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서의 ‘他山之石’ -- 북측의 엉뚱한 ‘친일파’ 시비
지난 9월27일부터 29일까지 북한의 금강산 지역에서는 남북의 대표단 350명(남측 220명, 북측 130명)이 참석한 ‘남북 강원도 민속문화 축전’이 개최되었다. 그런데 이 축전 기간 중 엉뚱하게도 남측에서 진행 중인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 작업을 놓고 남측 참석자인 H 대학 Y 교수와 북측 참석자인 <민족화해협의회>(약칭 <민화협>)의 H 위원 사이에 매우 흥미로운 대화가 교환되었다는 소식이다.
이날 대화의 말문을 연 쪽은 북측의 H 위원. 그는 남측 Y 교수에게 “요즘 남쪽에서는 친일파 문제로 시끄러운 모양”이라고 화두를 열었다. 이에 대해 Y 교수는 “맞다”면서 “지금 남쪽에서는 3천여 명의 명단이 수록된 <친일 인명사전>이 나와 있다”고 대꾸했다. 이에 대한 북측 H 위원의 응수가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남쪽에서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에 때를 맞추어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문제의 <친일 인명사전>에 월북배우들인 문예봉(1917-1999)과 황철(1912-1961)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시비의 대상으로 삼았다.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왜정 말기에 마지못해서 저질렀던 일시적인 친일 발언 또는 행각을 이유로 ‘친일파’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특정 자연인이 ‘친일 반민족행위자’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지 그렇게 부분적인 사실을 가지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그는 한 걸음 더 나갔다. “더구나 지식인의 경우는 보다 복잡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중적인 태도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북쪽에서 있었던 ‘친일파 숙청’에 대해서 남쪽에서는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그는 북에서는 김일성의 지시로 일찍 ‘친일파 숙청’ 문제를 매듭지었다면서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일성은 일정한 ‘숙청 기준’을 만들고 이에 입각해서 단시일 안에 ‘친일파 숙청’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 때 “‘지식인’들은 ‘예외’로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북쪽에서는 공화국 수립 전후해서 국가수립 과정에 지식인들의 조력이 절대로 필요했기 때문에 김일성 수령님의 지시로 지식인들의 경우는 ‘친일파 숙청’에서 예외로 취급하여 숙청하지 않고 그들을 적극 발탁ㆍ활용했다”는 것이 H의 설명이었다. 그는 왜정 말기 ‘친일’ 경력을 가지고 해방 이후 ‘월북’한 이후 ‘공훈배우’가 된 ‘문예봉’과 ‘황철’의 경우를 그 실례로 들었다.
Y 교수와 주고받은 H의 이 같은 얘기들이 사실이라면 이 내용은 지금 남쪽에서 그들이 주관적으로 솎아 내는 소위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해 ‘인민재판’식 ‘인격살인(人格殺人)’의 도끼날을 시퍼렇게 갈고 있는 좌파 세력들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어야 한다. 그 동안 남쪽의 친북ㆍ좌익세력들은 “북한에서는 친일파들에 대한 철저한 숙청이 이루어졌으나 남한에서는 오히려 친일파들이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는 주장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오히려 북한의 정통성을 두둔하면서 그 같은 그릇된 내용의 교육으로 특히 청소년들의 국가관을 오염시켜 왔다. 그러나 금강산에서 있었던 ‘친일’ 문제에 대한 남북간 ‘대화’의 내용은 진실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분명히 해 주는 것이다. [끝]
한 북한인사의 南韓 친일파 청산론 비판
- 이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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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24, 1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