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가 저지르는 '빌라도의 범죄'

사도신경이 빌라도를 예수의 처형자로 못박은 것은 빌라도가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방관의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암송했을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빌라도를 '한국교회'로 바꾸고 예수를 '북한동족'으로 대체하여 다시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몇년 전에 본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에서는 유태인들이 예수를 죽이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 영화가 反유태인 정서를 선동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예수를 죽인 것은 유태 민중이 아니었다. 당시 로마 지배하에 있던 유태사회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유태교의 고위 성직자들. 예수는 주로 이들의 부패를 공격했던 것이다. 제사장 그룹이 예수를 잡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긴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애쓴다. 살인범 바라바와 예수 중에 한 사람을 놓아주려고 하는데 몰려온 유태인들에게 선택하라고 한다. 당연히 예수를 놓아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유태인들은 살인범을 석방시켜달라고 한다.

빌라도는 예수로부터 죄를 찾지 못했다면서 갈릴리 지방의 왕인 헤롯에게 데리고 가서 재판을 받으라고 하여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헤롯도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 예수를 다시 돌려준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매질을 한 뒤 놓아주었다. 유태인들은 매질 당해 빈사상태에 빠진 예수를 다시 빌라도 앞에 데리고 온다. 유태인 가운데서도 선동의 명수는 대제사장 가이바이다. 영화에서 그는 빌라도를 협박한다.

'예수란 자는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거부하도록 선동했으며 왕이라고 참칭했습니다. 반드시 로마 법으로 처벌해야 합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9장12절에는 유태인들이 빌라도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다고 기록했다. '당신이 이자를 풀어주면 당신은 시저의 친구가 아니요. 왕을 자칭하는 자는 그 누구든지 시저에 적대하는 자입니다')

가이바는 예수가 로마황제에게 大逆罪를 저질렀다고 고발한 것이다. 빌라도 총독은 그런 예수를 놓아주었다가는 반란혐의자를 풀어준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래서 물로 손을 씼으면서 자신은 예수의 死刑에 관계가 없음을 선언하고는 예수를 군중에게 넘겨주고 너희 뜻대로 하라고 빠져버린다.

머리 좋은 유태교의 고위층은 빌라도 총독을 협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요사이 식으로 이야기하면 '이 자는 내란을 선동하는데 귀하가 이를 용서하면 헌법을 거역할 속셈이냐'고 대어든 것이다. 유태교 지도부는 헌법만큼 힘이 센 가이사(시저), 즉 로마 황제의 권위를 빌어 예수를 죽인 것이다. 그 시대 시대마다 절대적 권위라는 것이 존재한다. 지금 북한에서는 김일성 父子의 말이 절대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문명국가에서는 헌법이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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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예배 때마다 암송하는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은 352년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채택된 교인들의 신앙고백이다. 그 全文은 이렇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여기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명시한 것이 눈에 뜨인다. 영어原文은 이렇게 되어 있다.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본디오 빌라도의 治下에서'가 번역과정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로 단순화되는 바람에 빌라도에게 직접 예수처형의 책임을 지우는 형식이 되었다. 빌라도가 여러번 예수를 살려주려고 애썼던 것에 비교하면 사도신경의 이 문책은 가혹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예수의 生殺여탈권을 쥔 사람은 유태인들이 아니라 로마총독 빌라도였다. 그가 비록 예수를 살려주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그가 유태인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만한 결의와 용기만 있었다면 예수를 보호할 수 있었다. 그는 대중선동에 맞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양식을 갖고 있었으나 그 양식은 신념화되지 못했다. 대중선동에 굴복하는 권력자의 양심은 범죄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예수의 살인자로 빌라도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빌라도가 범한 죄과는 '방관의 죄'이다. 방관하지 않으면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권력자가 방관한 것을 기독교도는 가장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예배 때마다 이를 상기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빌라도와 같은 '방관의 죄'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예수처럼 핍박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의 지척에 있는 북한동족들이다. 한국의 1000만 기독교인들이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면 김정일 정권을 약화시키든지 밀어내고 북한동족을 구원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주류층이 된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빌라도처럼 한국사회의 권력자이다.

한국 기독교가 독재자로부터 맞아죽고 굶어죽어가는 북한동족들을 구원할 힘이 있는데도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독재자 김정일의'악마의 포식'을 계속해서 방관한다면 수백만 동족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책임을 빌라도처럼 질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눈에는 한국 기독교의 비겁이 김정일의 살육과 같은 무게로 계산될지도 모른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교회당을 최신식으로 짓고, 富者들과 성공한 사람들의 무사태평을 기원해주는 역할에 주력하면서 하나님을 참칭하는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이 '사탄의 세력'에 의한 동족학살엔 눈을 감아버린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오는 2월28일부터 3월1일까지 서울영락교회에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북한동족과 탈북자들을 위한 통곡기도회'가 열린다고 한다. 이 기도회는 로스엔젤레스의 孫仁植 목사가 주도하여 이뤄진다. 그는 '한국의 교회들이 북한동족 구원을 기도의 주제로 삼아야 교회도 부흥하고 목회자와 신도들도 뚜렷한 삶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동족과 김정일의 존재를 직시하지 않는 교회와 목회자와 신도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한 빌라도의 범죄를 되풀이하는 것이 된다. 짐승처럼 살아가고 동물처럼 죽어가는 북한동족들을 외면한 채 하나님만을 내세우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도, 소망의 종교도, 믿음의 종교도 아닌, 사탄의 세력에 굴복한, 부패한 邪敎에 불과하다.

오늘도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암송했을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빌라도를 '한국교회'로 바꾸고 예수를 '북한동족'으로 대체하여 다시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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