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을 돌아 보면서...
글쓴이 : 조영희 (인터넷 월간조선에서 펌)
나는 지금도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젊어서는 여느 청년처럼 꿈도 많았다, 외교관, 교수, 정치가..., 근데 지금 , 내일 모레면 이순 ( 耳順 )을 바라보면서, 앞날 보다는 지나간 일들이 더많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필부필부들 중 서울의 소시민이다. 1947년생인, 해방 둥이 이후 세대이다. 미국에서는 지금 2차 세계 대전 종전 세대들이라 하여서, 비교적 잘사는 은퇴자들의 세대라고들이라 하며, 이들을 위한, 이들로부터의 지갑을 열게한다는 특수 마케팅도 연구 중이라하는데, 우리네 세대는? 아직은 미국처럼 멋있는 은퇴자들군(群)에는 들지 못하고...
어렸을 때는 모범생이었고, 대학시절에는 그래도 의협심이 있었고, 진리, 자유, 정의를 운운하고, 군대는 장교로 갔다오고, 사회 첫발은, 무역회사였고, 그리고는, 계속 회사를 옮겨다니면서, 종합상사, 외국인 회사인,미국의 다국적 기업, 중소 제조업등에서 무역을 담당하였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한 1970년대 초반은, 박정희 정권의 힘찬 구호, '잘 살아보세',를 기치로, 당시우리나라 경제보다 한발 앞선 북한을 따라잡기위하여서, 어쨌든, 외화를 많이 벌어들인다는 국가적인 목표를 가지고, 많은 무역회사들이 우후 죽순처럼 생기고 우리처럼 어학 전공인자들도, 그이전에는, 대학졸업후, 한동안 반드시, 실업자로 있어야하는데, 우리세대는,어느 무역회사든 줄만 서면, 기초 영어와상식만 있으면, 우선은 학과 불문하고, 무역회사에 입사되는 시절이었다.
나는, 영어와 상식에서는 항상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공개채용 시험의 첫 관문인, 필기시험에서는 우수한 성적으로 , 항상, 톱 클래스에 속했고, 면접시험은, S 그룹과 H 그룹을 제외한 어느 그룹에서도, 어느 외국인회사나, 어느 중소기업에서도, 항상 좋은 성적으로 입사하였다. 그래서, 입사 초기에는 그래도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갖고, 한동안은 잘 다닌다. 회사 업무의 인지도도 대충 대충 빨리빨리 오리엔테이션을 받고는 실전에 배치, 한동안은 빨리빨리 잘 진행시켜서, 입사후 얼마 안되어서, 해외 출장도 다니고, 또, 현지 지사장의 눈에도 들고하여서, 비교적 빨리, 해외지사 생활도하고, 어여쁜 아내도, 2 년여의 연애끝에, 결혼, 신혼을 해외 지사에서, 꿈에 그리듯하고..., 모든 것이 장미빛 인생, 몇녀후에는 과장, 그 몇년후에는, 부장, 임원..., 약관 40대에 임원을하고..., 제 멋대로의 상상의 날개를 편다.
근데, 호사다마로써, 어느 조직을 가더라도, 일은 비교적 빨리 배우는데, 윗사람과의 관계 면에서는, 이즈음 몇년을 빼고는 평생동안,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함으로써, 평생 고생을 면치 못하고는, 장미빛 인생이 어느덧, 장미에 가리운 가시덤불의 인생, 질곡의 연속,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조직생활을 힘들게 한 사람이 있나할정도로, 갑자기, 반전(反轉)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가 나의 잘못이요 부덕(不德)인데, 그 당시에는, 왜 그러한 인정과 수용과 타협이 안되었던지, 그것이 아직도 묘연하다.이것이 인생인 것이다.과학적으로정확하게 예측되지 못하는 불가사의 인것이다.
어쨌든, 나는, 머리와 지식과, 기능을 다루는 면에서는 남에게 지지않으려고, 불철주야로 노력을 했고, 또 그 것은 어느 정도, 순전히, 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었는데, 인간 관계만은 아니다!
이 것은 나의 영역을 벗어난 영역으로써, 어찌보면 운명으로보아야하는지? 어쨌든, 운칠기삼( 運七技三)이라고, 나의 실력보다는환경에 많이 지배받은 것이다.
첫번째 시련은,첫 직장에서의 나보다 어린 여사원과의 매끄럽지 못한 업무 관계이다. P 라는 이 여성은 경상도 아가씨였는데, 평소에는 상냥하고, 말도 사근사근 잘하는데, 일하는데 있어서는, 상하좌우없이, 좌충우돌형이다. 글씨도 제못대로..., 매사가 나와는 정반대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번씩 공식석상에서 싸운다. 온 회사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신입사원인 나와 그여사원 사이가 견원지간 ( 犬猿之間)이란다. 또 한사람은, xx 부장인데, 이 자는, 세무서 출신으로써, 하루종일 직원의 동태만 감시하고, 말하자면, 사장의 하수인 노릇만하고는, 회사 경영에는, 아무 도움도않고, 오직, 회사의 절세와 탈세만 관장하는것이다. 나의 이 모습을 보고, 상부에 좋은 보고를 나에 대해서 잘할리가 만무이고, 자연히 인사고과도 엉망이고..., 나는, 결심한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야한다고. 그리고는 사귀는 나의 애인에게 자문도 구하고..., 그리고는, 남몰래 타회사 시험에대해 탐문, 신문지상의 공고를 보고, 그 다음 회사로 공채를 걸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한다.우수할수밖에 없는 것은 전공인 영어와 나의 장기인 일반상식과 일반 주제에 대한 논문과 비교적 쉬운 인성검사였기 때문이었다.나중에 인사담당의 중역의 공개 강의에서 언뜻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신입사원은 성적은 우수한데, 인성에서, 너무 자의식이 강하고, 조직에 적응할지가 우려될 정도인데, 자기가 생각하기엔, 돈버는데, 실력이 먼저이지, 성격은 그리 문제가 안된다하였다.
좌우지간, 그 기업에서도, 첫번째의 인간관계가 또 말썽이었는데, 사수 조수 제도가 있는데, 예의 첫번 사례처럼 또 사수와 매사를 놓고 싸운다. 영어는, 내가 더 잘할지 모르나, 비지니스 영어는 두괄식으로 결론을 먼저 쓰고..., 이런 식으로 자기의 썰을 강요한다. 나는 이미 대학에서 저명한 상대 교수로부터 그와 같은 이론과 실전을 한학기동안 공부한 바도 있고, 그 설(說)이 맞다는 것도 아는데, 사족(蛇足)을 자꾸 달고, 핀잔을 주기에, 매일 티격태격 그와 다툰다. 근데 그는, 회사의 간부들도알아주는 유명한 장삿꾼이고, 실적과 수완이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말하자면, 비상한 장사감각을 가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고, 나중에 비록 그가, 해외 지사의 시절, 이와같은 , 나와 같은, 인간관계 문제 등으로, 각광은 못받고, 회사의 경영진으로부터 좋은 고과도 못받고 하여서, 아주 높은 지위까지는 그도 못 올라갔고, 결국, 회사를 조기 퇴직, 그후에 사업을 하다가,그도 신통치않게 되고...
그런후에, 나는 이 조직에서, 그런대로, 20 여년을 버티고 견디다가, 1994년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태, 명태, 황태를 당하고, 내 나이 47세인데, 벌어논 돈은 하나도 없고, 그저, 막연히, 65세 정년까지는 다니겠지하는, 안일한 나의 생활신조도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난생 처음 퇴직을 강요당한지라, 자존심도 상하고, 또, 당장 다른 기업을 다시 기웃거린다는 생각은 이제는 좀 조바심도 나고, 예전처럼 좋은 직장도 없을 듯도하고, 한동안은 여러가지 걱정과 두려움이 앞장서서, 궁극에는 이 세상을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생기고, 종교 세계로 들어갈까도 고려해보고, 또 어느 종교인은 나에게 그러한 달란트 ( 재능 )가 있다하면서, 실제로 추천도하기도했고..., 나의 동생도 실제로 캐나다에서 종교인으로 사역하고있기도하고해서..., 근데 아내와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다. 적어도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연후에 그 길로 가야지, 이제 한창 중고등학교엘 다니는 어린 자녀들을 뒤로하고, 돈도 재산도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그런 이기주의 발상을?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재 취업을 하기로 하고, 구직을 한 바,외국인회사와 국내 중견기업으로부터 부장 및 임원으로써 공개채용되었다.두 회사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바, 대부분이 외국인 회사가 적성엘 맞겠다 하여서, 중견회사의 임원직을 포기하고, 사장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외국인 회사로 갔다. 감언이설이라함은 그회사 사장이, 임원을 보장할테니, 우선 부장으로 근무, 연말 인사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에서도, 외국인 부사장과 들어가자마자 부딪힌다. 그는,한국인 사장을 미워하고, 월권으로 모든 인사 재정권을 그로부터 빼았고, 제 1 인자 행세를 한다. 나는 인력관리 부장으로써, 그의 부당함을 미국 본사에 알리고, 이 어려운상황을 어찌할것인가를 자문한바, 이를 안 그 부사장은 막 화를 내면서, 당신은 나에게 그러한 문제를 먼저 보고하고나서,미국 본사엘 질의해야하는데... 하면서,나에 대하여서 좋지않은 감정을 가지게되었다. 나도 당신같은 사람과는 일을 같이 않겠다,부사장으로써, 한국인 사장에게 끝까지 그에 게 복종, 회사 규정대로 모든 것을 시행하라고 대들었다. 어쨌든 믿었던 그 사장은 미국 본사로부터 징계성의 사퇴를 종용받고,그 외국인 부사장이 임시 사장 대행으로 앉고, 그 사이에 그는 나를 해고통지하고...
그 역시 얼마후,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를 밀어주던 본사의 부회장의 전격 사퇴로써, 회사를 그만두게되고..., 외국인 회사가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썩어있고... 나는 다시한번 인간관계의 비애를 맛보고...
그 뒤에 찾아간 회사도 국내 굴지의 중소기업인데, 이러저러한 인간관계로서, 무역담당 이사직을 그만두고, 그회사를 2 년여 다닌후 퇴직을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 다니는 중소 제조업은 이제 3 년여를 넘기고 비교적 양호한 해외 무역 실적을 가지고, 나의 혼신을 다해서,무역을 담당 전세계에 이 회사 제품을 팔고있다.
결론적으로, 주위 환경이 나쁘면, 내가 아무리, 바둥대어도, 제대로 잘 안되고, 일정의 여건과 환경이 갖추어 질 때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선(善)을 이룬다 한다. 평생 마음 고생만 한 아내와 두 아들 딸이 출가 하는 날까지 나는 지금의 이 회사에서,동고동락하면서, 평생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고 있으며, 45정, 56도라는 속어를 비웃듯, 오늘도, 500만 달러의 외화를 이 해가 다가도록 달성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음 그 자체에 절대자인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지나간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약이 되고 피가 되어서, 남은 나의 일생을, 나에게 주신 달란트대로, 열심을 다하여 살아가기를, 오늘도, 신에게 감사드리며, 겸손히, 두손모아서, 기도드린다. Man errs, God forgives. ( 인간은 죄를 짓고, 신(神)은 용서하신다 ).
수필/직장 인간관계 실패기
- 조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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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16, 02: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