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북한을 닮아 가고 있다

허위선전으로 인민들에게 최면을 거는 김정일 정권, '희망 잃은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희망'을 선전하는 국정홍보처
북한이 카드섹션과 구호와 노래를 통해 인민들에게 ‘행복하고 부러움 없는 낙원’과 ‘강대한 조국’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려 발버둥치듯이, 이 정권은 이 나라를 그릇된 길로 이끌면서 “대한민국은 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강변하고, 희망을 잃은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그 이름에 희망이 있다”고 우기고 있다
1. 아마 한 달쯤 전부터일 것이다. 지하철 시청 역을 나오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프레스센터 옥상 전광판에서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제목의 국정홍보처 광고가 방영되기 시작한 것이.




<광고가 시작되면 화면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 등 상해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에 이어 작년 부산 APEC 회담 당시 노무현과 각국 정상들이 두루마기 차림으로 찍은 사진이 뜬다. 그리고 젊고 힘 있는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나온다.

“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꿈꾸셨던 대한민국입니다”



이어서 백범 김구 선생이 주먹을 휘두르며 연설하는 동영상이 나오고, 행정복합도시,혁신도시, 서울의 사진이 나온다. 각각의 사진 밑으로는 행복도시(공주-연기), 혁신도시(전국10개 도시),수도권발전정책(동북아경제중심)이라는 캡션이 붙어 있다.

그와 함께 “저마다 힘을 가질 때 나라가 힘을 갖는다는, 희망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가 된다는,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한민국입니다”라는 나레이션이 흐른다.



그 뒤를 이어 환한 얼굴로 웃으며 출근하는 근로자들, 남산을 배경으로 밝게 웃으며 내달리는 어린이들의 동영상이 나오고, 태극기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앞서와는 다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은 바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그 이름에 희망이 있습니다.”>




처음에 상해임정 요인들이나 백범 선생의 사진이 나올 때만 해도 ‘뭔가 있어 보이는 광고’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광고를 따라가다 보니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상해임정과 김구 선생이 노무현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또 그 분들이 노무현 정권이 멀쩡한 수도를 쪼개 만드는 소위 행정복합도시(줄여서 ‘행복도시’란다), 기관의 특성과 수요를 무시하고 선심 쓰듯 공공기관들을 각 지방에 나눠줘서 만드는 혁신도시와는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레이션은 더 황당했다.

행복도시니 혁신도시니 하는 난리굿판이 ‘아버지께서 꿈꾸셨던 대한민국’이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한민국’이란다. 세상에 대한민국의 어느 아버지가 멀쩡한 수도 쪼개고, 공공기관들을 닭다리 찢듯 나눠서 사방에 던져버리는 황당한 짓거리를 꿈꾸고 가르쳤다는 것인지....



이 광고의 황당함은 “대한민국은 바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그 이름에 희망이 있습니다”라는 마지막 멘트에서 절정에 이른다.

돈이 없다면서 국민들에게 세금 더 내라고 윽박지르는 한편으로, 멀쩡한 수도 쪼개고 공공기관들을 지방으로 강제이전시키느라 생돈을 쏟아부으면서 “대한민국은 바른 길을 걷고 있다”느니,“대한민국, 그 이름에 희망이 있다”느니 하는 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황당한 느낌에 이어 불쾌감이 밀어닥쳤다.

입만 벌리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성취를 부인하고,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앞세우던 자들이, 이제 와서 “대한민국”운운하면서 태극기를 화면에 내보내는 것을 보면서, 나의 연인 대한민국이 능욕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그러나 황당함과 불쾌감도 잠시, 그 다음에는 소름이 확 끼쳤다. ‘우리나라가 북한을 닮아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2. 지인 가운데 작년 평양에서 아리랑 공연을 보고 온 이가 있다. 그는 “아리랑 공연의 카드섹션 속에는 북한이 이루지 못한 꿈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은 카드섹션에서 오곡백과가 풍성한 들판, 힘차게 돌아가는 발전소와 공장 등을 그려냈지만, 그것은 현실의 북한은 한번도 이루지 못한, 그들의 꿈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어디 카드섹션 뿐이랴.

북한 도처에 서 있는 “세상에 부러울 것 없어라”,“우리는 행복해요”라는 표어가 쓰여진 입간판들, “모든 고난 뚫고 이겨 세계에 앞장선 내 나라/강성대국 위용 떨칠 미래도 찬란하다”라느니, “꿈속에서 그린 이 락원 어디서 솟아났던가/부럼없는 오늘의 우리 행복 어떻게 꽃피웠던가”라는 노래들도 북한과 북한 주민들의 고단하고 비참한 처지를 호도하는 선전물들이다. 그것은 가난한 국민들을 물질적인 부(富)가 아니라, 환상적인 부로 부양하려는 부질없는 몸부림의 발로이다.




3. 위에서 말한 국정홍보처 광고를 다시 보자.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털끝만큼의 애정도, 자부심도 없는 자들이 “대한민국”을 들먹이고, 작년 광복절 행사에서 태극기를 버리고 한반도기를 택했던 자들이 이제 와서 태극기를 앞세운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부를 낭비하는 잘못된 정책을 선전하면서 “대한민국은 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강변한다.

한 마디로 허위의식의 극치다.


국민들을 절망의 나락을 떨어뜨려 놓고서는 “희망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가 된다”느니, “대한민국, 그 이름에 희망이 있다”느니 하는 소리는 또 어떤가?

까놓고 얘기해 보자. 지금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느끼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젊어서 피 흘려 나라를 지키고, 평생 뼈 빠지게 일해서 나라를 이만큼 일구어 놓았더니, 이제 와서 아들 손자 같은 놈들에게서 “수구꼴통”소리를 듣는 우리의 조부모님이나 부모님들이 이 나라의 현실에 ‘희망’을 느끼고 있을까?

삼팔선이니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언제 직장에서 밀려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중-장년층 직장인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이태백 세상을 사는 청년실업자들에게 ‘희망’ 이 있을까?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 붙고, 열심히 일하면서 한 발 한 발 승진해 가는 것을 보람으로 느끼다가, 평생 데모나 하고 북한 선전물들이나 들여다 보다가 ‘코드인사’ 덕분에 행세하게 된 떨거지들에게 고개 숙여야 하는 공무원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대통령에게 허구헌 말 욕 먹고, 여당 의원 등쌀에 시달리는 검사들에게, 폭도들에게 무방비로 자신들의 몸을 맡겨야 하는 경찰과 전경들에게, ‘주적’을 ‘주적’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국군장병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세계 유수의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곳곳에 핸드폰이며, LCD모니터며 열심히 내다 팔았더니, 칭찬은커녕 좌파 세력의 등쌀에 생돈 8000억원을 내놓게 된 이건희 회장이 ‘희망’을 느낄까?

귀족노조들의 ‘내 몫 챙기기’ 때문에 코피 터지는 중소하청업체 기업주와 근로자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직장에서 볼 꼴,못 볼 꼴 다 참아가며 뼈 빠지게 일해도, 세금이나,보험이다, 연금이다 해서 뜯기는 봉급쟁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허리를 휘게 하는 사교육비 부담과 잘못된 교육에 절망해서 자녀들을 외국으로 내보내는 ‘기러기 아빠’들에게 이 나라는 무슨 ‘희망’이 있을까?

내일에 대한 확신이 없어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일까?

거리의 노숙자들, 결식아동들에게는 무슨 ‘희망’이 있을까?

전통산업의 쇠퇴와 함께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구나 부산 사람들, 여전히 변변한 산업기반이라고는 없는 호남과 강원 사람들, 난데없는 행정수돈지 행정복합도신지 하는 것 때문에 조상대대로 살아온 고향에서 내쫒기게 된 공주-연기 사람들, 그 위상과 기반을 빼앗기게 된 서울-경기 사람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노무현 앞에 줄 잘서서 한 자리 차지하게 된 인간들 말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정으로 ‘희망’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희망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라면 지금 우리나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아마 무척이나 작게 쪼그라들어 있지나 않을까?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것은 이 정권이 희망을 잃은 국민들에게 ‘실천’을 통해 희망을 주려하기보다는, 3류 ‘선전’을 통해 현실을 호도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카드섹션과 구호와 노래를 통해 인민들에게 ‘행복하고 부러움 없는 낙원’과 ‘강대한 조국’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려 발버둥치듯이, 이 정권은 이 나라를 그릇된 길로 이끌면서 “대한민국은 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강변하고, 희망을 잃은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그 이름에 희망이 있다”고 우기고 있다.




저들이 그렇게 김정일 집단과 단짝이 되서 어울리더니, 경제를 제대로 운영해서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 대신, 거짓 구호와 선전으로 국민들에게 최면을 거는, ‘물질적인 부(富)’ 대신에 ‘환상적인 부’로 국민들을 부양하는, 사술(邪術)부터 배워온 것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강변하는 정부선전물을 말고도, 현실을 왜곡하는 정부의 선전은 하나 둘이 아니다.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정부를 두고 “‘큰 정부’는 없다. 있다면 할 일을 다 못하고 있는 ‘작은 정부’가 있을 뿐”이라거나, 경제실정(失政)에 대해 “단기적인 대책이 아닌, 먼 장래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정책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도 그 예이다.



'선전'과 짝을 이루는 '선동'도 빠지지 않는다. 사실을 왜곡하면서 '양극화의 문제점'을 소리높여 외치고, 야당과 비판세력을 '특권세력의 대변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저열한 '선동'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실과는 정반대인 언어를 구사해 국민들의 사고(思考)를 왜곡하고, '적'에 대한 증오를 강요하는 <1984년>의 세계로 가는 첫 발을 내디딘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궁핍과 굶주림 속에서 살면서 “세상에 부러움이 없어라”,“우리는 행복해요”라는 정부의 선전물을 보며 ‘행복감’을 강요당하는 세상을 살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천'이 아니라, '선전선동'이 판을 치는 나라는 더 이상 '대한민국'이 아니다.'실적'으로 말하는 대신, '선전선동'으로 국민들에게 최면을 걸려는 자들이 지도자입네 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위해, 거짓 희망이 아닌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일구어 가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희망'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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