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文 시리즈 / 李箱의 山村餘情(마지막)

밤의 슬픈 공기를 원고지 위에 깔고 창백한 동무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부고도 동봉하여 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초열흘 가까운 달이 초저녁이 조금 지나면 나옵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전설 같은 시민이 모여듭니다. 축음기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극 펭귄 새들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짧고도 기다란 인생을 적어 내려갈 便箋紙(편전지)- 스크린이 薄暮(박모) 속에서 바이오그래피의 豫備表情(예비표정)입니다. 내가 있는 건너편 객주집에 든 도회풍 여인도 왔나 봅니다. 사투리의 合音(합음)이 마당 안에서 들립니다.
시작입니다. 부산棧橋(잔교)가 나타납니다. 평양 모란봉입니다. 압록강 철교가 역사적으로 돌아갑니다. 박수와 갈채-泰西(태서)의 명감독이 바야흐로 顔色(안색)이 없습니다. 10분 휴게시간에 조합이사의 通譯附(통역부) 연설이 있었습니다.
달은 구름 속에 있습니다. 금연― 이라는 느낌입니다. 연설하는 이사 얼굴에 전등의 스폿트도 비쳤습니다. 산천초목이 다 경동할 일입니다. 전등― 이곳 촌민들은 ××行 자동차 헷드라이트 외에 전등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눈이 부시게 밝은 광선 속에서 창백한 이사는 降壇(강단) 하였습니다. 우매한 백성들은 이 이사의 웅변에 한 사람도 박수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도 그 愚昧(우매)한 백성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만은―.
밤 열한 시나 지나서 영화감상의 밤은 ‘해피엔드’였습니다. 조합원들과 영사기사는 이 촌 유일의 음식점에서 위로회를 열었습니다. 나는 객사로 돌아와서 죽어가는 등잔심지를 돋우고 독서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웃방에 묵고 계신 노신사께서 내 懶楕(나타)와 우울을 훈계하는 뜻으로 빌려주신 幸田露伴博士의 지은 바 ‘人의 道’라는 珍書(진서)입니다. 개가 멀리서 끊일 사이 없이 이어 짖어댑니다. 그윽한 ‘하이칼라’ 芳香(방향)을 못 잊어 군중은 아직도 헤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구름이 걷히고 달이 나왔습니다. 버래가 舞踏會(무답회)의 창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와짝 요란스럽습니다. 아지 못하는 路傍(노방)의 人을 사모하는 도회인적인 향수가 있습니다. 신간잡지의 표지와 같이 신선한 여인들― ‘넥타이’와 동갑인 신사들 그리고 창백한 여러 동무들― 나를 기다리지 않는 고향― 도회에 내 나체의 말씀을 飜案(번안)하여 보내주고 싶습니다. 잠― 성경을 採字(채자)하다가 엎질러 버린 인쇄직공이 아무렇게나 주워담은 지리멸멸한 활자의 꿈 나도 갈갈이 찢어진 使徒(사도)가 되어서 세 번 아니라 열 번이라도 굶는 가족을 모른다고 그립니다.
근심이 나를 除(제)한 세상보다 큽니다. 내가 閘門(갑문)을 열면 廢墟(폐허)가 된 이 육신으로 근심의 조수가 스며들어 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메소이스트’ 병마개를 아직 뽑지는 않습니다. 근심은 나를 싸고 돌며 그리는 동안에 이 육신은 風磨雨洗(풍마우세)로 저절로 다 말라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밤의 슬픈 공기를 원고지 위에 깔고 창백한 동무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부고도 동봉하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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