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우익들은 高卒을 경멸하고 大卒을 선호합니다. 헌데 이 나라엔 선택받은 대졸보다 버림받은 고졸이 훨씬 많습니다.
22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한국의 보수가 인기없는 이유' 라는 글이 올랐습니다. 얼마 전에도 한국의 현 보수당 및 우익들이 이대로는 그 하는 일들마다 실패할 것이라고 제가 말씀드린 적 있는데, 왜 그런지 소소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보수당과 우익들이 실패하기를 바란다면 이런 그들의 문제점을 해부하는 글을 저희가 어렵사리 쓰고 읽을 필요도 없으니, '한국의 보수가 인기없는 이유' 라는 글을 쓴 김기철 논설위원을 두고 당신, 보수냐 아니냐, 보수가 어찌 그 따위 글을 쓰냐 로 시비하는 짓은 오히려 보수의 발판을 더욱 허무는 일뿐이 아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글을 올린 심중이야말로 한국의 보수우익이 잘 되기를 바라서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열린당이나 노정권이 인기없어지면 우리들이 나서서 '한국의 좌익들이 인기없는 이유' 같은 글을 힘들게 쓰기보다는 좌익들 하는 짓을 보니 인기 없는 것이 당연하고 고소하다 고 글 쓸 것이 뻔하니 보수우익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수우익에게 이런 문제점이 있다 는 글을 쓸 리는 없는 것입니다.
김 논설위원은 한국의 보수가 인기없는 이유의 주된 원인으로 사회적 약자를 껴안는 태도가 결여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합니까 ? 지금 한국의 보수들이 누구를 주로 선호하며 누구에 일방적으로 편드는지 그 태도를 보면 김 논설위원의 주장이 타당한지 아니한지 드러날 것입니다.
한국의 보수들은 일단 가장 기득권을 누려왔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을 선호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나라당을 오로지 지지하는데 그 지지는 한나라당이 실제는 친북좌익정권의 좌파적 입법안인 행정수도법, 신문법 등등의 일련의 좌파적 행보에 대부분 반대한 적이 없음에도 의연하고 변동이 없는 것입니다. 즉, 약하다 싶은 정당 및 지도인사에 대해선 과감히 기피하고 대외적 유명세가 높고 박정희의 딸이라든지 수십년 묵은 기득권 정당들은 그들이 걸핏하면 친김정일적 행각을 벌인다 해도 여전히 관용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로 길들어 온 집단이 한국의 보수우익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비판정신이 결여된 집단이며 강자에 빌붙는 집단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김대중과 노무현 및 노사모 및 민노당 계열을 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대중 지지도가 높다든지 세력이 강하다든지 하는 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자(여기의 약자는 정치세력이 약한 편을 의미합니다.) 를 동정하고 약자를 내세우는 식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勢의 강함보다는 신념과 코드를 중시합니다. 그리하여 김대중은 대선후보들 중 가장 약해 보이던 노무현을 골랐고, 아마 그런 보이지 않는 코드(로봇들은 입력된 코드의 반경을 벗어나지 못합니다.)에 따라 노씨 역시 유시민을 고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이런 일은 한국의 보수우익이라면 상상의 여지 조차 없는 불상사 내지 기벽에 해당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관점에서 한국보수들은 매사를 보므로 도저히 노무현의 유시민 애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새로운 길을 닦기보다 닦여있는 길로 가기를 선호합니다. 그리하여 안전한 사람을 지도자로 택하고 새로운 인물을 구하는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되니 보수우익에는 인물난이 자동으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이미 알려진 유명한 인물 외에는 거들떠 보지 않는 교만병이 팽배해 있는 것입니다.
허나 그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된 한국 보수우익의 질병은 정치적 약자를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점을 넘어서서 사회적 약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눈길 돌리는 일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껏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 친북정권 때보다 박정희 때가 나았다든지(그 말을 제가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분배율이 친북정권 때가 더 나빴다는 식으로 계속 친북정권이 내놓은 이슈에의 말꼬리 늘어잡기나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국 보수우익들이 사회적 약자를 (좌익 들에 비해)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은 현 보수우익이 걸핏하면 주장하는 부자는 윤리가 더 낫다는 궤변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부자나라에 범죄율이 떨어진다든지 부자국가가 윤리의식이 더 높다든지, 부자가 되면 죄 지을 일이 없다는 식의 궤변은 솔직히 사회적 약자들이 들을 때 심히 역겨운 면이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부자가 되기까지 거의 대개의 부자들이 사회적 윤리와 법적 장치 및 양심을 철저히 지키고는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사회적 통념에 비출 때 그러하며 이는 실제 기업을 하여 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나서서 세금을 잘 내고 꼬박꼬박 윤리와 법을 세세한 데까지 지켜가며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뇌물수수를 거부하고 양심적으로 정의적인 부를 실천하고 성취하겠는가 는 질문 앞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거의 희박할 것임에도 한국 보수우익들은 이것을 진실인 양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떠듭니다. 그리하여 한국 보수우익들의 앞에 가면, 이 사회의 약자들은 마치 범법이나 하고 윤리를 실천치 아니하고 게으름이나 부리어서 가난해진 죄인인 듯이 고개들기 힘들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 특유의 보수우익들의 낯두꺼운 설법인 것입니다.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고졸을 경멸하고 대졸을 선호합니다. 이 문제는 전여옥씨의 과거 발언 및 그에 수없이 동의하던 보수우익들의 패들의 글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헌데, 이 나라에는 선택받은 대졸보다 버림받은 고졸이 훨씬 많습니다.
한국의 보수우익들이 김 논설위원의 지적처럼 성공한 사람을 좋아하고 실패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은 단적인 예로 월간조선이 발간하는 Top Class 라는 잡지를 보아도 드러납니다. 그 잡지는 이 사회에서 top을 이룬 사람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일각에선 top class를 찬양하는 잡지를 내면서 다른 편에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윤리가 더 낫다 는 궤변을 설파하는 양동작전 식인 것입니다.
헌데, 한국사회에는 부자와 top class를 이룬 사람보다는 소소히 사는 사람과 미들 클라스와 서민 클라스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부자와 top class를 위한 잡지를 내는 곳에서 소소히 사는 사람과 서민을 위해서는 무슨 좋은 계획이 있는가 물어보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바로 잡고 싶습니다.
윤리의식은 부자라고 각별히 더 있는 것이 아니며 가난하다고 하여 윤리의식이 형편없는 것이 아닙니다. 윤리의식은 오히려 유전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비가 부정을 많이 하였으면 자식도 부정을 많이 할 것이고 아버지가 정직하였다면 자녀도 정직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윤리의식이 높다고 떠드는 것과 국민 누구이건 노력하여 정직한 부자가 됩시다라고 가르치는 일과 어느 쪽이 국민들에게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헌데 현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박정희대통령의 딸이라면 윤리의식이 더 높은 줄 알고, top class 라면 더 정직하고 정의로울 줄로 알고 있으니 한 마디로 나라 망하게 만들기 좋은 의식 수준인 것입니다.
한국에서 냉대받던 김영희씨와 그 아들이 미국의 MVP가 되자, 그것을 두고 한미동맹의 승리 운운한 글까지 쓰는것도 보았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실로 비정직한 글의 본보기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김영희씨와 하인스 워드는 한미동맹의 합작품이 아니라 혼혈아를 냉대한 한국 및 혼혈아에게도 기회를 준 미국의 합작결과 입니다. 그러한 자성해야 할 우리들의 실체를 아니 본다는 데에 오늘 한국 보수우익의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의 세월 동안, 한국의 보수우익들이 소위 기득권이 되고 소위 top class가 되고 소위 다수 국민이 못 가는 대학을 나왔고 박대통령과 전두환정권을 거쳐 부를 이루었다면 대체 그 부로써 그들은 그동안 한 일이 무엇이 있었는가고 보수우익들은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 전에 나온 조사에 의하면 절대빈곤층의 30% 이상이 세습되는 빈곤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의 보수를 이어온 기득권층은 그들이 뻐기는 부의 십분지 일로써 사회적 약자를 감싸는 정책을 펴기라도 한 적이 있는지?( 이 말은 남의 것을 빼앗아 빈곤층에 나눠주는 사회주의 복지정책을 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부와 자기들의 고결성, 자기들의 명예를 더더욱 세습적으로 쌓고 이어가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묻습니다. 즉, 한국 보수우익들의 단적인 특징은 극도의 이기주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득권을 더욱 기득권화하게 할 뿐인 기득권 고착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한국 보수우익의 나라구하기 운동의 일면에 이러한 기득권 지키기의 면모가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친북좌익들은 한국 보수우익들의 비정직한 면이 숨어있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우리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그네들이 절대 모를 것이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유는 자기 정강이를 걷어 찰 줄 안다고 지난번 말씀 드렸거니와 자기 잘못된 것을 스스로 채찍질하며 스스로 고치지 못하면 결국 남들에 의해 목졸림을 당하게 되는 것이 자유의 운명입니다.
지금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나아가 대한민국은 그간 사회의 버림받은 계층들의 자리로 찾아가 그들을 돌보거나 돌보는 척을 했던 친북좌익들에 의해 목졸림을 당하는 내리막에 와 있습니다. 그런 친북좌익들을 지지하고 받쳐준 세력은 결국 한국의 기득권 보수우익 세력들이 줄곧 냉대하던 사회의 약자층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라도 사회의 약자층을 돌아보는 밑바닥부터의 인식 -- 북한의 인권만 앵무새처럼 되뇔 것이 아니라 -- 사회 약자들의 자존심을 헤아리는 언행을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반성 없이는 친북좌익을 선택하였던 한국 사회의 주세력인 다수 국민들의 외면을 다시금 받을 것이 뻔합니다.
2006.2.22. 파아란 한은경 씀.
22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한국의 보수가 인기없는 이유' 라는 글이 올랐습니다. 얼마 전에도 한국의 현 보수당 및 우익들이 이대로는 그 하는 일들마다 실패할 것이라고 제가 말씀드린 적 있는데, 왜 그런지 소소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보수당과 우익들이 실패하기를 바란다면 이런 그들의 문제점을 해부하는 글을 저희가 어렵사리 쓰고 읽을 필요도 없으니, '한국의 보수가 인기없는 이유' 라는 글을 쓴 김기철 논설위원을 두고 당신, 보수냐 아니냐, 보수가 어찌 그 따위 글을 쓰냐 로 시비하는 짓은 오히려 보수의 발판을 더욱 허무는 일뿐이 아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글을 올린 심중이야말로 한국의 보수우익이 잘 되기를 바라서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열린당이나 노정권이 인기없어지면 우리들이 나서서 '한국의 좌익들이 인기없는 이유' 같은 글을 힘들게 쓰기보다는 좌익들 하는 짓을 보니 인기 없는 것이 당연하고 고소하다 고 글 쓸 것이 뻔하니 보수우익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수우익에게 이런 문제점이 있다 는 글을 쓸 리는 없는 것입니다.
김 논설위원은 한국의 보수가 인기없는 이유의 주된 원인으로 사회적 약자를 껴안는 태도가 결여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합니까 ? 지금 한국의 보수들이 누구를 주로 선호하며 누구에 일방적으로 편드는지 그 태도를 보면 김 논설위원의 주장이 타당한지 아니한지 드러날 것입니다.
한국의 보수들은 일단 가장 기득권을 누려왔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을 선호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나라당을 오로지 지지하는데 그 지지는 한나라당이 실제는 친북좌익정권의 좌파적 입법안인 행정수도법, 신문법 등등의 일련의 좌파적 행보에 대부분 반대한 적이 없음에도 의연하고 변동이 없는 것입니다. 즉, 약하다 싶은 정당 및 지도인사에 대해선 과감히 기피하고 대외적 유명세가 높고 박정희의 딸이라든지 수십년 묵은 기득권 정당들은 그들이 걸핏하면 친김정일적 행각을 벌인다 해도 여전히 관용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로 길들어 온 집단이 한국의 보수우익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비판정신이 결여된 집단이며 강자에 빌붙는 집단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김대중과 노무현 및 노사모 및 민노당 계열을 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대중 지지도가 높다든지 세력이 강하다든지 하는 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자(여기의 약자는 정치세력이 약한 편을 의미합니다.) 를 동정하고 약자를 내세우는 식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勢의 강함보다는 신념과 코드를 중시합니다. 그리하여 김대중은 대선후보들 중 가장 약해 보이던 노무현을 골랐고, 아마 그런 보이지 않는 코드(로봇들은 입력된 코드의 반경을 벗어나지 못합니다.)에 따라 노씨 역시 유시민을 고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이런 일은 한국의 보수우익이라면 상상의 여지 조차 없는 불상사 내지 기벽에 해당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관점에서 한국보수들은 매사를 보므로 도저히 노무현의 유시민 애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새로운 길을 닦기보다 닦여있는 길로 가기를 선호합니다. 그리하여 안전한 사람을 지도자로 택하고 새로운 인물을 구하는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되니 보수우익에는 인물난이 자동으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이미 알려진 유명한 인물 외에는 거들떠 보지 않는 교만병이 팽배해 있는 것입니다.
허나 그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된 한국 보수우익의 질병은 정치적 약자를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점을 넘어서서 사회적 약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눈길 돌리는 일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껏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 친북정권 때보다 박정희 때가 나았다든지(그 말을 제가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분배율이 친북정권 때가 더 나빴다는 식으로 계속 친북정권이 내놓은 이슈에의 말꼬리 늘어잡기나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국 보수우익들이 사회적 약자를 (좌익 들에 비해)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은 현 보수우익이 걸핏하면 주장하는 부자는 윤리가 더 낫다는 궤변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부자나라에 범죄율이 떨어진다든지 부자국가가 윤리의식이 더 높다든지, 부자가 되면 죄 지을 일이 없다는 식의 궤변은 솔직히 사회적 약자들이 들을 때 심히 역겨운 면이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부자가 되기까지 거의 대개의 부자들이 사회적 윤리와 법적 장치 및 양심을 철저히 지키고는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사회적 통념에 비출 때 그러하며 이는 실제 기업을 하여 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나서서 세금을 잘 내고 꼬박꼬박 윤리와 법을 세세한 데까지 지켜가며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뇌물수수를 거부하고 양심적으로 정의적인 부를 실천하고 성취하겠는가 는 질문 앞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거의 희박할 것임에도 한국 보수우익들은 이것을 진실인 양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떠듭니다. 그리하여 한국 보수우익들의 앞에 가면, 이 사회의 약자들은 마치 범법이나 하고 윤리를 실천치 아니하고 게으름이나 부리어서 가난해진 죄인인 듯이 고개들기 힘들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 특유의 보수우익들의 낯두꺼운 설법인 것입니다.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고졸을 경멸하고 대졸을 선호합니다. 이 문제는 전여옥씨의 과거 발언 및 그에 수없이 동의하던 보수우익들의 패들의 글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헌데, 이 나라에는 선택받은 대졸보다 버림받은 고졸이 훨씬 많습니다.
한국의 보수우익들이 김 논설위원의 지적처럼 성공한 사람을 좋아하고 실패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은 단적인 예로 월간조선이 발간하는 Top Class 라는 잡지를 보아도 드러납니다. 그 잡지는 이 사회에서 top을 이룬 사람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일각에선 top class를 찬양하는 잡지를 내면서 다른 편에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윤리가 더 낫다 는 궤변을 설파하는 양동작전 식인 것입니다.
헌데, 한국사회에는 부자와 top class를 이룬 사람보다는 소소히 사는 사람과 미들 클라스와 서민 클라스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부자와 top class를 위한 잡지를 내는 곳에서 소소히 사는 사람과 서민을 위해서는 무슨 좋은 계획이 있는가 물어보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바로 잡고 싶습니다.
윤리의식은 부자라고 각별히 더 있는 것이 아니며 가난하다고 하여 윤리의식이 형편없는 것이 아닙니다. 윤리의식은 오히려 유전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비가 부정을 많이 하였으면 자식도 부정을 많이 할 것이고 아버지가 정직하였다면 자녀도 정직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윤리의식이 높다고 떠드는 것과 국민 누구이건 노력하여 정직한 부자가 됩시다라고 가르치는 일과 어느 쪽이 국민들에게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헌데 현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박정희대통령의 딸이라면 윤리의식이 더 높은 줄 알고, top class 라면 더 정직하고 정의로울 줄로 알고 있으니 한 마디로 나라 망하게 만들기 좋은 의식 수준인 것입니다.
한국에서 냉대받던 김영희씨와 그 아들이 미국의 MVP가 되자, 그것을 두고 한미동맹의 승리 운운한 글까지 쓰는것도 보았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실로 비정직한 글의 본보기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김영희씨와 하인스 워드는 한미동맹의 합작품이 아니라 혼혈아를 냉대한 한국 및 혼혈아에게도 기회를 준 미국의 합작결과 입니다. 그러한 자성해야 할 우리들의 실체를 아니 본다는 데에 오늘 한국 보수우익의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의 세월 동안, 한국의 보수우익들이 소위 기득권이 되고 소위 top class가 되고 소위 다수 국민이 못 가는 대학을 나왔고 박대통령과 전두환정권을 거쳐 부를 이루었다면 대체 그 부로써 그들은 그동안 한 일이 무엇이 있었는가고 보수우익들은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 전에 나온 조사에 의하면 절대빈곤층의 30% 이상이 세습되는 빈곤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의 보수를 이어온 기득권층은 그들이 뻐기는 부의 십분지 일로써 사회적 약자를 감싸는 정책을 펴기라도 한 적이 있는지?( 이 말은 남의 것을 빼앗아 빈곤층에 나눠주는 사회주의 복지정책을 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부와 자기들의 고결성, 자기들의 명예를 더더욱 세습적으로 쌓고 이어가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묻습니다. 즉, 한국 보수우익들의 단적인 특징은 극도의 이기주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득권을 더욱 기득권화하게 할 뿐인 기득권 고착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한국 보수우익의 나라구하기 운동의 일면에 이러한 기득권 지키기의 면모가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친북좌익들은 한국 보수우익들의 비정직한 면이 숨어있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우리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그네들이 절대 모를 것이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유는 자기 정강이를 걷어 찰 줄 안다고 지난번 말씀 드렸거니와 자기 잘못된 것을 스스로 채찍질하며 스스로 고치지 못하면 결국 남들에 의해 목졸림을 당하게 되는 것이 자유의 운명입니다.
지금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나아가 대한민국은 그간 사회의 버림받은 계층들의 자리로 찾아가 그들을 돌보거나 돌보는 척을 했던 친북좌익들에 의해 목졸림을 당하는 내리막에 와 있습니다. 그런 친북좌익들을 지지하고 받쳐준 세력은 결국 한국의 기득권 보수우익 세력들이 줄곧 냉대하던 사회의 약자층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라도 사회의 약자층을 돌아보는 밑바닥부터의 인식 -- 북한의 인권만 앵무새처럼 되뇔 것이 아니라 -- 사회 약자들의 자존심을 헤아리는 언행을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반성 없이는 친북좌익을 선택하였던 한국 사회의 주세력인 다수 국민들의 외면을 다시금 받을 것이 뻔합니다.
2006.2.22. 파아란 한은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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