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文 시리즈 / 李箱의 山村餘情(4)

조이삭이 初禮청 신부가 절할 때 나는 소리같이 부수수 구깁니다. 노회한 바람이 조잎새에게 爛熟(난숙)을 최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하나마 무명같이 튼튼한 피부 위에 오점이 없고 ‘추잉껌’ ‘초콜레이트’ 대신에 응어리는 빼어먹고 달절지근한 꼬아리를 불며 숭굴숭굴한 이 시골 새악시들을 더 나는 끔찍이 알고 싶습니다. 축복하여 주고 싶습니다. 교회는 보이지 않습니다. 도회인의 교활한 시선이 수줍어서 수풀 사이로 숨어 버리고 종소리의 여운만이 근처에 내음새처럼 남아서 배회하고 있습니다. 혹 그것은 안식을 잃은 내 혼이 들은바 환청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조밭 한복판에 높은 뽕나무가 있습니다. 뽕 따는 새악시가 電工夫(전공부)처럼 높이 나무 위에 올랐습니다. 純白(순백)의 가장 탐스러운 과실이 열렸습니다. 둘이서는 나무에 오르고 하나이 나무 밑에서 다랭이를 채우고 있습니다. 한두 잎만 따도 다랭이가 철철 넘는 민요의 舞臺面(무대면)입니다.
조이삭은 다 말라 죽었습니다. 콜크처럼 가벼운 이삭이 근심스럽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오-비야 좀 오려므나 海綿(해면)처럼 물을 빨아들이고 싶어 죽겠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禁(금)한 듯이 구름이 없고 푸르고 맑고 또 부숭부숭하니 깊지 못한 뿌리의 SOS가 암반 아래를 흐르는 지하수에 다다르겠습니까.
두 소년이 고무신을 벗어들고 시냇물에 발을 잠가 고기를 잡습니다. 지상의 怨恨(원한)이 스며 흐르는 靜脈(정맥)-그 불길하고 독한 물에 어떤 어족이 살고 있는지- 시내는 대지의 身熱(신열)을 뚫고 벌판 기울어진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을의 風說(풍설)입니다.
가을이 올 터인데 와도 좋으냐고 쏘근쏘근하지 않습니까. 조이삭이 初禮(초례)청 신부가 절할 때 나는 소리같이 부수수 구깁니다. 노회한 바람이 조잎새에게 爛熟(난숙)을 최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의 마음은 푸르고 焦燥(초조)하고 어립니다.
조밭을 어지러뜨린 자는 누구냐- 기왕 한될 조여든- 그런 마음으로 그랬나요. 몹시 어지러뜨려 놓았습니다. 누에-戶戶(호호)에 누에가 있습니다. 조이삭보다도 굵직한 누에가 삽시간에 뽕잎을 먹습니다. 이 건강한 미각은 왕후와 같이 지존스러우며 侈奢(치사)스럽습니다. 새악시들은 뽕심부름하는 것으로 몸의 마지막 광영을 삼습니다. 그러나 뽕이 떨어졌습니다. 온갖 幣帛(폐백)이 동이 난 것과 같이 새악시들의 정열은 허둥지둥하는 것입니다.

야음을 타서 새악시들은 輕裝(경장)으로 나섭니다. 얼굴의 홍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뽕나무에 우승배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로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조밭을 짓밟습니다. 자외선에 맛있게 끄실른 새악시들의 발이 그대로 조이삭을 무찌르고 ‘스크람’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닿을 지성이 천고마비 蠶室(잠실) 안에 있는 성스러운 귀족 가축들을 살찌게 하는 것입니다. ‘코렛트 부인의 牝猫(빈묘)를 생각케 하는 말캉말캉한 ‘로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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