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정 사학법을 밀어붙이는 전교조와 親전교조 단체, 정부,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사학재단 간의 대립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교육부는 사학재단에 대해서는 마치 모든 재단이 비리가 있는 양 무섭게 몰아치면서 전교조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게 대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이런 글들을 읽었다면 전교조에 너그러울 수 있는지 궁금하다.
신현수 씨는 '군자산의 약속'이라는 시집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현재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민중연대 인천지부, 맥아더 동상파괴기도 당시 핵심단체) 상임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장, 우리 땅 부평미군기지 되찾기 및 시민공원 조성을 위한 인천시민회의 공동대표, 6.15남북공동선언 실천단 인천본부장, <부평신문> 이사를 맡고 있다.
신현수 씨는 1989년 대천고 근무 당시 전교조에 가입했다 해직됐다. 1994년 대천여고로 복직, 인천 부개여고를 거쳐 현재 부평여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더 많은 글은 신현수 씨의 홈페이지(http://shin.issp.or.kr)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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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군자산의 약속] 中
대~한민국·1
백주 대낮에
그냥 길을 걸어가다가
남의 나라 장갑차에 깔려 죽는 나라,
대~한민국.
앞서거니 뒤서거니
친구 생일 잔치 가던 우리 딸 효순이, 미선이
둘이 한꺼번에
미국 놈 장갑차에 깔려
두개골이 부서지고
내장이 터져서 죽는 나라,
대~한민국.
나, 초등학교 졸업장 밖에 없어요,
내가 딸의 영전에 향을 피워야 합니까, 꽃을 바쳐야 합니까,
절규하는 아버지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그러고도 아무 잘못 없다고,
사고를 낸 미군은
영내에서 정상적으로 잘 생활하고 있다고,
방송에 나와 떠들어대도 아무렇지도 않은 나라,
대~한민국.
우리나라 안에서
남의 나라 놈이
취재 중인 우리나라 기자를
쇠사슬로 꽁꽁 묶고
온몸을 군화발로 짓밟아도 되는 나라,
대~한민국.
우리나라 안에서
다른 나라 놈이 쏜 물대포에
우리나라 사람이 맞아 쓰러지는 나라,
대~한민국.
그런데 그 놈들에게
거꾸로 표창장을 주는 미친 나라,
대~한민국.
태어난 게 너무 재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나라도 아닌 나라,
대~한민국
아 씨발,
대~한민국
대~한민국·2 - 그래, 효순아, 미선아 다 너희들 잘못이야
1
운전병 마크워커 병장 '지금 상태는 아주 행복하다. 할 말이 없다. 이번 사고는 나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한국은 아주 지내기 좋은 곳이다.'
판사 에드워드 오브라이언 중령 '여중생들에게 과실이 크다고 생각하면 니노 병장에게 조금의 과실이 있더라도 무죄에 해당한다.'
변호인 로버트 브루턴 소령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와 운전병 마크 워커가 관제병과 운전병으로서 의무를 다했고 시간이 짧아 불가피한 사고였다. 피고인들은 위급한 상황을 맞아 취해야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미 8군사령관 켐벨 중장 '공정하고 편견 없는 재판이었다. 우려되는 (한국민들의) 시위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법을 위반하는 폭력적 시위를 묵인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미국에 있는 병사들의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미군 측 관계자 '방청을 예상해 통역사 등 전문가들을 대기시켰으나 유가족들이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픔을 빨리 잊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부 당국자 '법무부에서 입장을 밝힌 대로 아쉬움은 남지만 이번 무죄평결 결과를 우리 정부는 존중한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 '시위자들은 급진주의자들이고 아주 한줌 밖에 안 된다.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세력 확장을 위한 방편으로, 반미감정을 부추기기 위한 좋은 꺼리로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주한미군 관계자 '무죄평결을 받은 미군 2명 가운데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병장이 최근 전역을 신청했으며,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은 근무기간이 이미 1년을 넘어 전출할 대상이다. 이들은 이르면 금명간 출국할 것으로 알고 있다'
2
그 날 2002년 11월22일은,
가해자가 가해자를 평결한,
동료가 동료를 평결한,
미군새끼들이 미군새끼들에게 무죄 평결한 그 날은
미국새끼들이 우리 민족 전체에게 테러를 한 날,
아니 그 미군 놈들에게 아무런 죄가 없으면
그럼 우리 효순이 미선이 잘못이란 말인가 ?
장갑차의 잘못이란 말인가 ?
아니면 장갑차 바퀴의 잘못이란 말인가 ?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죄였다.
식민지에서 미국 놈들 허락 안 받고
그 시간에 그 도로를 걸어간 죄.
그래 미순아, 효순아 다 너희들 잘못이야
식민지에서 감히
그 날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께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지방도 56호선을
미국 놈들 허락도 안 받고 걸어간 죄.
그리하여 이 땅 식민지 한반도에서
식민지의 딸로 태어난 죄.
우리 재교 머리를 깎네
얼굴도 잘생긴 우리 재교 머리를 깎네.
50년만에 정권교체 되었다는데
이제부터 국민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데
그래서 소위 국민의 정부라는데
국민의 한 사람 재교는 또 머리를 깎네.
사실 그 누구보다도
재교야말로 정권교체의
가장 큰 공헌자
재교는 인하대 총학생회장 출신
재교는 전대협 1기 의장 출신.
재교는 87년 인천의 6월 항쟁을 주도한 사람.
재교는 얼굴이 잘 생겨 여장을 하고
학교를 빠져나갔던 사람
재교는 지금의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연설도 한 사람.
그리고 많은 시간 감옥에 갇혔던 사람.
그 시대는 대학생만 살았는지
학번 있는 놈만 사람인지
함께 운동했던 다른 친구들이
말도 안 되는 386이네 286이네 떠들 때,
지들이 무슨 흡혈귀야
젊은 피네, 늙은 피네 떠들 때,
매일 그 나물에 그 밥이면서
신당이네 플러스 알파네 떠들 때 ,
재교 머리를 깎네.
1999년 10월 23일,
국가보안법 철폐 농성단장 되어
머리통도 잘 생긴 재교 집회장에서 또 머리를 깎네.
군자산의 약속 -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결성 10주년에 부쳐
만약 우리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지나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한숨과 치욕 속에서 보내야 할 지 모른다.
만약 우리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지나온 세월보다 더 많은 세월을
남과 북이 총칼 맞대고 서 있어야 할지 모른다.
지나간 시절의 휘발과 이탈, 분열과 혼란을 간신히 딛고 선 전국연합 10년
이제 우리, 민족자주의 이념이 있고
존경과 신망의 지도가 있고
군자산의 약속이 있는 우리가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를 그냥 흘려보내고 만다면
우리 스스로 이 어둔 세상의 대안이 되고
민중들의 희망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사와 민족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다.
6.15 공동선언을 바닥에 깐
3년 안에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민족민주 정당 건설,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연방통일조국 건설은
그리하여 농민은 이 땅의 주인이 되고
노동자는 공장의 주인이 되고
청년 학생 우리 모두 이 세상의 주인 되는 세상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아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버리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진실로 목숨까지 포함하여
평양일기. 3 - 고려 호텔의 노동신문
평양역 바로 옆에 있는 중구역 창광거리의 고려호텔
고려호텔의 안내원, 의례원, 요리원, 봉사원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열렬히 환영해 주는구나.
고려호텔은 85년에 만들어진 45층 짜리 쌍탑 모양
방은 500개쯤, 하룻밤 자는데
북쪽 돈으로 250원에서 300원쯤
2원이 약 1달러쯤 되니까
우리 돈으로 치면 약 20만원쯤 되나?
작년 이산가족 방문 때 남측 사람들이 묵었던 바로 그곳
식당 문 앞에서 물수건을 나누어주던 여성
정말 예뻐서
사진이라도 한 장 꼭 찍어야지 생각도 하고.
호텔 프론트에 배달되어온 노동신문
아침에 일어나 펼쳐본 신문이
한겨레신문이나 경인일보나 인천일보가 아니라
노동신문이라니 참 믿기지 않아.
신문 글자가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였는데
하기야 어차피 다 읽어야 할 내용
한정된 지면에 많은 얘기를 넣는 것이 중요하니까.
이 가족이 살아가는 방법
이 가족의
아빠 장금석은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부평지부의 사무국장이고
엄마 김미진은
인천연대 부설 사단법인 청소년 문화마당 내일의 상근자이고
이들이 낳은 딸 평화는
(딸 이름을 부부가 일하는 단체의 이름으로 지었다)
희망세상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데 올해 세살이다.
둘 다 가난한 시민단체의 상근자로 일하고 있으니
상근비 둘이 합쳐봐야 몇 십 만원도 안될 테지만
그래서 늘 경제적으로 쪼들릴 테지만
쌀은 어떻게 사는지
(하기야 집에서 밥먹을 일이 별로 없나 ?)
아기 우유는 어떻게 사는지
생활비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봐야 대 줄 것도 아니므로
나는 묻지 않는다
이 부부가 살면서 가장 사치하는 일임에 분명한
노래방엘 함께 갔는데
이 부부, 자자의 버스 안에선가 하는 노래를
금석이는 평화를 안고
미진이는 처녀 때보다 분명히 훨씬 굵어진 허리를 흔들면서
아주 신나게 남녀 혼성 이중창으로 부른다
춤까지 추어가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둘 다 속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평화가 예쁜 옷을 입고 있길래 물어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전부 거둬 입혔어요, 한다.
돈이 없으면 사람의 가치도 따라서 추락하는
극악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데
이 부부라고 어려움이 왜 없을까
헤어지면서 시간이 늦어 택시 타고 가는데
나는 택시비 있냐는 소리
줄 것도 아니므로
묻지 않았다.
두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한 '싸가지'없는 말과 행동(우리교육 2003년 1월호)
꽃다운 두 여중생이 장갑차에 깔려 짐승만도 못한 죽음을 당한지 벌써 반년이 되어 간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온 나라가 월드컵에 미쳐 돌아가던 2002년 6월 13일, 우리 딸 효순이, 미선이는 식민지만도 못한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로 50톤이 넘는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두개골이 부서지고, 뇌수가 흘러나온 채로 비명도 못 지르고 죽어갔다. 그러나 살인자인 두 미군은 지난 11월 20일과 22일 무죄평결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모든 국민들은 미국의 이런 싸가지 없는 행태에 대해 분노에 떨고 있다.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나와 살인자 미군처벌, 소파 개정을 요구하며 두 여중생을 추모하고 있다.
두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싸가지 없는 자들은 미국임에 틀림없다. 가해자가 가해자를 재판하는 제도 자체가 싸가지 없지만, 자기들끼리 한 재판이 끝나고 나서 미국인들이 한 말은 더욱 싸가지 없다. 운전병이었던 마크워커 병장은 무죄평결을 받고 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상태는 아주 행복하다. 할 말이 없다. 이번 사고는 나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한국은 아주 지내기 좋은 곳이다.' 판사를 맡았던 에드워드 오브라이언 중령은 평결 전부터 미리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여중생들에게 과실이 크다고 생각하면 니노 병장에게 조금의 과실이 있더라도 무죄에 해당한다.' 변호인 로버트 브루턴 소령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와 운전병 마크 워커가 관제병과 운전병으로서 의무를 다했고 시간이 짧아 불가피한 사고였다. 피고인들은 위급한 상황을 맞아 취해야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강변했으며 미 8군사령관 켐벨 중장은 '공정하고 편견 없는 재판이었다. 우려되는 (한국민들의) 시위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법을 위반하는 폭력적 시위를 묵인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미국에 있는 병사들의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미군 측 관계자는 '방청을 예상해 통역사 등 전문가들을 대기시켰으나 유가족들이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픔을 빨리 잊고 싶었던 모양이다.'라고 약을 올렸으며, 주한미군 관계자는 '무죄평결을 받은 미군 2명 가운데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병장이 최근 전역을 신청했으며,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은 근무기간이 이미 1년을 넘어 전출할 대상이다. 이들은 이르면 금명간 출국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고, 과연 그들의 말대로 지난 11월 27일 오산비행장에서 유유히 자기네 나라로 떠났다. 미군과 그 직계 가족은 한미행정협정에 따라 미군기지 내에서 직접 입·출국이 가능하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소는 미군의 출입국 편의를 봐주기 위해 오산출장소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하기야 이번 일 말고도 미군이 이 땅에 저지른 싸가지 없는 범죄는 한두 가지가 아니며 말로 다 할 수 없다. 동두천에서 일어난 윤금이씨 살해 사건, 콜라 병으로 윤씨의 이마를 여러 차례 가격했고 증거를 없애려고 입에 성냥개비를 부러뜨려 물리고, 온몸에는 하얀 세제가루를 뿌려놓았으며, 우산대를 국부에 찔러 넣었다. 서울 충무로 지하철역 난동 사건, 미군들은 전동차안에서 난동을 부리며 전동차 안의 40대 아주머니의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성추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기순 살해사건, 흉기로 목이 반쯤 잘린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조중필씨 살해사건, 아무 이유 없이 조씨의 가슴과 목 등 9군데를 잭나이프로 마구 찔러 현장에서 과다출혈로 숨지게 했다. 허주연씨 살해 방화사건, 미군이 오른쪽 팔꿈치로 허주연씨의 명치를 때려 숨지게 하였고, 이어 자신의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 허주연씨가 누워있는 침대에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태원 클럽 여종업원 살해사건, 매카시 상병은 술집 내실에서 여종업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그리고 바로 작년에 일어난 전동록씨 미군 고압선 감전 사망사건, 카메라 공장 증축현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전동록씨는 철제 지붕 마무리 공사를 하면서 철판조각을 반으로 접어 지붕 아래로 내리려다 철판조각이 지붕 위 약 2-3m 상공의 고압선에 닿으면서 감전됐고 이 사고로 전씨는 양쪽 팔다리에 중화상을 입고 팔다리를 모두 잘라냈으나 결국 2002년 6월 6일 사망했다. 문제의 고압선은 인근 미군부대 캠프 외부의 양수기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미군 측에서 설치, 관리하는 것으로 2만 볼트가 훨씬 넘는 고압에도 불구하고 피복조차 씌워져 있지 않았다. 이에 공사 관계자들이 공사 시작 전부터 수 차례 미군 측에 고압선 철거 또는 이전을 요구하였지만 미군은 번번이 묵살했다. 그리고 이들은 걸핏하면 소파를 들이댄다.
그러면 도대체 소위 소파 (한미행정협정)란 얼마나 싸가지 없는 법인가 ? 일본과 미국사이에 맺은 소파와는 얼마나 다르고 또 불공평한가 ? 일본의 SOFA 적용 대상자는 '(미국) 군법에 따르는 자'로 규정돼 있지만, 우리 SOFA에서는 미군이나 군속, 그들의 직계가족, 기타 친척, 초청계약자 등등 영리 목적의 미국인까지 특혜를 받게 돼있다. 재판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공무상 범죄 여부 판단도 일본에서는 일본 법원이 최종 판단하도록 하고 있지만, 한미 SOFA에서는 미군 장성이 발행하는 공무증명서만 있으면 1차적 재판권이 미군으로 넘어가도록 되어 있다. 한국은 지난해 개정으로 비로소 살인, 강간 등 12개 중대 범죄에 한해서 기소시 신병을 넘겨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일본은 벌써부터 기소시 신병 인도 기준을 적용해왔다. 그밖에도 한미 SOFA에는 '미국 정부 대표가 입회하지 않았을 때 행해진 진술은 증거능력을 갖지 않는다, 미국 군대의 위신에 합당하는 조건이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고 되어 있다. 다른 나라에는 유례가 없는 조항들이다. 그리고 소파는 번역문이 영문과 충돌할 때 영어원본을 우선으로 하게 되어 있다.
미국과 소파의 싸가지 없음은 그렇다 치고 여중생 사망사건을 보도하는 조, 중, 동 등의 친미 사대 언론을 보면, 그 중에서도 특히 친미 조선일보를 보면 싸가지 없기가 미국과 비슷하다. 조선일보는 처음에는 여중생 사건을 다루지도 않았다.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제일 처음 다룬 보도도 '미군들 궤도차에 숨진 여중생 미군부대서 추모행사'였다. 조선일보는 부시가 간접 사과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 사설에서 부시의 사과를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높게 평가하면서 'SOFA 개정문제는 한미동맹 강화의 큰 틀에서 이뤄져야 한다. 정치권, 여론주도층, 교육계, 대중연예인, 일부 시위대 등이 반미정서 확산을 이용하거나 상처를 덧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떠들어댔다. 각종 항의 시위의 움직임도 아주 작게 다뤘다. 특히 1만 명이 넘게 모였던 광화문에서의 첫 번째 촛불시위는 시민들과 네티즌들이 월드컵 이후 자발적으로 모인 행사였으나 조선일보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전교조의 공동훈화 수업에 대해서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반미의식을 심으려 하는 등의 움직임은 갈등의 치유나 해소보다는 갈등의 끝없는 격화만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깊이 성찰해볼 일이다.'라고 해묵은 의식화교육으로 몰아 부쳤다. 싸가지 없는 조선일보가 아닐 수 없다.
모 당의 대통령 후보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일찍이 미국을 방문해 이북을 악의 축으로 몰면서 부시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세상이 다 아는 친미주의자인 이 사람은 그 동안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아무런 의사 표시도 없다가 온 나라가 소파개정으로 들끓자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여중생의 집까지 방문해서는 유족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정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그 후의 처리도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가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어제 미국 대사를 만나서 SOFA 개정과 미국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추모비로 이동, 두 여중생의 사진 위에 쌓인 눈을 손으로 쓸어 내린 뒤 눈시울을 붉혔다'. 무슨 '악어의 눈물'도 아니고, 그의 이런 발언과 눈물과 행동은 평소와는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만일 나라의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선거 과정이 아니었다면 이런 말과 행동과 눈물을 보였을까 ? 싸가지 없는 짓이다. 싸가지 없는 발언의 백미는 이 당의 모 대표의 발언이었다. 그는 반미시위 확산과 관련해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반미문제가 위험한 수준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직적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냄새까지 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와 한 하늘을 이고 사는 게 참으로 부끄럽다. 보이지 않는 손 ? 물론 있다. 수십 년 간 미국에 당하고만 살아온 우리 민족이 이제는 더 이상 당하고만은 살 수 없다는 남녀노소의 한결같은 양심의 소리다.
이번 두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당국의 태도도 싸가지 없기는 매일반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대통령이 한 말이라곤 '반미는 안 된다, 반미시위 엄단' 등이었고, 그나마 여론에 등 떠밀려 뒤늦게 지시한 SOFA 개선안이라는 것도 독소조항은 그대로 둔 채 초동수사 참여에 대한 개선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었다. 재발 방지책이라는 것도 결국은 미군 측에게 훈련의 편의만을 제공하는 방안이었고.
싸가지 없기는 교육부도 이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두 여중생 살인사건에 대해 전교조에서 훈화수업을 한다고 했더니, 즉시 시도교육국장 회의를 열어, '전국 초·중·고교 교사들이 소파 관련 훈화수업을 실시하려면 교육부 지침에 따라, 학년 및 교과협의회의 협의를 거쳐, 교수학습안을 작성 한 후, 학교장의 승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 미군이 한반도 평화유지와 안정에 기여한 점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또 '교사의 시위 및 서명운동 참여에 대해서는 교원복무규정 준수 차원에서 시·도 교육청 및 학교장 중심 지도를 강화하는 한편, 교사와 학생들이 반미집회에 참가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 지도·교육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마치 미국의 교육부가 발표한 듯하지 않은가 ? 정말 싸가지 없는 교육부다.
마지막으로 정부 당국자, '법무부에서 입장을 밝힌 대로 아쉬움은 남지만 이번 무죄평결 결과를 우리 정부는 존중한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 '시위자들은 급진주의자들이고 아주 한줌 밖에 안 된다.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세력 확장을 위한 방편으로, 반미감정을 부추기기 위한 좋은 꺼리로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아, 제발 앞으로는 이런 '싸가지' 없는 발언, 싸가지 없는 행동들이 아니라 제발 '싹수'있는 발언, 싹수있는 행동들을 지켜보며 살고 싶다.
'딴 나라 장수 동상이 서 있는 나라' 경인일보 NGO 칼럼(2003.10.29)
'남의 나라 장수의 동상이 서 있는 나라'
맥아더를 '구세주'로 여겼던 이승만 정권이 인천의 상징인 '만국'공원에 맥아더의 동상을 세우고, 공원 이름을 '자유'공원으로 바꾼 지도 벌써 45년이 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에서는 맥아더의 군사적 업적들이란 게 사실은 평범하거나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았으며, 인간적으로도 독선적이고 이기적 기회주의자이며 자아 도취적 소아병 환자였고, 늘 고압적이고 도도하며 잘난 체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졌다는 등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정작 우리 나라에서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요지부동, 우리 나라의 '은인'이요, '구세주'다.
두루 알다시피, 맥아더는 한국전 수행과정에서의 자신의 판단착오를 감추기 위해 만주 폭격 등 여러 가지 강경한 확전론을 제시했다가, 1951년 4월 11일 트루먼에 의해 해임되었다. 그의 회고록에 의하면, 그는 만주 등지에 30 - 50발의 원자탄을 한꺼번에 투하할 것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것도 1차로. 전쟁광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30 - 50발의 원자탄을 한꺼번에 떨어뜨릴 생각을 했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만일 맥아더가 본국으로 소환되지 않고 원래 그의 계획대로 원폭투하가 진행되었다면 우리 한반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한반도는 통일은커녕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며, 전 세계는 3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치달았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맥아더는 이승만의 말대로 우리 민족에게 진정 '은인'이요, '구세주'였나?
그는 유엔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기 전 일본 점령군 사령관으로 일했다. 그는 사령관으로 부임하자마자 태평양전쟁의 주범이자, 우리 민족에게 일제 36년 동안 고통을 안겨준 주범이었던 히로히또 일왕을 사면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일본의 안정이었지,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 민중들의 고통과 아픔이 아니었다. 맥아더는 미국에게 이익이 된다면 반인륜적이고, 반인류적인 범죄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강점기 동안 일제에 빼앗긴 10만 점이 넘는 귀중한 문화재 반환요구에 대해 일본국민의 반미감정을 우려한 그는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문화재 반환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에게는 일본국민의 반미감정만 중요했지, 일제가 우리에게 빼앗아간 소중한 문화재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인천 상륙작전 당시, 유엔은 일본군국주의와 일본군의 재무장을 우려해 일본군의 한국전쟁 참여를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그러나 당시 인천 앞 바다의 기뢰 제거작업은 일본군의 몫이었다. 맥아더는 국제법을 어기고 일본군을 한국전에 참전시키는 불법을 저질렀던 것이다. 상륙작전에 참가한 일본군은 6천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에서든 예들처럼 그는 한 번도 우리 나라의 이익을 위하여 싸운 적이 없다. 인천 상륙작전을 포함하여, 그는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수행했던 것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그가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다준 고마운 '은인'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그냥 마음속으로 고마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되지, 꼭 동상까지 세워 그것을 기념해야 하는가. 약간의 도움을 받은 이웃집 사람의 인형을 만들어 자기 집 대문 앞에 세워 둔 꼴과 뭐가 다른가?
김남주의 시처럼 전세계에서 '남의 나라 장수의 동상이 서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가 유일하다. 맥아더 동상은 한강다리를 끊어버리고 백성들이야 죽든 말든 자기 혼자만 도망친 이승만이 9. 28 서울 수복 후 맥아더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우리는 장군을 우리 민족의 구세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던 바로 그 시대의 유물이다. 이제 충분히 고마워했다. 맥아더에 대한 우리의 고마운 마음을 세계 만방에 45년 동안이나 알렸다.
이유야 어쨌든 같은 민족끼리 죽이고 죽인 전쟁을 기념하는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에 외국군대를 끌어들이고 그 장수의 동상까지 세운 일은 주권국가로서 자랑할 일이 전혀 아니다. 하루 빨리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는 일, 냉전의 상징 '자유'공원의 이름을 원래의 이름인 만국공원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야말로 인천시민의 자존심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는 길이다.
인천일보 인천칼럼 1 (2005. 8. 11일자) - ‘6.15 시대’의 문학
바야흐로 ‘6. 15 시대’가 시작되었다. 지난 2005년 6월 15일, 6. 15 공동선언 발표 5년 만에 처음으로 평양에서 열렸던 당국간 공동 기념행사, 오는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간 서울에서 개최될 '자주 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통일대축전‘과 남북 통일축구, 9월 1일부터 4일까지 북측 선수와 대규모 응원단까지 참가한 가운데 인천에서 열리게 될 아시아 육상경기대회, 필자도 참가한 가운데 지난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지에서 열렸던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등등의 행사들을 보면 이제 ‘6.15 시대’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역사적 명제로 되었다.
특히 6월 15일, 평양에서 있었던 ‘민족통일대회’에서는 민간차원의 6.15선언이라 할 5개항의 '민족통일선언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는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하자, 6월 15일을 '6.15공동선언 발표 기념일’ 내지는 ‘우리 민족끼리의 날'로 제정하고 민족공동으로 기념하자, 당국, 민간사이의 공동보조를 도모하고 연대와 협조를 강화하자, 6.15 공동위원회를 가장 폭넓고 위력한 통일애국 운동기구로 강화 발전시키자는 등의 내용이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우린 서로 찬양하고 고무해야 한다’며 다소 위험한(?) 수위의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실로 분단 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민족작가대회에서 합의한 남북 통합 문인단체인 '6.15 민족문학인협회'는 남북의 작가들이 다른 부문들보다 앞장서서 6.15 시대를 활짝 열어갈 것을 다짐하는 역사적 사변이었다. 앞으로 ‘민족문학인협회’에서는 남북 작가들을 대상으로 '6.15 통일문학상'을 시상하기로 하였으며, 문예지 '통일문학'도 발행하기로 합의했다.
이 작가대회에 참가한 6. 15 남측 공동위 백낙청 상임대표는 ‘분단에 길들여졌던 문학적 상상력을 복원하고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며, 통일의 시대 우리 문학의 새로운 성취를 향한 중요한 대회’라고 강조했으며, 북측의 이동구 선생은 ‘이념과 신앙을 뛰어넘은 통일문학과 6.15시대 문학은 민족문학의 핵심이며, 지리적 분단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심장에서 불신의 장벽은 무너지고 이미 우리는 하나’라고 감격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면 6.15 시대에 문학은 어떻게 달라지고, 또 달라져야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남북의 작가들은 이제 남북의 독자들을 동시에 인식하고 작품 창작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작가는 북의 인민들을 의식하고 작품을 써야하며, 북의 작가들은 남의 시민들을 의식하고 창작에 임해야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나는 이번에 북을 두 번째로 방문하면서 이 변화된 상황을 개인적으로 절실히 느끼고 돌아왔다. 나는 남에서 가져간 내 시집을 북에서 만난 시인과 민화협 관계자들에게 전하면서, 내 시에 대한 그들의 작품 평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려야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면서 아, 이게 바로 ‘6.15 시대의 문학’이로구나 하는 걸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황진이’ 등을 써서 남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 선생과 남쪽의 황석영 선생이 공동작품을 쓰기로 합의했다는 거 아닌가. 나 개인적으로도 작년 인천에서 열렸던 ‘우리 민족대회’때 내려왔던 신흥국시인과 박철시인을 평양에서 다시 만나 이제 함께 힘을 합쳐서 조국 통일에 보탬이 되는 문학을 하자고, 분단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시를 쓰자고 다짐하고 내려오지 않았는가.
물론 이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북쪽의 주체 사상 일변도의 문학도 문제이지만, 남의 상업주의 문학도 마찬가지로 경계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어려워도 이제 남과 북의 작가들의 ‘내면의 교류’가 시작되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문학하는 이들 먼저 나서서, 아, 남과 북은 60년이나 헤어져 살았지만 아직도 이것도 같고 저것도 같구나, 하는 식의 남과 북의 닮은 점을,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자꾸 찾아내 작품으로 형상화해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6.15 시대를 살아가는 남북 작가들의 역사적 소명인 것이다.
우리 민족작가들은 6.15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유일한 이정표로 삼고 이를 견결히 옹호하고 끝까지 고수할 것이다, 우리 민족작가들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정신으로 문학창작에 매진할 것이다, 우리 민족작가들은 사상과 신앙, 출신지역과 입장을 넘어 굳게 단합하며 민족문학 활동에서 연대와 연합을 더욱 활성화해나갈 것이다, 등등. 2005년 7월 2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남북해외 작가 대표들이 민족작가대회 선언문을 읽어 내려갔을 때 느꼈던 모골 송연한 감동이 아직도 내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인천일보 인천칼럼 3 (2005. 10. 27일자) - 이상한(?) 의사들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 사회가 때로 곤혹스럽다. 의사들이 고소득이라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의 몸이 병들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몸이 아파야만 자신의 존재증명이 된다는 사실에 세상의 의사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 약간 궁금하기도 하다. 의사는 좋은 직업이다.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좋은 직업의 선택 기준이란 그 직업을 갖기 위해 투자한 것의 몇 배, 몇 십 배되는 소득을 올리는 것, 그것도 평생을 안정적으로 지위와 명예, 부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직업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아주 이상한(?) 의사들이 있다. 사람들의 치아를 미리미리 건강하게 만들어서 자신들의 돈벌이를 스스로 막으려는 이상한 의사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냐 하면 바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 의사회’ 소속의 의사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10여년 이상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일이 바로 수돗물에 불소를 넣어 충치를 예방하자는 운동이다.
수돗물 불소화운동이란 수돗물에 0.8ppm 이하의 낮은 농도로 불소화합물을 투입해 치아우식증 즉 충치를 예방하자는 운동이다. 수돗물에 불소를 넣으면 적당량의 불소가 우리 몸에 흡수되어 치아의 표면층인 법랑질을 산에 강하게 만들어 준다. 충치는 감기 다음으로 빈번한 질환으로 치료비용 자체는 감기보다 더 많이 든다고 하며, 만 5세의 82%, 만 12,3세의 76.1%가 충치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영구치를 잃게 되는 원인 중 85% 이상이 충치 때문이라고 하는데, 불소화를 위해서 필요한 경비는 매우 저렴해서 일인당 평생 경비가 충치 치료를 위해 치과의원에 한 두 번 가는 진료비와 비슷하다고 한다.
현재 불소화운동은 일부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는데 사실 환경운동과 생태주의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전폭적으로 환경운동에 찬동하는 사람이고, 생태주의에 대해서도 역시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가야한다고 믿고 있다. 다만 불소문제는 이 땅에 합리와 이성과 상식이 실현되는 문제로 접근하면 어떨까 싶다. 바람직한 근대정신, 합리나 이성 등을 우리사회는 그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선후 문제로 생각할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땅에 합리와 이성을 우선 실현한 후에 자연이나 환경 문제에 눈을 돌리고 싶다. 솔직히 이 세상사람 중에 환경 친화적인 삶이나 전원적인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평등의 문제, 부의 정당한 분배 문제, 지금 당장 굶어죽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하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사실 수돗물 불소화 운동은 있는 자는 더욱 있게 되고 없는 자는 대를 이어 더욱 찢어지게 가난할 수밖에 없는 막되어먹은 이 자본주의 판에서는 맞지 않는 운동이다. 한치도 틀리지 않고 치아의 상태가 그 사람의 계급을 정확하게 말해주는 이 사회에서 충치가 생기면 치과에 가서 돈을 내고 치료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더 돈이 많은 사람은 충치가 생기기 전에 미리미리 불소 정제를 먹거나, 불소치약을 쓰거나, 불소 껌을 씹거나, 불소 도포액을 바르거나, 불소 양치액으로 입안을 헹구거나, 불소 함유 음료수를 먹거나 하면 되는 것이다. 수돗물 불소화 운동은 가진 자들이 온갖 초국적 기업의 불소 관련 상품을 마음대로 사서 쓸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없는 자들은 충치를 앓지 말거나 아파도 꾹꾹 참거나 하면 되는 것이다.
수돗물 불소화는 개인의 경제수준이나 교육수준, 사회적 지위 등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충치예방효과가 있다. 수돗물 불소화는 따라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라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다. 가장 간단하게, 가장 싸게,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가장 지출이 많은 질병을 미리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데도 실천하지 않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수돗물 불소화는 한 사회의 공동체적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다. 그래서 수입의 감소를 뻔히 알면서 자기 돈 들여 불소화 운동을 하고 있는 건치의 이상한(?) 의사들의 분투는 자본주의 판에서는 낯설지만 매우 신성한 것이다. 또한 참으로 도덕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이다. 수돗물에 불소를 넣어 인천 시민들의 충치예방을 바라는 인천의 ‘건치’ 식구들에게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작은 희망을 보는 것이다.
인천일보 인천칼럼 4 (2005. 12. 8일자) - 아, 농민, 전용철
2005년도 벌써 저물어간다. 세밑이다. 우리 언제 한 번 뿌듯한, 우울하지 않은 연말을 보낸 적이 있었냐만, 올 세모는 특히 더 마음이 무겁다. 날씨마저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 이맘때인 2002년 12월 19일, 노무현 후보가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 밤, 적어도 국민이 길 위에서 공권력에 의해 맞아죽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시작된 거라고 믿고 싶었었다. 그러나 여전히 민중들이, 농민들이, 노동자들이 분신으로, 음독으로, 폭력으로 죽어나가야 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참담하다.
지난 11월 24일 새벽 6시30분경 충남 보령농민회 주교면 지회장인 농민 전용철씨가 운명했다. 전용철씨는 지난달 11월 15일 열렸던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석했다가 전경들(로 추정되는) 폭행에 뇌출혈을 일으켜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11월 15일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전용철씨를 비롯한 농민들을 노무현 정권은 폭력으로 진압했다. 집회에 참가한, 이마에 주름살 깊게 패인, 우리의 아버지이고 형님인 농민들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군홧발로 짓밟은 그날의 상황은 80년 광주와 2001년 4월 10일 대우자동차 앞을 연상시키는 가공할 폭력이었다. 전경들의 곤봉과 방패는 육, 칠십대 노인의 머리조차 비켜가지 않았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600여 명의 농민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였으며, 결국 전용철씨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농민들의 죽음은 전용철씨 뿐만이 아니다. 농업인의 날인 11월 11일 전남 담양의 청년 정용품씨는 쌀 개방을 반대하고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농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북 성주군 여성농민회에서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던 오추옥 씨는 쌀수입국회비준을 앞두고 ‘쌀 개방 안돼. 차라리 농민을 죽여라’라는 유서를 남기고 11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전북 김제의 하신호 농민은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했다 집으로 귀가한 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12월 1일에는 나주의 안치훈 농민이 음독자살했다. 또한 진용규 농민은 분신, 김정호 농민은 실명, 배완희·이정구 농민은 뇌출혈, 홍덕표 농민은 사지마비 증상을 보이는 등 많은 농민들이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다.
사실 농민들의 요구는 복잡하지 않다. 쌀 개방 협상안을 비준하기 전에 농민 대표가 참가하는 회의를 통해 농민의 생존 대책부터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수천만 원씩의 농가부채가 있는데, 쌀값마저 곤두박질치니 그 대책을 세워 달라는 것이었다. 식량이 무기로 쓰이는 판에 세계 곡물시장을 쥐고 흔드는 미국의 다국적 곡물회사에게 고스란히 쌀 시장을 내놓지 말고, 고독성 농약에 오염된 저가 중국 농산물에 대한 대책도 없는 쌀 시장 개방을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미 다 죽어가는 농촌을 살릴 길을 정부와 농민단체가 같이 모색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농민들의 요구에 대한 노무현정부의 응답은 오직 전경의 곤봉과 날 세운 방패였다. 350만 농민들이 자신의 자식 같은 쌀을 불태우고 피눈물을 흘리며 ‘쌀은 주권이다!’ ‘쌀은 생명이다!’를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잔인한 폭력뿐이었다. 그러면서 이 정권은 말하기를, 전용철씨는 집에서 넘어져서, 진용규 농민은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11월 23일, 국회는 농민들의 목숨을 건 반대에도 불구하고, 쌀 개방 국회비준안을 통과시키고야 말았다.
한국농업과 농촌의 붕괴는 이제 시간문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나 관변학자들 조차 쌀 개방의 결과가 우리 농업,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막연히 자동차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쌀과 농업은 단순히 먹는 문제가 아니라 만 오천년 동안 지탱해 온 우리 민족의 혼이고 문화이고 삶이고 목숨이다. 자동차와 반도체를 먹을 수는 없다. 우리 농촌 싹 망하고, 350만 농민 다 죽고 나면, 쌀 한말 수입하는데 자동차 몇 대, 반도체 몇 가마를 주어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것도 구걸하면서. 쌀 개방은 우리의 명줄을 외세에 내맡기는 것과 같다.
한해의 농사를 끝내고 마을회관에 앉아 도란도란 한해를 마무리하는 정담을 나누면서 막걸리라도 한 잔 기울여야 할 세밑에 우리 농민들은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도 모자라 물대포를 맞고 하나 둘 아스팔트 위로 쓰러지고 있다. 맞은 물은 옷 위에 그대로 얼어붙고 있다. 위아래 이빨이 딱딱 서로 맞부딪힐 정도의 추위 속에서 농민들은 싸우고 있다. 그러나 사실 350만 농민들에게 더 큰 고통은 아스팔트 위의 추위가 아니라, 자식 같은, 손자 같은 전경들의 폭력이 아니라, 자신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처절한 외로움과 거기서 오는 절망감일지 모른다. 입원하고 있는 농민들의 병원비도 현실적으로 절박한 문제다. 어느 여성 농민은 집회 때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고 있는데도 천문학적인 병원비 때문에 퇴원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농민들의 하늘까지 사무치는 저 한, 아, 이를 어찌할 것인가.
교육부 장관은 '군자산의 약속'을 읽었는가
- 全敬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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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10, 10: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