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4일 경찰청이 발표한 ‘11.15 전국 농민대회 관련 경찰청 입장’ 이란 글을 읽었다. 경찰청은 이 글에서 故(고) 전용철씨의 사망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으며 병원 입원중인 홍덕표 씨의 부상이 경찰의 가격에 의한 것임을 사실상 인정하고 책임자인 기동단장을 직위해제할 방침이라고 했다.
나는 전투경찰 65기로 서울시경 제1기동대 2중대 1소대에서 2년 넘게 데모진압을 했다. 특히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시위현장을 석 달 가까이 몸으로 때우기도 했다.
이번 경찰의 발표는 사안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경찰의 책임을 묻는다면 기동단장은 계속 직위해제될 수밖에 없고 경찰청장은 속죄양을 계속 만들며 직위를 보전하려 할 것이다.
許准榮(허준영) 경찰청장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불법 폭력이 예상되는 집회에 전의경 기동대의 방패조가 되어 30분만 진압을 한번 해보기 바란다. 대원들과 같은 방석모와 방석복을 입고 방패를 들고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시위대 앞에 맞서보면 왜 대원들이 난폭해질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기동대원으로 근무할 당시인 1980년 여름, 일본대사관으로 진입해 시위를 하려 했던 노인들 100여명을 막으러 출동한 적이 있었다. 당시 중대장은 학생 시위대와 달리 노인들이니 최루탄을 쓰지 말고 방패로 막기만 하라고 했었다. 10여분간 노인들이 밀어붙였고 나같은 졸병들로 구성된 방패조 20여명이 힘에 밀려 뒤로 서너 발 물러서자 뒷줄의 전경 고참들이 워커발로 우리들의 등을 걷어차고 곤봉으로 우리를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앞뒤에서 밀리고 맞기를 3-4분, 나는 화가 나 앞줄의 노인들을 방패 앞면으로 밀고 “좀 그만들 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어떤 대원은 노인들에게 욕을 퍼붓고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20여 분 만에 노인들이 시위를 끝냈다. 방패조 졸병들은 모두 땀범벅이 되었다. 졸병들은 최루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중대장을 욕했다. 최루탄 없이 맨몸으로 나온 노인들의 시위를 막는 것이 이 정도인데 흉기를 들고 나오는 젊은 시위대와의 싸움은 오죽하겠는가. 그때는 최루탄이라도 쓰는 진압을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못쓰게 하니 전경들을 완전히 샌드백으로 만든 것이다.
언제부턴가 최루탄을 쏘지 않는 진압이 마치 善(선)인양하는 위선적 경찰 지휘관들이 늘어났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현장에 나가보지 않는다. 국민의 자식들인 전경들이 얻어터지건 화염병에 화상을 입어도 미안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고 불법 시위를 진압하는 방법은 세계 어느 경찰도 갖고 있지 않다. 앞으로도 불법 시위를 이런 방식으로 진압하겠다면 전경대는 해산하고 전직 조직폭력배나 완력을 쓰는 사람들을 용병으로 써서 배치해야 한다. 현재같은 진압 방식이라면 아마 그들도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다.
불법 시위를 막는 가장 싸고 효과적인 방법은 최루탄 사용이다.
경찰청장은 더 이상 국민의 자식들인 어린 전의경들을 자신의 방패로 쓰지 말았으면 한다. 직접 방패를 들고 나가서 최루탄 없이 진압을 해보면 왜 최루탄이 필요한지 알 것이다.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자신의 피붙이를 방패조에 근무시키도록 하라. 나나 내 주위 사람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은 일을 남의 자식에게 시키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一枝梅)
국민행동 본부 2005년 주요 활동
신문광고 50회, 場外 집회 19회… 전국으로 무대 확산
대표적인 애국행동단체인 국민행동본부(본부장 徐貞甲 대령연합회장)는 올해 19회의 대중집회, 50여회의 신문광고를 비롯하여 수많은 가두투쟁과 기자회견을 통해 친북반역세력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지방에 5개 지부를 창설했던 것으로 집계되었다. 국민행동본부의 2005년 결산 통계에 따르면 19회의 집회엔 연인원 약13만7000여명(국민행동 아카데미 강연회 참여 1300여명 포함)이 참여했다. 국민행동본부가 신문에 낸 광고는 거의가 국민성금으로 낸 것인데 올해 성금액(후원회비)은 작년보다 52%가 늘어난 3억8000만원이었고, 연 약1만3000명이 참여하여 1인당 평균 약2만9000원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행동본부는 기업체나 특정단체로부터 후원금을 일체 받지 않고 순수한 국민성금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국민행동본부의 가장 큰 성과는 맥아더 동상 철거기도를 쟁점화하여 동상을 지켜내는 일에 선봉을 선 일이다. 국민행동본부는 7월 초 신문광도를 통해서 파괴기도를 알린 뒤 7월15일 인천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파괴를 기도하던 좌익단체들의 농성 천막을 경찰이 철거하도록 했다. 이 동상 문제는 좌익진영과 애국진영 간의 갈등을 넘어 한미 관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애국진영이 동상을 지켜낸 것은 2005년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된다.
2005년 국민행동 본부는 2월 15일 호주제 수호 국민대회를 시작으로 19회의 대규모 집회와 10회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10월까지는 주로 서울-경인 지역 위주로 행사를 치렀으나 10월 8일 국민행동본부 부천 지부 결성을 시작으로 부산경남지역본부, 대전충남지역본부, 강원지역본부, 충남 아산지부를 결성하면서 그 무대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행사별 참석 인원도 최소 1000여 명에서 최대 5만여 명에 이르는 대형 집회였다. 국민행동본부는 국민들에게 좌익과 노무현 정권의 실체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올해에만 조선일보 25회, 동아일보 10회, 문화일보 5회, 서울신문 4회, 국민일보 2회, 중앙일보 1회, 지역 신문인 강원일보, 부산일보, 국제신문 각 1회 등 총 50회의 광고를 냈다. 이들 광고 중 맥아더 동상 파괴 기도 관련 광고와 對北250만kw送電의 문제점을 지적한 광고는 국민들과 언론의 큰 반향을 얻었다.
다음은 간략하게 정리한 국민행동본부의 2005년 주요 행사다.
[일자별 주요 행사 일지]
날짜
행사명
주요 사항
02.15
戶主制(호주제) 수호 국민대회
서울 종로구 종묘 공원,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 한국근우회와 공동 개최
02.20
국가보안법 사수, 사학법 개악 반대 범국민 총궐기대회
서울 여의도 국회 앞, 20여 개 단체, 1만 2000여 명 참가
03.01
북한해방을 위한 3.1절 국민대회
서울 시청앞 광장, 2만여 명 참가
03.08
北核개발지원 김대중 심판 기자회견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앞
05.20
北核심판 국민행동대회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1000여 명 참가
06.15
6.15반역선언규탄 국민행동대회
서울역 광장, 5000여 명 참가
06.17
유홍준 문화재청장 귀환저지 촉구 시위
인천국제공항, 20여개 단체 참가
06.28
국방부장관 해임촉구 기자회견
서울 종로구 청운동 청와대 앞
07.10
한미우호증진을 위한 기자회견
경기 평택역 광장
07.11
미군기지 이전확장지지 결의대회
경기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 앞, 800여 명 참가
07.15
맥아더 동상 사수 기자회견 및 집회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철거 주장 측의 농성장 철거
07.20
반미폭력시위 선동 민노당 규탄 기자회견
서울 여의도 민노당 당사 앞, 평택 시민도 참가
07.26
자유민주 비상국민회의 결성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 센터, 100여 개 단체(회원 1만여 명) 참여
08.14
태극기 배포 행사
남북통일축구에서 태극기 금지에 항의, 봉태홍 자유넷 대표 부상
08.15
대한민국 정통세력 8.15국민대회
서울역 광장, 8000여 명 참가, 인공기 강탈 사건, 한겨레 기자와 실랑이
08.17
태극기 강탈, 인공기 사수 경찰 규탄 기자회견
8.15국민대회 당시 인공기 화형식을 벌이려 할 때 인공기를 강탈한 경찰 규탄
08.31
민족문제연구소 해체촉구 기자회견
서울 정동 세실 레스토랑, 친북명단 조사 계획 발표
09.12
맥아더 동상 사수를 위한 궐기대회
인천 인성여고, 1000여 명 참가, 인천자유공원 진입시도했으나 경찰봉쇄로 무산
09.21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해찬, 정동영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접수
이해찬, 정동영 규탄 기자회견도 동시에 실시
10.08
국민행동본부 부천 지부 결성식 및 집회
경기 부천역 북부광장, 1000여 명 참가, 지회장으로 박상규 부천시 前의원 위촉
10.13
천정배 법무장관 사퇴와 강정구 교수 처벌 촉구 기자회견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10.18
을유 오적 심판 국민저항선언대회
서울역 광장, 7000여 명 참가, 일부 시민들 패러디 포스터에 화풀이
10.24
자유동맹 10.24 국민대회
서울 시청앞 광장, 1만여 명 참가, 로버트 오그번 미 대사관 대변인 등 참전국 외교관들도 참석
11.02
제1회 국민행동 아카데미 개최
서울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 1000여 명 참가,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위원이 ‘2007년 大選과 국민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강연
11.03
작전통제권 환수 기도, 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규탄 기자회견
서울 강남 삼성동 코엑스인터내셔널 호텔 앞, 20여 개 단체 참가
11.11
반역정권심판 국민저항선언 부산대회 및 국민행동본부 부산경남 지역본부 결성식
부산역 광장, 3000여 명 참가, 지역본부장으로 최우원 부산대 철학과 교수 위촉
11.26
반역정권심판 국민저항선언 대전대회 및 국민행동본부 대전충남 지역본부 결성식
서대전역 광장, 3000여 명 참가, 자민련 이인제 의원 참가
12.01
반역정권심판 국민저항선언 강원대회 및 국민행동본부 강원지역본부 결성식
강원 속초 수복기념탑 광장, 1800여 명 참가, 지부장으로 윤중국 前 강원도 의회 의장 위촉
12.06
제2회 국민행동 아카데미 개최
서울 기독교100주년 기념관, 300여 명 참가,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위원이 ‘연방제 事變과 대응책’이라는 주제로 강연
12.08
김대중 연방제 망언 규탄 기자회견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앞, 10여 개 단체 30여 명 참가
12.10
북한인권과 종교자유를 위한 촛불기도회
서울 시청앞 광장, 5만여 명 참가, 한기총 주관 공동 행사
12.16
고진화, 원희룡 출당 촉구 기자회견
서울 시청 앞, 10여 개 단체 20여 명 참가
12.22
국민행동본부 충남 아산 지부 결성식
충남 아산 시누크 카페, 지부장으로 조원규 유원종합건설 이사 위촉
주요 집회 19회 개최
집회 참가 연 인원 13만 7천여 명(국민행동 아카데미 1300여 명 포함)
[성금 모금 추이]
2004년 성금 참여인원 1만 2000여 명
성금 모금액 2억 5000만 원
1인당 평균 성금액 약 2만 원
2005년 성금 참여인원 1만 3000여 명 (전년 대비 8.3% 증가)
성금 모금액 3억 8000만 원 (전년 대비 52% 증가)
1인당 평균 성금액 약 2만 9000원(전년 대비 9000원, 45% 증가)
[주요 일간지 광고]
총 50회
조선일보 25회
동아일보 10회
문화일보 5회
서울신문 4회
국민일보 2회
중앙일보 1회
지역신문 3회(부산일보, 국제신문, 강원일보 각 1회)
-------------------------------------------------------------------
인터뷰 / 국민행동본부 徐貞甲 본부장
“2006년에는 연방제事變 저지을 위한 전국조직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나”
국민행동본부(본부장 徐貞甲)는 올해 많은 일을 했다. 가장 큰 성과라면 좌익들의 음모와 실상을 폭로하여 국민들에게 알린 점이다. 특히 좌익단체들의 맥아더 동상 파괴 기도를 무력화시키고 8.15 행사시 노무현 정권의 태극기 금지 조치 등에 항의하여 국민저항운동을 선도한 것이 돋보인다. '반역저지 국민저항운동의 사령탑'을 자임한 국민행동본부 徐貞甲 본부장을 만나 2005년의 회고, 2006년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 2005년에 국민행동본부가 한 일들을 설명해주세요.
“2005년 국민행동본부는 애초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활동했습니다. 올해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기 때문이죠. 지난 7월부터 평택에서는 미군기지 확장 반대시위가 일어났고 광주에서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좌익 단체들이 미군기지의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쇠파이프와 죽창으로 전경들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국민행동본부는 좌익의 행동에 대응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7월10일 평택 집회에서는 좌익 단체에서 사용한 쇠파이프와 죽창을 노획하기도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 동상은 6.25사변 이후 인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맥아더 장군을 기리고자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동상을 마치 불법건축물을 철거하듯 파괴하려는 좌익 단체들이 나타났습니다.좌익들이 이런 행동에 대응하는 활동을 주로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10분 내에 이걸 철거해라”
- 회장께서는 인천 자유공원에서 좌익단체의 농성 천막을 철거하는 데 앞장섰다고 들었습니다.
“인천 자유공원에 갔을 때입니다. 당시 대령연합회 회장단은 군복을 입고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의 본부장인 박근 前 유엔대사와 함께 현장으로 갔습니다. 현장에 가서 맥아더 장군 동상 파괴 기도는 잘못된 일이라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한 다음입니다. 그 주변을 보니 맥아더 장군 동상을 파괴하려는 자들의 천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당시까지 무려 67일 동안이나 경찰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깃발을 세워둔 채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찰은 좌익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기자회견이 끝난 다음 현장에서 경찰을 지휘하고 있던 인천 중부경찰서 정보과장과 담판을 했습니다. ‘10분 내에 이걸 철거해라. 철거하기 전에 우리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천막은 곧 철거되고 좌익 단체들은 물러갔습니다'
“국민행동본부에는 회계장부가 없습니다”
- 올해 신문광고 등의 호응도가 높았다고 들었습니다. 후원금이나 성금액은 어느 정도 됩니까. 그리고 몇 분이나 참여해 주셨습니까.
“2005년 성금액은 작년에 비해 대폭 늘었습니다. 2004년에는 약 1만2000여 명이 성금을 보내주셨었습니다. 금액으로는 약 2억5000만 원 정도 됩니다. 올해는 약 1만3000여 명의 분들께서 약 3억8000만 원의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지출된 규모는 3억 8400만 원 정도입니다. 대부분이 행사와 신문광고에 들어간 비용입니다.”
- 4억 원에 가까운 돈이라면 적은 금액은 아닌데요. 회계 처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국민행동본부에는 회계장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좌파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는 우리가 회계장부를 가지고 있다 하면 ‘회계상 비리가 있을 것이다’하면서 우리 단체를 비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모든 지출과 수입 내역에 대한 증빙 자료를 은행 통장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유급직원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하기 때문에 통장만으로도 회계 장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통장거래내역이야 은행에서 기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이것으로 시비를 걸 수 없습니다.
실제로 2002년에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모함을 받아서 검찰에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통장을 가지고 가서 조사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최근 내란 선동 혐의로 고발당해 조사를 받을 때에도 회계 문제가 거론이 돼서 통장을 가지고 조사를 받았습니다.
국민행동본부가 사용하는 예산은 행사와 관련된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제가 지금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 사무총장을 자원봉사하고 있어서 거기서 일반적인 사무용품이라든지 기물 같은 것은 모두 제공을 받습니다. 다만 애국운동을 하려면 사무실은 있어야 하니까 사무실 관리비와 월세의 경우에는 지출이 됩니다. 그 외 다른 곳에 지출되는 건 없습니다. 물론 다른 곳에 돈을 쓸 일은 많지만 그건 제가 초청 강연회에 연사로 강연한 수입으로 메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쓰지 않고서도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자원봉사해주시는 대령들이 모두 연금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나와서 자원봉사를 하는 겁니다. 다만 자원봉사하시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이비 좌익보다 더 나쁜 게 사이비 우익”
- 국민행동본부에서 黃長燁(황장엽) 선생께도 사무실을 제공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황장엽 선생께 사무실 하나 제공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년 전쯤 황장엽 선생이 저희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徐회장, 나 여기서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처음에는 매우 놀랐습니다. 저희 사무실이 좁은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여쭤봤더니 책상 하나 구석에 놔주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니 이랬습니다. 황 선생님은 과거에 국정원과 관련된 건물에 계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이 됐는데 그때 양천구 목동에 자유북한방송이 사무실을 마련했고 황선생도 그 옆에 함께 사무실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소문이 나자 통일연대 같은 좌익 단체들이 와서 연일 시위를 하는 겁니다. 결국 거기에 계실 수도 없어서 여기로 오신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참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북한 정권에서 망명한 노학자에게 정부가 사무실도 마련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희들은 대한민국 대령 출신으로써 국가를 위하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생각해서 사무실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 지금까지 국민행동본부를 이끄시면서 보람을 느끼십니까.
“저는 보람 있는 생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애국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좀더 이런 활동을 조직적으로 했으면 하는 것이 한 가지 바람입니다.
이제는 애국운동을 하면서 항상 초연하게 살 겁니다. 애국을 하는 데는 항상 초연해야 합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애국활동을 하다가 죽는 게 일생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활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애국 진영 내의 사이비 우파들 때문입니다'
- 이번에 좌익 명단을 발표하셨는데요, 혹시 위협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위협은 없었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좌익을 척결하는 데에는 희생 없이는 안 됩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한 것은 우리 사회에 있는 좌익들의 실체를 밝히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방제 事變(사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좌익들을 막을 수 있지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행동본부의 모든 사람들은 그런 용기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1600여명의 6.25 전사자 사실 확인해 주었다”
- 국민행동본부에서 일전에 ‘엔테베 작전을 해서라도 국군포로를 구하라’고 신문광고를 내신 적이 있습니다. 본부장님께서는 국군포로 등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혹시 그런 계기가 된 일이 있으십니까.
“예전에 보훈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6.25사변 당시 부상당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50여 년 전의 전쟁 부상자들이 지금도 있다는 겁니다. 그때 6.25당시 16세 소년병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년병은 6.25 당시 부산 영도다리를 거닐다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아 헌병에 의해 강제징집 됐습니다. 그 소년병은 안타깝게도 백마고지 전투 중 포탄에 맞아 사지가 절단되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소년병은 대구에 있었던 제1육군병원에서 후송돼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습니다. 군의관은 전사 판정을 내렸고요. 그런데 이 소년병의 死因(사인)이 행정착오로 인해 病死(병사)로 처리돼버린 겁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중에 유족들이 찾아가보니 전사가 아니라 병사로 처리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참고로 병사로 처리된 사람은 국가유공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가족들은 육군본부를 찾아가 병사가 아니라 전사라는 것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육군본부 측에서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유족들은 每週마다 육군본부를 찾아갔으나 육군본부 측은 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군 당국에서 이렇게 무성의하게 대응하니까 유족들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 건 공산당이고 그 다음은 軍(군)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992년에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만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수개월 동안 뛰었습니다. 당시 부산 용호동의 육군문서보관소에서 병상일지를 찾아 수술중 전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국립묘지에서 화장 보고를 찾았습니다. 그 다음에 소년병이 매장된 묘역을 찾았습니다. 그 소년병의 묘지에 대해 행정담당자에 들어보니 이런 사실이 밝혀진 당시(1993년)까지 43년간 한 번도 그 사람의 묘지를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멀쩡히 가족들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착오로 인해 꽃 한 송이 꽂아주러 온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이런 일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 후 이 소년병과 같은 처지에 있던 약 1600여 명의 전사자들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해줬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상세히 한다면 며칠 밤을 해야 할 겁니다. 눈물 없이는 못 듣죠.“
- 6.25사변 당시의 전사자 문제도 그렇지만 지금 정권은 국군포로 문제 등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戰死者 처리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사례를 보면서 우리 대령 연합회와 국민행동본부에서는 지금도 이 세상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이렇게 방치하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한 번 보십시오. 지금은 더 가관입니다. 홍콩에 가서 죽창, 쇠파이프 들고 불법폭력시위를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외교 장관이 전화를 걸어 풀어주라고 하면서 우리 국군 포로 문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해 그렇게 퍼주고도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연방제 事變 저지가 2006년의 최대 목표”
- 2006년도에는 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는 기업이 아니라 애국운동을 하는 단체이다 보니 특별한 사업계획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의 사안에 따라 움직입니다. 지금 생각하는 2006년의 가장 큰 과제는 예상되는 연방제 事變을 어떻게 저지하느냐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념적으로 확실한 정당의 출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국민행동본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이념이 확실한 정당의 출현을 위해 노력할 예정입니다. 세번째로 생각하는 과제는 국민행동본부의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겁니다. 이는 이념 정당의 출현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이 정권이 2007년 大選까지 계속 정권을 잡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이 좌파 정권 종식 시키겠다는 차원에서 전국조직을 만들어 이념이 확실한 우파 정당이 조직되는 데 하나의 힘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목표를 가지고 일단 먼저 행동을 하겠습니다. 손해 보지 않을까 앞뒤를 재면서 하는 게 아니라 일단 행동하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유엔에서도 북한인권 결의안이 통과됐고 전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동포들의 일이지 않습니까.”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2006년에는 반드시 목표를 이루셨으면 합니다.
허준영 청장은 방패들고 30분만 맞서보라
- 一枝梅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5-12-16, 11: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