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중국을 다녀왔다고 북한에서 경제 변혁이 일어나고, 국민들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억측들은 그만 두시기들 바란다.
멜라니 커크패트릭 (월스트리트 저널 논설위원)
2006년 1월 23일
북한의 최고특급 국가적 비밀을, 지난 주 평양정권이 자발적·공식적으로, 일이 다 끝난 뒤에야 공표하였다. 김정일이 중국을 비공식적으로 방문하셨다는 초특급 비밀 말이다. 007 영화도 이보다 더 희한할 수는 없다. 세계에서 완전 고립되고, 핵으로 무장하고, 비행기는 겁이 많아서 못타는 이 독재자가 초호화판 방탄기차를 타고 비밀여행을 하신 것이다. 한 남한 뉴스가 이 소식을 발표한 후, 미디어 뉴스 기자들은 김정일을 찾으러 그 넓은 중국을 헤매었다. 며칠 후, 한 일본 텔레비 방송은, 광주 한 호텔에서 나오는, 머리털에 바람을 넣어서 위로 올리고, 똥배가 불룩 튀어나온 이 난쟁이의 흐릿한 모습을 방영했다. '월도는 어디 가셨나?' (Where’s Waldo ; 사람찾기 게임:역자 주)
북한의 지도자 동무께서도 암살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그럴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지도자 동무께서 지난 번 중국 나들이를 했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그 놈이 탄 기차가 지나간 뒤 곧바로 북한의 기차역 하나가 박살났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기를, 선거도 없고, 정치적 견해를 입밖에도 못내는 지도자 동무의 백성들이, 한 번 본때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도자 동무의 이번 출입에서 박살이 난 사람들은, 객실이 850개나 되는 광주 소재 백조호텔에 묵던 손님들로, 친애하는 영도자 동무와 그 똘마니들 때문에 모두들 호텔에서 쫓겨나는 봉변을 당했다.
김정일이 이번에 찾은 곳이,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 남부라고,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이번에는 진짜로, 이번에는 드디어, 지구상에서 제일 빈곤한 북한에서 실질적 경제 개혁이 일어나겠구나, 말들이 구구했다. 학자들과 기자들은, 미스터 김이 자유 시장을 통한 중국의 번영 정책을 배우려 하신다고 해석들이 구구했다. 이런 억측은 특히 남한에서 무성했는데, 남한의 지도자란 사람들이 1980년대부터 계속, 북한이 자본주의로 돌아서는 것은 오직 시간 문제라고 떠들어 댔기 때문이다. 남한의 한 고위급 인사께서는, 이번에도 미스터 김이 데리고 간 대표단이 거의 모두 기술자들이란 것을 강조하고, 군바리는 없었다면서, 북한에 있는 경제특구의 폭발적 성장을 예견하셨다. 더구나, 김정일이 북경에서 열린 만찬장에서, 중국의 “눈부신 업적”을 극구 칭송하셨다는 말을 듣고, 말들이 많았다.
김정일의 나들이가 무슨 대단한 일처럼 떠드는 것이, 재탕처럼 들리면, 사실 그럴 만한 사유가 있다. 몇년 전 평양정권이 식량배급을 중단하고, 개인 농산물 시장을 허락하겠다고 발표하자 그때도 사람들은 북한이 곧 '중국식' 개혁을 할 것이라고 기대가 많았었다. 15개의 남한 기업이 싸구려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개성공단이 만들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에는, 북한의 지도자 동무들께서, 북한에서는 금기였던 '경제개혁'이란 단어까지 들먹였었다.
어쨌든 간에, 그동안 북한에서 개방을 운운할 때마다, 어찌된 것이 그들의 정책은 거꾸로 갔다. 지난 가을, 북한정권은 도시민들의 식량줄이던 개인농부들의 시장을 없애 버렸다. 또 김정일이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 평양정권은 그동안 북한인구의 3분의 1을 먹여 살리던 국제식량기구를 내쫓아 버렸다. WFP 세계식량기구와 유럽 원조단체들에게, 올 봄까지는 북한에서 꺼지라고 엄명을 내리신 것이다. 이제 평양 나리들께서는 식량 부족분을 어디에서든 찾아야 한다.
1990년대 후반에, 북한에서는 2백만명이 굶어 죽었다. 그런 위기에서, 중국이, 그리고 특히 남한이 나선 것이다. 평양 나으리들은 이들이 주는 식량원조를 관대하게 받아 주셨는데, 이들은 원조를 하면서도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고 심지어는 입도 뻥끗 못하는 것이었다.
그와 반대로 유엔은 식량원조가 어디로 가는지 조사해야겠다고 난리를 부리고, 원조해준 식량이 과연 굶어죽는 사람들에게 가는지 알아야겠다고 요구했다. 이런 판국에, 남한정부는 식량뿐만이 아니라, 북한과의 교역도 급속히 늘려서, 양국의 교역량은 2004년, 7억불쯤 되던 것이, 작년에는 10억5000만불로 늘어났다.
북한 경제에서 또다른 한 면이 최근 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다. 북한은 국제 암시장에서 무기와 마약과 위조지폐를 팔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6월, 대량학살무기를 확산하는 놈들에게는 경제제재를 가하고, 그 놈들을 지원하는 놈들에게도 경제제재를 가하겠다는 시행령에 서명하였다. 북한이 곧장 걸려들었다. 지난 9월, 미 재무부는 애국법에 준해서, 모든 미국 회사들은 마카오에 소재한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과 거래하면 안된다는 칙령을 내렸다. 마카오 은행이 북한의 검은 돈을 전문적으로 세탁해온 은행이란 이유에서, 북한과 마카오 은행을 한꺼번에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10월에는, 미 재무부에서 북한 회사 8개를 대량학살무기 확산범으로 지목하면서 요주의 대상 명부에 올려 놓았다. 12월에는 미국 은행들에게 북한 범죄정권은 계속 돈세탁할 길을 찾을 테니까, 북한의 경제교란 범죄행위에 각별히 조심들 하라는 경고를 내보내었다.
마지막으로, 북한 경제에 압박으로 작용할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바로 북한 주민들이다. 평양 정권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북한으로 계속 외부 소식이 들어가고 있다. 기막힌 현상은 남한의 안방 극장 비디오가 북한으로 계속 흘러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DVD 플레이어가 생활 필수품이 된 지 오래인데, 중국 사람들은 쓰다 버린 비디오 플레이어를 북한에 판다. 이런저런 일로 북한을 남한에 비교해보면, 평양 나으리들이 말하는 노동자의 천국은 천만의 말씀이다.
김정일이 중국을 다녀왔다고 북한에서 경제 변혁이 일어나고, 국민들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억측들은 그만 두시기들 바란다. 김정일의 독재권력은 그 놈 혼자서 국민들의 경제를 틀어쥐고 국민들을 족쇄에 채워서, 모든 식량과 주거와 노동을 통제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안된 이야기이지만 바로 이것이 북한의 끔찍한 실상이다.
---------------------------------------------------------------------멜라니 커크패트릭 여사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논설 부편집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논설 내용은 커크패트릭 여사가 쓴 그대로 옮겼으나, 김정일의 호칭은 譯者가 마음대로 붙인 것입니다.
2006년 1월 23일
멜라니 커크패트릭 (월스트리트 저널 논설위원)
2006년 1월 23일
북한의 최고특급 국가적 비밀을, 지난 주 평양정권이 자발적·공식적으로, 일이 다 끝난 뒤에야 공표하였다. 김정일이 중국을 비공식적으로 방문하셨다는 초특급 비밀 말이다. 007 영화도 이보다 더 희한할 수는 없다. 세계에서 완전 고립되고, 핵으로 무장하고, 비행기는 겁이 많아서 못타는 이 독재자가 초호화판 방탄기차를 타고 비밀여행을 하신 것이다. 한 남한 뉴스가 이 소식을 발표한 후, 미디어 뉴스 기자들은 김정일을 찾으러 그 넓은 중국을 헤매었다. 며칠 후, 한 일본 텔레비 방송은, 광주 한 호텔에서 나오는, 머리털에 바람을 넣어서 위로 올리고, 똥배가 불룩 튀어나온 이 난쟁이의 흐릿한 모습을 방영했다. '월도는 어디 가셨나?' (Where’s Waldo ; 사람찾기 게임:역자 주)
북한의 지도자 동무께서도 암살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그럴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지도자 동무께서 지난 번 중국 나들이를 했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그 놈이 탄 기차가 지나간 뒤 곧바로 북한의 기차역 하나가 박살났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기를, 선거도 없고, 정치적 견해를 입밖에도 못내는 지도자 동무의 백성들이, 한 번 본때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도자 동무의 이번 출입에서 박살이 난 사람들은, 객실이 850개나 되는 광주 소재 백조호텔에 묵던 손님들로, 친애하는 영도자 동무와 그 똘마니들 때문에 모두들 호텔에서 쫓겨나는 봉변을 당했다.
김정일이 이번에 찾은 곳이,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 남부라고,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이번에는 진짜로, 이번에는 드디어, 지구상에서 제일 빈곤한 북한에서 실질적 경제 개혁이 일어나겠구나, 말들이 구구했다. 학자들과 기자들은, 미스터 김이 자유 시장을 통한 중국의 번영 정책을 배우려 하신다고 해석들이 구구했다. 이런 억측은 특히 남한에서 무성했는데, 남한의 지도자란 사람들이 1980년대부터 계속, 북한이 자본주의로 돌아서는 것은 오직 시간 문제라고 떠들어 댔기 때문이다. 남한의 한 고위급 인사께서는, 이번에도 미스터 김이 데리고 간 대표단이 거의 모두 기술자들이란 것을 강조하고, 군바리는 없었다면서, 북한에 있는 경제특구의 폭발적 성장을 예견하셨다. 더구나, 김정일이 북경에서 열린 만찬장에서, 중국의 “눈부신 업적”을 극구 칭송하셨다는 말을 듣고, 말들이 많았다.
김정일의 나들이가 무슨 대단한 일처럼 떠드는 것이, 재탕처럼 들리면, 사실 그럴 만한 사유가 있다. 몇년 전 평양정권이 식량배급을 중단하고, 개인 농산물 시장을 허락하겠다고 발표하자 그때도 사람들은 북한이 곧 '중국식' 개혁을 할 것이라고 기대가 많았었다. 15개의 남한 기업이 싸구려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개성공단이 만들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에는, 북한의 지도자 동무들께서, 북한에서는 금기였던 '경제개혁'이란 단어까지 들먹였었다.
어쨌든 간에, 그동안 북한에서 개방을 운운할 때마다, 어찌된 것이 그들의 정책은 거꾸로 갔다. 지난 가을, 북한정권은 도시민들의 식량줄이던 개인농부들의 시장을 없애 버렸다. 또 김정일이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 평양정권은 그동안 북한인구의 3분의 1을 먹여 살리던 국제식량기구를 내쫓아 버렸다. WFP 세계식량기구와 유럽 원조단체들에게, 올 봄까지는 북한에서 꺼지라고 엄명을 내리신 것이다. 이제 평양 나리들께서는 식량 부족분을 어디에서든 찾아야 한다.
1990년대 후반에, 북한에서는 2백만명이 굶어 죽었다. 그런 위기에서, 중국이, 그리고 특히 남한이 나선 것이다. 평양 나으리들은 이들이 주는 식량원조를 관대하게 받아 주셨는데, 이들은 원조를 하면서도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고 심지어는 입도 뻥끗 못하는 것이었다.
그와 반대로 유엔은 식량원조가 어디로 가는지 조사해야겠다고 난리를 부리고, 원조해준 식량이 과연 굶어죽는 사람들에게 가는지 알아야겠다고 요구했다. 이런 판국에, 남한정부는 식량뿐만이 아니라, 북한과의 교역도 급속히 늘려서, 양국의 교역량은 2004년, 7억불쯤 되던 것이, 작년에는 10억5000만불로 늘어났다.
북한 경제에서 또다른 한 면이 최근 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다. 북한은 국제 암시장에서 무기와 마약과 위조지폐를 팔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6월, 대량학살무기를 확산하는 놈들에게는 경제제재를 가하고, 그 놈들을 지원하는 놈들에게도 경제제재를 가하겠다는 시행령에 서명하였다. 북한이 곧장 걸려들었다. 지난 9월, 미 재무부는 애국법에 준해서, 모든 미국 회사들은 마카오에 소재한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과 거래하면 안된다는 칙령을 내렸다. 마카오 은행이 북한의 검은 돈을 전문적으로 세탁해온 은행이란 이유에서, 북한과 마카오 은행을 한꺼번에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10월에는, 미 재무부에서 북한 회사 8개를 대량학살무기 확산범으로 지목하면서 요주의 대상 명부에 올려 놓았다. 12월에는 미국 은행들에게 북한 범죄정권은 계속 돈세탁할 길을 찾을 테니까, 북한의 경제교란 범죄행위에 각별히 조심들 하라는 경고를 내보내었다.
마지막으로, 북한 경제에 압박으로 작용할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바로 북한 주민들이다. 평양 정권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북한으로 계속 외부 소식이 들어가고 있다. 기막힌 현상은 남한의 안방 극장 비디오가 북한으로 계속 흘러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DVD 플레이어가 생활 필수품이 된 지 오래인데, 중국 사람들은 쓰다 버린 비디오 플레이어를 북한에 판다. 이런저런 일로 북한을 남한에 비교해보면, 평양 나으리들이 말하는 노동자의 천국은 천만의 말씀이다.
김정일이 중국을 다녀왔다고 북한에서 경제 변혁이 일어나고, 국민들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억측들은 그만 두시기들 바란다. 김정일의 독재권력은 그 놈 혼자서 국민들의 경제를 틀어쥐고 국민들을 족쇄에 채워서, 모든 식량과 주거와 노동을 통제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안된 이야기이지만 바로 이것이 북한의 끔찍한 실상이다.
---------------------------------------------------------------------멜라니 커크패트릭 여사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논설 부편집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논설 내용은 커크패트릭 여사가 쓴 그대로 옮겼으나, 김정일의 호칭은 譯者가 마음대로 붙인 것입니다.
2006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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