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기(10권3장)/감사편지

버스안내양에게 방한복을 만들어준 사장에 보낸 편지는 박정희의 소박한 마음씀씀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어린 나이에 가정 형편이 불허하여 상급학교에 진학도 못하고 직업전선에 나와서 고된 일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소녀들에게 조그마한 선물 하나씩을 보내어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할까 하는 뜻에서
1977년을 보내면서 朴 대통령은 일기를 썼다.
<1977년 12월31일 맑음. 달력에는 마지막 한 장이 남았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1977년 丁巳年(정사년)은 영원한 역사 속에 흘러가 버린다. 그리고 또 이 밤이 지나면 1978년 戊午年(무오년)이 밝아올 것이다. 지나간 정사년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특기할 雄飛跳躍(웅비도약)의 해였다. 民族中興(민족중흥)의 새 역사 창조의 이정표가 되리라. 종로 보신각에서 除夜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금명 묵은 해는 떠나간다. 그리고 새해가 밝아온다. 종소리를 들으며 천지신명에게 두 손을 합장하고 경건히 기구하였다. 새해에도 조국 대한민국에 평화와 번영과 영광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 모두 總和團結(총화단결)하여 민족중흥의 새 역사를 위하여 보람 있고 위대한 성공이 있는 해가 되도록 하여 주옵소서>

돌이켜보면 1979년의 대파국은 1978년에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해는 朴 대통령이 집권한 지 18년, 유신체제가 출범한 지 7년째 되는 해였다. 월남 赤化 직후 일체의 反정권적 행위를 금지시킨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된 지도 4년째로 접어들자 민주화 운동 세력도 공포에서 벗어나 저항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학생회총연맹의 통계에 따르면 反정부 학생사건은 1975년엔 10건, 76년엔 13건, 77년엔 23건으로 늘더니 78년엔 31건으로 급증했다.
1978년의 학생사건 중 3분의 2는 그해 5월18일에 있었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그해 7월6일에 있었던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제9대 대통령 선거를 전후하여 일어났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있었던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차 회의는 2,578명의 대의원이 참석해 2,577명이, 단독출마한 朴正熙 후보를 임기 6년의 차기 대통령으로 찍음으로써 99.9%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1978년은 또 3大 스캔들의 해였다. 기업부정(한국사회 실세들에 대한 현대아파트 부정분양 사건), 공무원 부정(경북교육위원회의 가짜 교사 사건), 정치인의 타락(成樂鉉 스캔들)으로 이어진 3대 사건은 유달리 더웠던 이해 여름에 몰려 터졌다. ‘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를 구호로 내건 朴 정권은 전해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고, 중화학 공업 건설, 새마을 운동, 중동건설 시장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었지만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싫증과 성장의 그늘 속 불만은 소리 없이 퍼져가고 있었다. 朴 대통령은 韓美갈등이 해소국면으로 돌아서고,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도 내부 반발로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음인지 사회의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큰 변화를 感知하지 못하고 過信과 안일함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국민 요구를 한 없이 들어주다가는 고삐를 잡기 어렵다”

1978년 1월11일. 朴대통령은 청와대 출입 기자단을 초청해서 오찬을 함께 했다.
“서울에 있는 버스 안내양들에게 방한복을 한 벌씩 선물로 주었더니, 그것을 안 지방 버스 안내양들이 자기네들도 해달라고 해서 인원을 알아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1만5000명이나 됩디다. 그것을 내 활동비로 다 해 줘서 이 달에는 내 호주머니가 벌써 바닥이 났어. 내가 한 벌 해주면, 소속사 사장들도 한 벌씩 해 주어서 내가 준 것하고 교대로 입게 하면 좋을 텐데….”
朴 대통령은 그 뒤 안내양들의 방한복을 만들어 준 회사 사장에게 친필로 감사편지를 보냈다.

<태흥무역회사 權泰興 사장 귀하.
時下酷寒之節(시하혹한지절) 귀체 건안하심을 仰賀且祝(앙하차축)하나이다.작년 연말과 금번 舊正(구정)에 제하여 서울과 전국에서 근무하는 버스 안내양들을 위하여 따뜻하고 품위 있는 방한 코트와 바지를 제조하여 주시고, 특히 바지는 귀사에서 무료로 선사까지 하여 주셔서 감사하기가 말할 수 없는 바입니다.
어린 나이에 가정 형편이 불허하여 상급학교에 진학도 못하고 직업전선에 나와서 고된 일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소녀들에게 조그마한 선물 하나씩을 보내어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할까 하는 뜻에서 귀사에게 부탁을 하였던 것인데, 귀하께서 그 취지를 忖度(촌탁)하시고 성심껏 협조하여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이 물품을 받은 안내양들도 이것을 알게 되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더욱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자기들이 맡은 일에 성심성의 열심히 일을 하리라고 믿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귀사의 더욱 隆昌(융창)과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1978年 2月2日
朴正熙 敬具(경구)>

한 기자가 벌써부터 사전 선거 운동이 과열기미를 보인다는 말을 꺼냈다.
“빨리 해서 끝내 버릴까?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 不在라고 하다가도 국회를 열면 별별 소리를 다 하더군. 國政감사가 있을 때 같으면 더 시끄러웠을 겁니다. 마치 어사 출두한 기분으로 선거에 임하는 것 같아요.”

대통령은 국회를 전혀 생산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할 일은 국가기강을 세우는 것입니다. 정신문화를 부흥시켜야 해요. 경제와 정신문화는 같이 발전을 시켜야지 先後를 따지면 안 되는 겁니다.일본은 경제만 급속히 발달시키다 보니 道義(도의)며 문화가 땅에 떨어진 겁니다. 일본 지도층 인사들도 ‘국가 경영은 이렇게 해야 된다’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을 보니 어렵긴 어려운 문제인가 보지. 선거 때가 되면 우선 이기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유권자를 계속 풀어놓다가 보니까 일본이 오늘과 같은 반성을 하는 것 아닙니까. 국민들의 욕구를 한없이 들어 주다가는 그 고삐를 잡기가 어려워요. 어느 정도 억제하다가 경제 성장에 맞추어서 슬슬 풀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치와 정신문화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正道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大英제국도 노조 문제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영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욕구를 선거 때마다 한없이 들어 주다 보니 지금의 고민을 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화제가 外貨 문제로 넘어갔다.
'美貨(미화)는 만일에 있을지도 모를 전쟁에 대비해서라도 축적해야 합니다. 통일이 힘겨루기라고 할 경우, 金日成과 내가 씨름 경기를 가질 수 있는 자리만 마련된다면 나는 자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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