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뉴라이트닷컴 객원칼럼
한홍구의 진부한 영웅담
송재윤
한홍구는 2004년 7월 8일 <한겨레 21>에 기고한 '20세기형 민족주의자, 김일성'이란 글에서 김일성이 부국강병을 추구한 근대적 민족주의자이며, 덩샤오핑과 같은 실용주의자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레닌’이 되기엔 장기집권했고 ‘호치민’이 되기엔 일가친척이 많았지만, 동학운동과 항일 빨치산의 정신을 잇는 역사적 정통성이 있으며, 따라서 “그가 북쪽에 있는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요컨대 김일성은 빛나는 항일투쟁 경력으로 전 인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근대화를 추진했던 민족주의 지도자였다는 얘기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그가 명실공히 북한 인민들의 ‘어버이 수령’이었다는 주장까지 한다.
“형제들의 수령,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평양은, 아니 전 이북이 흐느꼈다. 물론 박정희가 죽었을 때도 착한 백성들은 연도에 나가 슬피 울었다. 그러나 그 강도가 똑같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다 독재자들의 세뇌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거대한 가족국가의 가부장이었던 김일성이 가족국가의 구성원 개개인과 맺은 진한 관계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북을 이해할 수 없다.'
한홍구는 진부한 80년대 주사파 논리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80년대 대학가에선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있었다. 그때 한홍구가 읊어대는 신파조 영웅담들이 항간의 풍문처럼 대학가에 범람했었다. 이른바 주사파 운동권들인데, 한홍구가 21세기에 다시 우려 먹는 그 번연한 논리는 결국 80년대의 재판일 뿐이다.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은 전혀 새로운 정보가 아닐 뿐더러 그의 장기독재와 폭정을 정당화시킬 수도 없다.
김일성을 근대적 민족주의 지도자라고 칭송한 한홍구는 같은 글에서 그가 거대한 가족국가의 가부장이라고 규정한다. 가족국가는 근대 민족국가(modern nation-state)와 배치되는 개념이며, 가부장은 기껏 왕조시대의 낡은 리더십일 뿐이다. 박노자와 마찬가지로 한홍구는 근대국가가 뭔지, 근대성(modernity)이 뭔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의 이념적 경직성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개념적 혼동을 초래한 것이다.
또 한홍구는 김일성이 실용주의자라는 주장을 한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설파한 것과 마찬가지로 김일성 역시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밥만 먹으면 된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 논거이다. 덩샤오핑이 실용주의자로 평가되는 것은 그가 실용주의 노선으로 마오 이후의 전 중국을 뒤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흑묘백묘론을 현실에서 구현했다.
김일성은 중국이 자본주의 개혁으로 치닫던 80년대 내내 무엇을 하였던가? 북한을 극빈국으로 전락시켰으며, 최악의 세습전제정을 공고화했다. 덩의 노선을 따라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맞춰 실용주의 개혁을 추진했다면, 오늘날의 북한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김일성을 실용주의자로 칭송하는 것은 그의 어록을 교시로 삼는 북한 이데올로그나 하는 짓이다. 그건 마치 북한의 노동당 규약이 인민의 복지를 이념으로 내걸고 있다는 이유로 북한이 복지사회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일 것이다.
한홍구는 김일성이 근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20세기형 인간이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의 변종공산주의가 근대화를 지향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스탈린, 마오쩌둥 체제조차 졸속한 근대화를 추진했다는 점은 이미 1950년대 학계에서 간파했던 바였다. 문제는 김일성 노선은 근대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근대화에 역행했으며, 북한을 극빈의 ‘중세’ 속에 유폐시켰다는 점이다.
중국뿐 아니라 구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이 모두 개혁.개방의 기치를 들었을 때 김일성은 세계사적 흐름을 거슬러 폐쇄적인 전제주의를 강화시켰다. 그 결과 현재의 북한의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한홍구의 표현대로 김일성은 고작 “가족국가”의 가부장으로 군림했을 뿐이다. 세습전제정의 군주를 근대적 인간이라 말하는 것, 전체주의 수령유일체제에서 근대성을 구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한홍구의 지적 아둔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한홍구는 역사가의 기본을 어기고 있다. 구소련의 알카이브가 개방되어 한국전쟁 발발에서 김일성의 적극적인 역할이 만천하에 공개된 이 시점에도 조악한 수정주의 논리에 집착하는 것, 한홍구의 시대착오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게다가 그는 식민지 시대 국경지대에서 사람들이 김일성을 존경했다는 일제시대 기록 하나를 떼어 와서 그를 “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드는 것도 과분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까지 한다. 그가 일제시대 일부 집단에서 항일 투쟁의 영웅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해도 그가 “민족의 태양”으로 평가되는 것은 분명 정치적 선전일 뿐이다. 한홍구의 삼류 스칼라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한홍구가 자신의 얘기가 마치 새로운 것인양 떠벌린다는 점이며, <한겨레 21>은 그 엉성한 논리, 구태의연한 발상을 마치 새로운 얘기인양 과대포장해서 게재했다는 것이다. 80년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한홍구의 논리는 이미 20년 전 낡은 풍문일 뿐이다. 그때 김일성을 민족영웅으로 떠받들던 이른바 주사파 운동권들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홍구는 암울했던 80년대 그 몽매했던 ‘우상숭배’와 불합리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한홍구의 이념적 정체성은 김일성을 “형제들의 수령”이라 단정하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문화-다원주의나 역사적 내재주의를 가장하고 있지만, 한홍구은 결국 ‘김일성주의’의 옹호자에 불과하며, 김일성-김정일의 세습전제왕정과 투쟁하는 모든 북한 인민의 공적이다. 스탈린 정권을 인정하고 옹호했던 자들이 스탈린의 박해를 받거나 반스탈린 투쟁을 했던 사람들의 공적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마도 한홍구가 말하는 형제들이란 김일성 정권하의 노멘클라투라일 것이며, 김정일 정권하의 강경파에 국한될 것이다. 그런 감상적인 언어로 희대의 독재자를 옹호하는 것이야 말로 곡학아세며, 반인권 범죄다. 물론 한홍구 같은 자에게 보안법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이미 대한민국의 여론이 한홍구와 같은 “수구꼴통”의 궤변에 휘둘릴 위험도 없으며, 북한의 전제정이 무너지는 날, 친스탈린 노선을 걸었던 서구의 지식인들이 거쳐야 했던 그 칼날 같은 이성의 비판이 한홍구의 감상적이고 낡아 빠진 이론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송재윤 (하버드대 유학생, 정치철학)
좌익수구꼴통들의 김일성 영웅 만들기
- 송재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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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14, 14: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