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녁때 지인들과 만나 한 잔 했다. 피곤한 일도 많은 팍팍한 세상, 그래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만나 한 잔 걸치며 마음을 나눌 때만큼 즐거운 시간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동지'인 것이다.
그때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복제가 거짓이라는 소식이 들어왔다. 순간 술이 확 깼다. 이 짜증나는 세상, 그래도 황우석 박사 얘기가 전국민의 청량제였고, 희망이었는데,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니....
MBC가 기고만장해서 방송을 보류했던 PD수첩 황우석2탄을 'PD 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라는 특집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참담했다. ''황우석 죽이기'에 나섰던 MBC와 좌파들은 앞으로 더욱 기고만장해서 날뛸 것이고, 황우석 박사를 감싸면서 그들을 비판했던 우파는 졸지에 X됐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참담했다.
함께 있던 동지들은 말로는 '술이나 마시자'면서도, 눈은 TV로 가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2.
그 자리에서 먼저 나온 얘기는 '반성'이었다.
'MBC가 전국민의 우상이 된 황우석 박사를 정조준했을 때에는 상당한 '팩트'의 뒷받침이 없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MBC가 그렇게 자신있게 방방 뜰 때, 우파는 냉정하게 나가지 못하고,MBC-프레시안-오마이뉴스-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좌파에 대한 이념공세로 나간 것은 잘못이었다'라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번 사태가 불거져 나왔을 때부터 과학계 일각에서는 '황우석 박사 사태는 과학계의 IMF사태'라는 얘기가 있었다.
관치금융, 분식회계 등 경제개발 과정에서 용인되었던 '한국적 관행'들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IMF사태가 터졌듯이, 황박사의 연구에는 연구 과정에서의 '과장'과 '왜곡'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한국적 관행'이 어느 정도 내포되어 있으며, 그것이 폭로되면 마치 IMF사태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일대 '공황'이 닥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 때는 '설마'하는 심정이었다. 복제된 줄기세포가 3개인데, 그것을 11개였다고 '과장'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지, '줄기세포 자체가 없다'는 수준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과장'과 '왜곡'이 있다면 차차 바로잡되,일단 '국민의 희망'인 황우석 박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이 상황을 좌파에 대한 이념공세로 모는 것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3.
그 다음에 나온 얘기는 '황우석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하는 얘기였다. MBC 'PD수첩'이 문제삼은 것은 치료목적의 맞츰형 줄기세포 복제가 가능하다고 한 금년의 연구 결과에 대한 것이다. 복제소 아롱이를 비롯해 이전에 황우석 교수와 그의 팀이 이룩한 성과들까지 부인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것도 이제는 재검증의 대상이 되겠지만).
사실 복제소 '아롱이'만 해도 대단한 성과였다. 특히나 우리의 척박한 연구풍토를 생각하면....
앞뒤가 꽉 막힌 현실에 답답해 하던 국민들은 황우석이라는 '영웅'의 탄생에 환호했다. 일부 종교계 인사들을 제외하면, 여기에는 예외가 없었다.
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너도나도 '황우석'을 노래했다.
여야 할 것 없이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은 황우석 박사와 만나 사진 한 장 찍으며 그 후광을 입으려 했다.
노무현은 작년과 올해 국회 시정연설 때, 황우석 박사를 극찬하면서, 그것이 마치 '참여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의 성과물인 양 포장하려 했다.
정부와 청와대의 과학기술 관계자들은 '황금박쥐' 클럽인가를 만들어 황우석 박사를 후원하겠다며 매스컴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황금박쥐 클럽은 황우석 박사 논란이 벌어지는 동안 황박사를 보호하지도, 진실을 밝혀내지도 못했다. 그들은 분명 '박쥐'였다. 황박사의 영광은 함께 누리겠다고 달려들었다가, '고난'의 순간에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는 점에서....).
신문과 방송들도 심심하면 황우석 박사를 불러냈다.
그 과정에서 황박사는 점차 '과학자'가 아닌,'탤런트'가 되어 갔다.
나같은 놈도 프리존에 글을 쓰면서 남들이 '강철군화님, 강철군화님'하면서 내 글을 칭찬할 때는 붕 뜬다.
하물며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일개 수의대 교수를 대통령부터 이웃집 어린이들까지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그의 양어깨에 걸려있는 것처럼 말할 때, 그는 얼마나 달콤하고 신이 났을까?
아마 그는 그 마력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제대로 연구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국민들의 기대는 높고, 성과물은 안 나오고, 뭔가를 보여줘서 지금 맛보고 있는 달콤한 과실은 계속 즐기고 싶고....
거기서 마(魔)가 낀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금 말썽이 나고 있는 줄기세포 조작문제가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황우석 박사를 그렇게 몰고 간 대통령과 정부,정치권,언론,국민들도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4.
그리고 나온 얘기는 '황우석 박사와 그의 팀을 이대로 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복제소 아롱이를 만들고, 난자를 추출해 내는 그들의 능력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진실은 분명히 밝혀내야겠지만, 그들이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이 작년까지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더 나은 연구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밀어줘야지, 그들을 죄인으로 몰아 그들과 그들의 연구성과들을 사장(死藏)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5.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황우석 박사 파동의 '팩트'를 보지 않고, MBC-프레시안-오마이뉴스-노무현 연대에 대한 이념공세에 치중했던 것은 우파의 커다란 실책이었다.
황박사의 과오를 철저히 검증하지 않고, '국익'이니 '애국'이니 하는 관념에 매몰돼 이념공세로 나가면서 MBC가 골탕을 먹는 것을 고소해했던 것은 우파의 패착이었다.
좌파건, 우파건,'팩트(사실)'보다 강한 것은 없다. 이번 사태는 MBC의 승리나 좌파의 승리가 아니라 '사실'의 승리였다.
앞으로 좌파와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을 가지고 좌파와 싸워야 한다. '이념'과잉에서 비롯된 좌파의 역사 왜곡, 북한현실 무시, '진보'를 자처하는 이 정권과 좌파세력의 거짓말과 부정부패 등 '사실'을 가지고 그들을 공격한다면, 반드시 좌파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6.
지금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황우석 박사에게 아직도 '미련'을 두는 것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이번에 논란이 된 줄기세포 복제건 말고, 그 이전의 성과물들에 대해, 그것을 위해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에 대해 미련이 남는다. IT이후에 BT산업이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이런 나를 미련한 놈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전에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황우석 박사 말고도 노벨상에 근접한 서울대 교수들이 적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들의 노고가 황우석 박사의 잘못으로 위축되서야 되겠는가?
지금 황우석 박사와 그의 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롭고 고단한 처지에 놓여 있다.
황우석 박사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겨레와 인류의 미래를 열어간다'는 자부심 하나로 밤잠 안 자고 연구에 몰두해 온 그들은 이제 졸지에 희대의 사기꾼으로 손가락질 받게 됐다.
그들은 이제 상승하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의 연구업적에 기대 숟가락을 얹어보려던 노무현과 정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에 대한 지원을 철회할 것이다.
하이에나 같은 언론들은 이제 황우석 박사의 연구성과뿐이 아니라, 그의 인성과 사생활까지 파헤지며 그를 죽이려 달려들 것이다.
BT분야를 비롯해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과학기술인들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그들도 사기꾼이 아닌가'하는 눈으로 보는 국민들의 눈총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전국민이 그들에게 박수를 칠 때 함께 박수를 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전국민이, 아니 전세계인이 그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때, 그들 편에 서 줄 사람은 드물 것이다.
노무현을 보라. 황우석 박사를 청와대로 불러 훈장을 달아주고 밥을 내고 국회에 나갈 때마다 그의 이름을 팔더니, 공기가 이상해진다 싶으니까 슬그머니 발을 빼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복제소 아롱이를 포함해서 황우석 박사의 모든 연구성과들은 철저히 검증돼야 하고, 추가적인 허위사실이 드러날 경우 그에 따르는 도덕적 비난과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그의 잘못까지 감싸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밤, 나는 황우석 논란에 좀더 냉정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사실'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황우석 박사와 그의 팀(그리고 그들로 상징되던 한국과학계)이 이번 시련을 이겨내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편에 서 있다.
반성, 그리고 황우석을 위한 변명
- 강철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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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16, 09: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