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조갑제 기자입니다. 이렇게 전파를 통해서만 여러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만, 머지 않아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속 시원하게 가슴속에 묻어둔 사연들을 털어놓을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모릅니다.
지난 1월초순에서 중순에 걸쳐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한 사실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모르시는 일들도 많을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최근 중국을 방문했다가 돌아간 김정일이 중국에 체류중 병원에서 심장과 간에 대한 진료를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김정일의 건강상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관련자들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김정일은 북한 진료기관의 실력을 믿을 수 없어 중국을 방문하는 길에 평소 지병이 있는 심장과 간의 진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평양에는 봉화진료소라고 불리는 고위간부 전용 병원이 있으나 정밀검사를 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의 호금도 국가주석과 만나는 김정일의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가 2년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하여 많이 야윈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건강이 나빠졌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심장과 간의 진료를 받았다고 하니 근거가 있는 듯합니다.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도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어 있고 그의 어머니 김정숙도 심장쇼크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전적으로 김정일은 심장이 약하다고 하고 신장과 담석증이 있다는 첩보도 있습니다.
이번 김정일의 중국방문은 세계적인 이야기꺼리가 되었습니다. 중국 당국이 김정일이 비밀리에 들어와서 중국내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언론이 보도해도 이를 확인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간의 정상회담이 비밀리에 이뤄지는 일은 없어진 지 오래 되었는데 김정일은 중국에 들어올 때도 비밀이고 돌아갈 때도 비밀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김정일의 북한생활은 피신 또는 도피행각의 연속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일은 낮이고 밤이고 계속해서 옮겨다닙니다. 내일 어디로 갈지는 그밖에 모른다고 합니다. 주로 밤에 이동하고 공장이나 탁아소를 시찰할 때도 새벽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에 농장을 시찰할 때는 농장원들을 창고에 가두고 바깥에서 자물통을 채웁니다. 군 부대도 예고 없이 찾아가고 수행원도 예고 없이 데리고 갑니다.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독재자들의 공통된 습관인데 김정일은 유별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도자의 생활이 질서가 없는데 체제운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중국의 호금도 주석이 평양을 방문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는데 왜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는지 여러분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김정일은 지금 39호실 자금이 끊어질 처지에 놓여 매우 당황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그동안 소련과 스위스에서 인쇄기를 도입하여 정교한 위조 달러를 찍어 이를 국제적으로 유통시켜왔습니다. 100달러짜리 한 장을 찍는 데 들어가는 종이값과 인쇄비는 40센트이니 발각만 되지 않으면 250배가 남는 장사입니다.
지난 여름 미국은 3년간의 끈질긴 수사 끝에 위조된 100달러짜리 지폐를 국제적으로 유통시킨 약100명의 관련자들을 구속하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김정일이 만든 위조달러를 유통시키는 데 관계했던 중국령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을 혼내주기로 하였습니다. 직접 이 은행에 대해 조사를 할 수 없는 미국은 우선 미국의 은행들이 이 마카오 은행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이렇게 되니 이 마카오 은행에 예금을 해놓았던 사람들이 은행으로 몰려가서 자기 돈을 빼내가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이 마카오 은행도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북한측이 개설했던 계좌를 동결시켜버리고 북한측과 금융거래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김정일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39호실을 통해서 조성하여 해외에 빼돌려놓았던 50억 달러 이상의 비자금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마카오는 김정일이 비자금을 만들고 돌리고 하는 데서도 중요하지만 김정일 지시로 만들어진 헤로인, 필로폰 등 마약을 판매하는 거점이었습니다. 지금 미국은 김정일이 매년 약10억 달러를 달러위조, 마약밀조, 가짜 양담배 제조 등 국제범죄를 통해서 벌어들이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김정일의 이런 국제범죄를 테러와 같은 종류의 反인류적 범죄로 규정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해갈 것입니다.
돈줄이 막힐 위기에 직면한 김정일은 미국이 금융제재를 풀지 않으면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북한핵개발 저지를 위한 6자회담에 나가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만 미국은 국제범죄와 핵문제는 별개라면서 김정일 정권과는 이 문제를 놓고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급해진 김정일은 중국으로 달려가서 호금도 주석을 만나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 같지만 중국 또한 김정일의 국제범죄를 도와주다가는 미국으로부터 금융보복을 당할 처지에 놓여 있어 김정일의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연말 심양에서 북한의 6자회담 대표인 김계관은 중국의 6자 회담 대표인 무대위씨를 만난 자리에서 '만약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면 위조달러범을 국내법으로 처벌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굽히고 나온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눈가림식으로써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결국은 달러위조사건은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지도 모릅니다. 미국 사람들은 위조달러를 만들어 뿌리는 행위는 선전포고 사유에 해당한다고 흥분하고 있습니다. 김계관이 말한대로 북한당국이 위조달러를 만든 범인을 처벌하겠다면 할 수는 있습니다. 달러위조를 명령한 김정일을 잡아넣으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김정일이가 모르게 달러를 위조하여 세계 도처에 뿌리고 다닐 사람이 있습니까.
이번 김정일의 중국방문은 국제적으로도 웃음꺼리가 되었습니다.
평소 金正日 정권에 호의적이었던 일본의 아사히(朝日) 신문도 김정일을 신랄하게 비꼬는 기사를 실었더군요. 이 신문은 보도하기를, 金정일이 중국의 廣州를 방문하면서 일류호텔 전체를 빌어 쓰는 바람에 중국측에선 투숙객들을 내쫓아야 했고 김정일 일행이 몰고다니는 50대의 차량 행렬을 위해서 과도한 교통통제를 하자 중국사람들이 경찰관들한테 항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사히 신문은 이렇게 썼더군요.
<北京의 외교 소식통은 (金의 행태를) '떼쟁이의 멋대로 하기' '요사이 세상의 별일'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이왕 김정일과 마카오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하지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중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10여년 전 盧泰愚 대통령 시절에 우리 정보기관은 김정일이 마카오 도박장에 파견해놓은 부하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이렇게 걸어라 여기에 걸어라, 얼마를 걸어라고 지시하는 육성을 감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김정일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도박의 짜릿한 맛을 대리체험하는 듯했다고 합니다.
13년간 김정일의 일본음식 전담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가 2003년에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월간조선이 이를 번역하여 출간했습니다. 2004년에 그는 '김정일의 사생활'이란 책을 또 썼습니다. 이 책에도 김정일과 마카오 도박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정일이 자신의 妹弟인 張成澤 등을 마카오에 보내 바카라 도박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어느날 300만 홍콩달러에 상당하는 마카오 바카라 도박장의 칩을 가져오더니 장성택 일행에게 이를 건네주면서 '당장 내일 출장을 가서 따거든 미국 달러로 바꿔오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장성택 일행이 마카오에서 바카라 도박을 한 성적이 시원치 않자 김정일은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를 포함한 측근 3명에게 120만 홍콩달러분의 칩을 주고 또 원정을 보냈다고 합니다. 마카오 리스보아 호텔의 도박장에서 이 3명은 수시로 평양에 전화를 걸어 김정일로부터 직접 언제 어떻게 돈을 걸어라는 지시를 받곤 했다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일의 행동을 보면 그도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도 듭니다. 북한인민들을 피해 다니면서 해외여행도 마음대로 못하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밥을 먹은들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저는 돈은 김정일보다는 적게 벌지만 김정일보다는 더 많은 자유를 누리니 김정일보다 100배나 1000배나 더 행복합니다. 저는 열흘 전에 일본 북해도로 5일간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따뜻한 노천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눈덮인 산과 들, 그리고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북한동포 여러분들에게 좀 미안했습니다. 작년 한해에 250만 명의 일본인이 한국을 다녀갔고, 150만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다녀갔습니다. 총400만명이 상호 방문한 셈입니다.
작년에 약1000만 명의 한국인들이 비행기와 배를 타고 해외여행을 했습니다. 전 인구의 약20%가 매년 한번 이상 해외 관광을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인구비례로는 일본인들보다도 한국인들이 더 많이 해외여향을 합니다. 해외여행을 하면 1인당 최소한도로 해서도 1000달러는 씁니다. 유럽에 열흘간 여행을 하게 되면 1인당 약3000달러를 써야 합니다.
어제 북한노동당 간부 출신의 탈출자를 한 분 만났는데 그분의 월급이 2500원이었다고 하더군요. 지금 암시장의 달러환율로 계산하면 2500원이 2.5달러 되는 줄 압니다. 1년이면 약30달러, 100년을 모아야 유럽여행 경비가 나온다는 계산입니다. 이런 비교를 하여 여러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 것이 죄송합니다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보다 못나서 그렇게 못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와 이념을 잘못 만나서 그렇게 고생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승만, 박정희 두 분의 검소한 생활과 오늘날 북한을 만든 책임자 김일성과 김정일의 호화판 생활을 비교해보시면 왜 여러분들이 우리보다 못사는지 답이 나올 것입니다. 지도자가 가난하게 산 대한민국은 나라와 국민들이 모두 부자가 되었습니다. 지도자가 부자로 살아가는 북한은 나라와 국민들이 가난해졌습니다. 김정일의 요리사란 책을 읽어보면 김정일을 13년간 따라다닌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도 겐지는 북한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북한주민들이 굶어죽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김정일만 지옥속의 천국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여러분 부디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김정일보다는 오래 버티고 오래 살아야 합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기울어져 가는 저녁해처럼 이제 이 家門(가문)에 살아남은 자가 누구냐? 아니-이번에는 지옥에서 누굴 데려갈 거냐? 정말 시간문제였다. 영양실조로 뼈만 남은 두 딸애와 내가 우리 가문의 유일한 재산이었으니 그때 나의 심정은 무엇으로 표현한단 말인가?
나는 찬장 서랍에 있는 쥐약봉지를 생각했다. 평양시 용성구역에서 쥐약을 풀어 집안 식구를 먹이고 자기는 목을 매 죽은 ○○이가 떠올랐다. 그럼 나도?? 아이들과 함께 먹어버리고 다 함께 죽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파리한 얼굴에 눈확이 꺼져 들어간 흐릿한 눈길로 행여나 희망을 품고 바라보는 딸들을 보니 차마 내 손으로 죽이자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범도 제 새끼는 안잡아 먹는다는 말이 그날처럼 나에게 공감을 주어보기는 일생 처음이다.
우리 셋 중에서 죽으려면 내가 죽게 하고 저애들은 살아남게 해 주십사 하고 생각하였다. 그후 우리의 목숨은 끈질기게도 붙어 있었다. 죽을 날을 기다려도 그날까지 살아 있었으니 그날이 바로 잊혀지지 않는 1995년 11월15일이었다.
막내딸 ○○이가 비칠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변소에 가겠지 하고 혼미상태에 빠져 있었다. 얼마 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막내딸이 방긋이 웃는다.
『아버지, 아- 하세요』 하길래 멋도 모르고 입을 벌리는데 딸애의 고사리같은 작은 손이 펴지는 순간 쌀알 20 여알이 손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쌀알을 보고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 저 건너집 돼지우리 옆에 볏짚이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나서 펼쳐보니 벼알이 몇 알 있더라는 것이었다.
딸애는 그 벼알 한 알 한 알을 손톱으로 까서 모아 가지고 나를 깨운 것이었다. 아버지가 이걸 잡숫고 일어나야 우리가 산단다. 나는 딸애의 그 말에 심한 가책을 느끼며 그 귀여운 딸애를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이의 딸애가 정말 이 미련한 아버지보다 나았다. 나는 그 쌀알을 막내가 큰딸과 함께 나누어 먹게 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죽기살기로 거부하고 나섰다. 내가 먹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쌀알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가 없었으니…. 그날 이 지구촌 위에서 돈을 주고도 볼 수 없는 쌀알 나누어 먹는 신기한 장면이 우리 집에서 연출되었다.
딸애의 屍身에서 나온 비닐봉지
그날 밤. 나는 아이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생겼다. 종전에 죽기만을 기다리던 방식에서 죽는 날까지 아이들을 위하여 무슨 짓인들 다 해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곰곰 누워서 생각하니 아파트 어느 1층집에 쥐이빨 강냉이종자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아파트 골목을 누비다가 끝내 그 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창문을 만져보니 다행히도 유리가 아닌 비닐방막이였다. 허기에 지쳤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먹이를 구했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은 설다.
나는 준비해 가지고 갔던 칼로 비닐을 째고 옥수수종자를 움켜 쥐었다. 먹이를 눈앞에 둔 야수의 흥분으로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의 그 쾌감을 나는 적절히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 유감이다. 艱難辛苦(간난신고) 끝에 옥수수종자를 떼내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비칠거리기는 했어도 가벼웠다. 이것이 내 일생에 처음으로 내짚은 도적생활이었다. 성공하고보니 나도 꽤 노력하면 훔쳐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때부터 나는 어디에? 무엇을? 하며 손에 닿는 대로 가능성이 있는 대로 훔쳐내어 자식들을 먹여살리는 도적무리의 한 일원이 되어 버렸다.
이날 밤 우리 집에서는 근간에 보기 드문 성대한 연회가 벌어졌다. 「눈물은 내려오고 밥술은 올라간다」는 격언이 틀리지 않았다. 연달은 초상으로 푹 꺼져 들어갔던 생기가 옥수수종자 다섯 이삭이 생기면서 집안에 和氣(화기)가 돌았다. 죽은 건 죽은 것이고 산 놈은 살아야 한다는 삶의 요구가 우리들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나는 옥수수종자 한 이삭을 아이들에게 날 것으로 먹도록 배려해 주었다. 음식이 익는 동안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였는데 두 딸애는 그 돌덩이 같은 옥수수알을 맛있게 씹어먹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남은 긍지로 오랜만에 웃고 떠들었다.
이때부터 우리 세 식구는 빌어도 먹어 보고 훔쳐도 먹어보고 땅에서 주워도 먹어보면서 신성천~고원, 원산~단천 등지로 방랑하면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며 인민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가를 직접 목격하면서 파리 목숨 같은 인생을 유지하였다.
이 길 위에 고원에서 맏딸이 숨을 거두었고 그후 순천역의 쓰레기장에서 막내딸애의 시체가 발견되어 나를 질식케 하였다. 막내딸은 마지막까지 나의 곁에 남아 아버지께 충직했던 나의 혁명동지였으며 이 세상에서 나를 고아로 만들어 버린 유일한 마지막 혈육이었다. 그의 屍身(시신)을 집에 가져다 헤쳐보니 그의 가슴속에는 깨끗한 비닐봉지에 정성 들여 골라놓은 배 껍질과 배 송치(편집자 注:씨가 들은 속), 명태껍질, 돼지뼈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나를 만나면 함께 먹으려고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참고 건사했을 딸애를 생각하여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딸애를 안장하고 그 비닐봉지를 입가에 얹어 주었다. 그때 나의 막내딸의 나이가 12세였다.
북한 김정일이 세계 10대 독재자 중 2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1월22일자 PARADE(미국 전역 일간신문들의 일요판 부록으로 배포되는 주간지)가 발표한 2005년 최악의 독재자 1위는 북아프리카 수단의 오마르 알바쉬르(62세), 3위는 미얀마(버마)의 탄슈위(72세)로 이들 세 독재자들은 2004년에도 똑같은 순위를 차지했었다.
10대 독재자는 '퍼레이드'지가 해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자유의 집(Freedom House), 인권감시단(Human Rights Watch), 국경을 초월한 기자단(Reporters Without Borders) 등 4개 국제 기구가 수집한 자료를 종합하여 선정하고 있는데, '독재자'란 '자국민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자기 마음대로 행사하며, 국민들이 합적법적인 방법으로는 권좌에서 몰아낼수 없는 통치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기자단'은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통제되고있는 사회로서 언론자유가 가장 없는 나라라고 지적했으며, '자유의 집'은 34년 연속해서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국민의 정치적 권리와 자유가 없는 나라로 선정하고, 약 25만명의 북한 주민이 '사상 재교육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에 의하면 북한에는 영양실조가 만연되어, 북한의 7세 어린이는 남한의 7세 어린이보다 평균 20 센티미터나 키가 작고 체중은 평균 9킬로그램이나 적다고 보고했다.
한편 세계 최악의 독재자란 영예(?)를 차지한 수단의 대통령 알 바쉬르는 2003년 2월 이후 지금까지 수단의 다푸르 지역 주민 18만명을 '인종 청소'와 종교적 탄압을 통해 살해했다고 '퍼레이드'지는 보도했다. 62세인 알바쉬르는 1989년 집권했다.
독재자 랭킹 3위의 탄 슈위 미얀마 통치자는 1992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는데, 최대의 정적인 아웅 산 수 키 여사(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수년 동안 계속 자택에 연금시켜놓고 있다. 일반 국민은 그녀의 집 근처에만 가도 체포될 수 있다. 민주세력의 봉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탄 슈위 정권은 석달 전 120년 역사의 수도 양곤(랑군)을 버리고 400 킬로미터나 떨어진 산간벽지로 정부를 이동시켰다. 미얀마는 나이 어린 소년들까지 군대에 징집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2004년 10대 독재자 명단에 들어있던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번 명단에서 빠졌는데, 그것은 그들의 통치 스타일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그들보다 더 나쁜 독재자들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라고 '퍼레이드'지는 설명했다.
4위부터 10위까지의 독재자는 아래와 같다.
4위: 아프리카의 짐바브외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81세. (전년 랭킹 9위)
5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67세. (전년 15위)
6위: 중국 주석 후진타오. 63세. (전년 4위)
7위: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 압둘라. 82세. (전년 5위)
8위: 투르크메니스탄 독재자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65세. (전년도 8위)
9위: 이란 종교지도자 알리 하마네이. 66세. (전년 18위)
*이란에는 대통령이 따로 있으나 실권은 종교지도자 하마네이에게 있다.
10위: 아프리카 적도 기니아 독재자 테오도로 엥구에마. 63세. (전년도 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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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기쁨과 만족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이런다 말입니다. 여보, 기쁨과 만족은- 지금 당신네들 걸음마 떼는 유치원 아이들인데 에- 南에는 지금 南에는 다 지금 지금 중등기술 다 소유해 가지고 지금 대학생들인데, 대학수준인데 우린 이제 유치원인데 뭐가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이 뭐라 허면 새것을 받아들이지 안하고 완고합니다. 지금 이거. 그러니까 이것도 역시 내적으로 보면 우리 한 개 혁명인데 혁명적으로 이거 뒤집어 놓고 이거 새롭게 이제 말하자면 큰 목표를 놓고 지향 지향시키지 않고서는 꼭 이제 앞으로 이제 10년 어간 내에 우리가 못쫒아 가면은 인제 솔직히 말하면 세계적인 분포에서 보게 되면 우리 영화예술이 낙후한데서 아마 제일 낙후한데서 일위가 되지 않겠는가 에- 낙후한 데서 꼬랑지에서 삐리(꼴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의 도피행각, 이번엔 중국 잠입!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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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11, 16: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