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국민행동본부 徐貞甲 본부장
“2006년에는 연방제事變 저지을 위한 전국조직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나”
국민행동본부(본부장 徐貞甲)는 올해 많은 일을 했다. 가장 큰 성과라면 좌익들의 음모와 실상을 폭로하여 국민들에게 알린 점이다. 특히 좌익단체들의 맥아더 동상 파괴 기도를 무력화시키고 8.15 행사시 노무현 정권의 태극기 금지 조치 등에 항의하여 국민저항운동을 선도한 것이 돋보인다. '반역저지 국민저항운동의 사령탑'을 자임한 국민행동본부 徐貞甲 본부장을 만나 2005년의 회고, 2006년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 2005년에 국민행동본부가 한 일들을 설명해주세요.
“2005년 국민행동본부는 애초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활동했습니다. 올해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기 때문이죠. 지난 7월부터 평택에서는 미군기지 확장 반대시위가 일어났고 광주에서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좌익 단체들이 미군기지의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쇠파이프와 죽창으로 전경들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국민행동본부는 좌익의 행동에 대응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7월10일 평택 집회에서는 좌익 단체에서 사용한 쇠파이프와 죽창을 노획하기도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 동상은 6.25사변 이후 인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맥아더 장군을 기리고자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동상을 마치 불법건축물을 철거하듯 파괴하려는 좌익 단체들이 나타났습니다.좌익들이 이런 행동에 대응하는 활동을 주로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10분 내에 이걸 철거해라”
- 회장께서는 인천 자유공원에서 좌익단체의 농성 천막을 철거하는 데 앞장섰다고 들었습니다.
“인천 자유공원에 갔을 때입니다. 당시 대령연합회 회장단은 군복을 입고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의 본부장인 박근 前 유엔대사와 함께 현장으로 갔습니다. 현장에 가서 맥아더 장군 동상 파괴 기도는 잘못된 일이라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한 다음입니다. 그 주변을 보니 맥아더 장군 동상을 파괴하려는 자들의 천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당시까지 무려 67일 동안이나 경찰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깃발을 세워둔 채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찰은 좌익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기자회견이 끝난 다음 현장에서 경찰을 지휘하고 있던 인천 중부경찰서 정보과장과 담판을 했습니다. ‘10분 내에 이걸 철거해라. 철거하기 전에 우리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천막은 곧 철거되고 좌익 단체들은 물러갔습니다'
“국민행동본부에는 회계장부가 없습니다”
- 올해 신문광고 등의 호응도가 높았다고 들었습니다. 후원금이나 성금액은 어느 정도 됩니까. 그리고 몇 분이나 참여해 주셨습니까.
“2005년 성금액은 작년에 비해 대폭 늘었습니다. 2004년에는 약 1만2000여 명이 성금을 보내주셨었습니다. 금액으로는 약 2억5000만 원 정도 됩니다. 올해는 약 1만3000여 명의 분들께서 약 3억8000만 원의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지출된 규모는 3억 8400만 원 정도입니다. 대부분이 행사와 신문광고에 들어간 비용입니다.”
- 4억 원에 가까운 돈이라면 적은 금액은 아닌데요. 회계 처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국민행동본부에는 회계장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좌파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는 우리가 회계장부를 가지고 있다 하면 ‘회계상 비리가 있을 것이다’하면서 우리 단체를 비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모든 지출과 수입 내역에 대한 증빙 자료를 은행 통장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유급직원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하기 때문에 통장만으로도 회계 장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통장거래내역이야 은행에서 기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이것으로 시비를 걸 수 없습니다.
실제로 2002년에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모함을 받아서 검찰에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통장을 가지고 가서 조사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최근 내란 선동 혐의로 고발당해 조사를 받을 때에도 회계 문제가 거론이 돼서 통장을 가지고 조사를 받았습니다.
국민행동본부가 사용하는 예산은 행사와 관련된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제가 지금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 사무총장을 자원봉사하고 있어서 거기서 일반적인 사무용품이라든지 기물 같은 것은 모두 제공을 받습니다. 다만 애국운동을 하려면 사무실은 있어야 하니까 사무실 관리비와 월세의 경우에는 지출이 됩니다. 그 외 다른 곳에 지출되는 건 없습니다. 물론 다른 곳에 돈을 쓸 일은 많지만 그건 제가 초청 강연회에 연사로 강연한 수입으로 메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쓰지 않고서도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자원봉사해주시는 대령들이 모두 연금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나와서 자원봉사를 하는 겁니다. 다만 자원봉사하시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국민행동본부를 이끄시면서 보람을 느끼십니까.
“저는 보람 있는 생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애국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좀더 이런 활동을 조직적으로 했으면 하는 것이 한 가지 바람입니다.
이제는 애국운동을 하면서 항상 초연하게 살 겁니다. 애국을 하는 데는 항상 초연해야 합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애국활동을 하다가 죽는 게 일생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 활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애국 진영 내의 사이비 우파들 때문입니다'
- 이번에 좌익 명단을 발표하셨는데요, 혹시 위협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위협은 없었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좌익을 척결하는 데에는 희생 없이는 안 됩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한 것은 우리 사회에 있는 좌익들의 실체를 밝히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방제 事變(사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좌익들을 막을 수 있지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행동본부의 모든 사람들은 그런 용기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1600여명의 6.25 전사자 사실 확인해 주었다”
- 국민행동본부에서 일전에 ‘엔테베 작전을 해서라도 국군포로를 구하라’고 신문광고를 내신 적이 있습니다. 본부장님께서는 국군포로 등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혹시 그런 계기가 된 일이 있으십니까.
“예전에 보훈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6.25사변 당시 부상당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50여 년 전의 전쟁 부상자들이 지금도 있다는 겁니다. 그때 6.25당시 16세 소년병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년병은 6.25 당시 부산 영도다리를 거닐다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아 헌병에 의해 강제징집 됐습니다. 그 소년병은 안타깝게도 백마고지 전투 중 포탄에 맞아 사지가 절단되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소년병은 대구에 있었던 제1육군병원에서 후송돼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습니다. 군의관은 전사 판정을 내렸고요. 그런데 이 소년병의 死因(사인)이 행정착오로 인해 病死(병사)로 처리돼버린 겁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중에 유족들이 찾아가보니 전사가 아니라 병사로 처리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참고로 병사로 처리된 사람은 국가유공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가족들은 육군본부를 찾아가 병사가 아니라 전사라는 것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육군본부 측에서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유족들은 每週마다 육군본부를 찾아갔으나 육군본부 측은 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군 당국에서 이렇게 무성의하게 대응하니까 유족들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 건 공산당이고 그 다음은 軍(군)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992년에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만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수개월 동안 뛰었습니다. 당시 부산 용호동의 육군문서보관소에서 병상일지를 찾아 수술중 전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국립묘지에서 화장 보고를 찾았습니다. 그 다음에 소년병이 매장된 묘역을 찾았습니다. 그 소년병의 묘지에 대해 행정담당자에 들어보니 이런 사실이 밝혀진 당시(1993년)까지 43년간 한 번도 그 사람의 묘지를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멀쩡히 가족들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착오로 인해 꽃 한 송이 꽂아주러 온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이런 일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 후 이 소년병과 같은 처지에 있던 약 1600여 명의 전사자들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해줬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상세히 한다면 며칠 밤을 해야 할 겁니다. 눈물 없이는 못 듣죠.“
- 6.25사변 당시의 전사자 문제도 그렇지만 지금 정권은 국군포로 문제 등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戰死者 처리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사례를 보면서 우리 대령 연합회와 국민행동본부에서는 지금도 이 세상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이렇게 방치하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한 번 보십시오. 지금은 더 가관입니다. 홍콩에 가서 죽창, 쇠파이프 들고 불법폭력시위를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외교 장관이 전화를 걸어 풀어주라고 하면서 우리 국군 포로 문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해 그렇게 퍼주고도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연방제 事變 저지가 2006년의 최대 목표”
- 2006년도에는 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는 기업이 아니라 애국운동을 하는 단체이다 보니 특별한 사업계획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의 사안에 따라 움직입니다. 지금 생각하는 2006년의 가장 큰 과제는 예상되는 연방제 事變을 어떻게 저지하느냐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념적으로 확실한 정당의 출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국민행동본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이념이 확실한 정당의 출현을 위해 노력할 예정입니다. 세번째로 생각하는 과제는 국민행동본부의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겁니다. 이는 이념 정당의 출현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이 정권이 2007년 大選까지 계속 정권을 잡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이 좌파 정권 종식 시키겠다는 차원에서 전국조직을 만들어 이념이 확실한 우파 정당이 조직되는 데 하나의 힘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목표를 가지고 일단 먼저 행동을 하겠습니다. 손해 보지 않을까 앞뒤를 재면서 하는 게 아니라 일단 행동하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유엔에서도 북한인권 결의안이 통과됐고 전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동포들의 일이지 않습니까.”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인터뷰/'愛國넘버원'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 全敬雄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5-12-27, 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