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 3월이 돼 오니까 그 추운 북녘 땅에도 봄이 오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남쪽은 벌써 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계절은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도 넓게 보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정권이 아무리 탄압을 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세계는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김정일 편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 편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무슨 변화가 반드시 올해 내년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농담처럼 들어줘서도 좋습니다만 일본에서 나온 여러 가지 점술서, 또 한국의 유명한 점쟁이들이 한결같이, 김정일의 운명이 2008년까지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점을 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재미있는 것은 김정일의 여동생의 남편인 즉 장성택의 운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달 전입니까? 장성택이가 한 2년 동안 연금되어서 보이지 않다가 다시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났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소식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도 하나의 변화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소란 속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군인들이 약 30년 동안, 즉 군인출신 대통령이 3명이 나와서 한국을 산업화시키고 민주화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것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군사독재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으셨기 때문에 군인이란 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군대에 가보지도 못한 김정일은 선군 정치다, 그래 가지고 사실은 계엄령 체제로써 북한을 끌고 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계엄령이 가끔 있었지만 그것은 다 일시적이었고 계엄령이 해제되면 우리 국민들이 다시 군사정권을 욕을 하고 비판도 하면서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나라를 발전시켰습니다. 군인들은 산업화에 주력을 했고 학생들과 저같은 기자들과 야당, 지식인들은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산업화도 성공하고 민주화도 성공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왜 군인이 나라를 발전시켰느냐 하는 것을 이해를 하려면 우리나라 역사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군인들이 집권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고려 시절에 무신정권이 한 백년 계속되었습니다. 그 뒤에 1961년에 박정희 소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해서 약 30년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세 군인출신 대통령이 이 나라를 이끌었고 이 기간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들은 남한의 군인들이고 하면 그저 무자비하고 폭정만 하는 군인으로 들으셨을 텐데 어떻게 해서 남한의 군인들과 남한의 군대란 조직이 국가를 발전시키고 민주화를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느냐 하는 것이 아마 이해가 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군대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한국에서는 군대가 먼저 생기고 그 뒤에 국가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 국군은 한 60년 동안에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첫째는 나라를 만드는 기초 역할을 했고 김정일이가 모택동, 스탈린의 도움을 받아서 기습남침을 했을 때는 피를 흘려서 이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간성 역할을 했습니다. 산업화 시절에는 직접 정권을 잡고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시대가 시작되니까 1987년 이후에 군인은 정치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서 이 민주화가 소란스럽게 이루어지더라도 나라는 망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외침을 경계하는 민주화의 울타리 역할을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국군이 할 역할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통일을 할 때, 즉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고 북한인민들을 해방시키는 이 과정에서 통일무력으로써의 역할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군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인민군이란 말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군이란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국민의 군대라는 뜻입니다. 국민의 군대, 우리나라 군대는 국민의 군대였습니다. 어느 정권의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인민군은 인민의 군대가 아니라 김정일 개인의 군대죠. 김정일 私兵(사병) 아닙니까? 김정일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북한 주민들과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개개인의 인민군 병사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만 이 인민군을 지휘하는 별 단 사람들은 오로지 김정일 한 사람의 안위만 생각하는 하나의 사병집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군은 다릅니다. 대한국민 군대는 항상 국민 편에 서 있었습니다. 1960년에, 위대한 이승만 대통령도 말년에 연세가 80을 넘으면서 판단력이 흐려져서 부정선거를 했습니다. 이 부정선거에 항거해서 학생들이 4·19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이승만 정부가 계엄령을 펴고 국군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국군은 학생들을 진압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시민들이 탱크 위에 올라가서 군인들하고 합세를 하는 바람에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하야하고 말았습니다. 국군은 정권과 국민 사이에서 국민 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정권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1년 뒤에 박정희 소장의 집권은, 군인이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사에서 800년 만에 두 번째 있었던 군사 정권입니다. 즉 고려시대 때의 군인통치시대 무신 집권시대를 유일한 경우로 하고 있는데, 박정희 시대가 바로 두 번째의 군인 집권시기였습니다.
이 군대라는 조직은 상당히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라는 조직은 승리하기 위해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가지고 그것을 아주 효율적으로 구성하고 있고 그것을 시스템으로 만들어서 평소에는 훈련과 교육을 시켜서, 전쟁에 대비하는 이런 계획과 과학과 합리성이 움직이는 시스템이 바로 군대입니다.
우리 국군은 독재 국가의 군대를 모델로 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민주국가인 미국의 군대조직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군대에서 종사하던 장교들은 큰 시스템을 경영하는 기술도 알게 되고 큰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경영기술도 알게 되고 동시에 어떻게 참모들의 의견을 잘 종합을 해가지고 목표를 달성하느냐 하는 민주주의 훈련도 받게 되었기 때문에 1961년에 군인들이 집권하자마자 이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만한 자질을 갖추었습니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했을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선진된 집단이 바로 이 군대였습니다. 그 당시 약 6만 명의 장교가 있었습니다. 이 6만명 장교 중에서 10%가 미국에 유학을 갔다 온 경험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외무 공무원보다 오히려 군 장교들이 외국여행과 외국에서 유학을 더 많이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집권을 했기 때문에 정부를 개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일반 공무원들은 잉크, 펜으로 잉크를 찍어서 또는 붓으로써 문서를 기안하고 했습니다만은 군인들은 타자를 치고 있었습니다. 타자와 붓, 이 차이는 전 근대와 근대적, 즉 근대화를 대표하는 국군이 국가의 근대화를 주도하게 됐습니다.
한국은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이고 북한은 아직도 근대화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낙후되고 있습니다. 근대화라는 것은 뭘 의미하느냐, 국가가 제대로 된 체제를 갖추어서 국민들의 복지와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는 그것을 우리는 국민국가라고 합니다만 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이 바로 근대화 이고 동시에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근대화가 이룩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군인들에 대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러나 군인이면서도 민간인보다도 더 깊은 사상과 철학과 교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정희란 사람은 교사 출신입니다. 대구사범을 일제시대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만주에 가서 군인이 되었습니다. 만주 군관학교를 졸업을 하고 성적이 좋아서 일본 육사에 들어가서 2년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박정희는 親日(친일)한 것이 아니냐, 이렇게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박정희가 친일을 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혼을 팔아서 일본사람 밑에서 심부름꾼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군사기술을 배워서 언젠가 독립이 될 조국을 위하여 쓰겠다 하는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이 사람이 집권했을 때 그동안에 배웠던 군사기술 즉 큰 목표를 향해서 큰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이 경영기술을 바로 대한민국 경영 노하우로써 활용했으니까 박정희가 군인이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한테 대한민국의 운명에 크나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대결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1968년이었습니다. 1월 21일 아주 추운 날에 124군부대라는, 북한이 박정희가 살고 있는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서 특수부대를 보냈습니다. 청와대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곧 발각되어서 서울에서 시가전이 벌어졌습니다. 두 명만 살아서 북한으로 도망갔지만 한 사람은 체포되었습니다. 김신조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텔레비전에 나와서, '나는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때 북한은 군사력 건설의 피크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남한은 군사력 건설은 뒤로 미루고 경제건설을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 청와대 습격사건을 당하다 보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는 경제건설과 군사건설을 동시에 해야 되겠다, 한 손에는 총을 들고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해야 된다는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것이 예비군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예비군 제도가 없었습니다. 68년에 비로소 예비군이 만들어졌습니다. 또 방위산업 즉 무기를 만드는 산업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무기를 만드는 산업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중화학공업이 있어야 되니까 중화학공업을 동시에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김일성이가 박정희를 잘못 건드린 것이 되었습니다.
김일성이가 박정희를 건드렸기 때문에 박정희가 그 도전을 받아서 그 도전에 응전하는 과정에서 중화학공업도 건설하고 방위산업도 건설하고 예비군도 만들고 '새마을 운동'도 하는 바람에 1970년대에 대한민국이 비약적인 발전을 해서 결국은 1976년부터 모든 면에서 북한을 앞서는 나라가 된 것은 바로 김일성이가 박정희를 상대로 불장난을 했기 때문에 박정희의 반격이 승리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무렵 박정희 대통령이 한 연설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이것은 1968년 7월 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연설과 그해 8월 15일 있었던 경축사에서 뽑은 것입니다.
'오늘날 항간에는 휴전과 가상적 평화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낙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비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녕 염려해야 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속수무책으로 침략에 대비할 줄 모르는 부질없는 공론과 시간의 낭비인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객관적 정세만을 갈망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오는 고요한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일축하고 능동적으로 주체적인 힘을 비축하여 어떠한 적의 침략도 봉쇄할 수 있는 자주국방의 역량을 증가하고 경제건설을 중단없이 추진해 가는 데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고 분발하는 시기에 있을 뿐입니다.
현대는 군사,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등 총체적인 국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총력적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군사전과 경제전과 사상전과 심리전 그리고 과학전이 하나로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새로운 국방체제를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문관 무관의 구별도 없고 전선과 후방의 구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선전포고나 휴전의 의의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수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선의 사태를 몽상하다가 커다란 불행을 자초하는 흐릿한 정신적 자세를 버리고 항상 최악의 사태를 예견하고 비록 내일 적이 저절로 자멸한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태세와 결의만은 굳게 가다듬을 줄 아는 현명함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인간사회에 있어서 어떠한 도전을 받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김일성 도배들의 끈덕진 도전 행위를 우리의 발전의 촉진제로써 이용을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고로 도전적이고 침략을 좋아하는 자는 망하는 법이니 북괴가 끝내 침략근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멸망의 길만이 남아 있을 것이고 우리에게는 발전과 승리의 길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연설에서 박대통령이 말한대로 박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의 도전을 역으로 활용을 해서 김일성 정권을 앞서는 국가발전 전략을 추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전이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도전이라는 것은 경쟁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도전과 경쟁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입니다. 그러니까 개인과 나라가 발전합니다. 도전과 경쟁이 없는 데가 바로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입니다. 사회주의에서는 국민들이 발전할 계기를 잡지 못합니다. 오늘날 남북과의 차이는 도전을 한 김일성 쪽의 붕괴, 도전을 받은 박정희 정권의 승리로 귀착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역사의 오묘한 진리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오래 동안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3월 1일 방송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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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02, 19: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