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여성들, 잃어버린 야생에 감동하다.
`킹콩2005` 무얼 전하나?
해골 섬의 20피트짜리 거대 유인원이 여성 관객을 울린다. 로맨틱한 고릴라가 보여주는 지고지순한 사랑 탓일까? 아니면 그의 거대한 크기와 힘 때문일까?
3시간여의 상영 시간 중에서 처음 1시간을 주인공 없이 보내 기대감이 최고조에 이른 관객들 앞에 ‘콩’의 등장은 평이하게 보인다. 그러나 야만적인 해골 섬의 원주민에게 붙잡혀 ‘콩’의 재물로 바쳐진 뉴욕의 여배우 ‘앤 대로우’. 금발에 하늘거리는 의상을 걸친 그녀의 코앞에서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포효하는 ‘콩’ 을 만난 관객들은 조금씩 전율하기 시작한다. 확실히 스톱모션의 옛날 킹콩보다는 폼이 난다.
영화는 피터 잭슨 판 ‘쥬라기 공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종 공룡을 비롯한 원시 괴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사람만한 거머리와 T-렉스 공룡은 일단 그 크기로 관객을 위협한다. 파충류와 박쥐, 거머리와 날벌레들은 인간이 장난감처럼 보일만큼 비상식적인 스케일로 등장한다. 극장 여기저기서 흠칫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이 시점에서 ‘콩’은 포악한 거대 유인원에서 섬을 지키는 정글의 왕자로 변신한다. 사람을 통째로 잡아먹는 거머리에 비하면 먼 산을 바라보며 나무뿌리를 씹는 20피트 유인원은 점잖지 않은가. 겉모습은 험하게 보여도, 여주인공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데다 여주인공의 쇼에 즐거워하기도 하고, 혼자 넘어지며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선사한다.
해골섬의 괴물들을 단번에 죽이는 잔인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미 이 거대한 고릴라의 친구가 되어 있다. 공룡과 맞먹는 거대한 크기와 괴력을 가졌지만 ‘콩’은 오로지 한 여인을 지키는 야생의 로맨티스트다. 게다가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없고, 쓸데없는 말도 안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연인을 동반하고 극장을 찾은 남성 관객에게는 부정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비명이 터져나올법한 잔인한 장면들에서조차 여성관객들의 긍정적인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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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 살던 ‘콩’은 영화감독인 ‘던햄’으로 인해 사로잡혀 브로드웨이의 구경거리가 된다. 흑인 댄서들이 무대 위를 돌면서 춤을 추고, ‘앤’의 대역은 무대 가운데 묶여 거짓 비명을 지르고, 카메라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고, 거대 고릴라의 눈빛은 슬퍼보인다.
‘콩’은 마침내 극장을 부수고 한겨울 브로드웨이 거리로 나선다. 여기서 감독은 ‘킹콩’이 괴수영화였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환기시킨다.
예정되어 있는 영화의 끝처럼 비극적인 운명이 두 주인공과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의 라스트 씬이다.
피터 잭슨의 화려한 카메라 워크가 펼쳐지는 가운데 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장면은 여러 의미에서 이 영화의 최고로 자리매김한다. 1930년대 뉴욕의 중앙에 우뚝 솟은 마천루의 정상에 서서 포효하는 정글의 지배자와 금발의 여배우라는 부조화가 관객들을 전율시킨다. 거대한 앞발이 여주인공을 스쳐 스르르 미끄러지며 빌딩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은 영화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밤바다로 빠지는 장면에 버금갈 정도.
‘콩’은 인간이 잃어버린 야생의 순수함을 의미함과 동시에 인간의 죽음에 이르는 병, 고독을 상징한다. 괴수는 죽고 여주인공은 인간 남자에게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정글이 아닌 빌딩 숲에서 살아가며 야성과 감성을 상실한 현대의 남성들에게 이 영화는 언짢은 뒷맛을 남긴다. 거대 원숭이를 상대로 한 질투라기보다는 어느 순간 사라진 자신 안의 ‘킹콩’에 대한 상실감이리라.
김정은 기자 hyciel@
'2005년판 킹콩'은 왜 여성을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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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18, 00: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