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요덕스토리'를 보고

<요덕스토리>가 단 10%만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김일성/김정일은 결코 위대한 지도자로 찬양될 수 없습니다.
출처: 프리존
글쓴이: 삼덕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된 후 TV에서 완전히 사라진 북한주민의 실상을 예전에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연변의 시장을 맨발로 돌아다니며 바닥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북한 꽃제비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기자가 탈북 어린이에게 운동화 한 켤레를 사주었는데, 너무 좋아라, 하며 골목길을 달려가다 돌아서서 기자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몇 번이고 돌아서서 고개를 숙여 그렇게 감사의 인사를 했는데, 나도 그 기자가 고마워 눈물이 나는 거였습니다. 그 아이는 한국 기자의 배려를 평생 잊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나는 보잘것없는 운동화 한 켤레를 신고 기뻐서 펄쩍펄쩍 뛰며 ‘잊지 않겠습니다’하는 그 소년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뮤지컬 <요덕 스토리>에서 남녀 주연배우의 아들로 나온 ‘이요덕’은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요덕을 잊으면 안 돼요!” 요덕을, 먹고살아보겠다고 두만강을 건너다가 강물에 휩쓸려 죽은 북한 어린이들을,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연변에 도착하면 꽃제비로 방랑하는 아이들을, 잊고 외면하면 인간적으로 아주 잘못된 짓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잊고 싶어서 잊은 것은 아닙니다.

북한에서 해맑은 웃음을 보았다(한상렬), 북한을 믿는다(손석춘), 박정희는 발악적인 독재를 했지만 김일성은 위대한 독립운동가였다(강만길), 김일성은 천리마운동으로 사회주의 경제를 발전시켰다(열린당이 옳다고 하는 고교 역사교과서), 6.25는 (긍정적인 의미의) 통일전쟁이었다(강정구), 김일성은 김일성의 위대성을 부각시키고 북한주민의 인권은 완전히 무시해도 되는 ‘내재적접근법’으로 분석해야 한다(송두율), 김일성은 20세기의 위대한 실용주의적 지도자였으니 김일성을 비판하면 안 된다(한홍구)…고 떠드는 무리들이 기세등등하게 설칠뿐더러, 심지어 대한민국 과거사 정리의 완장까지 차고 있는 세상이 되는 중에 북한주민의 인권을 말하면 냉전수구꼴통이라는 욕을 먹지 않습니까? 그들의 선전은 과연 진실입니까?

영화를 보십시오. ‘웰컴투 동막골, 동해물과 백두산이,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보면 북한 인민군은 가슴이 너무나 따뜻한 휴머니스트입니다. 휴전선 북쪽에서 총을 들고 있는 북한군은 적이 아닙니다. 우리를 돕는 친구이며 의인입니다. 인민군의 편을 들다 국군에게 죽은 사람은 억울한 피해자일 뿐입니다. 한국 경찰과 국군 그리고 미군이 X자식입니다. 적화통일을 추구한 세력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 했던 세력들은 인권을 무자비하게 유린한 깡패나 살인마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해도 안 되고 긍정도 안 됩니다. 노빠매체들은 북한주민 인권의 참상을 알리는 외신보도가 나오면, 그거 조작 아니냐, 입 닥쳐라, 라고 떠들곤 합니다. 그렇지만, <요덕스토리>가 단 10%만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김일성/김정일은 결코 위대한 지도자로 찬양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독극물을 보약으로 속여서 유포하는 죄악일 것입니다. 하물며, 100%진실이면, 실재는 훨씬 더 처참하다면 얼마나 비열하고 사특한 죄악이겠습니까.

그런데, 정권을 잡은 자들이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김정일의 눈치를 살피면서 국민혈세를 이판사판으로 상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치는 핵개발과 전투기구입에 사용되든 말든, 인권을 탄압하는 철권독재체제를 강화시켜줌으로써 주민의 인권이 지옥의 상황에 더욱 오래도록 고착되게 하는 것이든 말든 마구잡이로 퍼주는 것은 옳고, 합리성과 투명성 그리고 상호주의성과 북한주민 인권의 실질적인 개선을 성실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전쟁하자는 거냐!”하는 욕을 먹어야 하는, 그렇게 욕하는 인간들이 권력을 잡고 민주화와 인권에 헌신했다는 교만한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활보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치고 있었고,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요덕스토리>를 보고 건물 밖으로 나와 광장을 걸어 나올 때, 참회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운동화 신고 뛰어가던 아이를 잊고 있던 죄를 반성합니다.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조차 않은 죄를 용서하소서. 요덕에,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북한 동포들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하소서. 거짓을 진실이라고 속이고, 이기적이고 교활한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주민의 인권을 비참하게 억압하는 무리들과 그 무리들이 위대하다고 옹호하며 힘을 실어주는 세력들에게 심판을 내리소서. 사특하고 완악한 무리들은 몰락되게 하소서. 저는 아무 힘이 없사오니 하나님께서 속히 임하여 주소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소서. 진실과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기뻐하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했던 것은 요덕수용소의 ‘리태식’이 절규하는 노래로 하나님의 임재를 호소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거기 계시지요… 저들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다만 우리를 즉결 심판대에 세우지 마시고, 이곳 수용소에서 구하소서…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 도와주소서…”

배우들의 노래를 들으며, 연기를 보며 그들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작곡자가 작곡을 하면서, 배우들이 공연 연습을 하면서 왜 울었는지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하나둘씩 다시 무대에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할 때, 모든 관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쳤습니다. 출연했던 배우들이 모두 나올 때까지 이심전심으로 박수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감독에게, 작곡자에게, 주연뿐만 아니라 수용소 감시자 역할을 했던 배우, 수용소 죄인 역을 맡은 배우들, 세트를 준비한 스텝, 공연장 입구에서 팜플렛을 판매한 직원들 하나하나에게 격려가 되기를 소망하며, <요덕스토리>의 ‘생명존중, 용서와 사랑, 북한 주민들의 인권 신장’을 향한 뜻이 온 세상에 더욱 잘 알려지기를 소망하며 저도 간절하게 박수를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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