라. “

마지 못해 애비 곁으로 다가오는 딸. 조약돌은 중학교에 막 들어간 딸 애를 내 무릅 위에 엎드리도록 하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팬티를 벗겼다. 오동통한 엉덩이가 드러났다.

아이는 여자 애 특유의 부끄러움과 설마 애비가 볼기를 때릴 것인가 반신반의하면서 궁둥이를 잡아 뺀다.

조약돌은 이 것도 교육이란 일념으로 눈을 지긋이 감으며 아이의 볼기짝을 사정 없이 석대 씩이나 세게 때렸다.

가장 아끼고 믿었던 애비로부터 매를 맞은 것이 서러워서인지, 손바닥 매가 매웠던 것인지 딸 애는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 ㅇㅇ아 ! 내가 네가 미워서 때린 것은 아니란 것 잘 알지? “

눈물을 닦아 주면서 물어보았다. 아이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 후로 우리 큰 애는, 한 두번 정도 ‘ 아 ㅃ ……..” 하고 부르려다가 혼난 기억이 떠올랐는지 곧, ‘아버님’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었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우리 딸 애는 애비를 부르는 호칭이 ‘ 아버님’ 으로 완전히 정착이 되었다.

그 딸 애가 ‘아버님’이라고 부르니 작은 애는 별도로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학습이 되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아버님’이라고 따라 부르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딸 애들이 ‘ 아버님’ 이라고 호칭을 억지로 바꾸어 부르도록 한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는 사람 나름, 그리고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조약돌은 그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이 교육 결과에 대하여 결코 후회하지는 않고 있다.

물론 사위를 맞은 후에, 호칭 때문에 가족들간에 어색하게 되는 상황이 한번도 없었다는 점도 좋지만, 그 이전에 조약돌은 언어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체험하였고 이런 측면에서 호칭을 극존칭법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한 데 대하여 극히 만족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아빠란 호칭을 사용할 때는 조약돌은 딸 애들의 친구와 마찬가지였다.

애들이 저 아빠에게 하는 대화는 전부 반말 투성이었다.

‘ 아빠, 놀러가자. 아빠, 나 자전거 배워주라. 아빠 ! 밥 먹었어 ? “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아버님’이라고 부른 후부터는,

“ 아버님 ! 밥 먹어라 ! “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신에,

“ 아버님, 진지 잡수세요. “

하는 식으로 저절로 모든 언어가 존칭으로 바뀌고 언어 자체도 순화되었다.

어린 애들이 꼬박 꼬박 극 존칭법을 쓰다 보니 그 후로는 행동 자체가 존칭어에 걸맞게 순화되기 시작하였다.

“ 아빠 ! 숫가락 여기 있어. “ 하면서 한 손으로 집어주던 딸애의 행동이 어느 순간부터 두 손을 모아서 예를 갖추고 주는 것이었다.

행동이 순화되니 사고 영역 자체도 이를 닮아가는가 보다. 나 자신은 잘 몰랐는데 조약돌에게 하는 우리 애들의 행동 거지 하나 하나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 ㅇㅇ이는 어쩌면 저 아빠에게 젓가락을 드리는 데 무릎을 꿇고 앉아서 양손을 모으고 다소곳하게 드리지. 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저러니 저것은 가식은 아닌 것이 분명하고 그러고 보니 저 애는 사람이 아니고 아마 귀신인게야. “

그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조약돌은 흡족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우리 딸 애들이 아직도 못 고친 나쁜 버릇이 하나 있다. 저들 남편이 있든 없든 말 같은 계집애들이 애비의 무릎 위에 덥썩 덥썩 앉는다는 점이다. 그럼 다섯살 난 손자 녀석도 할아버지 무릎 위에 자기도 앉는다고 궁둥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보며 우리 식구들은 모두 배꼽을 잡는다.

철딱서니 없는 딸 애의 생경한 행동에 사위들도 처음에는 다소 의아해 했으나 이제는 으레 그럴러니 하고 이해를 하게 되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우리 딸 애들은 애비 말이라면 거역하거나 낯을 붉히는 경우가 없다. 진정으로 애비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존경심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무리 늦은 밤 시간이라고 하여도,

“ ㅇㅇ아, 물 좀 한 컵만 다오. “

“ 네, 아버님 !”

“ 작은 애야 ! 나 좀 안마 좀 해다오. “

“ 네, 아버님 ! “

그 뿐만이 아니다. 여행이라도 갔다가 좋은 술이든 뭐든 애비가 평소에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요청하지도 않았음에도 꼭 사가지고 와서 애비를 챙긴다.

그런 큰 딸 애가 어제도 이 애비에게 용돈을 주었다. 아직까지는 내 밥벌이는 하기 때문에 싫다고 사양해도 성의를 무시하면 아니 된다면서 막무가내로 준다.

용돈을 주는 현장을 집 사람이 목격하면 절대로 못 주게 한다. 딸 애에게 무슨 용돈을 받느냐면서 뺏어서 딸애에게 되돌려준다.

지 엄마의 성격을 아는 딸애가, 컴퓨터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내 방으로 엄마 몰래 들어와서 내 볼에 슬쩍 뽀뽀를 하고서 10 만원 짜리 수표 두장을 비상금 하시라면서 건네줬다. 거의 매달 준다.

그런데 약싹 빠른 아내에게 현장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 아버님께 꾼 돈을 갚았어요. 그리고 엄마, 요즘 용돈 드린지 꽤 됐죠? 여기 엄마께 10 만원 드릴께요. “

딸 애의 선심에 입이 찢어진 집 사람이 흡족한 표정으로 방문을 도루 나간다.

잘 키운 두 딸 덕분에 호강하는 조약돌은 여생이 행복하기만 하니 여러분들도 자녀 교육에 참고하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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