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때리기에 앞장선 이들이 이 돈에 손을 대면 이는 총칼로 기업을 위협해 갈취한 국보위보다 더 사악한 행위다."
언제부터인가, 순수한 시골사람 같이 구수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국가적 분란의 씨앗이 되었다. 대통령직을 걸고 2년여 동안 나라에 온갖 혼란을 야기 시켰던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화를 자초하는 혀를 가진 조기숙 전 홍보수석을 통해서 ‘야당 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허튼소리까지 해댔다. 야당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현직 대통령의 혀는 화근이다. 노 대통령의 언급이 또 어떤 분란을 몰고 올까 오늘도 우려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혀가 화평과 질서를 촉진시키는 근원이 아니라, 분쟁과 혼란의 화근이 되는 것은 국가적 불행 중의 불행이다.
2월 20일 청와대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삼성의 8천억 원에 달하는 사회헌납기금의 용도와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청와대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회헌납금의 궁극적인 관리는 시민사회에서 하더라도 소모적 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가 나서서 과정과 절차를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번 언급은 마치 시민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사회헌납금의 운용과 관리를 결정할 수 없어 정부가 교통정리 해주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시민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사회헌납금의 용도를 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삼성 헌납금의 용도에 대해, “빈곤세습과 교육기회의 양극화를 막기 위하여 소외계층과 저소득계층 지원에 사용되는 것이 우리사회 분위기와 맞을 것”이라며 “정책실과 총리가 협의하라”고 친절하게 지시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정부가 주인 없는 헌납금의 사용처를 정리하여 논란을 잠재울 것 같지만, 실재로 노 대통령의 언급은 분란의 씨앗이 될지 모른다. 삼성 헌납금에 대해 네티즌들은 ‘정부와 시민단체는 손을 떼라’는 의견을 강하게 제시한다.
그 이유는 삼성 때리기를 주도한 정부, 여당, 그리고 친정부적 성격의 시민단체들은 삼성 헌납금에 혀를 댈 자격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투명한 기업윤리를 강조하면서 삼성의 불법과 비리를 질타해서 생긴 헌납금을 정부와 관변단체가 차지하는 몰상식한 갈취를 상식 있는 시민들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 때리기를 주도한 세력이나 단체가 이번 삼성 헌납금에 혀를 댄다면, 이는 총칼로 기업을 통폐합시키고 기부금을 갈취한 군사정권의 국보위보다 더욱더 사악하게 권력을 빙자한 갈취로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업주의에 적대적인 좌파 세력이나 단체들은 종종 비영리적 봉사나 절대적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윤리적 우위를 점한다. 그 다음에 기업의 이윤추구를 죄악시 하거나 과도한 투명성을 기업경영에 강요한다. 결국 이들 반기업적 좌파 단체나 세력의 목표는 실현 불가능한 고상한 윤리와 명분으로 이익추구는 물론이고 인간의 영혼마저 빼앗아가는 것이다. 기업의 번창과 이윤추구를 오직 잉여가치의 착취로만 번역하는 낡은 좌파들은 결국 모든 생산수단은 물론이고 모든 인민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삼으려는 무서운 탐욕의 소유자들이다.
삼성을 국민기업으로 만들자는 좌파 시민단체의 주장은 결국 삼성을 좌파 시민단체의 통제 하에 두자는 말과 동의어이다. 모든 인민이 소유하는 권력은 사실상 특정 독재자의 권력이듯이, 만민이 소유하는 기업은 사실상 특정 독재자의 소유물이다. 책임이 선명한 사유 기관에서는 소유주가 불분명한 기관에서 보다 불법이 덜 발생한다. 일례로 원래 소유주를 몰아내고 어설픈 좌파 지식인들이 차지한 상지대학교에서 일어나는 탈법, 착취, 횡령, 부조리는 강력한 소유주가 관리하는 사립대학들에서 일어나는 불법과 비리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이라는 삼성을 노무현 정권이 끝나기 전에 국민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좌파 세력과 단체들의 목표추구는 8천억 원의 사회헌납금을 삼킨다고 멈추지 않을 것이다. 8천억 원을 현 정권과 그 관변단체에 갖다 바치면, 자신이 경영권을 지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삼성의 최고경영자는 좌파세력의 집요한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순진한 기업가이다. 이윤추구를 저주하는 좌파의 탐욕은 어떤 탐욕스러운 기업가의 욕망보다도 더 강하다.
삼성의 헌납금을 확보한 좌파 정권과 시민단체들은 이제 겨우 갈취의 빨대를 삼성에 꽂기 시작한 것이다. 우군인 우익 단체나 세력에 지원금을 줄인다고 좌파 세력이 봐줄 것이라고 상상하는 삼성의 생존전략 또한 국가의 비호를 너무 받아서 야생적 생존능력을 상실한 판단력에 기초한 유치한 것이다. 사회헌납금을 정부에 상납해놓고, 정부에서 불러주거나 봐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한국 대표기업 총수의 신세이다. 국가적 영웅에 대한 경멸을 즐기는 한국 정치지도자와 시민운동가들은 너무 잘나서 삼성의 대표쯤은 시시하게 보인다.
만약 현 정권과 그 관변단체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조건 없는 기부금을 갈취 당했다면, 삼성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초일류 기업이 아니다. 물건만 좋게 만든다고 일류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귀족은 금력과 권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계급이 없다는 미국사회에서 배우출신의 레이건 대통령이나 하층민 출신의 클린턴 대통령은 귀족사회에 끼어들지 못했다고 한다. 일류 기업도 돈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권력과 단체의 압력을 견딜 줄 아는 배짱도 일류기업의 총수가 가져야 할 기본적 품위이다. 아무리 관변단체의 의식수준이 비열하고 정부의 압력이 무자비하다고 해도, 버틸 것은 버텨야 초일류 자본가가 된다.
자본주의의 국가에서 사유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의 고유권한이다. 사유재산의 절대적 인정이 자본주의의 기초이고, 사유재산의 절대적 인정에서 자본주의사회의 사회정의가 출발된다. 자본주의사회의 사유재산론을 정립한 존 로크는 ‘병사의 목숨을 국가가 빼앗을 수 있지만, 병사의 주머니 속에 있는 1페니의 동전은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절대적 사유재산권을 주장했다. 불법적인 재산축적은 당연히 법의 처벌받아야 하지만, 합법적인 사유재산의 사회헌납을 강요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용납받기 어려운 불의이다. 사유재산의 보장을 통하여 사회구성원들에게 사회정의를 확보해주는 것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사회이다.
양아치적 협박자들에게 돈을 뜯기는 기업가는 품위 있는 자본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포착된 탈법과 비리를 강조하여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서 자기 세력에 나누어주는 정치인도 품위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삼성 때리기에 앞장선 좌파 세력과 단체는 삼성의 사회헌납금에 혀를 대지 않을 정도의 신사적 모습을 보여준 것 같지 않다. 삼성 때리기로 헌납금이 생기자 말자, 그 용처와 관리에 대해서 언급하는 노 대통령도 자파 챙기기에 몰두한다는 오해를 살 여지를 남겼다. 분란을 잘 야기 시키는 노 대통령은 오해나 분란의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여 국민들을 편안케 해야 할 것이다.
삼성 때리기를 주도한 정부와 단체는 과연 삼성의 사회헌납금을 탐하지 않고 소모적 논란을 피해갈까? 경영의 투명성을 회초리로 삼아 삼성 때리기에 나선 시민단체들은 삼성보다는 더 순수한 심보를 가졌을까? 기업가들보다 더한 탐욕을 가진 자들이 정부와 시민단체에 포진하여 기업의 사회헌납금에 혀를 대는 것은 아닐까? 삼성 헌납금에 대한 노 대통령의 언급이 오히려 논란을 촉발시키는 화근이 되지 않을까? 논란 방지를 위해 개입한 현 정부가 삼성 헌납금 사용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논란 방지의 첩경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조영환 칼럼니스트]younghwancho@hanmail.net
언제부터인가, 순수한 시골사람 같이 구수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국가적 분란의 씨앗이 되었다. 대통령직을 걸고 2년여 동안 나라에 온갖 혼란을 야기 시켰던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화를 자초하는 혀를 가진 조기숙 전 홍보수석을 통해서 ‘야당 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허튼소리까지 해댔다. 야당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현직 대통령의 혀는 화근이다. 노 대통령의 언급이 또 어떤 분란을 몰고 올까 오늘도 우려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혀가 화평과 질서를 촉진시키는 근원이 아니라, 분쟁과 혼란의 화근이 되는 것은 국가적 불행 중의 불행이다.
2월 20일 청와대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삼성의 8천억 원에 달하는 사회헌납기금의 용도와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청와대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회헌납금의 궁극적인 관리는 시민사회에서 하더라도 소모적 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가 나서서 과정과 절차를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번 언급은 마치 시민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사회헌납금의 운용과 관리를 결정할 수 없어 정부가 교통정리 해주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시민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사회헌납금의 용도를 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삼성 헌납금의 용도에 대해, “빈곤세습과 교육기회의 양극화를 막기 위하여 소외계층과 저소득계층 지원에 사용되는 것이 우리사회 분위기와 맞을 것”이라며 “정책실과 총리가 협의하라”고 친절하게 지시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정부가 주인 없는 헌납금의 사용처를 정리하여 논란을 잠재울 것 같지만, 실재로 노 대통령의 언급은 분란의 씨앗이 될지 모른다. 삼성 헌납금에 대해 네티즌들은 ‘정부와 시민단체는 손을 떼라’는 의견을 강하게 제시한다.
그 이유는 삼성 때리기를 주도한 정부, 여당, 그리고 친정부적 성격의 시민단체들은 삼성 헌납금에 혀를 댈 자격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투명한 기업윤리를 강조하면서 삼성의 불법과 비리를 질타해서 생긴 헌납금을 정부와 관변단체가 차지하는 몰상식한 갈취를 상식 있는 시민들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 때리기를 주도한 세력이나 단체가 이번 삼성 헌납금에 혀를 댄다면, 이는 총칼로 기업을 통폐합시키고 기부금을 갈취한 군사정권의 국보위보다 더욱더 사악하게 권력을 빙자한 갈취로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업주의에 적대적인 좌파 세력이나 단체들은 종종 비영리적 봉사나 절대적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윤리적 우위를 점한다. 그 다음에 기업의 이윤추구를 죄악시 하거나 과도한 투명성을 기업경영에 강요한다. 결국 이들 반기업적 좌파 단체나 세력의 목표는 실현 불가능한 고상한 윤리와 명분으로 이익추구는 물론이고 인간의 영혼마저 빼앗아가는 것이다. 기업의 번창과 이윤추구를 오직 잉여가치의 착취로만 번역하는 낡은 좌파들은 결국 모든 생산수단은 물론이고 모든 인민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삼으려는 무서운 탐욕의 소유자들이다.
삼성을 국민기업으로 만들자는 좌파 시민단체의 주장은 결국 삼성을 좌파 시민단체의 통제 하에 두자는 말과 동의어이다. 모든 인민이 소유하는 권력은 사실상 특정 독재자의 권력이듯이, 만민이 소유하는 기업은 사실상 특정 독재자의 소유물이다. 책임이 선명한 사유 기관에서는 소유주가 불분명한 기관에서 보다 불법이 덜 발생한다. 일례로 원래 소유주를 몰아내고 어설픈 좌파 지식인들이 차지한 상지대학교에서 일어나는 탈법, 착취, 횡령, 부조리는 강력한 소유주가 관리하는 사립대학들에서 일어나는 불법과 비리보다 훨씬 강한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이라는 삼성을 노무현 정권이 끝나기 전에 국민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좌파 세력과 단체들의 목표추구는 8천억 원의 사회헌납금을 삼킨다고 멈추지 않을 것이다. 8천억 원을 현 정권과 그 관변단체에 갖다 바치면, 자신이 경영권을 지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삼성의 최고경영자는 좌파세력의 집요한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순진한 기업가이다. 이윤추구를 저주하는 좌파의 탐욕은 어떤 탐욕스러운 기업가의 욕망보다도 더 강하다.
삼성의 헌납금을 확보한 좌파 정권과 시민단체들은 이제 겨우 갈취의 빨대를 삼성에 꽂기 시작한 것이다. 우군인 우익 단체나 세력에 지원금을 줄인다고 좌파 세력이 봐줄 것이라고 상상하는 삼성의 생존전략 또한 국가의 비호를 너무 받아서 야생적 생존능력을 상실한 판단력에 기초한 유치한 것이다. 사회헌납금을 정부에 상납해놓고, 정부에서 불러주거나 봐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한국 대표기업 총수의 신세이다. 국가적 영웅에 대한 경멸을 즐기는 한국 정치지도자와 시민운동가들은 너무 잘나서 삼성의 대표쯤은 시시하게 보인다.
만약 현 정권과 그 관변단체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조건 없는 기부금을 갈취 당했다면, 삼성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초일류 기업이 아니다. 물건만 좋게 만든다고 일류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귀족은 금력과 권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계급이 없다는 미국사회에서 배우출신의 레이건 대통령이나 하층민 출신의 클린턴 대통령은 귀족사회에 끼어들지 못했다고 한다. 일류 기업도 돈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권력과 단체의 압력을 견딜 줄 아는 배짱도 일류기업의 총수가 가져야 할 기본적 품위이다. 아무리 관변단체의 의식수준이 비열하고 정부의 압력이 무자비하다고 해도, 버틸 것은 버텨야 초일류 자본가가 된다.
자본주의의 국가에서 사유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의 고유권한이다. 사유재산의 절대적 인정이 자본주의의 기초이고, 사유재산의 절대적 인정에서 자본주의사회의 사회정의가 출발된다. 자본주의사회의 사유재산론을 정립한 존 로크는 ‘병사의 목숨을 국가가 빼앗을 수 있지만, 병사의 주머니 속에 있는 1페니의 동전은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절대적 사유재산권을 주장했다. 불법적인 재산축적은 당연히 법의 처벌받아야 하지만, 합법적인 사유재산의 사회헌납을 강요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용납받기 어려운 불의이다. 사유재산의 보장을 통하여 사회구성원들에게 사회정의를 확보해주는 것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사회이다.
양아치적 협박자들에게 돈을 뜯기는 기업가는 품위 있는 자본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포착된 탈법과 비리를 강조하여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서 자기 세력에 나누어주는 정치인도 품위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삼성 때리기에 앞장선 좌파 세력과 단체는 삼성의 사회헌납금에 혀를 대지 않을 정도의 신사적 모습을 보여준 것 같지 않다. 삼성 때리기로 헌납금이 생기자 말자, 그 용처와 관리에 대해서 언급하는 노 대통령도 자파 챙기기에 몰두한다는 오해를 살 여지를 남겼다. 분란을 잘 야기 시키는 노 대통령은 오해나 분란의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여 국민들을 편안케 해야 할 것이다.
삼성 때리기를 주도한 정부와 단체는 과연 삼성의 사회헌납금을 탐하지 않고 소모적 논란을 피해갈까? 경영의 투명성을 회초리로 삼아 삼성 때리기에 나선 시민단체들은 삼성보다는 더 순수한 심보를 가졌을까? 기업가들보다 더한 탐욕을 가진 자들이 정부와 시민단체에 포진하여 기업의 사회헌납금에 혀를 대는 것은 아닐까? 삼성 헌납금에 대한 노 대통령의 언급이 오히려 논란을 촉발시키는 화근이 되지 않을까? 논란 방지를 위해 개입한 현 정부가 삼성 헌납금 사용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논란 방지의 첩경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조영환 칼럼니스트]younghwan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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