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은 남쪽이 먼저 선제공격한 것"

강정구씨 2시간 동안 장황하게 자기 주장 되풀이. 재판 후 지지자들과 자유진영 인사들 충돌. 일부 몸싸움도.
- 승강기 입구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김남균 기자(hile3@hanmail.net)


1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한 공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이 아수라장이 됐다.

시작부터 소란스러웠던 이날 공판이 끝나자, 로비에서 강 교수를 기다리던(?) 자유진영과 강 교수 지지자들간에는 고성과 함께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사자인 강 교수는 별도의 문으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전반적으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자유진영 쪽이었다. 공판이 끝난 후 강 교수 지지자들은 로비를 거쳐 승강기로 이동할 때까지 '빨갱이' 소리 등을 들으며 거친 몸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자유진영 한 회원은 '아까 내게 욕을 했다'며 강 교수 지지자들 중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경찰관들은 양측이 함께 승강기를 타지 못하도록 떼어 내느라 애를 먹었다.

강 교수 지지자들이 탄 승강기 문이 닫히자 자유진영 회원들은 '빨갱이 잡아라' 하면서 계단을 따라 뛰어 내려갔고, 법원 입구 민원실에서 마주친 양 진영 간에 멱살잡이가 벌어지는 등 충돌은 계속되었다.


민원실에 있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일부는 살벌한 분위기를 피해 밖으로 뛰어 나가기도 했다.

청사 건물 밖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어가고, 그 뒤를 또 한 무리가 뒤쫓고 있었다.

도로변에서는 강 교수를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황급히 택시를 잡아 줄행랑을 놓기도 했다. 한 자유진영 회원이 이들을 끌어내려 하자 다른 회원이 만류했다. 출발하려는 택시기사에게 자유진영의 한 회원은 '이들은 빨갱이다. 김정일을 찬양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진행된 공판은 강 교수의 주장을 전하는 강연장이 되어 버렸다. 지난 2003년 송두율씨 재판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강 교수의 장황한 답변에 판사는 '지난번 공판에서도 다 얘기했던 부분 아니냐'며 '이해는 하지만 짧게 답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답변 내용이 너무 길어 그대로 기록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강 교수는 '서해교전은 남쪽이 먼저 선제공격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사격은 북측이 먼저 했지만, 우리가 먼저 밀어내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주장을 이미 자신의 칼럼에서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방청객들 중 강 교수를 반대하는 자유진영 쪽에서는 대다수가 처음 들어본 말이었는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함께 ´서해교전´의 원인은 북한과의 합의 없이 이뤄진 ´북방한계선´ 때문이며, ´12해리´를 기준으로 하는 ´국제 해양법´에 따르면 이 지역은 '북한의 영해'라고 했다. 계속해서 동독 내의 서독 영토인 ´서베를린´ 협정을 언급, 통행료를 주고 북한 영역에 들어가는 협상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듯한 주장도 펼쳤다.

또한 『미 국무부도 북방한계선 통과를 영해침범으로 보지 않고, 1996년 7월17일 이양호 국방장관도 “해상북방한계선은 우리 어선이 조업 도중 잘못해 월북할 것을 우려해 우리가 임의로 설정한 북방한계선인 만큼 북한에서 넘어와도 정전협정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답변했다』는 한겨레 신문 보도를 인용하기도 했다.

'학자는 차가운 이성 이전에 먼저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냉전으로 비롯된 성역, 즉 ´냉전성역´을 허무는 것은 평화통일로 나가는 이 시점에서는 시대적 요청'이기 때문에, 이를 자신의 '학문적 좌표'로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단순히 연구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실천'을 해야 한다며, 여러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역설했다.


가입한 단체들이 反美단체 아니냐는 지적에는 '´반미´가 목적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단체'라고 반박했다. ´평화통일´에 장애가 되는 요소에 비판을 하다보니 ´반미´도 끼어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클린턴 행정부 시절, 한반도 평화통일에 미국이 기여하던 때에는 ´친미´도 했었다고 부연했다.

어찌되었건 자신의 주장들이 실정법인 ´국가보안법´에 위배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위험 부담을 고려는 했었다'며 '그러나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의지를 꺾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물론 국가보안법이 학문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이라는 논리도 덧붙여졌다.

한반도 분단에 미국뿐 아니라 소련 역시 책임이 있지만, 주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말도 했다. 자신의 분단책임론에는 '미국개입'이 아니라 '외세개입'이라는 표현을 써, 소련 역시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그렇다고 미국이나 소련이나 똑같다는 '양비론'은 미국에 '면죄부'를 주고 소련에 '덤터기'를 씌우는 것이므로 반대한다고 했다.

가장 많은 논란을 몰고 왔던 ´6·25는 통일전쟁´ 부분에 대해서는 '전쟁 주체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통일을 목적으로 한 것 아니냐? 北도 마찬가지고, 南은 물론 유엔군도 전쟁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 통일 아니었냐?'고 했다.

더불어, ´내전´이지 ´침략전쟁´은 아니라는 주장도 되풀이 했다. '북한은 당시 국제법상 주권 국가가 아니었으므로, ´침략전쟁´이란 용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

´연방제 통일´ 주장에 대해서는, 80년대에 북한이 주장했던 그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80년대 북한의 연방제 통일은 '경제적 독자권'만 언급됐지만, 자신의 것은 '정치·사회 분야까지 독자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자신의 주장이 문제된다면 김대중 前 대통령이 합의한 6·15선언 역시 문제삼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강 교수의 강연(?)은 계속되었다. 그는 물을 연거푸 마셔가며(1병을 비움) 이야기했다. 중간에 피곤함을 호소, 재판이 잠시 휴정되기도 했다.

휴정 중 로비로 나간 강 교수는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고함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경찰과 지지자들이 그를 보호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임에도 매우 좁은 법정에서 진행된 이날 공판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내내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재판중에 자유진영의 한 회원은 강 교수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큰 소리로 말해, 판사로부터 ´유치´ 당하기도 했다.

한편 강 교수에 대한 다음 공판은 31일이다.

[김남균 기자]hile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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