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운동이 아니라 노예해방운동이다

북한인권 외면하는 ‘대한민국 인권대사’ 박경서씨의 발언을 비판함.
그렇게 고통 받고 압제 받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벗어나려는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노예’가 아닌가? 그들을 해방시키자는 것이니 ‘노예해방운동’이 아니고 뭔가?
-북한인권 외면하는 ‘대한민국 인권대사’-

'북녘의 인권을 논할 때 '한반도 평화권'이라는 인권을 우선 순위에 놓고 얘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그 다음에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권리가 균형 있게 발전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휴전협정을 1975년 체결된 동서독 간의 불가침조약과 같은 남북 간 평화조약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최우선 순위다.'
'(작년 4월 제네바유엔인권위원회에 참석했던 얘기를 하며)유엔에서마저 북한의 인권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 인권마저도 국가 간의 이해 관계에 종속되는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했기에 실망하고 돌아왔다. 인권은 어느 개인-집단- 국가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작년 4월 제네바유엔인권위원회에서 유럽 국가들이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됐을 때, 북한 대표단이 한 얘기가 아니다. 작년 12월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됐을 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한 얘기도 아니다. 작년 12월 서울에서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열렸을 때, 한총련 대학생들이 한 얘기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재적’으로 북한을 보는 통일부 장관 내정자 이종석씨의 말도 아니다.
‘대한민국 인권대사’라는 박경서씨가 19일 서울 성공회대성당 세미나실에서 열린 <대한민국 인권대사가 본 북한인권>이라는 주제의 포럼에서 한 얘기다.

기가 차다. ‘한반도 평화권’이라는 미명 아래 대놓고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자가 ‘대한민국 인권’대사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는 현실이 기가 차다. 아마 그는 작년 4월 제네바유엔인권위원회에 가서도 ‘대한민국 인권대사’라는 명함을 내밀며 각국 대표들에게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말아달라”고 설득했을 것이다. ‘그때 유럽 각국 대표들은 박경서라는 인간을,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경멸했을까?’라고 생각하면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박경서씨는 누구인가?-


그래서 우선 이 박경서씨가 뭐하던 인간인지를 살펴봤다.

<1939년 전남 순천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 독일 괴팅겐대 사회학 박사. 서울대 교수.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정책위원회 의장.동(同) 아시아국장. 아카데미하우스 부원장. 성공회대 객원교수. 동 대학원 석좌교수. 동북아평화연구소장 역임. 2001년 2월 김대중 정부에 의해 초대 인권대사에, 같은 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에 임명됨. 2003년 6월 다시 인권대사에 임명됨. 저서로는 ‘산업민주주의’,‘아시아의 고뇌(영문)’,‘통일 그리고 화해(영문)’,‘인권대사가 본 한반도와 아시아’ 등이 있음>

대강 어떤 사람인지 그림이 그려진다. 이른바 ‘진보적 기독교계’ 인사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민주화운동 진영, 특히 그 중에서도 동교동 주변을 맴돌았을 사람.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 아래서 어렵게 안보를 유지하고 경제발전을 추진할 때에는 ‘인권’을 내세워 정권을 비난했을 사람. 김대중 정권 시절의 ‘코드인사’로 인권대사-인권위원으로 임명된 뒤에는 미얀마 군사정권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북한인권문제만 나오면 행여나 ‘슨상님’의 햇볕정책에 누가 될세라 고개를 외로 꼬는 사람.....

-“인권보다 평화가 우선”라는데... -

'북녘의 인권을 논할 때 '한반도 평화권'이라는 인권을 우선 순위에 놓고 얘기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박경서씨의 주장은 ”북한인권을 위해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이냐?“던 열우당 의원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마치 우리가 북한인권을 세게 거론하고 북한에 압박을 가하면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얘기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양식’이 없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국민들을 협박하려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양심’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유린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인 김정일을 그대로 두고 ‘평화’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얘기다.

‘한반도 평화권’이 ‘북한 주민들의 시민적-정치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 권리’에 우선한다는 박씨의 주장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 팔짱을 끼고 있자는 얘기나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김정일의 핵놀음과 선군정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비판이 없다.

박씨는 휴전협정을 남북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평화협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는 베트남전을 종결지은 ‘파리평화협정’이 잘 보여준다. ‘파리평화협정’의 서명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인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이 협정이 최소한 10년을 갈 것이라고 보았지만,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파리평화협정’은 베트남 적화의 초청장이 되고 말았다. 평화협정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평화협정 운운은 인권대사나 인권위원이 할 얘기는 아니다.

-박경서씨! 당신도 벌 받을 것입니다!-

박경서씨는 북한 주민들의 시민적-정치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 권리를 ‘한반도 평화권’보다 뒤에 놓았다. 하지만, 북한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금 당장 북한에 구미 선진국 수준, 혹은 현재의 대한민국 수준의 정치적-시민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박씨는 혹시 어제 아침, 김일성 우상화 선전물인 ‘구호나무’와 관련된 기사를 보았는지 모르겠다 (‘구호나무’란 항일빨치산들이 김일성 우상화 구호들을 새겨 넣었다는 나무들을 말한다).
1998년 함남 무재봉에서 큰 산불이 났을 때, 구호나무를 구하기 위해 불을 끄다가 인민군 병사 17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 얼마 전에는 신의주에서 홍수가 났을 때, 비에 젖은 구호나무들을 목욕탕에서 말리다가 실수로 불을 내 구호나무들을 태워먹은 노동자들이 보위부에 붙들려가 이후 종적이 묘연하다고 한다.

북한인권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일이 없게 해 달라는 것이다.
배가 고파서 압록강을 넘었다가 중국땅에서 선교사를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중국땅을 떠돌다가 중국남자의 애를 갖게 됐다는 이유로 북한에 송환된 후 뱃속의 애가 떨어질 때까지 산모가 몽둥이 찜질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예수님 믿는 박경서씨!
죽어서 천국 가겠다고 일요일마다 교회 나가서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치며 하나님 찾는 박경서씨!
세계교회협의회 간부를 지낸 박경서씨!
‘대한민국 인권대사’ 이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박경서씨!
그리고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아이들을 안아봤을 인간 박경서씨!

당신이 ‘인권대사’고 ‘인권위원’이면, 아니 그 이전에 당신이 정말 기독교인이고 인간이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오!
‘썩은 고목나무’ 태워먹었다고 잡혀가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로 가고, 배가 고파서 이웃나라에 건너갔다가 이민족의 씨를 뱄다고 애가 떨어질 때까지 몽둥이 찜질, 발길질을 당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요?
그런 일로 사람 잡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정부와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하는 일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부당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요? 언제일지 모르는 한반도 평화정착, 평화협정 체결시까지는 그런 문제는 뒤로 미뤄야 한단 말이요?

박경서씨!
전에 강금실씨에게 했던 얘기를 또 해야겠습니다.
당신의 동료 인권대사인 강금실씨처럼 당신도 벌 받을 겁니다.
일요일날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나가도 천국에 당신을 위한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녕 공의(公義)로운 분이라면, 19일 성공회대에서 당신이 한 발언만 가지고도 당신 이름에 빨간 줄을 그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져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를 외면하도록 가르치는 종교,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자들을 매몰차게 걷어차는 자에게 복을 주는 신(神)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갈구하는 천국의 그 자리는 당신이 외면한, 김정일 체제 아래서 고통 받는 북한동포들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인권운동’이 아니라 ‘노예해방운동’”-

박경서씨 같은 사람에게 인권대사, 인권위원을 맡길 바에야 차라리 내가 작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할아버지가 인권대사를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 분도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그 분은 ‘평양관광’을 갔다 온 얘기를 나에게 해 주었다. 교회에서 평양 장충교회 방문 얘기를 해도 ‘김정일에게 돈 보태 줄 일 있나’하는 생각에 거절하곤 했지만, 죽기 전에 북한 동포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 다녀왔다고 한다.

그 분 말씀은 한 마디로 “김일성이가 북한 주민들을 죄다 난쟁이로 종자개량하고, 인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놨다”는 것이었다.
“묘향산 국제친선관(외부 인사들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준 선물들을 전시한 곳) 앞에 번쩍번쩍하는 소총을 들고 서 있는 위병들의 키가 160㎝가 안 돼. 김일성 동상을 참배하러 온 군복차림의 여자애들한테 ‘학생들, 몇 살이냐’고 묻자 ‘우리는 돌격대원(건설사업을 위해 동원되어 군대식으로 편성된 이들)이야요’ 그러는 거야. 어른인데 우리나라 중학생들 같아보였던 거야.”

그 분은 “북한인권운동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북한인권운동’이라는 말은 잘못된 거야”라고 말했다. “무슨 말씀이냐?”고 여쭤보았더니, 그 답변이 아주 명쾌했다.
“‘북한인권운동’이 아니라, ‘노예해방운동’이야. 순안공항에서 평양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보니 그 황폐한 것이 말도 못해. 평양시내도 사람 사는 곳이 아니야. 북한에 갔다 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그런 얘기는 안 하나 몰라.
그렇게 살면서도 북한주민들은 거기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못하고 있어. 탈북자들은 그런 점에서 보면 아주 깨인 사람들이야. 그렇게 고통 받고 압제 받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벗어나려는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노예’가 아닌가? 그들을 해방시키자는 것이니 ‘노예해방운동’이 아니고 뭔가?“

민초들도 아는 이 단순한 사실을 ‘좋은 대학 나오고 성공한 분들’이 모른다는 것이(혹은 외면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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