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배분이 아니라 창조다

하나의 창조는 그에 따르는 수많은 경제인구를 창출하고 기하급수적인 경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 '빈부격차는 커져야 한다'는 저의 글을 먼저 읽은 후 이 글을 읽으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파아란.



높으신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후 휴식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경제활동에 들어갑니까 ? 들어갑니다. 경제란 무엇인가. 경제학자의 말이나 공산주의 정권의 궤변으로가 아니라 보편적 상식인의 수준에서 생각하고 확신을 가지기 위해 말씀드립니다.

창조의 첫 시작부터 하나님은 경제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6 일간 노동하시고 제7일에 쉬셨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바람에 어쩌면 칼 맑스의 공산당은 노동을 신성한 것이다고 우기고 있게 된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기사, 신성한 것을 찾으려 들면 지구상에서 노동만이 신성하겠습니까? 내리는 눈도 신성하며 뿌리는 비도 신성하고 붉은악마의 외침도 신성하니, 남녀간의 섹스도 신성한 세태가 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찜질방에서 애무하는 외간남녀들의 짓거리는 신성한가 물으면 그들 역시 딴에는 진정한 사랑입네 하면서 신성타고 답할 것입니다.

유태인들의 토라 해설에 따르면 창세기에서 설명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흔히 말하는 레이버, 노동이 아니라고 합니다. 노동은 생각하기를 땀에 절고 힘든 일이라 여기는데 하나님의 창조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의 일하신 노동은 우리가 흔히 밥먹고 살기 위해 하는 노동, 반복적 일이 아니라 어떤 본질을 보다 월등한 본질로 바꾸는 완전히 다르게 개발하는 업그레이드의 일을 말한다고 토라 해설은 되어 있습니다. 뭉뚱그려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칼 맑스와 노정권은 경제를 분배하는 일로 여기는데, 저는 그리하여 창세기의 가르침을 따라 경제를 창조라고 부르려 합니다. 그리고 경제는 창조 라는 것을 우리가 터득해야 친북좌익들의 양극화 궤변을 이길 정신적 토대를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냉장고를 생각해 봅시다. 냉장고가 나오기 전에는 사람들은 음식을 그런 냉장고란 상자 안에 보관하는 법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헌데 누군가 냉장고를 만들었고 -- 창조입니다 -- 냉장고 안에 햄버거 재료를 넣으면 오래 안 상하고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역시 음식보관법에 대한 창조입니다. 누군가는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팔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누군가가 창조력으로 그런 것을 알려주기 전에는 에스키모족에게도 사람들은 냉장고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런 것도 창조입니다.

옛날에는 서울에서 부산에 가려면 부지하세월로 걸어 가야 되었습니다. 그런 거리를 기차를 타고 가면 된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은 그의 창조력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중동에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겠다고 말하기 전에는 아무도 중동 이슬람인들에게 자유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허나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창조에 의한 결과입니다.

비행기산업, 기차산업, 제조업, 하다 못해 중국제 헐한 물건을 들여와 파는 것까지 이 모든 것에 남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에 대한 창조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하나의 창조는 그에 따르는 수많은 경제인구를 창출하는 힘을 가집니다. 한 개의 창조가 기하급수적인 경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배분만 생각하는 돌머리들은 눈앞에 보여지는 것, 현재 존재하는 것, 남들의 손에 소유된 것 외에는 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그 좁은 안목으로써 오로지 남의 손에 든 것을 어찌하면 이런저런 협박과 위협으로 탈취하고 뺏어먹나 또는 그것으로 이리저리 곗돈처럼 돌려막을까에만 골똘하게 됩니다. 그런 사기에 져서 삼성이 그예 8천억을 토해내었습니다. 참여정부라는 분께서는 대번에 참여하여 8천억 나눠먹는 일에 참여의 정신으로 맨위에서 감독.감찰하시겠다고 떠듭니다.

즉, 삼성의 8천억은 창조의 산물인데, 참여정부의 참여정신은 빈곤한 정신을 근근히 쥐어짠 반복노동의 결과인 것입니다.

창조에는 기쁨과 풍요가 따르지만, 노동에는 뻐근함과 고통이 따릅니다. 즐겨서 하는 창조적 일은 육체와 정신에도 좋은 결과를 빚지만, 밥먹고 살기 위해 어거지로 한다는 노동은 육체와 정신에 피골이 상접한 스트레스 및 암을 유발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이제 중대한 스트레스 및 친북세력이라는 커다란 암이 자라고 있습니다.

경제대국들을 보면 어디나 분명히 남달리 생각하고 앞서서 일하는 창조의 정신 및 뛰어난 창조력을 지닌 그룹이 선도해 나갔습니다. 반면에 경제빈곤국을 보면 항시 남들 잘 되는 것을 찾아서 주리를 틀어 기어이 뺏어내는 약탈의 정신이 만연한 것을 알 것입니다. 그 대표적 예가 지주들의 땅을 약탈해 시작된 북한 김일성의 동토의 왕국입니다.

경제는 배분이 아니라 창조라는 점을 안다면 힘들게 사는 서민일수록 창조하는 소수 그룹들 기업인들에게 고마와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반면에 경제가 배분이라고 세뇌된다면 그 땅에 사는 서민들은 저절로 나도 모르게 경제를 이끄는 선두 그룹, 기업인들을 주리를 틀어 죽여야 할 인간들이라고 미워하게 됩니다. 지금 이 땅에 그런 미움의 정신이 팽배했으니 이 그릇되고 그릇된 것을 무슨 재주로 고칠지 아득합니다.

2006.2.23. 파아란 한은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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