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때 그 사람들'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趙甲濟씨의 증언방청기
영화'그때 그사람들'재판 증인심문
'박정희 개인뿐 아니라 국가지도부, 그리고 역사에 대한 모독'
“만약 10·26에 대해 제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역사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을 것”
영화 ‘그때 그 사람들(MK 필름 제공, 명 필름 배급)’의 명예훼손 관련 손해배상 소송 재판이 어제 열렸다. 이 재판은 박정희 前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 씨가 ‘영화의 내용이 사실을 왜곡해 故人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배급사인 명 필름을 상대로 작년 3월 손해배상 및 상영금지 청구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증인심문은 서울중앙지법 민사 합의13부(재판장 조경란 부장판사)의 주재로 서울지방법원 463호 법정에서 3월16일 오후 3시 15분부터 열렸다. 이날 증인심문에는 趙甲濟 월간조선 편집위원이 원고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趙甲濟 편집위원은 1971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월간 마당 편집장을 지낸 뒤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후 月刊朝鮮 기자, 월간조선 편집장, 월간조선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는 월간조선 편집위원으로 재직중이다.
趙위원은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前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해 1987년 ‘유고 1, 2’와 2005년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라는 책을 저술한 바 있다. 趙위원은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7년 동안 500여명과 인터뷰를 했고 특히 10·26 당시 시해 현장의 생존자들은 모두 인터뷰했었다고 한다.
원고측 대리인 이승환 변호사의 질문으로 증인심문이 시작됐다. 질문지에는 총 46개 질문이 있었으나 내용상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38개의 질문만 이뤄졌다.
李 변호사는 趙위원에게 이 영화를 본 적은 있는지, 영화에서 묘사된 부분들이 1979년 10월 26일 당시와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趙 위원은 영화를 봤다며 “영화를 만든 분들이 자료 수집을 나름대로 많이 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감상을 밝혔다. “하지만, 골격이 되는 부분은 사실과 일치하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허위가 많다”고 했다.
李 변호사는 영화 속에서 10·26 당일 삽교천 방조제를 시찰하러 가던 헬리콥터 안에서 박 대통령이 동행한 각료들과 ‘물개 이야기’등 음담패설을 한 것으로 묘사된 부분에 대해 사실인지 물었다.
趙위원은 “박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며 “실제로 박 대통령은 30분 정도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했다. 당시 동행했던 사람들과 만나 인터뷰를 한 결과 헬리콥터 안에서는 추곡수매가에 대한 농민들의 반응을 묻고 쌍안경으로 지상을 살펴보면서 반월공단의 입지에 대해 묻는 등 공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었다고 한다”면서 '박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李 변호사는 궁정동 安家에서 박 대통령이 시해당할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영화와 사실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趙위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목숨을 구걸하듯 ‘한 방 맞았다 아이가, 또 쏠라고’라고 말하는 장면, 김재규가 박 대통령의 머리채를 잡고 총을 쏘는 장면, 당시 동석했던 여가수가 일본 가요를 불렀던 장면,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다카기 마사오’라고 부른 장면 등이 모두 악의적 허위라고 말했다. 현장 생존자들의 증언과 수사기록에는 그런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 일본 노래를 부른 사람이 없었고 '그때 그 사람' '도라지' '사랑해 당신을' '두만강 푸른 물에' 등 한국 노래만 나왔다는 것이다. 김재규가 일본말로 이야기한 적도 없으며 박 대통령은 총에 맞은 다음에도 “난 괜찮아”라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걱정했었다고 그는 증언했다.
박 대통령이 숨진 뒤 주요 각료들이 국군서울지구 병원에서 나체가 된 시신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최규하 前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영화의 장면도 허위라고 했다.
이런 허위적 표현에 대해 “아무리 봐도 박정희 대통령 개인과 당시 국가 지도부 전체, 그리고 역사에 대한 모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李 변호사는 趙위원에게 DVD로 제작된 영화의 영문 자막 내용 중 “This film is based on a true story: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Park Junghee(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박정희의 암살)”이라는 부분을 봤는지, 1970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사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趙위원은 “‘이 영화는 사실과 다르니까 주의해서 봐야 한다’고 설명해야지 그렇게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만 말하면 외국인들이나 젊은 세대들은 이 영화 자체가 실화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며 “그건 당시 국가 지도부 전체과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격 모독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趙위원은 이어 “10·26 사건과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결과들로 인해 前後 30여년 간의 역사가 결정된 우리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며 '그런 중요한 역사를 쓰레기로 만든 영화를 보면서 대한민국에 대하여 무슨 억한 심정이 있는 사람이 만든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의견을 밝혔다.
趙위원은 “만약 10·26에 대해 있는 그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역사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피고인측 변호사가 반대심문을 하지 않아 증인심문은 약 50분 만에 끝났다. 다음 재판은 4월 13일 오전 11시에 열릴 예정이다.
영화'그때 그사람들'재판 증인심문
'박정희 개인뿐 아니라 국가지도부, 그리고 역사에 대한 모독'
“만약 10·26에 대해 제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역사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을 것”
영화 ‘그때 그 사람들(MK 필름 제공, 명 필름 배급)’의 명예훼손 관련 손해배상 소송 재판이 어제 열렸다. 이 재판은 박정희 前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 씨가 ‘영화의 내용이 사실을 왜곡해 故人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배급사인 명 필름을 상대로 작년 3월 손해배상 및 상영금지 청구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증인심문은 서울중앙지법 민사 합의13부(재판장 조경란 부장판사)의 주재로 서울지방법원 463호 법정에서 3월16일 오후 3시 15분부터 열렸다. 이날 증인심문에는 趙甲濟 월간조선 편집위원이 원고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趙甲濟 편집위원은 1971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월간 마당 편집장을 지낸 뒤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후 月刊朝鮮 기자, 월간조선 편집장, 월간조선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는 월간조선 편집위원으로 재직중이다.
趙위원은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前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해 1987년 ‘유고 1, 2’와 2005년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라는 책을 저술한 바 있다. 趙위원은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7년 동안 500여명과 인터뷰를 했고 특히 10·26 당시 시해 현장의 생존자들은 모두 인터뷰했었다고 한다.
원고측 대리인 이승환 변호사의 질문으로 증인심문이 시작됐다. 질문지에는 총 46개 질문이 있었으나 내용상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38개의 질문만 이뤄졌다.
李 변호사는 趙위원에게 이 영화를 본 적은 있는지, 영화에서 묘사된 부분들이 1979년 10월 26일 당시와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趙 위원은 영화를 봤다며 “영화를 만든 분들이 자료 수집을 나름대로 많이 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감상을 밝혔다. “하지만, 골격이 되는 부분은 사실과 일치하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허위가 많다”고 했다.
李 변호사는 영화 속에서 10·26 당일 삽교천 방조제를 시찰하러 가던 헬리콥터 안에서 박 대통령이 동행한 각료들과 ‘물개 이야기’등 음담패설을 한 것으로 묘사된 부분에 대해 사실인지 물었다.
趙위원은 “박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며 “실제로 박 대통령은 30분 정도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했다. 당시 동행했던 사람들과 만나 인터뷰를 한 결과 헬리콥터 안에서는 추곡수매가에 대한 농민들의 반응을 묻고 쌍안경으로 지상을 살펴보면서 반월공단의 입지에 대해 묻는 등 공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었다고 한다”면서 '박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李 변호사는 궁정동 安家에서 박 대통령이 시해당할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영화와 사실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趙위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목숨을 구걸하듯 ‘한 방 맞았다 아이가, 또 쏠라고’라고 말하는 장면, 김재규가 박 대통령의 머리채를 잡고 총을 쏘는 장면, 당시 동석했던 여가수가 일본 가요를 불렀던 장면,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다카기 마사오’라고 부른 장면 등이 모두 악의적 허위라고 말했다. 현장 생존자들의 증언과 수사기록에는 그런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 일본 노래를 부른 사람이 없었고 '그때 그 사람' '도라지' '사랑해 당신을' '두만강 푸른 물에' 등 한국 노래만 나왔다는 것이다. 김재규가 일본말로 이야기한 적도 없으며 박 대통령은 총에 맞은 다음에도 “난 괜찮아”라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걱정했었다고 그는 증언했다.
박 대통령이 숨진 뒤 주요 각료들이 국군서울지구 병원에서 나체가 된 시신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최규하 前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영화의 장면도 허위라고 했다.
이런 허위적 표현에 대해 “아무리 봐도 박정희 대통령 개인과 당시 국가 지도부 전체, 그리고 역사에 대한 모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李 변호사는 趙위원에게 DVD로 제작된 영화의 영문 자막 내용 중 “This film is based on a true story: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Park Junghee(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박정희의 암살)”이라는 부분을 봤는지, 1970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사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趙위원은 “‘이 영화는 사실과 다르니까 주의해서 봐야 한다’고 설명해야지 그렇게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만 말하면 외국인들이나 젊은 세대들은 이 영화 자체가 실화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며 “그건 당시 국가 지도부 전체과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격 모독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趙위원은 이어 “10·26 사건과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결과들로 인해 前後 30여년 간의 역사가 결정된 우리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며 '그런 중요한 역사를 쓰레기로 만든 영화를 보면서 대한민국에 대하여 무슨 억한 심정이 있는 사람이 만든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의견을 밝혔다.
趙위원은 “만약 10·26에 대해 있는 그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역사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피고인측 변호사가 반대심문을 하지 않아 증인심문은 약 50분 만에 끝났다. 다음 재판은 4월 13일 오전 11시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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