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수재가 서울대에 갈 수 있던 그 길이 막힘으로 친북좌익들의 서민 공포심을 이용한 선동이 먹혀들게 된 것입니다.
칼 맑스는 공산당선언에서 유령이 몰려오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령이 몰려오긴 했는데 그것은 맑스가 선언한 유럽에서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러시아에서 였습니다.
닥터 지바고에 보면 지바고의 의붓형 안드레예비치가 지바고의 집에 찾아가 처음 상면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 지바고가 공산당 혁명을 종기를 수술하는 일에 빗대어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공산당 지도요원인 안드레예비치는 지바고에게 당에 가입을 권유합니다. 그럴 때 지바고가 하는 말이 '누군가는 삶을 유지시켜야 돼.' 입니다.
김한길의 실업고에서의 양극화 및 귀족계급 운운의 발언이 보수여론에서는 선동을 부추긴 발언이라 하였지만, 저는 그 발언이 서민의 가슴 밑에 잠재해 있던 공포를 일깨우는 발언이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공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무엇에 대한 공포 인가 하는 점 및 어떤 방향으로 공포가 표출되는가 에 따라 공포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과거 고대사에는 무자비함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국민을 통치하는 기술이 발달했었습니다. 무자비한 죽임과 처형, 처벌이 그러합니다. 북한의 김정일이 세운 반동분자 삼대멸족 정책 및 정치범수용소 라든지 정치범을 처형하는 일을 쥐새끼 죽이는 일보다 힘들게 여기지 않도록 인민들의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기법 등이 다 공포심의 이용에 해당할 것입니다.
양극화를 선동하는 문제는 서민들의 가난한 현상을 일깨우는 효과에 불과하겠지만, 귀족계급 출현을 떠드는 주제에 들어가면 그것은 현실을 논한 문제가 아니라 서민들에게 그들의 미래 역시 암울하고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이므로 거기서 깨어나는 공포는 극대에 가깝습니다. 미래가 없는 서민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
미래에의 꿈이나 희망이 없는 사람은 절망과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니, 극심한 절망과 공황은 사람을 처참하게도 하며 이성을 상실하게도 하며 나아가 폭도로 변하게도 합니다. 김한길의 발언 및 그 발언 장소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그 공포의 각성 때문에 있습니다.
유령이 바야흐로 이 땅에도 오고 있는데 무슨 유령으로부터 시작하는가 하면, 미래에 대한 공포심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특히 저는 많은 글을 통해 김정일의 대남적화혁명이 성공단계에 와 있음, 즉 김정일 來到에 대한 공포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공포를 일깨움으로써 김정일세력의 연방제통일사변을 막아보려는 의도 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김한길 및 친북좌익 세력은 대한민국의 한 표를 행사하며 여론의 주축을 이루는 -- 부유층은 이런 점에서 여론의 주축세력이 될 수 없습니다. 입도 한 개요, 표도 한 장 이기 때문입니다. -- 일반 서민들의 미래에 대한, 삶에 대한 생생한 공포를 일깨움으로써 그들의 정권 유지 및 연방제사변에 유리한 길을 택하고자 모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포심 대(對) 공포심이라 할, 우익과 좌익의 각기 다른 그러나 내용상은 비슷한 전략이 서로 밀치고 싸우는 중이라 하겠습니다. 헌데, 유감스러운 것은 보수우익들의 김정일 대남적화혁명 임박 이란 경계경보 즉 공산당에 대한 공포심 일깨우기 가 이미 대한민국에서 수십년 이상 써먹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개의 젊은이들은 그 구호에 식상하여 있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김한길 측이 사용하는 서민의 미래에 대한 공포심 일깨우기 전략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으니 싱싱한 전법이라 하겠습니다. 즉, 보수들은 낡은 전법을 쓰고 있고 수구좌익들은 신 전법을 사용한다는 말씀입니다. 헌데, 친북좌익들이 막 쓰기 시작한 공포심 일깨우기 전법에 맞서는 보수의 대김정일 공포심 이용은 전략상으로 보거나 논리성으로 볼 때 서민의 지지를 얻을 승산의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
저는 그 점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민들의 미래에 대한 공포심이 정말로 밀물처럼 일어나고 두드러져 저들이 자원해서 친북정권을 선택하게 될 때에는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그 점에서, 지난 수십년간 교육을 -- 이미 교육이야말로 가난한 서민들이 성공과 행복해지며 상위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라는 것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 '평준화'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가난한 서민의 자녀들에게서 질 좋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해버린 보수들의 죄 또는 기득권층의 죄는 심각한 것이었다고 질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는 스스로 걷어찬다. 즉, 스스로 걷어차고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자유인 만이 나라를 지키고 미래를 지킬 수 있다고 도 이미 말씀드렸거니와, 국운의 위기 지경에 이른 오늘에 와서도 반성하지 않고 반성하기 싫어하며 비판의 말에 대해서는 성토하기에나 여념이 없는 보수라면 구제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이명박의 말, 한나라당은 물놀이 가는 것 같다 는 발언에 대해 박근혜가 노여움을 표시했는데, 그럼 그녀는 왜 북한으로 달려가고 남북합의서를 갖고 친여 및 친김정일 스럽게 나아가 연방제통일사변의 방향으로 일하기 시작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는 노여움을 표하지 않습니까 ? 그녀는 자신과 당을 비판하지만 않으면 다들 잘 굴러가는 줄 아는가 봅니다.
서민들이 김한길과 좌익들의 속삭임을 귀담아 듣고 그들의 미래가 이 현실처럼 암울하며 귀족계급에의 진입이 가로막힌 현실이다는 자각과 공포를 생생히 느끼게 되어 좌익의 깃발 아래 뭉치고 일어서게 되면 그 때 가서는 나라 구하기는 진실로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서민들이 나서서 귀족계급 또는 부유층의 보수적 발언, 또는 부유층을 지지하는 보수층의 발언을 막아 버릴 테니까요.
즉, 과거 수십년간 기득권 보수층들이 그들의 자녀양성을 위해 문을 막아버린 질좋은 공교육, 가난해도 수재가 서울대에 갈 수 있던 그 장이 막힘으로 해서 오늘 친북좌익들의 서민 공포심 이용한 선동이 먹혀들게 될 찰라에 이른 것입니다.
이 문제는 기업가 양성 및 기업환경 창조 의 장르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보수우익들이 이 문제를 보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 ? 기존 보수우익 지도층들 가운데 뼈저린 가난을 지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들의 현자녀가 캄캄한 미래를 앞두고 있는 보수층은 드물 것입니다. 아마 그러할 것입니다. 가난한 서민층, 교육부재의 서민층, 고급교육의 장이 막혀버린 빈곤층들에게 진정으로 동감하고 동정하는 보수 지도자는 어디 있습니까 ?
친북좌익들은 갈수록 더 신나서 실업고 등지로 돌아다니며 서민층이 가진 미래에 대한 공포와 실제로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어 미래가 막힌 그 자녀를 위한 현존하는 공포감을 열심히 잠깨우고 각성하도록 만들 텐데, 기껏 나온 조선 사설과 보수의 논법은 김한길이 실업고생을 이용한다는 발언 성토 수준에나 머물러 있음을 봅니다.
유령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게다가 한국인들이란, 얼마나 교육에 치열한 종족들입니까 ? 그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친김정일세력 즉 공산당의 유령이 바로 이 잠재된 교육 문제 및 발묶인 서민층의 미래에 대한, 즉, 지바고가 말한 대로, 삶의 유지를 향한 공포를 실업고에서부터 들고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2006.3.10. 파아란 한은경 씀.
칼 맑스는 공산당선언에서 유령이 몰려오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령이 몰려오긴 했는데 그것은 맑스가 선언한 유럽에서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러시아에서 였습니다.
닥터 지바고에 보면 지바고의 의붓형 안드레예비치가 지바고의 집에 찾아가 처음 상면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 지바고가 공산당 혁명을 종기를 수술하는 일에 빗대어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공산당 지도요원인 안드레예비치는 지바고에게 당에 가입을 권유합니다. 그럴 때 지바고가 하는 말이 '누군가는 삶을 유지시켜야 돼.' 입니다.
김한길의 실업고에서의 양극화 및 귀족계급 운운의 발언이 보수여론에서는 선동을 부추긴 발언이라 하였지만, 저는 그 발언이 서민의 가슴 밑에 잠재해 있던 공포를 일깨우는 발언이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공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무엇에 대한 공포 인가 하는 점 및 어떤 방향으로 공포가 표출되는가 에 따라 공포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과거 고대사에는 무자비함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국민을 통치하는 기술이 발달했었습니다. 무자비한 죽임과 처형, 처벌이 그러합니다. 북한의 김정일이 세운 반동분자 삼대멸족 정책 및 정치범수용소 라든지 정치범을 처형하는 일을 쥐새끼 죽이는 일보다 힘들게 여기지 않도록 인민들의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기법 등이 다 공포심의 이용에 해당할 것입니다.
양극화를 선동하는 문제는 서민들의 가난한 현상을 일깨우는 효과에 불과하겠지만, 귀족계급 출현을 떠드는 주제에 들어가면 그것은 현실을 논한 문제가 아니라 서민들에게 그들의 미래 역시 암울하고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이므로 거기서 깨어나는 공포는 극대에 가깝습니다. 미래가 없는 서민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
미래에의 꿈이나 희망이 없는 사람은 절망과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니, 극심한 절망과 공황은 사람을 처참하게도 하며 이성을 상실하게도 하며 나아가 폭도로 변하게도 합니다. 김한길의 발언 및 그 발언 장소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그 공포의 각성 때문에 있습니다.
유령이 바야흐로 이 땅에도 오고 있는데 무슨 유령으로부터 시작하는가 하면, 미래에 대한 공포심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특히 저는 많은 글을 통해 김정일의 대남적화혁명이 성공단계에 와 있음, 즉 김정일 來到에 대한 공포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공포를 일깨움으로써 김정일세력의 연방제통일사변을 막아보려는 의도 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김한길 및 친북좌익 세력은 대한민국의 한 표를 행사하며 여론의 주축을 이루는 -- 부유층은 이런 점에서 여론의 주축세력이 될 수 없습니다. 입도 한 개요, 표도 한 장 이기 때문입니다. -- 일반 서민들의 미래에 대한, 삶에 대한 생생한 공포를 일깨움으로써 그들의 정권 유지 및 연방제사변에 유리한 길을 택하고자 모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포심 대(對) 공포심이라 할, 우익과 좌익의 각기 다른 그러나 내용상은 비슷한 전략이 서로 밀치고 싸우는 중이라 하겠습니다. 헌데, 유감스러운 것은 보수우익들의 김정일 대남적화혁명 임박 이란 경계경보 즉 공산당에 대한 공포심 일깨우기 가 이미 대한민국에서 수십년 이상 써먹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개의 젊은이들은 그 구호에 식상하여 있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김한길 측이 사용하는 서민의 미래에 대한 공포심 일깨우기 전략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으니 싱싱한 전법이라 하겠습니다. 즉, 보수들은 낡은 전법을 쓰고 있고 수구좌익들은 신 전법을 사용한다는 말씀입니다. 헌데, 친북좌익들이 막 쓰기 시작한 공포심 일깨우기 전법에 맞서는 보수의 대김정일 공포심 이용은 전략상으로 보거나 논리성으로 볼 때 서민의 지지를 얻을 승산의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
저는 그 점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민들의 미래에 대한 공포심이 정말로 밀물처럼 일어나고 두드러져 저들이 자원해서 친북정권을 선택하게 될 때에는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그 점에서, 지난 수십년간 교육을 -- 이미 교육이야말로 가난한 서민들이 성공과 행복해지며 상위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라는 것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 '평준화'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가난한 서민의 자녀들에게서 질 좋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해버린 보수들의 죄 또는 기득권층의 죄는 심각한 것이었다고 질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는 스스로 걷어찬다. 즉, 스스로 걷어차고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자유인 만이 나라를 지키고 미래를 지킬 수 있다고 도 이미 말씀드렸거니와, 국운의 위기 지경에 이른 오늘에 와서도 반성하지 않고 반성하기 싫어하며 비판의 말에 대해서는 성토하기에나 여념이 없는 보수라면 구제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이명박의 말, 한나라당은 물놀이 가는 것 같다 는 발언에 대해 박근혜가 노여움을 표시했는데, 그럼 그녀는 왜 북한으로 달려가고 남북합의서를 갖고 친여 및 친김정일 스럽게 나아가 연방제통일사변의 방향으로 일하기 시작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는 노여움을 표하지 않습니까 ? 그녀는 자신과 당을 비판하지만 않으면 다들 잘 굴러가는 줄 아는가 봅니다.
서민들이 김한길과 좌익들의 속삭임을 귀담아 듣고 그들의 미래가 이 현실처럼 암울하며 귀족계급에의 진입이 가로막힌 현실이다는 자각과 공포를 생생히 느끼게 되어 좌익의 깃발 아래 뭉치고 일어서게 되면 그 때 가서는 나라 구하기는 진실로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서민들이 나서서 귀족계급 또는 부유층의 보수적 발언, 또는 부유층을 지지하는 보수층의 발언을 막아 버릴 테니까요.
즉, 과거 수십년간 기득권 보수층들이 그들의 자녀양성을 위해 문을 막아버린 질좋은 공교육, 가난해도 수재가 서울대에 갈 수 있던 그 장이 막힘으로 해서 오늘 친북좌익들의 서민 공포심 이용한 선동이 먹혀들게 될 찰라에 이른 것입니다.
이 문제는 기업가 양성 및 기업환경 창조 의 장르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보수우익들이 이 문제를 보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 ? 기존 보수우익 지도층들 가운데 뼈저린 가난을 지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들의 현자녀가 캄캄한 미래를 앞두고 있는 보수층은 드물 것입니다. 아마 그러할 것입니다. 가난한 서민층, 교육부재의 서민층, 고급교육의 장이 막혀버린 빈곤층들에게 진정으로 동감하고 동정하는 보수 지도자는 어디 있습니까 ?
친북좌익들은 갈수록 더 신나서 실업고 등지로 돌아다니며 서민층이 가진 미래에 대한 공포와 실제로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어 미래가 막힌 그 자녀를 위한 현존하는 공포감을 열심히 잠깨우고 각성하도록 만들 텐데, 기껏 나온 조선 사설과 보수의 논법은 김한길이 실업고생을 이용한다는 발언 성토 수준에나 머물러 있음을 봅니다.
유령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게다가 한국인들이란, 얼마나 교육에 치열한 종족들입니까 ? 그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친김정일세력 즉 공산당의 유령이 바로 이 잠재된 교육 문제 및 발묶인 서민층의 미래에 대한, 즉, 지바고가 말한 대로, 삶의 유지를 향한 공포를 실업고에서부터 들고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2006.3.10. 파아란 한은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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