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한국과 잠비아의 1인당 소득은 비슷하였으나 지금은 한국이 33배다. 386들 덕분에?
다음은 1965년에 독립직전의 아프리카 잠비아의 룬다지라는 곳에서 잠시동안 중등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 영국 이코노미스트誌 前 해외담당 편집인 John Grimond씨가 40년 만에 룬다지를 방문하고 쓴 기사의 결론부분이다.
<룬다지에서 어떠한 것을 보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반세기 전에는 한국과 잠비아의 1인당 소득이 비슷하였으며 지금은 한국인의 소득이 잠비아보다 33배나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40년간의 불필요한 가난, 失政(실정)과 깨어진 희망에 대한 누적된 증거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 많은 망가진 희망을 나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주된 후회는 1965년 그때에는 佛語나 물리학 대신에 한국학을 가르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에 대한 교재가 없었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한국에 대해서 가르치기에는 아직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Africa 40years on.
The Economist December 24 2005
John Grimond, our former foreign editor, revisits the corner of Zambia where he taught in 1965
..........
I had been prepared for most of what I found in Lundazi, Zambia: I knew that half a century ago Zambia and South Korea had had roughly the same income per person, and now Korea's was 32 times greater. So I was expecting the accumulated evidence of 40 years needless poverty, misgovernment and dashed hopes. Many of those dashed hopes I shared. But my main regret was that, back in 1965, I had not been able, instead of French and physics, to teach Korean studies, even if I had no books. Perhaps it is not too late for someone else.
다음은 1965년에 독립직전의 아프리카 잠비아의 룬다지라는 곳에서 잠시동안 중등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 영국 이코노미스트誌 前 해외담당 편집인 John Grimond씨가 40년 만에 룬다지를 방문하고 쓴 기사의 결론부분이다.
<룬다지에서 어떠한 것을 보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반세기 전에는 한국과 잠비아의 1인당 소득이 비슷하였으며 지금은 한국인의 소득이 잠비아보다 33배나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40년간의 불필요한 가난, 失政(실정)과 깨어진 희망에 대한 누적된 증거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 많은 망가진 희망을 나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주된 후회는 1965년 그때에는 佛語나 물리학 대신에 한국학을 가르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에 대한 교재가 없었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한국에 대해서 가르치기에는 아직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Africa 40years on.
The Economist December 24 2005
John Grimond, our former foreign editor, revisits the corner of Zambia where he taught in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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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d been prepared for most of what I found in Lundazi, Zambia: I knew that half a century ago Zambia and South Korea had had roughly the same income per person, and now Korea's was 32 times greater. So I was expecting the accumulated evidence of 40 years needless poverty, misgovernment and dashed hopes. Many of those dashed hopes I shared. But my main regret was that, back in 1965, I had not been able, instead of French and physics, to teach Korean studies, even if I had no books. Perhaps it is not too late for someone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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