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최연희보다 '심각한' 국회의원들

국가보안법 등 소위 '冷戰법제'를 무력화하고 연합제 추진하겠다는 모임에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완장을 차고 나섰다.

“못난” 최연희 의원보다 더 “심각한” 국회의원들이 있습니다.

지난 3월6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을 비롯한 13명의 현역 국회의원과 35개 단체가 참여한 ‘한반도평화와통일을 위한 국회의원·시민단체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창립됐습니다.
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국회에서 비준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남북관계에서 치러지는 온갖 법률적·정치적 합의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언어의 사기(詐欺)에 속지 않으려면 아는 것도 再정리하고 가야 합니다.
‘낮은단계의 연방제’는 ‘연방제’의 前 단계로서 북한의 대남적화방안이며, ‘연합제’는 김대중 前 대통령의 삼단계 통일론에 나오는‘공화국연합제’를 가리킵니다.
김 前 대통령의 ‘연합제’는 사실상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거쳐 ‘연방제’로 진입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북한의 대남적화방안과 내용적으로 동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김 前 대통령은 2000년 6·15회담에서 북한의 ‘낮은단계의 연방제’와 ‘연합제’로 통일을 지향한다고 합의하고 돌아와 자신의 ‘연합제’를 역대 정권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규정된 ‘남북연합’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왔습니다.
그러나 ‘남북연합’은 김 前 대통령의 ‘연합제’와 같이 ‘제(制)’자가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親北세력이 주장하는 ‘남북연합制’ 실현이란 ‘문자 그대로’ 북한식 연방제를 하자는 것이고, 親北세력이 주장하는 ‘남북연합’ 실현이란 ‘사실상’ 북한식 연방제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남북기본합의서까지 등장했습니다.
92년 노태우 정권에서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제1장 남북화해, 제2장 남북불가침, 제3장 남북교류·협력으로 구성된 문건입니다. 제1조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북한은 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속에서 체제보장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남한은 체제경쟁의 자신감 속에서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 같은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는 북한이 정전협정 준수(제5조)라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사문화(死文化)됐습니다. 남한 사법부 역시 남북기본합의서는 국내법적 효력을 갖는 조약이 아닌 정치 문서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죠. 그렇게 ‘죽어있던’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된 지 14년 만에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열우당 김원웅 의원과 외대 이장희 교수를 상임대표로 평통사 등 친북단체들이 주도하는 남북기본합의서 국회비준 단체가 만들어진다고 해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막상 3월6일 ‘한반도평화와통일을 위한 국회의원·시민단체협의회(협의회)’출범식장에 가 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더군요.
이장희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국회에서 비준동의시킴으로써 국내법으로 만든 후, 新法우선의 원칙에 따라 국가보안법과 같은 국내 냉전법령을 없애는 기초 장전으로 삼아야 한다. 남북기본합의서를 국내법으로 끌어올리면, 문건 내 규정된 ‘평화상태 당사자(제5조)’ 규정 등을 통해 ‘작계5029’ ‘전략적유연성’ ‘MD’등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자연스럽게 배제할 수 있다”
그는 또 “남북기본합의서 국회비준을 통해 6·15공동선언 제2항에 기초한 통일방안의 제도화 문제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주요한 일은 사실상 전쟁상태를 종식하는 ‘남북평화공동선언’과 함께 통일의 중간단계인 ‘남북연합’제도화의 기초인 ‘남북연합헌장’을 서명하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국회에서 비준해 국가보안법 등 소위 “냉전(冷戰)법제”를 무력화하고 연합제를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토론자로 나온 10여 명의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냉전법제 재정비”를 합창했습니다.
그렇습니다! 6.15선언이 국내법적 효력이 없으니까 남북기본합의서를 들고 나와 국내법으로 만든 후 이걸 근거로 赤化하겠다는 수작입니다.
이런 수작에 준비위원으로 이름을 내 건 국회의원이 열우당 김원웅 의원 이외에도 강기정, 강혜숙, 김춘진, 문학진, 안영근, 유선호, 윤호중, 정청래, 지병문, 민주당 김효석 그리고 한나라당 엄호성, 정문헌 의원입니다.
좋습니다. 신념에 따라 사는 이들의 赤化수작은 그렇다 칩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뭡니까? 정문헌 의원은 이장희 의원에 이어 발제자로 나와 남북기본합의서 국회비준 필요성에 열변을 토했습니다.
이날 오후 정문헌 의원께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이렇게 물었습니다.
--국보법 철폐에 동의하는가?
--협의회 주도자들 상당수는 국보법철폐, 미군철수, 연합·연방제 등을 주장하는 인물들인데 남북기본합의서 국회비준이 친북세력의 국체변혁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는 없다고 보는가?
--북한의 낮은단계연방제나 DJ식 연합제에 동의하는가?
'...'
이해(理解)가 가지 않는 지루하고 모호한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국보법 철폐 여부에 대한 긴 답변 중 알아들은 것은“국보법은 마약, 주변국 위협 등에 대비한 확장된 안보개념을 담는 방향으로 바꿔갈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나머지는 고치자는 것인지, 없애자는 것인지, 지키자는 것인지…이리저리 경계를 오고 갔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좌우 모두) 남 탓하지 말자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남북관계 남남갈등을 풀기 위한 기본 틀이 있어야 한다. 보수 쪽에서…의원 분 중에도 그런 우려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수구꼴통 친북좌파 논의를 떠나서…하나의 준거 틀로서 남북기본합의서가 필요하다고 본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낮은단계연방제’보다 역대 정권의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국가연합’을 주장하고 싶다”고 답하더군요.
1966년생인 정문헌 의원은 강원도 속초·양양·고성 지역 출신 초선의원으로서 고려대 대학원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북미 제네바합의서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참가자인 엄호성 의원 측은 “공식적으로 협의회 준비의원으로 참여한 적이 없으며 서명한 적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길 믿습니다.
92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체결 후 북한의 의무불이행으로 사문화됐을 뿐 아니라 지금은 북핵·인권·위폐 등 북한의 범죄행위로 상황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남북기본합의서는 헌법에서 천명한 통일원칙인 ‘自由統一’ 규정이 없어 본질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논란을 떠나 親北세력은 남북기본합의서를 15년 만에 들고 나와 국가보안법과 한미동맹을 무력화해서 연방연합제 赤化를 하겠다고 나선 상황입니다. 여기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한나라당 의원마저 완장을 차고 나섰습니다.
“잘 모르고 하는 것”이라는 건 국회의원으로서 용서받지 못할 범죄행위입니다. 재야권에서도 이런 식으로 한나라당을 이해해선 안 될 일입니다. 국민들은 몰라도 국회의원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잘 모르고 을사조약에 조인했다는 게 역사에 통할 변명(辨明)입니까? 잘 모른다면 국민의 대표자리를 내놔야 할 것 아닙니까?
한나라당 의원은 두 가지입니다. 변하는 세상을 따라 한 클릭씩 수정해가는 눈치 빠른 귀족들과 ‘미국의 北爆’이라는 성은을 기다리는 맥 빠진 전문가 그룹입니다. 자유를 위해 몸 던질 전사들을 한나라당에서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사상의 전쟁에서 논리와 실력을 갖춘 이들은 더더욱 드문 상황입니다.
어쩌면 조국과 가족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부지깽이라도 들고 나서야 할 상황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출처: 프리존/ 김성욱(미래한국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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