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명의 내외빈이 모인 가운데 나라사랑 어머니연합회 창립 1주년 기념식이 서울 종로구 종로 5가의 기독교 회관 2층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내외빈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태홍 자유넷 대표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정광택 국민행동본부 상임대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홍관희 미래한국신문 주필 등 여러 애국단체 인사들이 이 모임의 발전을 기원하는 축사를 했다.
기념식 1부 행사가 끝난 후 권명호 어머니연합회 회장을 만났다.
권명호 회장은 1951년생으로 올해 쉰 다섯이다. 슬하에 서른 살 아들과 스물 여설 살의 딸이 있다. 자녀들은 모두 장성해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부군은 현재 건강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 |
| ●권명호 나라사랑 어머니연합회 회장 |
“강정구 교수만 가지고 저희 학교를 판단하지 마시고…”
어머니연합회의 첫 번째 공식 활동은 2005년 4월 22일 강만길 교수 규탄 기자회견이었다고 한다. 당시 강만길 교수가 ‘김일성은 독립운동가’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는 이를 규탄하기 위해 강만길 교수가 당시 위원장으로 있던 광복 60주년 기념사업회 사무실 건물 앞에서 몇 달 동안 꾸준히 피켓 시위를 했었다고 한다.
작년 현충일에는 박정희 대통령 묘소 앞에서 6·15선언 파기촉구 기자회견도 했었다. 권 대표와 어머니연합회 회원들은 국회의 인준도, 국민투표도 없는 선언을 근거로 지금까지 북한 김정일 정권에 퍼주기 때문에 나라가 더 혼란스러워진다며 당장 6·15 공동선언을 파기해야 한다는 요지의 기자회견을 했었다고 한다.
최근의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동국대학교 내에서 강정구 교수 규탄 기자회견을 할 때 한 남학생과 나눈 대화였다고 말했다.
“동국대에서 다른 애국단체 회원들과 시위를 벌이는 데 이를 보던 한 남학생이 제게 다가와 ‘어머님들께서 말씀 잘해주셔서 자제분들을 저희 학교로 많이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하더군요. 그 학생은 ‘강정구 교수 때문에 학교 이미지가 나빠졌지만 그 사람만으로 동국대 전체를 평가하지 말아 달라’며 '어머님들께서 좋은 학생들을 많이 보내주셔야 학교가 좋아진다'고 부탁했습니다.”
권 회장은 ‘학생들이 똘똘 뭉쳐 좌파 교수들을 거부해야 학교도 좋아지고 학부모들도 학생들을 동국대에 보낼 것’이라고 대답해줬다고 한다.
권 회장은 지난 1년 동안 가장 속상했던 일로 지난해 광복절 전날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충돌을 꼽았다. 권 회장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8월 14일 태극기를 나눠주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 갔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때 봉태홍 자유넷 대표와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등과 함께 상암동으로 가는데 월드컵 경기장을 들어서는 길부터 태극기는 하나도 없고 전부 한반도기가 걸려 있는 겁니다. 그걸 보니 가슴이 무너지는 거에요. 우리는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태극기를 너무 잘 받았어요.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은 서로 태극기를 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총련, 범민련, 민노총 이런 사람들이 오더니 ‘왜 여기서 태극기를 돌리냐’고 뭐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아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는데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따졌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 하는 말이 ‘여기서는 태극기를 돌리는 것도 안 되고 꺼내는 것조차 안 된다’는 거에요. 왜 안 되는지 이유를 설명하라는 말에 제대로 대답도 안하면서 무조건 안 된다는 거에요.”
그 당시 상황은 말로 제대로 옮길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태극기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자마자 좌파단체 사람들이 어머니들에게 xx년이라는 욕부터 시작해서 반말로 항의하더니 나중에는 성조기 들고 미국가서 살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머니연합회 회원들은 존댓말로 이야기를 했다. 그때 보면서 느낀 게 좌익들은 위아래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평양이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렇게 마찰이 있을 때 전경들이 와서 어머니들과 애국단체 회원들을 서너 시간 동안 대여섯 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보호가 아니었다고 한다. 보호였다면 좌익단체 사람들을 향해 방패를 돌려야되는데 애국단체 회원들을 향해 방패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에게 갇혀있었던 거나 다름없죠. 그 당시 정말 평양도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비참했습니다. 그 와중에 봉 대표가 머리에 얼음이 든 생수통을 맞아 다쳤고요. 그때 일이 저희가 애국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어머니연합회가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 역할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저희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활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나서지 않는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의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좌파 정권을 종식시키는 활동이라면 뭐든지 합니다. 좌파 정권에 의해 지금과 같은 상황들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모두 전업주부로 집에만 있었을 거에요.”
어머니연합회를 누가 주도해서 만들었는지 그 계기는 무엇인지 묻자 권 회장은 “어떤 한 개인이 나서서 만든 단체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저희는 누가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각종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석한 어머니들이 서로 연락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화가 된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김대중 정권이 끝나면 이제 좌파 정권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어요.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습니까. 저는 정상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들도 좌파 정권에 질렸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제는 우파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거에요.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직후 마침 인터넷에서 전자개표기 조작에 대한 국정원 간부의 양심선언문을 보고는 2002년 12월 21일 전자개표기 개표 무효 집회에 처음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전자개표기 개표 결과 무효와 선거 무효를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하면서 주권찾기 시민모임과 함께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결국 선거무효소송은 원고패소판결이 났습니다만 그 후에도 애국 집회에는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면서 주변의 어머니들과 대화를 하게 되고 서로 연락하면서 친해졌죠. 그러다가 2004년 11월 조갑제 기자님의 현대사 강좌를 계기로 우리끼리 한 번 모이자 해서 이 단체를 만들게 된 겁니다.”
온라인 회원은 약 450여 명, 오프라인으로 활동하는 회원은 40여 명
현재 나라사랑어머니연합회 회원은 약 450여 명이라고 한다. 온라인으로 활동하는 회원의 숫자다. 주요 활동에 참석하는 분들은 보통 40여 명이라고 한다. 많을 때는 80여 명까지도 행사를 돕기 위해 참석한다고. 회원들은 모두 전업주부다. 활동할 때 드는 비용은 모두 자비로 충당하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회비를 조금씩 걷는 형식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나라사랑어머니연합회가 최근 정치웹진 프리존 뉴스에서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 네티즌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시민단체로 뽑힌 것에 대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권회장은 '아마도 정치관련 시민단체 중에서 여성 단체가 저희들뿐이라 서였을 것’이라며 겸손해했다.
어머니들이 모여 시위 등 대외활동을 하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물었다. 권 회장의 대답은 간단하면서 정확했다.
“저희는 정당하고 떳떳한 일을 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좌익과의 대결은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대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옳은 일을 하는 저희들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해 묻자 권 회장은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좌파 정권의 종식”이라고 잘라 말했다. 권 회장과 주변에 있던 어머니연합회 회원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냐”며 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단체와도 연합해 투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