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1일 급서한 개그맨 김형곤씨가 작년 월간조선 7월호에 기고했던 글임.
[기고] 한국 코미디의 위기
풍자가 사라진 한국 코미디는 죽었다!
10代, 20代에 편중돼 있는 요즘 우리 방송 코미디는 정말 문제가 있다. 시사풍자의 영역을 열어야 한다. 풍자는 코미디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김형곤 코미디언
1960년 경북 영천 출생. 동국大 국어교육과 졸업. 1980년 데뷔. KBS 「유머1번지-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 출연. MBC 「세상엿보기」 공동진행. KBS 시사토크 코미디 「웃음한마당」, 김형곤쇼 진행. 現 연예이벤트사 「모이콤」 대표. 극단 「곤이랑아트홀」 대표. KBS 코미디대상(1987),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연기상(1996) 수상.
데뷔 1년 만에 중진, 2년 만에 원로
얼마 전,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하는 젊은 개그맨들이 「소속사 대표에게 노예계약을 강요당했다」고 폭로했다가 며칠 만에 합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소속사로부터 방송출연을 미끼로 억울한 계약을 맺었다. 단 한 푼의 전속금도 없이 10년, 15년 장기 전속계약을 맺은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다 벌어간다」며, 곰들이 쿠데타 아닌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쿠데타에 대한 반응은 반반 정도로 엇갈렸다.
『「키워만 주세요」, 「방송출연만 시켜 주세요. 그러면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하다가 이제 좀 컸다고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느냐』는 사람들이 있었다. 『해도 너무 했지, 어떻게 전속금 한 푼 없이 10년, 20년을 묶어 놓느냐, 칼만 안 들었지 이건 날강도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송에 몇 번 출연해서 겨우 자신의 이름 석 자 정도 알리는 「반짝 인기」를 얻은 개그맨들이 왜 이렇게 성급하게 「내 몫 내놓으라」고 소속사에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이런 본질적인 의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언론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요즈음 개그맨들의 수명이 너무나 짧아졌기 때문이다.
방송에 몇 번 얼굴을 내밀고 『거까이 거 대충』, 『그런 거야』 같은 유행어 몇 개 만들고, 재미있는 얼굴 표정으로 인기를 끌고, 그것이 식상해지면 곧바로 후배들에게 밀려나 찬밥신세가 된다.
데뷔 1년 만에 중견 되고, 2년 만에 원로 되고, 3년 만에 은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우리 코미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상 유례가 없는 코미디언의 短命(단명). 이유가 뭘까? 요즘 코미디에서 풍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극」과 「희극」 가운데 「비극」은 가진 자들의 문화다. 그리스에서는 있는 자들이 「나도 이렇게 눈물이 있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기 위해 비극이 발전했다.
「희극」은 없는 자들의 문화다. 있는 자들의 횡포에 대해 대놓고 얘기할 수 없으니, 그것을 웃음을 통해 풍자하면서 발전했다.
盧武鉉 풍자에 넘어가는 관객들
코미디의 본질이 풍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코미디에서 풍자가 사라졌다. 그 암울했던 5共 시절에도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같은 시사 풍자 코미디가 있었고, 그 후에도 「탱자 가라사대」, 「꽃피는 봄이 오면」과 같은 시사 풍자 코미디가 있었다.
그런데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는 시사 코미디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 스토리도 없고, 내용도 없는 1분 내지 3분 짜리의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허무한 코미디만 판을 치고 있다.
한국 코미디에서 풍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필자는 지금 대학로에서 「엔돌핀 코드」라는 두 시간짜리 코미디극을 진행하고 있다. 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하면, 이 부분에서 관객들은 모두 뒤로 넘어간다.
<盧武鉉 대통령이 눈꺼풀 수술한 데 대한 반응이 둘로 갈라집니다. 盧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죠. 『어머, 대통령 눈이 참 커졌다』.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럽니다. 『눈까고 앉았네』>
아마 필자가 이런 얘기를 공영방송에서 했다면, 노사모가 『김형곤이 저 자식 죽이네, 살리네』 난리가 났을 것이고, 그날로 20여 년간 유지해 온 내 코미디언 생활이 끝장났을 게 분명하다.
노사모를 욕하려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가지고 풍자를 하면 「박사모」가 『김형곤이 이 무례한 놈을 죽이겠다』고 피켓을 들고 방송국으로 몰려왔을 게 확실하다.
의사를 풍자하면 의사협회에서 난리를 치고, 변호사를 풍자하면 변호사협회에서 난리가 난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풍자가 되겠는가?
얼마 전, 후배 하나가 「블랑카」란 이름으로 스리랑카 외국 노동자 흉내를 내며,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을 히트시켰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방송국에 몰려와 『왜 중소기업 사장들을 나쁘게 묘사하느냐』고 항의를 했고, 그 다음부터 「블랑카」의 멘트는 『봉숙이 나빠요』로 바뀌었다.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나. 그래서 결국 그 코너는 없어졌다.
풍자를 용납 않는 살벌한 사회
이게 지금 우리 한국 코미디의 현실이다. 독일의 콜 총리는 독일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대한 몸과 체구 때문에 「우둔한 바보 같은 총리」로 코미디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한국의 「최불암 시리즈」 같은 「콜 시리즈」가 유행했다.
당사자인 콜 총리가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나. 그런데 콜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 하나가 바보가 되어, 독일 국민 여러 사람이 웃을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왜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런 여유와 멋이 없을까? 선거 때마다 「보통 사람」, 「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도, 자신을 풍자하는 코미디언을 용납한 대통령은 없었다. 가끔 대통령들을 흉내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寸鐵殺人(촌철살인)의 풍자를 하는 게 아니라 집권 초기 대통령의 인기에 영합했다는 게 솔직한 사정 아닐까?
필자는 25년 동안 코미디언으로 일하면서 요즘같이 대통령을 두고,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한 것을 첨 봤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아한다. 근데 싫어하는 사람들은 TV에서 盧대통령 얼굴만 나와도 『야, 딴 데로 돌려!』 그러면서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현한다.
만약 내가 방송에서 盧武鉉 대통령을 풍자하는 코미디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순간 인터넷 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익명의 힘을 빌려 『한나라당에서 얼마를 받고 그런 저질개그를 하느냐』, 『고통을 안겨 주겠다』는 글이 난무했을 것이다.
이렇게 살벌한 사회 분위기에서 어떻게 시사풍자 코미디를 할 수 있겠는가?
유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서양 코미디언들은 『유머는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대에게서 사랑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예를 들어 내가 TV에서 盧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적인 풍자 코미디를 하면, 모든 사람들은 그걸 보고 웃는다.
그러나 그렇게 웃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실컷 웃고 난 후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나를 나무라며 『그래도 대통령인데 이건 너무 심하다』 혹은 『盧대통령이 김형곤이한테 엄청 당하는구나, 안 됐다』 이러면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동정심까지 생겨, 코미디를 보면서 사람들은 盧대통령 편으로 한 걸음씩 가게 되는 것이다. TV에 盧대통령이 나오는 것만 보면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은 盧대통령 편으로 다가갈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들이 盧대통령을 풍자한 코미디를 볼 때 마음이 풀어지고, 盧대통령에게 가까이 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클린턴과 제이 르노
빌 클린턴 前 미국 대통령과 코미디언 제이 르노.
신랄한 시사풍자를 통해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그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는 더 올라간다. 클린턴 대통령은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때 자신을 8년간 쉴새 없이 괴롭힌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초청해서 만찬을 베풀었다.
그날 만찬 유흥의 사회자는 유명한 코미디언 제이 르노였다. 넉살 좋은 클린턴 대통령은 사회자 석으로 나와서 공동 사회를 봤다. 르노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무한한 빚을 지고 있고, 그가 나를 도와준 데 한없는 감사를 느낀다』고 섭섭함을 털어놓았다.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한 청중들이 다들 뒤로 넘어갔다.
『지난 8년간 코미디 소재를 구하는 데 단 한 번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내게 끊임없이 코미디 소재를 공급해 주었다. 클린턴이 백악관을 떠난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 우울하다. 앞으로 어떻게 코미디언으로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앞으로 나는 이런 위대한 대통령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지금 굴리고 있는 고급차, 좋은 맨션은 다 클린턴이 마련해 준 것이다』
모니카 르윈스키 양의 드레스에 묻은 클린턴의 정액 이야기를 수백 번도 넘게 풍자 소재로 써먹은 코미디언이 제이 르노다. 르윈스키 스캔들이 한창일 때 제이 르노는 시거를 입에 물고 무대에 올랐다.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와 사랑을 나눌 때 르윈스키의 「거시기」에 시거를 한번 담갔다가 피웠다는 사실이 알려진 걸 비꼰 것이다.
그런 제이 르노를 바라보면서 클린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그의 등을 다정하게 두들겨 주었다.
이게 바로 유머의 본질이며 힘이다. 「어떤 놈이 감히 나를 코미디 소재로 삼느냐」는 식의 권위주의적 자세는 지도자를 국민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할 뿐이다.
로라 女史의 코미디
KBS 2TV 폭소클럽에 출연할 때의 필자.
얼마 전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가 역시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완벽하게 대본을 익혀 비교적 긴 「코미디극」을 했다. 인사말을 하는 부시 대통령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로라 여사는 코미디를 시작했다.
『우리 남편은 밤 9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때부터 나는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다』
『「악의 축」을 뿌리뽑으려면 잠을 줄이라고 충고했다』
『우리 남편은 시간만 나면 (텍사스의) 크로포드 목장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농사일은 전혀 모른다. 잡목을 잘라낸다면서 나무를 마구 베어낸다. 한 번은 젖을 짜겠다면서 숫소에게 달려들었다』
코미디언인 내가 듣기에는 좀 썰렁한 얘기였다. 그렇지만 미국 사람들과 언론들은 영부인이 백악관을 출입하며 고생하는 기자들을, 온 국민을 한 번 웃겨 보겠다는 그 순수한 마음을 따뜻하게 받아들였다.
「영부인이 수준 낮게 우스개나 하고」라는 식으로 나선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이 얼마나 인간적이며 아름다운 풍경인가?
대통령 영부인도 웃음의 중요함을 알고, 온 국민들 앞에서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는 그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백악관에는 대통령의 연설에 조크를 넣어 주는 「웃음특보」가 있다. 로라 부시 여사의 「코미디극」 역시 이들이 써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엔 언제나 유머와 해학이 담겨 있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의 입에서는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 기쁘고 희망이 넘치고 즐거워야 하는데, 우린 왠지 불안하다.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아슬아슬하고, 「이번엔 무슨 말실수를 할까」 온 국민이 걱정을 한다.
지금이라도 청와대에 「웃음특보」를 임명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해보자!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할 때 「어제 제 손주한테 들은 얘긴데요」 그러면서 유머를 하나 하게 되면, 그 유머가 웃겼든 안 웃겼든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청와대에 「웃음 특보」를 임명하라
설사 국민들을 못 웃겨서 대통령이 민망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얼마나 더 가깝게 느끼겠는가. 그러면 장관이나 차관들도 회의하기 전에 조크를 하게 될 것이고, 그룹 회장도 임원회의 하기 전에 조크를 하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우리나라는 조크와 유머가 넘치는, 언제 어디서나 웃음꽃이 넘치는 엄청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온 국민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 것이며, 자살하겠다는 사람들이 엄청 줄 것이다. 스트레스가 줄어들면서 암발생률 역시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드라마, CF, 다큐멘터리는 10년 전과 비교할 때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코미디만 게걸음으로 옆으로 가고 있다. 넘어지고 때리는 바보짓, 원초적인 말장난, 노숙자·거지·깡패 정도나 다루는 코미디가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나이 사십이 넘은 중년들이 요즈음 인기 있는 TV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나 「개그콘서트」를 보면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애들은 웃는데, 왜 난 안 웃을까」 그러면서 그런 코미디를 이해 못하는 자기 자신을 속상해하며 슬퍼진다.
10代, 20代에만 편중돼 있는 요즘 우리 방송 코미디는 정말 문제가 있다. 웃는 세상, 코미디의 활성화를 위해선 과감히 시사풍자의 영역을 열어야 한다. 풍자는 코미디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지난 16代 국회는 정말 부패한 국회였다. 그래서 이번 17代 국회의원을 뽑을 때는 「바꿔 바꿔 깨끗한 사람들로 바꿔 바꿔」해서, 새로운 인물로 와장창 바꿨다. 근데 깨끗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을 왕창 뽑아놔서, 이건 우왕 좌왕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그래서 모 대학 교수가 실험차 지난 16代 국회의원들과 이번 17代 국회의원들에게 똑같이 비아그라를 먹였다. 지난 16代 국회의원들은 이 약을 먹자마자 다 발기가 됐는데, 17代 국회의원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왜 그런가 알아보니 답이 나왔다. 16代 국회의원들은 전부 X같은 놈들이었고, 이번 17代 국회의원들은 X도 아닌 놈들이었기 때문이란다>
이런 조크 정도는 아무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언제나 올까?●
풍자가 사라진 한국 코미디는 죽었다!
- 김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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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12, 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